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의 얼굴 조민수 편

기사 요약글

전 이렇게 하는 게 맞다고 결론 내렸어요. 자연스럽게 오는 것은 받아들이자는 주의예요.

기사 내용

중년의 남자 배우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가운데 중년 여배우들은 설 자리가 많지 않은 요즘이다. 젊고 아름다운 여배우로 이미지를 소진하고 나면 과거보다는 훨씬 이른 나이에 ‘엄마’ 역할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여자로서의 매력을 버리고 연기자로서의 자리를 얻는 식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올해로 벌써 데뷔 30년이 된 배우 조민수가 가진 이미지는 특별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장성한 딸을 둔 엄마로 연기하지만 동시에 패션 잡지 화보에서는 젊은 연하남과 팜파탈 느낌의 포즈를 취하며 섹시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여전히 여성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그녀에게서 중년이라는 이미지는 찾기 쉽지 않다. 나잇값 못하고 철없이 산다고 스스로를 낮추지만 배우 조민수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갈 줄 안다. 그녀가 자신이 가장 아름다웠을 때나 가장 주목받았을 때가 아니라 오늘이, 그리고 다가올 내일이 전성기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요즘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자주 등장했어요. 출연하지도 않은 드라마(<육룡이 나르샤> 의 조민수 장군) 덕분이지요?(웃음)
하하, 굉장히 감사하고 있어요. 역사적인 인물 덕분에 행복하게도 제가 덩달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네요. 제 얘기도 기사로 등장하고 관련한 기사들도 나오고….

더불어 한 방송(JTBC<김제동의 톡투유>)의 녹화 현장에서는 무대가 아닌 방청석에 앉아 있는 모습이 화제였는데요.
평소 즐겨 보는 프로그램인데 보면서 저도 방청석에 앉아있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 프로에서는 사회자나 게스트가 중요하지 않지요. 방청객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는 느낌이거든요. 아무래도 직업상 그런 자리에는 잘 가지 않지만 거기는 가보고 싶었어요, 그냥. 그 자리의 ‘온도’를 느끼고 싶었달까요. 인터넷으로 신청하려고 했더니 사연도 써야 한다기에 연출자에게 부탁을 좀 했어요.

방청석에 앉아본 소감은 어떤가요?
정말 좋았어요. 4시간 정도 녹화하는 동안 김제동 씨가 사람들의 얘기를 끝까지 다 들어주는 것을 보고 감동했어요. 보통은 방송을 위해서 사회자가 얘기를 자르잖아요. 그런 사회자는 처음 봤거든요.

요즘 위로가 필요한가요?
누구나 다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가요. 살다 보면 나만 그럴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서로 얘기하면서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는 위로를 받고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위로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요즘 주변을 돌아보면 다들 불안해 하고 삶이 안정돼 있지 않잖아요. 사회적으로도 뭔가 어수선하고 정신이 없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청석에 앉은 모습은 신선했어요.
가끔은 배우로서의 삶이 아니라 정말 사람 냄새 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전부터 많이 했어요. 보여주는 삶에 익숙했는데, 연기자가 대체 뭐라고 이렇게 선을 긋고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조민수 씨가 생각하는 멋진 어른은 뭔가요?
‘나도 저 사람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요? 그런데 전 그런 사람 아니에요. 오히려 철없이 살아요.

배우로서 후배들에게 존경받으니 멋진 어른이지 않은가요?
배우라는 게 사실 좋은 직업은 아니에요. 항상 대접받고 사람들이 예쁘다고 해주니 어느 순간은 그런 것들이 당연해지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려고 해요. 남자 배우들과 달리 여자 배우들은 20대 후반에 들어서면 ‘(인기가) 끝났어’라는 얘길 많이 들어요. 그래서 좌절하는 후배들도 많지요. 거기에 비하면 전 마흔 넘어서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니 복이 많은 거죠. 아직까지도 ‘여자 냄새 나는 역할’도 하고 주목받는 작품도 했으니까 후배들이 그렇게 생각해주는 것 같아요.

패션 잡지에서 젊은 남자 모델들과 찍은 화보가 유독 많아 보입니다.
하하, 전 좋아요, 좋아. 나이 든 여자로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요. 여자로서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기도 하고요.

사랑에 대해서는 어떤가요?(앞서 얘기한 방송에서 그녀는 사랑에 대한 질문에 ‘ing(현재진행형)’라고 답했다)
젊어서는 사랑이라고 하면 전부 남녀 간의 사랑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대상이 다양해요. 꽃이나 나무를 보고도, 길에 지나가는 어르신의 처진 어깨를 보고도 사랑을 떠올리지요. 제 주변에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갖고 사랑의 감정을 지속적으로 가져야 제가 살아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대상을 끊임없이 찾는다는 의미였어요.

올해로 데뷔 30주년입니다.
여전히 연기는 어려워요. 아무것도 몰랐던 신인 때가 쉬웠던 것 같아요. 그때는 그냥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표현하면 됐거든요. 흔히 연기자는 다른 인생을 살아볼 수 있어서 좋다고들 인터뷰하잖아요. 그런데 전 다른 사람의 삶을 표현하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아무 색깔이 없을 때는 신선해 보이고 그래서 잘하는 것으로 보였을 테지만, 이제는 정말 자기 것을 계속 꺼내놔야 하는 게 고통스러워요. 30년을 했으면 쉬워야 하는데 어떻게 이건 매번 새로 시작하는 것처럼 어려워요.

그러면 어떻게 해결책을 찾나요?
시뮬레이션을 많이 해요. 한 캐릭터를 맡게 되면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음색이나 손짓 같은 제스처도 많이 연구하고요. 제가 가진 것이 빤하니까 항상 여기에 1%만 더하자는 생각을 해요. 시뮬레이션을 계속하면서 메모를 하지만 그래도 부족하고 완성되지 않은 느낌이어서 점점 (연기가) 무서워져요.

대사는 완벽하게 외워서 현장에 가는 편인가요?
연기를 하면서 세 분에게 큰 가르침을 얻었어요. 돌아가신 작가 김기팔 선생님에게는<욕망의 문>이란 드라마를 찍을 때 “너는 왜 화면에서 예쁜 척을 하느냐!”라고 혼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표정 짓는 것을 배웠어요. 선배 연기자셨던 김순철 선생님은 촬영 전날 술을 드셨어도 대사를 완벽하게 외워 오셔서 촬영에 들어가면 대본을 없애시더라고요. 어른도 저렇게 완벽하게 대사를 외우시는데 하는 생각에 자극이 됐어요. 세 번째는 박근형 선생님과 연기할 때였는데요, 며느리 역을 맡은 저와 시아버지 역할의 선생님과 ‘붙는’ 장면이었는데 선생님의 음색과 감정이 제 감정을 폭발시키도록 해주시는 거예요. ‘아, 연기란 것이 주고받는 것이구나’ 하고 그때 배웠어요.

중년이 되면서 여배우로서 위기의식 같은 게 있었나요?
전 아무 생각 없어요, 진짜. 주변에서 보는 사람들이 불안해할 정도지요. 하지만 전 재미있게 연기하고 싶어요. 앞으로 제가 얼마나 작품을 할 수 있겠어요. ‘생활 연기자’라고 해서 편안한 연기를 자주 하는 연기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더 나이가 들어서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사실 배우는 은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대중이 안 찾으면 당연히 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대중이 싫어하면 무대에 나가면 안 되는 것이죠. 이렇게 심플하게 생각하니까 오히려 편해지던데요? 그래서 나이 넘김도 큰 관심이 안 가더군요.

활동 기간에 비하면 작품 수가 적은 편입니다.
전 많이 안 했어요. 일 년에 한 작품 정도. 전 한 작품을 죽을힘을 다해 하기 때문에 한 작품 끝내면 힘이 들어요. 소진된 느낌도 많이 들고요. 이런 점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런 게 나구나’ 하는 결론을 내렸어요.

소진이 되면 어떻게 채우나요?
쉬죠. 전 혼자서 잘 놀아요. 뜨개질도 하고 책도 읽고 산에도 다녀오고 자연과 대화도 나누고, 전 제 방식으로 즐겁고 행복하게 잘 지내요. 게을러서 뭔가를 배우러 다니지는 못하지만.

그러면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너무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 것 같아서 등산을 했어요. 그런데 집 앞에 있는 산에 가는 것도 힘들어서 ‘친구’들을 만들어놨어요. 꽃이나 나무를 친구로 정해두고 ‘걔네 만나러 가야지’ 이러면서 산에 가는 거죠.

피부과에도 안 다닌다고 하던데 여배우가 그래도 되는 건가요(웃음)?
물론 남자의 주름은 멋있는 것이지만 여자의 주름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 제가 배우가 아니었으면 오히려 피부과 시술을 받았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배우라서 안 하는 거예요. 저는 감정을 전달하고 관객은 그걸 제 얼굴에서 보고 느껴야 하는데, 제 얼굴에서 희로애락이 없어지면 안 되잖아요. 요즘엔 워낙 제 또래들이 팽팽해서 제가 늙었다는 얘기를 듣기도 하지만 전 이렇게 하는 게 맞다고 결론 내렸어요. 자연스럽게 오는 것은 받아들이자는 주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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