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의 얼굴 윤석화 편

기사 요약글

50대 명사 2016년 7월의 얼굴 윤석화 편

기사 내용

펑키한 음악이 흐르자 카메라 앞에 선 그녀가 서서히 리듬을 탔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뜰 때, 가는 몸을 움직여 선 고운 동작을 만들어 낼 때, 허스키한 목소리로 듣기 좋은 허밍을 할 때, 그녀는 우리가 상상하던 신비로운 ‘윤석화’였다. 그러나 시럽이 듬뿍 들어간 커피 한 잔에 긴장이 탁 풀린 그녀는 아들의 사춘기를 고민하는 엄마이자, 깍두기 국물에 밥 비벼 먹기를 좋아하는 ‘아줌마’로 돌아갔다. 무대에서는 배우답게, 집에서는 주부답게, 후배 앞에서는 선배답게 그렇게 적절한 ‘모드 변환’을 통해 삶의 균형을 찾아갔던 윤석화. ‘바위 틈의 꽃’을 연상시키는 이름처럼 누구보다 단단하고 치열하게 살아온 그녀의 최종 목표는 바로 ‘예쁜 할머니’다.

7월 중순, 연극<햄릿> 공연을 앞두고 있죠.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유인촌 씨 같은 내공 있는 배우들이 다 모였는데 준비는 잘되고 있나요?
매일 밤 10시~12시까지 죽어라 연습하는 거죠. 셰익스피어 작품의 매력이자 난점이 바로 긴 대사인데 이거 소화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출연 배우들의 평균연령이 68.5세, 그중에서도 제가 막내라 애교도 떨고 재롱도 부리면서 그렇게 연습하고 있어요(웃음). 저희 딴에는‘ 나이 많음’이 곧 장점이 되는 연륜 있는 연극을 보여주고 싶은데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실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것 같아요.

40년간 연기했는데 아직도 무대에 서는 게 떨리나요?
그럼요. 신인 때는 오히려 뭘 몰라서 무서운 게 없었는데 제 첫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신의 아그네스> 이후 관객의 존재가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지더라고요. 관객들의 환호와 기대에 부응하려면 엄청난 준비와 책임감이 필요하니까, 혹시 내 잘못으로 휙 돌아서버리지는 않을까 늘 두렵죠. 이번 작품에서 맡은 오필리어 역 같은 경우는 극의 상징적인 캐릭터이면서도 비중이 작아 더 긴장되는 면이 있어요. 비중이 높으면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곳곳에 있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으니까. 연극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편집을 할 수 없는 ‘순간의 예술’이기 때문에 결국 연습밖에 답이 없더라고요. 역할에 대한 몰입이 없으면 무대에서 다 티가 나요. 올 초에 공연했던 <마스터 클래스>란 연극에서도 그런 대사가 나오지만 ‘예술가란 쓰레기 더미를 기어 다니며 하늘의 별을 따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돌 틈에서 피어난 꽃’이라는 애칭으로 잘 알려져 있죠, 사람의 인생은 이름을 따라간다는 데에 동의하세요?
사실 제 이름은 돌 석(石)자에 꽃 화(花)자가 아니라 풀 석(釋)자에 화할 화(和)자예요. 화합을 설명한다는 좋은 의미가 담겼지만, 획수가 간편하고 예쁜 뉘앙스도 마음에 들어 ‘돌 꽃’ 석화로 살아왔죠. 그런데 어떤 분이 얘기하시길 이게 참 외롭고 센 이름이래요. 아름답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왔다 자부하지만, 힘들고 치열하게 산 것도 사실이거든요. 그래서 나이 육십에 접어든 지금부터는 진짜 제 이름대로 ‘화합, 화목, 온화를 설명하며’ 살아보려고 해요. 생명과 자연을 보듬는 예쁜 할머니, 그렇게 사는 게 제 노후 계획이죠.

‘우아하다’는 수식을 지겹도록 들어왔을 텐데 실상은 어때요?
유안진 시인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란 시를 보면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처럼 품위 있게’라는 구절이 있어요. 결국 무엇 무엇답게 살아가자는 의미인데 제가 지향하는 삶도 그래요. 어떻게 사람에게 한 가지 면만 있겠어요. 다 상황에 맞게, 상대에 맞게 적절히 다른 사람이 되는 거죠. 스웨덴 공주나 덴마크 여왕을 만났을 땐 우아하고 품격 있게 굴었지만, 단원들 사이에서는 깍두기 국물에 밥 비벼 먹는 편안한 선배의 모습이죠. 집에서는 척척 나물을 무치고 소파에서 드라마 챙겨 보는 엄마예요. 교회에 가면 신실한 ‘할렐루야 아줌마’고요. 그렇게 극과 극을 오가지만 결국 다 ‘윤석화’ 한 사람으로 수렴되죠.

윤석화

가끔 젊은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나요?
아니요, 그건 다 지나간 일이고 이젠 예쁜 할머니가 되는 게 꿈이에요. 인생을 잘 살아온 사람은 얼굴에 온화한 기품이 서려 있잖아요. 그런 외모를 가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뜻이에요. ‘인생은 마라톤’이라는데, 옛날에 얼마나 미인이었는지보다 중요한 게 어떤 얼굴로 늙어가느냐인 것 같아요. 저 역시 젊을 땐 잘난 척한다, 깍쟁이 같다는 오해도 많이 샀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이젠 그런 편견으로부터 좀 자유로워지더라고요. 이것도 나이 듦에서 오는 외모의 편안함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끝으로 인생의 전성기가 언제라고 생각하세요?
‘힘들더라도 지금’이요. 여기서 방점은 지금이 아니라‘힘들더라도’에 찍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고통을 환경 탓, 남의 탓으로 돌려놓고 기약 없는 ‘언젠가’를 다짐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분들에게는 절대 전성기가 올 수 없어요. 차 떼고 포 떼면 뭐가 남겠어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따지고 비난할 시간에 내가 닭이 되어도 좋다, 달걀이 되어도 좋다는 마음가짐으로 매일을 살다 보면 매 순간이 전성기일 거예요. 현실이 너무 남루하고, 비참하지만, ‘그럼에도’ 인생의 방향키를 긍정과 사랑으로 돌리는 분들이 결국 매사 모든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고, 뭔가를 이루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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