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의 얼굴 한비야 편

기사 요약글

소박하게 살다 씨앗까지 남겨주는 ‘몽땅 다 쓰는 삶’을 살고 싶어요.

기사 내용

Q. 올해부터 이화여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죠? 2012년부터 이화여대 국제구호와 개발협력 강의를 맡아왔는데 가르치는 동시에 배우는 기분이 어때요?
일단 세 시간짜리 강의를 준비하는데 적어도 다섯배의 시간이 더 들어요. 혹시 팩트가 틀리면 어쩌나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다 보면 그렇죠. 가르치는 게 배우는 거라는 말이 있는데 수업 준비를 하다 보면 어떻게 이런 것도 모르고 현장에서 일을 했나 싶을 때가 있어요. 반대로 박사과정에 들어가면 학생이라는 본분에 맞게 열심히 공부하죠. 현장과 학계, 정책 3가지를 유기적으로 이해해 궁극적으로 좀 더 쓸모 있는 구호 전문가가 되고 싶었거든요. 지난 학기에는 장학금까지 받았어요 저(웃음). 이렇게 죽어라 공부하는데 가끔 수업 좀 빼고 어느 행사에 와 달라는 분들이 있으세요. 공부가 별거 아닌 것처럼 얘기하는 태도에 좀 화가 나더라고요. 50대 후반의 나이에 젊은 학생들이랑 같이 공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요. 엉덩이 힘 하나 믿고 버티고 있어요.

Q. 지금껏 국제 구호 전문가, 작가, UN 자문위원, 이화여대 초빙교수,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아왔어요. 그 많은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이 뭐예요?
모든 걸 다 이뤘을 것 같아요? 아니에요. 뛰어들었다 실패 보고 끝낸 것도 많은데 성공한 것만 부각이 되는 거죠. 다만 제가 일군 성취 가운데 계획 없이 이뤄진 건 하나도 없어요. 저는 120세까지의 계획이 있을 만큼 ‘계획 세우기’를 좋아하는데 최전선에서 구호 활동하기, 백두대간 종주하기, 후진 양성하기, 스칸디나비아 3개국 여행하기 등 6년 전 적어둔 계획들이 이미 이뤄졌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아마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이유도 있겠지만 계획까지 세웠으니 치열하게 노력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겠죠? 계획이 이뤄졌느냐도 중요하지만 정말 열심히 했냐는 스스로의 물음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어야 하니까. 죽어라 힘을 쏟다 보면 뭐가 되긴 되더라고요. 설사 완벽한 성공이 따라오진 않아도 일단 시작하면 확률이 50대50이니 얼마나 남는 장사예요. 가만있으면 성공 확률이 0%인데.

Q. 한비야 하면 나이에 연연하지 않는 ‘쿨’함이 떠올라요. 실제로는 어때요?
어차피 저는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인생의 시간표’를 어기면서 산 지 오래예요. 대학도 6년이나 늦게 들어갔고, 남들이 20대에 하는 배낭여행을 회사 때려치우고 30대에 시작했어요. 두 번째 정식 직장은 마흔둘에나 잡았고 내일모레가 환갑인데 지금에서야 박사 공부를 시작했죠. 이렇다 보니 굳이 나이를 의식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저는 아직도 제가 커서 뭐가 될지 참 궁금해요(웃음).

Q. 늘 당차고 씩씩해 보이지만 힘들 때도 있죠? 그때마다 나름의 처방이 있나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써온 일기가 큰 도움이 돼요. 나는 물론이고 내가 겪은 상황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거든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하기로 했으면 징징거리지 말자가 모토예요. 뭔가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 땐 내가 이걸 이루기 위해 얼마큼의 눈물과 불멸의 밤을 지새워야 하는지 나름대로 계산기를 두드려보잖아요. 그거 감안하고도 하겠다는 판단이 서면 그때부턴 앞뒤 생각하지 말고 잘해야죠.

Q. 2007년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를 세운 뒤 교장을 맡아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세요. 그 성과를 실감하나요?
그럼요. 세계시민학교는 지구온난화, 경제 불평등과 양극화, 평화와 안보 등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이슈를 공부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과연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또 옆 나라 상황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배우자는 취지에서 출발했어요. 아무래도 이런 교육이 세계시민으로서 책임을 느끼고 그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는 데 도움이 되니까요. 세계시민학교는 따로 교실이 있는 건 아니고 교사를 양성해 교육이 필요한 곳에 파견하는 형식이에요. 그 밖에‘지도 밖 행군단’이라는 청소년 캠프를 운영하고 세계시민교육 교재를 발간하는 일도 맡고 있죠. 5년 전 50여 명에 불과했던 교육생이 지난해에는 무려 50만 명까지 늘어났어요. 그간 확실히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졌죠.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나라 불쌍한 사람들이나 도와주지 왜 굳이 외국 사람들을 도와주냐”고 볼멘소리를 하신 분들이 지금은 아프리카 기아 어린이를 도와 달라면 쌈짓돈을 털어주세요. 점점 사람들이 전 세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Q. 아무래도 여자는 세월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노화에 따른 서글픔을 느껴본 적은 없나요?
있죠. 구호 현장에 있다 보면 피부 톤 자체가 달라지는데 그땐 그러려니 하다가 한국에 들어와서 눈에 띌 때가 있어요. 그럴 땐 나도 이렇게 나이가 드는구나 서글프죠. 한편으론 평범한 나도 이런 기분인데 평생 예쁘다는 칭찬을 받아온 사람이라면 굉장한 상실감이 들지 않을까 싶었어요. 하지만 애써 젊고 예뻐 보이려 노력하지 않아도 자기만의 아우라가 있으면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나요? 수십 년 자기 방식대로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고유의 아름다움이 쌓였겠어요. 일률적인 미의 기준을 따라가려 아등바등하는 것만큼 시시한 게 없는 것 같아요. ‘너 자신이 되는 것’ 그것만큼 어려운 게 또 없는데, 왜냐면 남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 내 인생을 재단하기 때문이에요.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하느라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뺏기면 너무 억울하잖아요. 내 배의 방향키는 내가 꼭 붙들고 있어야 해요.

Q. 마지막으로 한비야의 전성기를 묻는다면요?
지금까지 한 50년 이상 기초공사를 했으니 이제부터 건물을 잘 쌓아 올리려고요. 그렇게 따지면 세상을 떠나기 바로 직전, 그때가 최고의 완성미를 자랑하는 내 인생의 전성기가 아닐까 싶어요.

한창 필 때는 어떤 꽃인들 아름답지 않겠어요. 하지만 그 꽃의 진가는 지는 모습까지 봐야 알 수 있는 것 아닐까요. 해바라기처럼 소박하게 살다 씨앗까지 남겨주는 ‘몽땅 다 쓰는 삶’을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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