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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는 인생 사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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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려면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김홍신 작가에게 물었다.

“글로벌로 삽니다”.

김홍신 작가는 요즘 일상을 이렇게 말했다. ‘글로 벌 받는다’는 작가의 유머다. “소설보다 100배는 재미있는 세상사 덕에 누가 책을 읽겠냐”며 소설로 밥벌이가 힘든 현실을, 그럼에도 작가로서의 소명은 포기할 수 없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빗댄 것이다. 일흔이 넘었지만, 중앙선관위 민주시민정치아카데미 원장으로, 법륜 스님과 함께 평화통일을 위한 통일의병 대장으로, 행복한 삶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인생학 강사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최근엔 본업인 작가로 돌아왔다. 순수한 사랑을 그린 장편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 을 세상에 내놓은 것. 소설은 어려서부터 신부가 되길 꿈꾸던 고3 수험생 리노와 일곱 살 연상의 성가대 반주자 모니카의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간의 영원한 숙제인 사랑의 본질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어 오랫동안 ‘글로벌’한 끝에 내놓은 작품이다. 소설에 대한 주변 반응은 뜨겁다. 한 동료 작가는 “‘김홍신’에서 ‘김홍’을 뺀 ‘신’이 쓴 것 같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소설을 쓰는 동안 ‘사랑과 용서로 짠 그물에는 바람도 걸린다’는 문장을 책상에 붙여놨다고 한다. 그의 사랑 이야기는 이 문장에서 풀리기 시작했다.
 

바람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바람은 보통 네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첫째 자연에 부는 바람, 둘째 소망, 셋째 실을 세는 바람. 명주실 ‘한 바람’은 너무 멀면 끊어지고 가까우면 엉켜요. 즉 이때의 바람에는 적절한 간격을 유지하라는 의미도 있지요. 네 번째, 정상적이지 않은 행위를 바람이라고 합니다. 이런 네 가지 의미인데 다 합해보면 결국 자유가 돼요. 사랑과 용서로 짠 그물에는 그 자유도 걸려들지요. 바람이 그물에 걸리듯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사랑의 힘을 소설에 담고 싶었어요.
 

사랑의 본질에 대한 해답은 찾았습니까?

정답이나 해답을 내리기가 너무 어려워요. 괴로울 때 마음공부를 하느라고 면벽도 해보고, 명상 수련도 해봤는데 그럴 때마다 가슴속에 가장 크게 남는 게 사랑이라는 낱말이었지요. 사랑이라는 것은 인류가 사라질 때까지 영원한 숙제로 남을 것 같아요. 사실 ‘사랑’과 ‘행복’이란 용어는 불과 100년 전까지는 우리나라에 없던 말이에요. 그 이전에 사랑은 ‘정’, 행복은 ‘만족’이란 말로 불렸지요. ‘정’의 본질이 바로 휴머니즘이에요. 남녀 간의 사랑은 처음엔 100℃로 들끓어요. 뭐든 녹이지요. 그러나 결국 36.5℃로 돌아갑니다. 36.5℃라야 뜨거웠던 그 순간을 영혼의 창고에 쟁여둘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보통 사랑이 식으면 갈등을 낳지 않나요?

과학적으로도 호르몬 작용 때문에 3년이 지나면 식는다고 하잖아요. 그 뒤에 어떻게 살 것이냐를 생각해야지요. 36.5℃로 내려오는 것이 정상인데 나는 36.5℃로 내려왔으면서 상대는 계속 100℃이길 바라잖아요. 자기 생각은 안 하고 받으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지요.
 

남녀 사이에 온도 조절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 아직도 만년필로 글을 써요. 그런데 새로 산 만년필은 서너 달이 돼야 내 손에 익어요. 하다못해 도구인 만년필도 적응하기까지 몇 개월이 걸리는데 숨을 쉬고 생각을 하고 이성과 감정이 있고, 영혼이 활동하는 사람은 얼마나 오래 걸리겠어요. 평생 상대에게 맞춰가는 것이지요.

김홍신 작가는 소설의 모티프가 되는 물건을 책상에 두고 글을 쓴다. <단 한 번의 사랑> 을 쓸 때는 한 작가의 솟대를, <대발해> 를 쓸 때는 1300년 전 발해의 실제 유물을 책상에 뒀다.

인생학 강의를 많이 하는데, 만나는 중년들이 김홍신 작가에게 털어놓는 고민은 뭔가요

강연장에서 질문을 받아보면 ‘잘못 산 것 같다’ ‘결혼을 괜히 한 것 같다’ ‘나이를 헛먹었다’ 이런 식이에요. 종합해보면 ‘난 행복하지 않다’는 이야기지요. 왜냐? 한국인은 두뇌가 너무 좋아요. 두뇌가 좋아서 계속 남과 비교해요. 학력, 외모, 키, 자동차, 피부 모든 것을 비교해요. 누구와 비교하냐? 나보다 나은 사람이지요. 당연히 열등감이 생깁니다. 주눅이 들어서 남에게 뭔가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러니 명품 천국, 짝퉁 천국이 되고요. 자꾸 인생에 비교법을 사용해서 그래요.
 

남과 비교하는 삶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면요?

강연할 때 농담처럼 “제가 어떤 사람 같아요?” 하고 물어요. 그러면 ‘좋은 사람’ ‘유명한 작가’ ‘뭔가 특별함이 있는 사람’ 여러 말이 나와요. 저는 “여러분은 저를 좋게 보는데, 우리 아들은 ‘안 살아보면 몰라요’라고 말해요”라고 하죠. 예로부터 원친근공(遠親近功)이라고 했어요. 멀리 있는 것은 친해지고 가까이 있는 것은 공격한다는 말이지요. 인생은 살아보지 않으면 몰라요. 그럼에도 사람들은 인생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죠. 그 정답이란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인물 좋고, 학력 좋고, 배우자는 평생 나만 존중해주고, 자식은 나를 섬기고 효도하고, 도저히 찾을 수 없는 불가능한 답을 찾는 겁니다. 답을 찾기 이전에 내가 얼마나 존엄한지를 먼저 인식해야 해요. 나란 존재는 우주에 달랑 하나밖에 없어요. 또 한 번뿐인 삶이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존엄해요. 세상에 나처럼 위대한 사람이 없지요. 내가 소중하면 주변에 풀 한 포기의 소중함도 알게 돼요. 인생에 정답은 없어요. 명답으로 살아야 해요.
 

작가가 생각하는 인생의 명답이 궁금하네요.

한 번뿐인 인생, 잘 놀다 가지 않으면 불법이라고 말해요. 요즘 평균수명은 늘었는데 가만 보면 죽기 전 10여 년 동안은 전부 병자로 살아요. 지난해 경주에서 세계 한글작가대회를 치렀는데, 그날 밤 문인들과 어울려 보니, 다들 보따리 두 개를 들고 왔어요. 하나에는 중요한 문서, 통장, 도장 등이 들었고 다른 하나는 약봉지로 채워졌어요. 지난해 우리나라 약 소비 총액이 22조원이라고 해요. 왜 아플까요? 공부하느라, 자식 키우느라, 집 장만 하느라 애가 탄 세월이 너무 긴 겁니다. 놀지 못해서 그래요.
 

어떻게 노는 것이 잘 노는 건가요?

나를 즐겁게 하는 행위가 노는 거예요. 일로 생각하면 안 돼요. 제가 글을 쓸 때도 그래요. 이제는 글로 먹고사는 작가는 열 손가락도 안 돼요. 밥벌이도 안 되는 이 글을 쓰려고 왜 이렇게 고통 받느냐? 일로 생각하면 절대 못 써요. 내 책을 읽어주는 사람에게 행복을 전달한다, 내 인생에서 한 권의 역사가 생긴다, 이 책을 씀으로 해서 내 영혼이 깊어진다, 이 글을 쓰면서 세상의 지혜를 얻는다, 육체는 피곤하지만 정신적으로 건강을 유지한다. 일이 아니라 놀기 위한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하지요. 잘 놀면 육체의 늙음도 늦게 와요.
 

작가는 일상에서 어떻게 노나요?

나를 즐겁게 하는 행위가 노는 거예요. 일로 생각하면 안 돼요. 제가 글을 쓸 때도 그래요. 이제는 글로 먹고사는 작가는 열 손가락도 안 돼요. 밥벌이도 안 되는 이 글을 쓰려고 왜 이렇게 고통 받느냐? 일로 생각하면 절대 못 써요. 내 책을 읽어주는 사람에게 행복을 전달한다, 내 인생에서 한 권의 역사가 생긴다, 이 책을 씀으로 해서 내 영혼이 깊어진다, 이 글을 쓰면서 세상의 지혜를 얻는다, 육체는 피곤하지만 정신적으로 건강을 유지한다. 일이 아니라 놀기 위한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하지요. 잘 놀면 육체의 늙음도 늦게 와요.
 

일상에서의 행복을 충분히 즐기는 것 같습니다.

인생의 행복 그래프로 보면 행복은 그 순간에 느끼는 것이라기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아 그게 진짜 행복이었구나’ 하고 아는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인간시장>으로 주목받았을 당시 작가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너무 정신없이 바빠 그 행복을 느낄 겨를이 없었어요. 그러나 그 책이 있었기에 작가 김홍신이 있고 <인생사용설명서> <대발해> <단 한 번의 사랑> 그리고 이번 책까지 나올 수 있었지요. 행복은 단독으로 오는 경우가 드물어요. 앞서의 여러 일과 연결돼 있어요. 자식 키우는 과정을 떠올려보세요. 얼마나 힘들어요. 차라리 안 낳는 것이 낫지 않나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지나고 나면 그게 행복이거든요. 행복은 융합이에요. 자식이 주는 행복은 아이의 웃음, 아이의 아픔, 부부의 사랑 등이 첨가돼 얻은 결과물이지요.
 

지금 이 순간 겪는 어려움도 지나고 나면 행복의 요소라는 말씀이네요.

사람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은 자유예요. 이 자유를 저절로 얻는 방법은 없어요. 불가에 ‘화엄(華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온갖 꽃이 모인 세상이에요. 말하자면 인간이 다 꽃들이에요. 그렇게 모여서 세상을 만들잖아요. 그런 식의 개념을 가져보세요. 그러면 지금 나에게 닥친 어려움도 받아들일 수 있어요. 내 인생의 스토리가 되는 거지요. 이순신, 이성계, 장희빈, 연산군 등 드라마나 영화 주인공들을 보세요. 공통점이 뭘까요? 인생에 우여곡절이 많은 사람들이에요. 굴곡이 많았으니 스토리텔링이 되는 겁니다. 반면 신사임당을 보세요. 우여곡절이 없으니 주인공이 안 돼요. 제가 블랙리스트에 올랐을 때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어요. 그분들에게“나는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행복하다”라고 말했어요. 나중에 자서전을 써야 하는데, 내 인생에 굴곡이 없다면 쓸 말이 없지 않겠어요. 그 시기 나를 아프게 했던 고통도 지나고 나면 결코 나쁜 게 아니에요. 사람은 우여곡절,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해요. 지나고 나서 그 스토리가 모이면 인생을 잘 산 사람이 돼요.
 

남은 인생을 제대로 사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요?

죽음을 체험해보라고 권해요. 저는 명상과 면벽을 자주 해요. 면벽하고 앉아 있으면 하얀 벽 안에 인생이 보여요. 힘들었던 일, 실수, 미워했던 사람들, 그걸 털어 내니 그제야 자유가 오더라고요. 명상을 통해 내 몸도 탐구해요. 제 영혼이 작은 벌레가 돼 내 몸속에 들어가 심장도 간도 돌아다녀보는 거지요. 죽음 명상은 내가 죽었을 때를 상상해보는 거예요.
 

죽음 명상을 할 때는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하나요?

내가 죽으면 누가 올까? 자식들이 유산을 가지고 싸움을 할까?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은 누굴까? 내가 돈을 빌려준 사람은 갖다 줄까? 인생의 모든 것을 다 한 번 생각해보는 겁니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죽음을 체험하게 하는 곳도 있어요. 그런 곳은 보통 저승사자가 마중 나와요. 직접 수의를 입고 관에 들어가는데 사람들은 수의를 입는 순간부터 울기 시작해요. 비록 체험이지만 진짜 죽음을 경험해보는 겁니다.
 

죽음과 마주하면 두렵지 않나요?

누구나 두렵지요. 그런데 죽음이 없다면 종교도, 문학도, 예술도 생기지 않았겠지요. 죽음이 있기에 잘 살려고 노력하고 죽음이 있기에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하려고, 건강하려고, 재미있게 살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죽음 명상을 꼭 해봐야 해요. 다만 그 약발이 며칠 못 가요. 그래서 자주 하는 게 좋아요. 그만큼 내 삶도 정리되고 분명해져요.
 

마지막으로, 올해가 등단 40주년이 되는 해인데, 어떤 계획이 있는지요?

올해 말 논산에 김홍신 집필관이 들어서고 내년 말에는 김홍신 문학관이 완공될 예정이에요. 그곳에서 죽는 날까지 글을 쓰고 제자들 바라지를 하라는 하늘의 명령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게 더 정진하려고 합니다.

 

<바람으로 그린 그림> 은 그의 유년 시절 기억까지 투영해 쓴 남녀의 순수한 사랑을 그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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