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숨결을 따라, 수원 화성

기사 요약글

잔잔한 왕의 숨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 수원 화성. 그곳에 담긴 역사부터 주변 볼거리까지 함께 살펴보자.

기사 내용

 

 

세계문화유산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생겼지만, 그곳의 정취는 여전히 차분하고 담담하다. 백성들 가까이에서 그들의 소리를 듣고자 했던 어질고 현명한 왕의 숨결이 잔잔히 내려앉아 있는 곳, 수원화성이다.

 

6년 전 개봉해 큰 화제가 되었던 영화<사도>를 떠올린다. 사도세자는 반역죄의 억울함을 쓰고 뒤주에 갇혀 불운한 죽음을 맞게 되는데, 만약 그의 억울한 죽음이 없었다면 수원화성은 지금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사이에서 태어난 정조正祖는 왕위에 오른 후, 사도세자의 명예 회복을 위해 힘썼다.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 화산花山으로 이장하고 그 이름을‘현명하신 분을 융성스럽게 받든다’는 의미의 현륭원顯隆園으로 바꾸었다. 이 과정에서 화산 아래에 있던 수원부의 읍치조선시대 지방 고을의 중심를 팔달산 아래로 이전하고 화성행궁行宮-정궁을 나와 임시로 머무는 궁과 수원화성을 축성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수원의 기틀이 되었다.

 

 

 

 

성곽 건축의 결정체,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水源華城

 

 

수원화성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성 안이다. 수원화성을 천천히 한 바퀴 둘러본다. 반듯하게 쌓아올려진 성문, 포루, 봉돈 등 각각의 시설물에는 고유한 아름다움이 남아있고, 자연에 순응하여 지형을 따라 이어진 성벽은 유려하게 뻗어있다. 수원화성은 국내·외 성곽들의 장점이 결합된 성곽 건축의 결정체로 평가받으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정조는 자신의 왕권 강화 의지와 함께 당시에는 파격적인 정책과 획기적인 아이디어들을 이곳 축성에 쏟아부었다.

 

실학자 정약용이 고안한 거중기와 녹로 등 새로운 발명품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비용을 절감하면서 공사 기간을 단축시켰고, 효율적인 조직운영을 통하여 작업능률을 높였다. 기술자들을 천시하던 기존의 풍토 속에서도 기술자들을 각별히 우대했으며 또한 축성 공사 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에 참여한 기술자와 일꾼들의 이름을 모두 기록하고, 임금을 성과급제로 지불하여 공사에 대한 책임감을 높여주었다. 이에 일꾼들의 사기가 올라 작업 기간이 단축되어 더욱 튼튼한 성이 완성될 수 있었다. 정조는 민가의 피해를 줄이고자 기존의 설계를 바꾸기도 하였으며, 지나치게 춥거나 더울 때는 공사를 중지하기도 했다. 이처럼 실학정신과 애민정신을 바탕으로 지어진 수원화성은 수원 주민들의 삶의 터전으로서 오랜 세월 수원 사람들과 함께 숨 쉬어 오고 있다.

 

 

Info. 정조대왕

 

 

조선 제22대 왕으로서 조선시대 세종과 더불어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다. 규장각을 설치하여 학문을 발전시키고 장용영을 창설하여 왕권을 강화하였으며 탕평 정책을 추진하여 정국을 안정시켰다. 신분에 관계없이 뛰어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차별받던 서얼들을 등용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백성들을 위한 정책을 실시하였다. 더불어 국가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Info. 화성의 건축물

 

 

팔달문八達門 : 화성의 남문이다. 사방팔방 길이 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무지개 모양의 문은 왕의 행차 시에도 드나들 수 있을 만큼 널찍하다.

 

- 장안문長安門 : 화성의 북문이다. 조선 전기에 세워진 서울 남대문에 필적할 만한 당당한 외관을 갖추었고, 남대문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방어시설을 갖춘 진일보한 성문건축이다.

동장대東將臺 :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방이 트여 있어 화성의 동쪽에서 성 안을 살펴보기에 좋은 군사요충지이다. 무예를 수련하는 공간이었기에 연무대鍊武臺라고 하였다.

- 화서문華西門 : 화성의 서문이다. 석축으로 된 무지개문 위에 단층 문루門樓가 세워져 있다. 수원화성의 문을 간결하게 형상화한 수원시의 마크가 바로 화서문을 모델로 한 것이다.

- 창룡문蒼龍門 : 화성의 동문이다. 규모와 형식이 화서문과 비슷하다. 성문 왼쪽에 화강석 벽을 다듬어 글씨를 새긴 명판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화홍문華虹門 : 화성의 북쪽 수문. 수원화성의 북수문이며 남북으로 흐르는 수원천의 범람을 막아 주는 동시에 방어적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 방화수류정訪華隨柳亭 :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라는 뜻을 지닌 방화수류정은 자연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전시에는 적군 감시 기능을, 평상시에는 휴식공간으로 사용되었다.

- 봉돈烽墩 : 비상사태를 알리는 역할을 하는 통신시설인 봉돈은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벽을 쌓고 그 위에 5개의 화두를 쌓았으며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다.

- 포루鋪樓 : 군사들의 대기 및 휴식 장소이자 유사시엔 감시와 공격을 위해 쓰이기도 한다. 좌우에는 활을 쏘는 구멍이 있다.

 

 

 

 

희망이 꽃 핀 왕의 골목, 행궁동 벽화마을

 

 

행궁동은 정조대왕이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백성과 더불어 살고자 건설한 수원화성 성곽 내에 자리한 마을로 200여 년 전 화성이 축성될 당시에는 경제 활동과 치안이 보장되는 수원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화성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문화재 보호를 이유로 엄격한 개발 규제가 이어지면서, 행궁동의 시간은 그대로 멈추어 버리는 듯했다.

 

하지만 행궁동 주민, 지역 작가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뜻을 모아 벽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골목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기 담긴 벽화가 그려지고, 박제되어 있던 골목은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행궁동 벽화마을이 특별한 이유는 다른 벽화마을과 달리 마을 주민들이 뜻을 모아 만들고 꾸준히 관리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골목골목 마을 사람들의 정성과 애정이 담겨 있는 벽화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으면 걸음이 절로 느려진다. 성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행궁동 골목을 걷는 시간에 낭만과 여유가 스민다.

 

 

 

 

효심과 애민정신이 깃든 궁, 화성행궁

 

 

수원화성 성곽 안에 위치한 화성행궁에는 정조대왕의 효심과 애민정신이 담겨 있다.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는 수원에 모셔진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13차례나 찾았으며 참배기간 동안 화성행궁에 머물렀다. 화성행궁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은 봉수당奉壽堂으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호위무사가 지키고 있는 봉수문을 지나면 단아하면서도 단단해 보이는 봉수당이 눈에 들어온다. 과거 봉수당 앞의 너른 뜰에서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가 펼쳐졌다. 한성에 있는 창덕궁을 두고 수원까지 먼 길을 떠나 화성행궁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치러야 했던 정조의 안타까운 심정이 남아있는 곳이다. 봉수당옆으로 국왕 행차 시 사용되었던 건물인 낙남헌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과거 시험과 화성 축성식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정조는 낙남헌 앞 담장을 높이 세우지 않도록 했는데, 이는 백성들이 언제든지 찾아와서 억울한 일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백성들의 이야기를 귀담 아듣고자 한 정조의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A.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

T. 031-290-3600

 

 

 

 

차분한 산책, 아름다운 행궁길

 

 

화성행궁을 나와‘아름다운 행궁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행궁동 공방거리로 발걸음을 옮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곳은 여행객이 찾지 않는 낙후된 지역 중 한 곳이었다. 하지만 화성행궁에서부터 팔달문에 이르는 거리에 공방과 카페가 하나둘 자리를 잡으면서 수원을 대표하는 공방거리로 새롭게 태어났고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거리에 들어서면 개성 있는 간판과 다양한 공예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공방들이 차분하고 독특한 운치를 만들어낸다. 각기 다른 공예품이 전시된 공방들을 구경하다가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카페에서 잠시 쉬어가기에 좋다.



차분한 분위기가 흐르는 카페의 모습과 주인들이 손님들을 반가이 맞는다.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카페도 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가 촬영되기도 했던 카페, 영화 속 두 남녀 주인공이 대화를 이어가던 장면이 떠오르는 곳이다. 영화 촬영지라는 정보를 대문짝만하게 걸어 놓았을 만도 한데, 이 카페에서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입소문을 타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행궁동 공방거리를 찾겠지만, 지금의 정취를 오래도록 간직할 것만 같다.

 

 

푸근한 인심이 살아 있는 전통장터, 지동시장

 

 

100여 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지동시장은 수원 성곽을 배경으로 형성된 상설시장으로 순대, 농수산물, 생선, 야채 등 다양한 식품을 판매하고 있다. 지동시장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손꼽히는‘지동순대타운’은 약 15년 전 20여 개의 순대 전문점이 밀집하면서 만들어졌다. 서울의 신림동 순대타운, 안양 중앙시장 순대타운과 함께 전국 3대 순대타운으로 손꼽힌다.

 

A.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팔달문로 19

 

 

왕이 만든 시장, 팔달문 시장

 

 

팔달문 근처에 수원을 대표하는 재래시장들이 모여 있다. 그중 팔달문 시장과 영동시장은 왕이 만든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정조대왕은 상업을 번성시켜 수원을 풍족한 고장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 일환으로 수원 백성들에게 밑천을 대고, 팔달문 근처에서 장사를 하도록 했다. 자연스럽게 팔달문시장은 상업의 중심지로 부상했고, 부자도 많아졌다.

 


팔달문시장 앞에 정조대왕이 앉아서 술을 따르는 모양의 동상이 있다. 친근한 동상의 모습에서 백성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자 했던 정조대왕의 애민정신을 엿볼 수 있다.

 

A.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776번길 8

 

 

Info. 영동시장

영동시장은 경기 남부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시장이며, 수원의 대표적인 한복 특화시장이다. 팔달문시장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함께 둘러보기 좋으며, 시장 건물 2층에 조성된 예술문화공간‘아트포라’에서는 다양한 문화체험프로그램과 볼거리가 제공되고 있다.

 

A.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천로 255번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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