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은밀한 상담

기사 요약글

남성호르몬이 떨어지면 오래 산다?

기사 내용

CASE1
L씨, 조선 시대 내시가 양반보다 오래 살았잖아요

최근 성 기능 저하로 검사를 받았던 50대 초반 남성 L씨는 남성호르몬이 저하됐다는 진단에 며칠을 속상해하다가, 일주일 뒤 다시 찾아와서는 전혀 엉뚱한 반응을 보였다. 이야기인즉, 이런저런 뉴스와 정보를 뒤져봤는데 남성호르몬이 떨어지면 오히려 오래 살 수 있다는 내용도 있다며 스스로를 위안하려고 했다. 뉴스에서 조선 시대의 환관, 즉 내시가 양반보다 평균 17년을 더 살았다는 내용이 판단의 근거다. 물리적 거세나 약물로 남성호르몬을 차단하면 수명 연장이 가능할 것이란 보도도 잇따랐는데, 이는 안타깝게도 논리의 비약이다. 물론 각종 동물실험에서 거세를 통해 수명 연장 현상을 일부 관찰할 수 있다. 쉬운 예로 거세한 애완견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수명이 길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과연 이 수명 차이가 단순히 거세에 따른 남성호르몬 차단이 원인이냐는 것이다. 많은 임상 연구에서는 남성호르몬과 수명에 대해 언급한 내용과 반대 결과를 펼친다. 중년 남성에게 남성호르몬의 부족은 오히려 수명 단축과 관련이 있다. 실제로 당뇨, 고지혈증, 고혈압 등 각종 성인병에 대사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일수록 남성호르몬이 빨리 저하된다. 즉, 병을 앓고 있는 남성이 오래 살 리 만무하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캘리포니아대학의 연구에서는 50세 이상 중년 남성 800명을 조사했더니 남성호르몬이 부족한 남성의 수명이 33%나 짧았다. 또, 워싱턴대학의 연구에서는 40세 이상 남성에서 남성호르몬이 낮은 쪽의 사망률이 88%나 증가했다.

그렇다면 거세는 수명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환관에 대한 연구를 보면 그들이 평균 19세에 거세한 것으로 확인된다. 남성호르몬이 강하게 노출되는 제2차 성징 및 사춘기 직후에 해당되는 시기로, 일반 남성에 비해 애초에 남성호르몬에 대한 노출이 초기에 적었다. 즉, 거세를 통해 수명 연장을 이루려면 성인기 이전에 남성호르몬을 차단해 중성화한다면 가능한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수명을 늘리려면 제2차 성징 전후 남성호르몬 활성화가 진행되지 않아야 하므로 정상적인 성인 남성으로서 성생활이나 임신 등은 포기해야 한다. 적어도 정상적인 남성호르몬의 작용에 따라 성생활 등 건강한 성인 남성으로 오래 살고 싶다면 남성호르몬 등의 관리를 통해 갱년기의 진입을 늦춰야지, 반대로 남성호르몬의 차단이나 남성호르몬의 결핍이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 여긴다면 대단한 오산이다. 이런 전후 사정과 학술적 근거에 따른 필자의 상세한 설명을 듣고 나서야 L씨는 남성호르몬 저하라는 신체적 경고신호에 대해 수명 연장을 논하고 문제를 부정하려 했던 잘못된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CASE2
J씨의 불필요한 절약 정신

“정액을 방출하면 몸에 양기가 빠져나가서 안 좋잖아요. 그러니까 성행위를 해도 사정을 참는 거죠. 그거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소녀경>에 나오는 이야기라던데요?”
정액 방출을 아끼는, 소위 ‘접이불루’에 빠진 중년 남성들은 전문가인 필자에게 근사한 증거라면서 <소녀경>의 내용을 들이댄다. 오랜 역사를 가진 내용이라며 신념을 버리지 않는 환자들을 보면 전문가로서 참 안타깝다. 그런데 해당 내용은 현대 의학과 과학으로 객관적 입증을 하기 이전 시대의 착각일 뿐이다. J씨는 접이불루를 신봉하며 성행위는 하되 억지로 성기를 압박해 사정을 막는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헛되게 정액이 버려지지 않고 몸에 다시 흡수되니 영양분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사정을 틀어막는다고 정액이 다시 몸으로 흡수되는 게 아니라 방광으로 역류하여 결국 나중에 소변에 다 섞여 나올 뿐이다. 더욱이 정상적인 사정 통로가 막혀 정액이 역류하면서 요도, 전립선, 방광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사정하지 않고 정액을 아껴야 한다는 것도 성 의학에서는 전혀 사실과 다른 잘못된 개념이다. 성 기능의 건강을 위해선 적절한 정액의 배출이 필요하고 과하지만 않으면 된다. 적절히 사용해야만 적절한 생산력이 유지되는 것이다. 전립선에 문제가 있을 때는 치료 목적으로도 정액 배출을 권장한다. ‘접이불루’보다 적당히 사용하지 않으면 성 기능 조직이 퇴화한다는 ‘용불용설’이 더 맞는 얘기다.

따라서 성행위 시 사정을 억지로 참고 막는 습관이나 성행위 후 몸이 늘어지며 기가 빠져나간다고 건강을 염려해 성행위를 피하는 것은 한마디로 ‘오버’다. 화려했던 시절은 끝나고 점점 식어가는 중년에 남은 불씨를 살려보겠다는 노력인데 사실은 아니함만 못한 우매한 노력이다. 과거에 비해 정액량이나 사정 시 쾌감이 턱없이 줄고, 조루 현상이 악화되거나 성욕이나 발기력이 떨어지는 등 이상 현상이 생기면 성 기능의 적신호라 여기고 치료를 고려해봄 직하다.‘탕진’이라는 표현은 하루에도 몇 번씩 성행위에 집착해 체력을 낭비하는 것에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이다. 오히려 평균 빈도의 성생활은 건강과 정서적 안정에 도움이 되는 일석이조의 영양제라 하겠다.

요즘은 100세 시대를 많이 이야기한다. 의학의 발달과 생활환경의 개선으로 많은 사람이 평균수명의 연장 혜택을 보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성 기능과 관련된 갱년기는 늘어난 수명만큼 늘어나지 못했다. 평균수명 60세 시대엔 40대 후반에 나타나는 갱년기 이후 삶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제 평균수명 100세를 꿈꾸고 있는데, 인생의 거의 절반을 갱년기 남성호르몬의 저하로 위축되어 지내기엔 아쉬움이 크다. 건강관리를 잘하면 그만큼 갱년기를 부드럽게 넘길 수도 있고, 남성호르몬 등 적절한 치료에 따라 훨씬 행복한 성생활을 누릴 수 있다. J씨나 L씨처럼 갱년기의 위축감을 제대로 직면하지 않고, 불필요한 절약(?)으로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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