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 살기 下

기사 요약글

삶의 진정한 알맹이는 필요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신중하고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데 있다

기사 내용

2006년 우린 부부가 됐고 그 뒤부터는 아이 키우랴, 회사 다니랴 숨 가쁘게 살았다. 우린 기자로 살며 10년 동안 일주일에 겨우 하루 정도 함께 시간을 보냈다. 어느 순간 ‘우리 정말 잘 살고 있는 걸까?’ 회의에 빠졌다. 미친 듯이 달리다 브레이크를 밟은 듯한 기분이었다. ‘끽’ 소리를 내며 멈추는 차는 요란했다. 결국 2012년 1년 동안 남편의 해외 연수를 기회로 휴직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일을 잠시 쉬면 나아질 것이라고 믿었는데 여전히 좌표를 잃어버린 듯했다. 단지 공간을 옮기는 것은 정답이 아니었다. 미국 연수 기간, 우리의 삶은 단순해지기를 강요받았다. 1년만 살 집이니 살림을 많이 들일 수 없었다. 필요한 물건은 사는 대신 빌려 썼다. 외식비가 비싸 음식을 직접 해 먹었다. 이듬해 한국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저녁과 주말이 없는 삶, 큰 집과 큰 차를 마련하려는 속도전, 맹목적인 경쟁 등 일상은 또다시 우리를 쉽게 점령했다. 우리는 삶의 방식을 바꿔보기로 했다.
 

‘삶의 진정한 알맹이는 필요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신중하고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데 있다’는 간디의 격언을 실천해보기로 했다. 우리 같은 평범한 직장인이 속세를 떠날 수는 없었다. 조금 불편하되 많이 행복한 삶을 전제로, 잘 사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하려 노력했다. 차를 없앴고, 카드 쓰기를 줄였고, 적게 먹기 시작했고, 번뇌의 씨앗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차를 없애기 전, 마트에 가서 장은 어떻게 보고, 주말에 놀러 가려면 얼마나 힘이 들까 싶었다. 아이를 데리러 학교라도 가게 되면 줄지어 있는 검은 차 옆에서 기가 죽을 것 같았다. 그런데 차를 소유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삶이 가벼워졌다. 자동차 할부금, 세금, 보험료 등으로 통장이 비는 일이 없어졌다. 주차 공간 때문에 주차장을 도는 일도, 차가 꽉 막혀서 차를 버리고 뛰어가고 싶은 충동도 사라졌다. 차가 없으니 마트를 끊게 됐다. 동네 직거래 장터에서 필요한 재료만 하나씩, 둘씩 사게 되니 신선한 음식을 먹게 됐다. 대량 구매해서 음식을 버리는 일도 줄었다. 장을 볼 때면 덩달아 사 오던 맥주나 와인은 무거워서 포기했다. 김치냉장고를 살까 고민했는데 차를 없애고 장을 자주 보면서 필요성이 사라졌다. 자발적 불편을 실천했다. 생활을 불편하게 하면 몸을 더 움직이게 되고, 소비를 줄이게 된다. 예를 들어 휴지통은 집에 2개만 두었다. 쓰레기를 버리려면 화장실이나 베란다로 가야 한다. 일부러라도 우리는 삶의 방식을 바꿔보기로 했다. 움직이게 되고, 쓰레기도 줄어들었다.

 

 

소파를 치우고 긴 다이닝 테이블을 놓았다. 늘어져서 TV를 보던 습관이 사라졌고, 가족이 앉아 얼굴을 맞대는 시간이 많아졌다. 모바일뱅킹도 하지 않고 인터넷뱅킹을 위한 공인인증서도 비상용으로 집에 있는 컴퓨터에만 깔아두었다. 대부분 은행 ATM을 찾아 해결한다. 혜택에 솔깃해 만들었던 신용카드를 하나만 남기고 체크카드로 대체했다. 금융거래를 할 때마다 잔고를 확인하게 되니 지출 계획을 현실적으로 수정하게 됐다. 온라인 쇼핑에 대한 충동구매도 줄었다. 결제하려면 공인인증서가 있는 집에서 해야 하므로 다시 고민하고 점검하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부부의 소통을 위해서 걷는 시간을 늘렸다. 시간은 부부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장소는 주로 집 앞 대로변이었다. 일이 많은 날에는 밤 11시에 잠시라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몸과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됐다. 잠시나마 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개인의 행복뿐 아니라 일의 생산성에도 도움이 된다는 의미에서‘딴짓의 위대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변화가 마음먹은 대로 된 것은 아니었다. 아내가 가장 힘들어했던 변화는 사교육과 거리 두기 연습을 하는 것, 그리고 남편은 소식(小食)이었다. 사실 소식은 대부분의 중년 남성들처럼 건강에 적신호가 오면서 시작한 노력이었다. 탄산음료, 카페인이 든 커피, 야식 등을 끊었다. 하지만 술처럼 사회적 압력이 심한 대상, 밀가루처럼 일반적인 대상을 끊는 데는 실패했다. 그럼에도 우리 몸은 정직해서 작은 변화에도 그만큼 나아졌다는 게 위안이다.
 

2013년 여름부터 2014년 여름까지 이렇게 우리 부부가 저성장 사회에 맞는 삶의 방식을 찾고자 했던 실험을 담은 책 <성장에 익숙한 삶과 결별하라>가 나온 뒤 미니멀리즘, 슬로 라이프, 일본식 산촌주의 등으로 규정하면 되겠냐고 묻곤 했다. 우리는 그런 대안 운동을 하려는 것이 아니며 앞으로도 계획이 없다. 지금의 삶을 떠날 용기도 없거니와, 현실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지속적으로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험 기간을 1년으로 잡은 것도 연습 기간을 통해 오랫동안 실천 가능한 항목을 찾기 위해서였다. 저성장 시대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힘들게 하는지, 그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없는지 고민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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