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동쪽에 있다는 그곳, 샹그릴라.
1933년 제임스 힐턴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을 통해 ‘샹그릴라’라는 가상의 지명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그 후 소설 속에 등장하는‘히말라야 동쪽에 있다는 그곳=샹그릴라’라는 믿음이 서구인들 사이에 퍼져갔다. 한때 완전히 단절되었지만 중국의 개방정책으로 모습을 드러낸 동티베트의 야딩풍경구 이야기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후 중국은 공산화되었다. 티베트를 포함한 중국 땅은 여행객들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는 금단의 땅으로 변했다. 히말라야 동쪽에 있다는 소설 속 그 지상 낙원도 외부와 단절되며 사람들 뇌리에서 점차 잊혀졌다. 샹그릴라가 현실의 땅이 아닌 꿈속의 이상향으로 굳어진 것이다.
실제로 중국에는 샹그릴라라는 지명이 두 군데 있다. 윈난성 샹그릴라와 쓰촨성 샹그릴라가 그것. 두 곳 모두 여행하기 좋은 곳임에는 분명하나 낙원을 기대하고 온 여행객 대부분은 ‘샹그릴라에 와보니 샹그릴라는 없더라’고 자조하며 떠난다. 여느 관광지와 다름없을 뿐 아니라 이름에 걸맞을 정도는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후의 샹그릴라가 남아 있다. 바로 샹그릴라진(镇)의 영내이지만 차로 한 시간 거리의 외곽에 있는 야딩(亚丁)풍경구(风景区)가 그곳이다. ‘지상 낙원’이라는 별명답게 접근하기는 어렵지만 그 땅을 밟는 순간 상상 속에서 그리던 샹그릴라를 만날 수 있다.
샹그릴라를 걷다
1928년 미국인 탐험가가 이곳 야딩풍경구를 여행하며 찍은 사진들이 3년 후 <내셔널지오그래픽> 표지와 내지에 실렸다. 야딩이라는 동방의 오지는 한순간에 지상 낙원의 이미지로 서구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곧이어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이곳은 서방세계와 완전히 단절되어버렸다. 그렇게 잊히는가 싶더니 50년 세월이 흐른 후 중국 정부가 개방정책을 확대하면서 바깥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야딩풍경구는 하루면 낙원을 만끽할 수 있다. 야트막한 평지부터 해발 4000m를 오르내리는 다채로운 코스로, 세상에 없는 듯한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롱통바에서 충고사까지
4 km
샹그릴라진의 중심가에 있는 읍내 터미널에서 버스를 탄다. 가파른 도로를 따라 수백 미터를 오른다. 아찔한 계곡 아래를 내려다보며 굽잇길을 수십 번 돌고 돌다 한 시간 후 트레킹 출발지인 룽퉁바(龙同坝)에 내린다. 해발 3780m 지점이다. 충고사(冲古寺)까지는 계곡을 따라 걷는 4km 거리다. 완만한 오르막이지만 평지처럼 느껴져서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 채 안 걸린다. 아직 전망은 트이지 않지만 계곡 물소리가 청정하게 들려서 좋은 구간이다. 야딩을 상징하는 설산 세 곳이 조금씩 그 윤곽을 드러낸다. 셴나이르(仙乃日, 6032m), 샤눠둬지(夏诺多吉, 5958m), 양마이융(央迈勇, 5958m)이 각각 우람하게 솟아 주변 삼면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티베트인들은 이곳들을 삼신산(三神山)이라 여기며 신성시하고 각각을 신격화하여 부른다. 북쪽의 셴나이르 신산은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관세음보살, 동쪽의 샤눠둬지 신산은 악을 뿌리치는 힘을 가진 금강수보살, 그리고 남쪽의 양마이융 신산은 지혜의 화신인 문수보살로 받들고 있다.
충고사에서 낙융목장까지
7 km
충고사는 금빛 찬란한 지붕을 얹은 채 셴나이르 신산의 기슭 아래 3880m에 위치한다. 삼신산을 모시는 특별한 임무를 맡고 있는 티베트 사원이다. 충고사에서 해발 4130m의 낙융목장(洛絨牛場)까지의 7km가 트레킹 2단계이다. 멀리 삼신산까지 확 트인 대초원을 걷는 여정이다.‘미려하고 고요하고 여유가 넘친다. 세상과 동떨어진 곳이다’라는 소설 속 묘사가 현실 눈앞에서 그대로 펼쳐진다.
천천히 두 시간 반 동안 대초원을 가로질러 낙융목장에 이르러 잠시 한숨 돌리는 동안에는 멀리 양마이융 신산의 절경에 압도된다. 삼각형으로 뾰족하게 솟은 거대 설산 봉우리가 하얀 구름에 감겨 신비감을 더한다. 낙융목장의 유래를 설명하는 안내판에는‘1928년 로크 선생이 이곳에서 머문 적이 있다’는 내용도 있다. 로크 선생은 야딩풍경구 사진을<내셔널지오그래픽>에 올려서 이곳을 서방세계에 처음으로 알린 미국 탐험가다. 90여 년 전 당시의 교통수단과 여건으로 이런 오지까지 탐험했을 상황을 생각하면 아득한 일이다.
낙융목장에서 오색해까지
5 km
해발 4600m에 있는 호수까지 가파른 산악길을 오르는 코스다. 총거리 5km로 사람에 따라서 두세 시간이 소요된다. 낙융목장을 나서면 한동안은 길이 넓고 편안하다. 자갈길이지만 그곳을 오간 많은 사람이 평평하게 다져놓았다. 한 시간쯤 지나면서 폭 좁은 돌계단길이 이어지며 경사가 급해진다. 무리하게 빨리 오르려 하면 당장 고산병에 노출될 수 있다. 해발 4000m를 넘어서는 무조건 심호흡을 크게 하며 몸은 최대한 천천히 움직이는 게 좋다.
거대한 암벽 밑에 수백 장의 깃발이 만국기처럼 휘날리는 곳에 다다르면 정상이 가까워진 것이다. 히말라야나 중국 등 티베트 문화권 지역이라면 흔하게 만나는 타르초(Tharchog, 經文旗)다. 타르초 한 장 한 장에 적힌 불교 경전 문구들이 바람에 읽혀, 무지한 중생들 마음에 심어진다. 가파른 초원에서 두 번째 타르초를 만나면 마지막 오르막이다. 해발 4500m 뉴나이하이(牛奶海)가 눈앞에 나타나고 잠시 후 호숫가에 몸을 앉힌다. 양마이융 설산의 빙하가 녹으며 빚어낸 호수의 빛깔은 비취색 에메랄드다. 마지막 오르막을 향해 500여m 올라가면 두 번째 호수인 오색해와 만난다. 해발 4600m 정상이다. 오색해는 셴나이르 신산의 중턱에 있는 호수로, 빛의 굴절에 의해 물 색깔이 다섯 가지로 변하는 것으로 보여서 붙은 이름이다. 오색해에서 하산할 때는 올라간 그대로 되돌아 내려오면 된다. 낙융목장에서 내려갈 때는 걷기보다는 충고사까지 전동차를 타고 가는 게 덜 지루할 수 있다.
찾아가는 교통편
다오청에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 남쪽으로 세 시간 정도 이동하면 샹그릴라진이다. 이곳에서 차량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야딩 여객중심(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면 야딩풍경구 입구까지 한 시간 가까이 걸린다.
숙박
당일치기도 좋지만 1박 2일 여정이 훨씬 더 여유롭다. 야딩풍경구에 들어가기 전날 주로 다오청이나 샹그릴라진에서 숙박하는데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숙박업소가 많다.
여행 팁
고산병 약 지참이 필수. 야딩까지 가는 여정은 상당히 험난하고 열악하다. 야딩풍경구 트레킹에서는 무거운 배낭은 반드시 샹그릴라진이나 야딩촌 숙소 등에 맡기고 출발하는 게 좋다.
트레킹 전후의 여행지
야딩의 관문인 다오청까지는 중국 내 항공편도 있지만, 차마고도와 연계하는 육상 동선이 일석이조다. 쿤밍-리장-샹그릴라를 거치는 윈난 루트와 청두에서 야안-캉딩-리탕을 거치는 쓰촨 루트가 있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
우기인 6~8월은 피하는 게 좋다. 이른 봄이나 늦가을 트레킹이 가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