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곁에 김미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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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시절에도 그녀는 늘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았다.

기사 내용

김미숙

 

투명한 민낯에 하얀 리넨 셔츠를 입고 등장한 김미숙.‘사모님 의상’에 진주 목걸이를 걸지 않아도 그녀는 우아했다. 그 기품의 발원지는 사실 한 군데로 정의하기가 어려웠다. 귀에 착 감기는 목소리일까, 반달이 지는 눈웃음일까, 상대의 말에 천천히 끄덕이던 고갯짓일까. 아니면 바둑판같이 반듯한 삶의 태도일까? 사람의 분위기가 결국살아온 삶의 총체를 드러낸다면 그녀는 꽤 괜찮은 인생을 다져왔을 것이다. 이야기가 무르익으면서 막연한 추측은 확신이 됐다. 단언컨대 김미숙만큼 삶을 긍정적으로, 열렬히 사랑할 수 있는 이는 드물다. 치열하게 일했던30대, 아내로, 엄마로 많은 변화를 겪었던 40대, 한 박자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 50대. 그 어떤 시절에도 그녀는 늘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았다.

 

인터뷰 준비하면서 깜짝 놀랐어요. 쉰다섯 살이라뇨. 이렇게 곱고 예쁘신데
가끔 나도 놀라요(웃음). 곱다고 말해줘서 고마운데 요즘 얼마나 나이를 느끼는지 몰라요.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해도 배가 나와요. 갱년기 증상인지 피부도 거칠하고머리숱도 적어졌어요. 틈나면 주로 책이나 신문을 읽는데 꼭 돋보기를 찾게 되더라고요. 눈곱이 꼈데도 잘 안 보이고 얼굴에 속눈썹이 묻었다는데도 내 눈엔 잘 안 보여요. 내가 이제야 우리 엄마 심정을 좀 알겠어요. 굉장히 깔끔한 양반이신데 친정에 가보면 그릇에 고춧가루가 묻어있거든요. 왜 제대로 안 닦았냐고 딸들이 타박하면 “어머그랬니, 그 작은 게 도통 보여야 말이지” 하시며 얼른 그릇을 다시 닦아요. 제가 딱 그렇죠 요즘. 누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했나요?

어머님이 약간 무안해하셨을 것 같은데요?(웃음)
저희 어머니는 복 받은 분이세요. 딸이 넷인데 전쟁하듯 혼자된 엄마를 돌보거든요. 한 사람당 하루에 두 통씩 전화를 꼭 해요. 맏딸인 저는 용돈을 드리고 동생들은 집안 청소에 찜질방 동행에 아주 여왕님을 모시고 살죠. 아버지가 옛날에 금은세공 공장을 하셨는데 엄마가 그 많은 직원을 다 거둬 먹이셨어요. 고생 무지하셨죠. 저희가 지금 그 보답을 하고 있는 중이에요(웃음).

어느덧 노안을 고민하시다뇨. 여배우라면 더더욱‘나이 듦’에 대한 서러움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삼십대 초반쯤인가? 아직 결혼도 안 한 나한테 초등학교 아이를 둔 엄마를 하라니까 정말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당연히 섭섭하죠. 그런데 왕년의 영예만 껴안고 살면 무슨 의미가 있어요. 겸허하게 흘러가는 삶에서 또 의미를 찾아야죠. 새옹지마라고 세월이 확확 바뀌기 때문에 유리해지는 점도 있어요. 예전 같으면 나이 마흔에 벌써 손자, 손녀 보는 할머니 역할을 해야 했는데 요즘에는 이 나이에도 알콩달콩 연애하는 연기를 하니 얼마나 좋아요.

그러고 보니 요즘<기분 좋은 날>에서 한송정 역을 맡아 손창민 씨랑‘밀땅’을 하고 있으시죠?
그러게요. 옛날엔 마흔만 넘어도 멜로 연기는 끝인줄 알았어요. 이렇게 나이 오십이 넘어서도 ‘사랑 연기’할 기회가 찾아오는데 뭘 그렇게 앞서 생각했을까?(웃음) 왜 미래를 지레 포기했을까? 요즘 들어서야 그렇게 미리 예단할 필요는 없었겠구나 싶어요. 그냥 물 흐르듯 살면서 하루하루에 충실하면 됐을 텐데 말이죠.

김미숙 씨 관련 자료를 찾다 30대 초반에 출연한 어느 쇼 프로그램을 보게 됐어요. 톱 스타로 초대된 자리였는데“나는 벌써 왕년의 스타이고 그 대비책으로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나는 늘 ‘인생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사는 사람이었어요. 스물다섯 살 때부터 ‘앞으로 5년 뒤엔 뭘 하겠다’는 계획을 머릿속에 그렸거든요. 하다못해 자동차를 두고도 서른다섯까지는 국산 차를 타고 마흔에는 재규어를 몰고, 그 이후에는 벤츠를 타야지 생각했다니까요(웃음). 그런 계획들이 저 스스로를 엄격하게 통제해주는 면이 있어서 지금껏중심을 잃지 않고 잘 살았죠. 그런데 결혼한 뒤로 이런 계획들이 무산돼버렸어요. 아이들이 엄청난 변수였던 거죠.

남매를 두셨죠? 비록 ‘예측 불가능성’이 높아지긴 했지만 행복함은 컸겠네요.
그럼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럽죠. 마흔이 넘어 낳은 아이들이라 가끔 엄마 노릇하기가 버거울때가 있다는 것만 빼면 아주 행복해요. 얼마 전 제 생일날에는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기’를 선물로 주더라고요. 한달쯤 됐는데 지금까지는 아주 잘 지키고 있어요.

워낙 바쁘셔서 집안 살림을 할 여유가 없으시죠?
도와주시는 아주머니가 있어요. 제 사정상 집안 살림을 직접 할 순 없는데 가끔 여유가 생겨서 집안일을 하는 날이면 너무 즐거워요. 정말 창의적인 영역이잖아요. 오늘은 잡곡밥 내일은 콩나물밥을 할 수도 있고 담는 그릇에 따라 느낌도 천차만별이에요. 빨래를 깨끗하게 삶아 착착 널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죠. 작아서 못 입는 내 옷을 잘라 직접 손바느질까지 해 딸아이 옷도 만들어요.

<기분 좋은 날>에서는 세 딸을 좋은 곳에 시집 보내려는 억척 엄마로 등장하잖아요. 자식들의 배우자에 대한 생각도 하시나요?
그런 생각은 들어요. 우리 아들이 여자 친구를 데리고 오면 어느 선까지 예쁘게 봐줄까? 어느 선까지 냉정하게 봐야 할까? 며느리를 딸처럼 대하신다는 분들 보면 되게 훌륭하신 것 같아요.
난 죽었다 깨도 우리 딸만큼은 안 예쁠 것 같던데.

보통 아이들 때문에 부부가 싸운다고 하는데 남편분과는 어떠신가요?
아주 잘 지내요. 나는 우리 남편을 비즈니스 하듯 대하거든요. 혹시 내 기분을 언짢게 해도 최선을 다해서 받아주는 거죠. 따지고 보면 사회생활이 다 그렇잖아요. 무례해도 좀 참고, 말 못할 사정이 있진 않은가 한 번 헤아려보기도 하고요. 부부 관계도 똑같아요. 그 정도만 배려해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그러고 보니까 아이 아빠가 아이들 데리고 외국으로 몇 년간 공부하러 갔을 땐 많이 힘들었네요. 나는 여기(한국)에서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애들 아빠는 아이들에게 외국 생활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나 봐요. 어쨌든 제가 잘 참았죠. 돌이켜 생각해보면 잘한 결정이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빠가 최선을 다해 자신들을 돌봐줬다는 기억이 아이들에게 두고두고 값지게 남지 않을까 싶어요.

남편분 얘기 끝에 이런 질문 드려서 죄송하지만 혹시 첫사랑 기억하세요?
그럼요. 지금 뭐 하며 사는지도 너무 잘 아는데?(웃음) 내가 장난으로 한 번 만나볼까? 하면 친구들이 난리가 나요. 그건 큰일날 소리래요.

이미지가 굉장히 반듯하고 우아하시잖아요. 과거 기사를 보니까 노출 신 있는 영화는 고사했고, 드라마도 자극적인 소재는 기피하신다고 들었어요.
팬들이 그런 이미지를 좋아해주니까 어떤 면에서는 그런걸 잘 지키려고 노력했죠. 사실 제가 데뷔했을 때만 해도 에로틱한 작품들이 인기가 많았는데 나는 그런 장르랑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늘 선한 캐릭터만 맡아 좀 지겹다는 생각도 했는데 다행히 <찬란한 유산>이나 <황금의 제국> 같은 작품에서 악역 연기를 해볼 수 있었어요. 반응도 괜찮은 편이었고요. 나로서는 좋은 기회였죠.

김미숙

최근<그대 곁에 지금 김미숙입니다>로 7년만에 다시 라디오 DJ로 돌아오셨죠?
라디오 부스는 그냥 고향 같은 곳이죠. 저를 키운 8할이 라디오 진행이었으니까요. 그간의 경력을 합쳤더니 21년 이더라고요. 피디님이 양주도 21년 된 양주가 가장 향이좋다는 농담을 다 하셨어요.(웃음)

퇴근길에 마을버스를 탔는데 김미숙 씨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더라고요. 실제로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멘트를 듣고 펑펑 운 청취자가 있었다면서요.
내가 그래서 라디오 진행에 대한 책임감이 커요. DJ는 전파를 타고 청취자의 마음을 툭 건드려줘야
되거든요. 따뜻한 멘트나 음악으로 무미건조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 부정적인 생각을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일 모두 다 가능하다고 봐요 저는.

<그대 곁에 지금 김미숙입니다>라는 프로그램명을 직접 지으셨다고요.
네, 원래 진행자로 내정되면 스태프와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프로그램 이름을 궁리하죠. 다만 여기에 ‘지금’이라는 표현을 꼭 넣고 싶었어요. 저희 남편은 ‘잠깐만’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저는 이게 늘 불만이었거든요. 뭘 물어보면 “응 여보 잠깐만 십 분만 이따가” 하죠. 그 순간, 당장 남편이 필요하다는 제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요. 요즘은 그래서 “잠깐만 언제? 나 죽은 다음에? 이 전화 끊는 중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어” 하면서 협박을 다 해요.(웃음) 너무 지나친 표현이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그만큼 돌아가면 다신 오진 않을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당장 1분 뒤를 예상할 수 없는 지금, 충실해야죠.

충실해야 하는데 조금 바쁘고 귀찮으면 ‘다음’으로 미뤄버리는 게 대부분이죠. 그래서 또 자괴감에 빠지고요. 누군가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주시겠어요?
좀 참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는데 즐길 수 없다면 그냥 초월하는 게 한 방법이 될 수 있어요. 초월하려면 당연히 고통이 따를 테지만 그건 긍정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고요. 긍정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있거든요. 최근 할 어반의 <긍정적인 말의 힘>이란 책을 읽었는데 거기 보면 ‘당신이 선택한 말은 당신을 드러낸다, 당신이 선택한 말이 당신의 인생을 만든다’는 구절이 있어요. 정말 맞는 말이에요. 약이 되는 얘기를 하세요. 그럼 긍정의 기운이 생기고 웬만한 어려움은 극복할 수 있답니다. 그 속에 행복이 있겠죠.

끝으로 김미숙 씨의 헤이데이는 언제라고 생각하세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생각하던 그녀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한동안 휴지로 눈가를 찍어 내야 했다.) 열심히 일하다 놀고 먹는 백수로 되돌아갈 때요. 물론 이때의 놀고 먹음이란 내 의지대로 즐겁게, 여유 있게 보내겠다는 뜻이에요. 저는 60세든, 70세든 어느 시점까지 자식, 부모, 사회를 위해 일하다가 아무 미련 없이 모든 걸 정리하고 나를 위해 살 거예요. 그동안 충분히 치열하게 살았으니까. 그다음에는 그냥 놀고 먹을 거예요. 그럼 죽을 때까지 전성기를 누릴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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