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나전성기재단

그때 그 시절, 그리운 추억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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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0 추억의 장소로 떠나보는 시간

오랜만에 어떤 장소를 가보게 되면‘참 많이 변했구나’ 하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어릴 적 뛰놀던 공터, 첫 키스의 추억이 있는 장소들은 이제 빼곡한 빌딩 숲이 된 지 오래 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도 추억은 그 자리에 남는다고 합니다. 많은 것이 변했어도 마음속에서는 아직 그 시절 그곳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음속의 추억의 장소 하나 정도는 가지가 있으실 것 같습니다..

 

음악에 몸을 맡기다 ‘다방’

과거에는 다방이 커피전문점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젊은 지식인층이나 예술가를 꿈꾸는 청년들이 많이 드나들곤 했습니다. 또,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 누군가를 만나는 장소로 다방을 많이 이용하곤 했는데 그래서 다방 이름 자체가 약속다방인 곳도 있었습니다. 다방에서 나오는 커피는 보통 인스턴트커피였고 밀크커피, 블랙커피, 프림커피 정도가 있었습니다.


60년대부터는 주로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음악다방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다방은 70년대까지 크게 유행을 했는데 주로 대학로 쪽에 많이 자리하고 있었고 만남의 장소로 많이 이용되었습니다. 그 당시 대학생이라면 거의 한 번쯤은 이러한 다방을 가본 경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후에는 티켓다방처럼 다방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이 생겨났습니다. 이제 정상적인 다방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카페가 생겨나면서 대부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다방이라고 하면 꼭 소개해드려야 할 곳이 한 곳 있습니다. 무려 60년이라는 세월을 버티며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추억을 제공하는 ‘학림다방’입니다. 그 시절 대학로 일대에서는 ‘학림다방’ 이 특히 유명했습니다. 이곳이야말로 70년대까지의 근방 대학생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본 추억의 장소입니다. 서울대학교 문리대의 옛 축제 명인‘학림제’도 이 학림다방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60년 세월을 안고 있는 이곳은 민주화 운동의 산실인 동시에 예술인의 아지트이기도 했습니다. 서울시에서는 이런 학림다방을 ‘서울의 미래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를 그 곳, 만화방

“70년대와 80년대에는 만화방이 붐이었습니다. 만화방에서는 자장면 뿐 만 아니라 꽈배기나 튀김도 인기였습니다. 아이들이 기름 묻은 손으로 만화책을 넘기니 책에 온통 얼룩이 묻곤 했습니다”
 

“최초의 만화방은 공터였습니다. 시장판이나 공원같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좌판을 깔아놓고 푼돈으로 만화를 볼 수 있는 방식이었습니다. 공터에 만화를 진열해 놓으면 학생들이 돈을 내고 땅바닥에 털썩 앉아 만화책을 봤어요. 625전쟁 이후, 1950년대 후반부터 만화가 책으로 묶여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전문점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이처럼 만화방에 대한 다양한 기억들이 존재합니다. 과거에 비하면 요즘은 놀 거리 문화가 많이 발달하여 있습니다. 하지만 오락시설이 많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만화방이 학생들의 즐겨 찾던 장소였습니다. 당시에는 TV도 귀한 물품 중 하나였는데, 어떤 만화방에는 당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TV를 볼 수 있는 곳도 있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만화방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지금이야 웹툰처럼 컴퓨터나 휴대폰으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만화지만, 과거에는 종이 자체가 귀하던 시절이었기에 책을 쉽게 살 수 있는 학생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푼돈으로 만화를 볼 수 있는 만화방이나 대본소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오락 장소였습니다. 더구나 군사정권 시절에 만화책 자체를 종이 낭비로 여겨 만화잡지를 폐간시키는 일도 있었기 때문에 만화방은 더욱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80년대까지 큰 인기를 끌던 만화방은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 인기가 많이 사라지게 됩니다. 오락실이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는 등, 아이들이나 청소년을 위한 오락시설이 생겨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엄마 몰래 ‘구멍 가게’

구멍가게를 기억하십니까? 구멍가게의 어원은 본래 한자어 '가가(假家)'에서 나온 말로, 제대로 지은 집이 아니라 임시로 지은 작은 임시 건물을 뜻하는 말입니다. 구멍은 말 그대로 작은 좁게 뚫린 것을 말하는 것으로 곧 구멍가게란 비좁은 가게를 과장하여 말하는 것이지요.
 

예전에는 이러한 작은 구멍가게가 동네 골목길마다 하나씩 있었습니다. 00 슈퍼나, 00 상회라는 이름이 가장 많았고, 이름 자체가 없는 곳도 있었습니다. 출입문에 담배표지판이 크게 붙어있는 것이 특징이었고 주로 그 당시 어른들이 담배를 사러 많이 가곤 했습니다. 워낙 동네와 친근한 곳이라 외상을 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습니다.


어릴 적에는 그곳에 가면 천국이 따로 없었습니다. 맛있는 과자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곤 했으니까요. 그때는 동전 하나만 있으면 과자 하나를 살 수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빈 병을 모아 동네 구멍가게에 가져다주면 돈을 주곤 했는데, 과자로 바꿔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CCTV가 없던 시절이라 좀도둑도 꽤 많았습니다. 지금은 넓은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등이 생기면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오락실, ‘뿅뿅’의 추억 속으로

팩맨이라고 들어보셨나요? 팩맨을 조정하여 유령들을 피하고 길에 있는 점들을 다 먹는 방식의 게임이었습니다. 커다란 점을 먹으면 힘이 세지고 유령들을 잡아먹을 수도 있었죠. 또한, 보글보글은 기억하시나요? 공룡 모양의 두 캐릭터가 나와서 비눗방울을 발사해 괴물들을 가둔 뒤 터트리는 추억의 게임이었습니다. 1986년도에 제작되어 큰 성공을 거둔 오락실 게임으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테트리스는 많은 분이 기억하실 것 같습니다. 벽돌을 쌓으면서 가로로 한 줄을 다 채우면 그 줄이 사라지는 방식으로, 벽돌이 맨 위까지 쌓이게 되지 않게 모든 줄을 없애는 게임이었습니다.
 

이 게임들은 오락실에서 할 수 있었던 정겨운 추억의 게임들입니다. 그 시절 오락실을 즐겨 갔던 분들이라면 아직도 그 소리가 귓가에 맴돌게 되는 그런 게임들이죠.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오락실이지만 90년대 중반까지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가 바로 오락실이었습니다. 방과 후 친구들과 함께 삼삼오오 모여 어김없이 가는 곳이 바로 오락실이었으니까요. 80년대 오락실이 등장할 당시 50원 정도로 게임을 즐길 수 있었고. 90년대에 들어서면서 100원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오락실 내에서도 인기가 많은 게임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기 게임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대기해야 했습니다. 오락실에는 독특한 대기 방법이 있었는데 동전을 오락기 위에다가 올려놓아 자신의 차례를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대일로 벌이는 격투 게임에 경우 간혹 시비가 붙는 일도 생기기도 했습니다.


영원할 것 같던 오락실의 인기도 점차 시들게 되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컴퓨터가 많이 보급되고 피시방이 생겨나면서 더욱 빠르게 사라져갔습니다. 한때 동네마다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오락실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전국에 등록된 오락실도 400여 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늘은 추억 속의 장소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단 하루만이라도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장소는 어디일까요? 다시 그 장소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아마 아직 가슴속에서 추억이 살아있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못다 한 아쉬움일 수도 있겠죠. 지난 옛 추억을 그리며, 지금까지 전성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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