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명사 - 2016년 2월의 얼굴 이현우 편

기사 요약글

그저 그런 아저씨가 되거나 억지로 ‘젊은 오빠’를 주장하지도 않는 이현우만의 취향

기사 내용

‘꿈’이라는 노래로 이현우가 데뷔한 것이 1991년. 검정 라이더 재킷 차림의 그가 시선을 무대 바닥으로 떨군 채 추는 춤은 연습되고 세련된 것은 아니었지만 시크해 보이는 그의 얼굴과 더불어 어떤 청춘을 의미한 것은 사실이다. 25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결혼 같은 건 하지 않을 것 같았던 그도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의 아버지가 됐고, 8년째 매일 아침 FM 라디오 방송을 지키고 있다. 어라, 25년이라고 했던가. 그렇다. 이현우의 청춘이 지나는 동안 우리의 청춘도 지났다. 많은 것이 변하는 동안에도 여전한 헤어스타일과 기분 좋은 눈웃음, 특유의 억양은 그대로다. 스스럼없이 자신을 중년이라고 표현하는데도 익숙한 그지만, 그래도 젊음을 잃지 않은 혹은 우리가 그를 여전히 젊게 보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저 그런 아저씨가 되거나 억지로 ‘젊은 오빠’를 주장하지도 않는 이현우만의 취향이 있었다.

항상 나이보다는 젊게 보는 편이지요?
대체로 그래요. 기분은 괜찮은데 전 제 나이로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요. 우리나라에서는 나이 먹는 것을 죽는 병이라도 얻은 것처럼 취급하는 데다 개그 프로그램 같은 데서 희화해서 나이 먹는 것이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는 하지만요. 아마도 멋있는 어른이 많지 않아서가 아닐까 생각해요. 어려지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닌데 지나치게 어려지려고 애쓰는 어른들이 있잖아요. 나이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나이 먹을수록 자신감이 떨어지니까 젊고 어린 친구들처럼 행동하려고 하고, 어린 친구 몇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슬픈 현실 같아요.

서른을 넘기면 해마다 근육량이 1%씩 줄어들고, 마흔을 넘어서면 배가 나오고 여기저기 군살이 붙게 마련이고요.
전 식스팩을 가져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뱃살을 쏙 빼는 것보다는 살짝 배가 나온 상태에서 어깨와 가슴 근육을 단련한 게 보기 좋더군요. 그 편이 옷을 입어도 소위 ‘태’가 난달까요. 나이 들어서 너무 마른 것도 멋없잖아요. 이탈리아나 서양 사람들 보면 나이 들고 배가 나와도 ‘핏’이 좋은 경우가 많은데 제 나름의 결론은 ‘어깨’예요. 어깨가 벌어지게 상체운동을 하면 허리가 확 들어가지는 않으면서도 중년스러운 느낌이 있어요. 전 그쪽으로 추구하는 편이에요.

중년의 남성미로군요?
그렇죠. 나이 들어서 살을 잘못 빼면 이상해지기도 하고. 얼굴 살은 잘 안 붙잖아요. 중년에 식스팩 있는 게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진 않고요, 하하.

스타일이 젊어 보이는데 그게 어색하지 않습니다.
제 또래가 중년 스타일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첫 세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자기 나이에 어울리면서도 스타일리시하게, 문화적인 콘텐츠도 누리면서 나이 들 수 있는 첫 세대로 말이죠. 아무래도 첫 세대이다 보니 처음 시도하는 사람들에게서 오는 어색함 같은 것은 있겠지요.

중년이 되면서 스타일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음악이 직업인 데다 주위 사람들의 얘기에 신경 쓰지 않는 편이어서 오랫동안 나이를 잊고 살았던 것 같아요. 어느 날 옷장을 보니 너무 젊은 사람들 옷만 있는 거예요. 일부러 늙어 보일 필요야 없겠지만 나이에 어울리는 옷이란 게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제 나이에 어울리는 룩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게 작년이에요. 사소하게는 슈트를 입더라도 젊은 친구들처럼 기장이 짧은 재킷이 아니라 엉덩이를 살짝 덮을 만큼 기장이 긴 옷을 선택한다든가 하는 정도지요. 젊어서야 그 자체로 아름답기 때문에 뭘 입어도 패션 감각을 뽐낼 수 있지만 중년이 되면 어떤 우아함이나 품위 같은 걸 표현할 수 있는 게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스타일을 연출하는 데 참고하는 것들이 있나요?
관심이 많으니 주변의 채널에서 주로 얻는 편이에요. 가령, 영화 <007> 을 보더라도 예전에는 흘려보냈던 것인데 이제는 슈트 입는 법을 눈여겨본다든가 하지요.

쇼핑은 직접 하세요?
아내가 사다 주기도 하지만 제가 직접 골라요. 외국에 나갈 때 사 오기도 하지만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하기도 한답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명품으로 입는다고 멋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제일 중요한 건 사실 체형인 것 같아서, 하하.

항상 직접 머리를 만진다고요.
요즘도 거의 직접 합니다. 방송을 할 때도요. 가장 잘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찾은 게 이거라서 고수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요즘은 이런 머리 모양이 트렌디한 스타일이더군요. 다른 사람들은 철마다 바꿀 때 저 혼자 계속 한 가지 스타일을 유지하다 보니 오히려 ‘독특하다’는 얘길 듣는 게 재밌기도 해요.

최근에 본 인상적인 문구는 ‘취향도 지식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알아야 멋도 내니까요. 중년이 가질 수 있는 현명함이란 것이 살면서 얻게 되는 것도 있지만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전 소맥을 좋아합니다만 와인을 예로 들자면, 와인 한 잔을 마시더라도 역사나 배경을 알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게 맞더라고요.

공부해가면서 취향이란 걸 만들어야 하나 하는 회의론도 있을 텐데요.
하지만 와인을 모른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나이는 또 지난 것 같아요. 와인을 싫어하거나 전혀 몰라도 충분히 그 자리에서 어울릴 수 있도록 나이가 여유를 주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30대 때는 나름 패셔니스타로서 와인 좀 알아야 하나 생각했는데, 이젠 굳이 다른 사람에게 맞추기보다 ‘척’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신을 드러낼 줄 알게 됐어요. 일종의 커밍아웃을 하는 셈이죠. 다른 시선을 신경 쓰기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즐기고 영위하기에도 시간이 아깝잖아요.

이제 이현우라는 사람의 취향은 완성형인가요?
지금도 변하고 있는 걸요. 특히 음식에 대해서는 더. 이전까지 요리를 좋아하고 미식가라고 생각했는데 <수요미식회> 라는 방송을 하면서 음식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계속 받아들이다 보니, 오히려 관심이 더 많아지고 알고 먹을 때 훨씬 맛있을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단점이라면 역시 입맛이 까다로워진다는 겁니다.

요리와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중학생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 전까지는 엄마가 음식을 해주셨지만 미국에서는 부모님 모두 일 때문에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아서, 학교 다녀오면 간식을 직접 챙겨 먹어야 했어요. 거기에 처음 접하는 식재료가 많으니 이것저것 만들어보면서 관심을 갖게 됐어요. 대학에 가면서부터는 가족과 떨어져 지냈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계속 만들어 먹어야 했고요.

미식가와 사는 아내는 조금 피곤하겠군요(웃음).
요리 강습을 다니면서 지금은 많이 발전했어요. 요리는 하다 보면 무조건 늘게 마련이거든요. 그래도 식재료에 대한 이해 같은 것은 제가 훨씬 낫다고 할까요, 하하하. 농담이고요, 모든 부부 관계가 그렇지만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잖아요. 서로 조금씩 이해하며 중간 접점을 찾게 되더군요. 항상 맛있을 순 없지만, 제가 돈을 내고 사 먹는 것과 아내가 만들어준 음식은 의미가 다르니까요.

아침은 챙겨 먹는 편인가요?
거의 먹는 편이에요. 결혼 후 처음 1년 동안은 10kg이 넘게 쪘어요. 옷이 안 맞기 시작해서야 비로소 위기의식을 느끼고 운동을 시작했지요. 자전거도 그때부터 탔어요.

요즘도 자전거 타세요?
지난 늦가을까지는 계속 탔었어요. 많이 탈 때는 이틀에 한 번 탔는데 요즘은 추워서 통 못 나가고 있어요. 날이 풀리면 다시 타려고요.

라이딩은 주로 어디로 다니세요?
지금 사는 곳이 서강대교 바로 옆인데, 강변으로 나가서 북한산까지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3시간 반 정도 걸리는 코스예요.

취미 생활은요?
취미는 아니지만 그림은 꾸준히 그리고 있고 재작년에 첫 개인전을 열기도 했어요. 수집을 하거나 하진 않습니다. 비우고 정리하고 없애는 걸 좋아해요. 공간이 꽉 차 있으면 불안해요. 인테리어에 대한 개인적 취향은 비워내는 인테리어라고 할까요. 어떻게 비우느냐를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내는 저와 반대로 수집하고 모아두는 편이에요. 전 거실에도 소파와 TV 정도만 두고 공간 자체를 즐기고 싶은데, 아내는 화분이나 가구로 채우는 쪽이에요. 처음엔 마찰이 있었지만 그것도 결국 아내를 따라가게 되더군요, 하하.

한때 노총각 4인방(윤종신, 윤상, 김현철, 이현우)으로 불리다가 늦은 나이에 결혼하고 아이를 얻은 다음 삶에 어떤 변화들이 생겼나요?
가족 중심의 삶을 살게 됐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이전에는 제가 우주의 중심이었거든요. 지금은 ‘오늘 애들 뭘 먹이면 좋을까’ 생각해요. 아이들이 노는 날이면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재밌게 놀 수 있도록 해주고, “아빠, 고마워!”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머리를 짜냅니다. 제가 입을 옷을 찾기보다는 어떤 옷을 아이에게 입히면 예쁠까도 고민해보고요. 요즘에는 결혼한 친구들 만나도 다들 시계만 쳐다보다 일찍 일어나고 모임 자체가 부부 동반 모임이나 학부모 모임으로 바뀌었어요. 아이들 학교나 학원 친구들의 부모들이 제 친구가 된 거죠.

만혼으로 인해 늦깎이 부모가 된 분들의 스트레스가 상당하다는 뉴스가 최근에 자주 등장하더군요.
그런 자리에선 제가 늘 대선배지요. ‘큰형님’으로 불리고요. 그래도 불러주니 다행이에요, 하하. 제가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젊은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고 살아와서인지, 그분들은 저를 불편해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전 그분들과 어울리는 게 편해요.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꾸준히 음반을 내고 활동을 놓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방송에서 노래를 부르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공연은 계속해왔어요. 팬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게 괜찮습니다. 총각 때 노래 부르는 것과 결혼한 이후의 느낌은 많이 달라요. 하는 일이 늘어서 음악에 전념할 시간을 할애하기 쉽지 않지만 틈날 때마다 곡 작업을 합니다. 지금은 후배 가수들을 키우고 있어서 어떻게 그 친구들을 프로듀스하고 인정받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젊은 감각에 눈높이를 맞추려고 애쓰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재즈를 계속 시도해보려고 해요. 나이 들면서 좋아지더군요. 재즈는 대중적으로 히트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생각으로요. 시간이 흐르고 제 음악들이 쌓이면 재즈만으로 공연할 때가 오지 않을까요.

이달(2월 24일)부터는 오랜만에 뮤지컬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는데요.
5년 만에 다시 <맘마미아> 를 하게 됐어요. 개인적으로 <맘마미아> 계속하고 싶을 정도로 굉장히 즐거운 작품이에요. 안 좋은 일이 있거나 할 때도 공연장에 가서 연습하고 공연하고 나면 굉장히 후련하고 파티라도 다녀온 기분입니다. 제가 맡은 ‘해리’라는 역할 자체가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배역이기도 하고요.

새로운 일을 하는 것에 긍정적이군요.
강박일 수도 있습니다만 새로운 일을 하지 않으면 정체되거나 발전하지 않고 삶이 쳇바퀴 도는 느낌이 있어요. 제가 좀 빨리 질리는 편이거든요. 일부러 새로운 것을 개발해서 하지 않으면 지치는 편이에요. 계속 새 일을 수혈해야 하는 것이죠.

지금까지의 삶에서 전성기는 언제라고 생각하세요?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지금이 제 인생의 전성기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빤한 답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인생은 심리전이라 생각해요.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게 중요하지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그렇게 주입시키면서 살아요, 하하. 그러다 보면 실제로 그렇게 되거든요. 총각 시절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엄청난 행복감이 있어요. 아이들과 가족이라는 테두리가 주는 안정감이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비유하자면 젊어서는 재밌는 지옥에 사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지루한 천국쯤 될까요? 하하하. 나이 들어서까지 재밌는 지옥에서 산다는 것은 너무 지치고 위험하고 무의미했을 것 같아요. 지루한 천국에 사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요.

역시 <수요미식회> 에서 보여준 표현력이 평소 모습이군요(웃음).
거기에서의 제 역할이 그런 것이라고 해두지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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