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여행 - 일본 도고 온천 편

기사 요약글

만화가 허영만의 료칸여행 연재 1탄 도고(道後)온천 여행

기사 내용

몇 년 전부터 일본 료칸의 매력에 빠져 드나들기를 수십 차례. 올해엔 일본관광경제신문에서 선정한 ‘일본 100대 온천’을 돌아보는 장기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 첫 번째 여행지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일본을 대표하는 3천 년 역사의 도고온천을 선택했습니다. 3천 년이나 된 온천이니 전설 한두 개쯤 없을 리가 없지요. 아주 먼 옛날, 다리에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던 백로가 이곳 바위 틈에서 솟아나는 온천수에 다리를 담갔더니 금세 다리가 나아 날아갔답니다. 덕분에 지금도 도고온천 곳곳에는 백로 조각상과 그림을 마주칠 수 있습니다. 이곳의 온천수는 지옥 같은 유황 냄새가 진동하는 대신 투명하고 미끈거리는 온천수가 피부를 촉촉하게 감싸줍니다. 일본 의약의 시조신인 스쿠나히코나노미코토가 여기서 온천욕을 하고 병이 나았다니 일단 신화적으로는 효과가 입증된 셈입니다. 고즈넉한 온천 마을도 온천수의 효능을 더합니다. 동네 사람들처럼 유카타와 게다 차림으로 마을을 거닐면 온천수에 몸을 담그는 것 못지않게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우리나라의 도고온천과 이 도고온천은 아무 관련이 없다. 도후의 일본식 발음이 도고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 도고온천

도고온천 마을의 중심은 도고온천 본관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신 분이라면 이 건물이 눈에 익을 겁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온천장이 바로 이곳을 모티브로 했으니까요. 기기묘묘한 모양의 신(神)들이 센의 시중을 받으며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던 온천이 이곳입니다. 일본 전통 성의 중심 건물인 천수각을 닮은 도고온천 본관은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일본 왕실 전용탕이 있는 곳도 바로 여깁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보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이곳이 120년째 영업 중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곳은 여전히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사랑방이자 관광객들의 필수 체험 코스로 백여 년 전 모습이 그대로인 목욕탕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시간마저 비껴가는 듯합니다.

 

 

도고온천 아트 2014, 도고온천 본관의 개관 120주년을 기념한 온천 아트 페스티벌. 도고온천의 호텔과 료칸 9곳을 지정해 각각 한 개의 방을 저명한 아티스트의 작품으로 꾸몄다.


도고온천 본관이 도고온천을 대표하는 공중목욕탕이라면, 야마토야(大和) 본관은 도고온천 마을을 대표하는 료칸입니다. 온천물이야 마을 전체가 같은 물을 쓰기 때문에 료칸마다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숙소의 수준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요. 야토야마 본관은 일본 전통극인 ‘노’ 극장을 갖추고 있을 정도로 훌륭한 시설을 자랑합니다. 식사를 하면서 간단한 공연을 무료로 즐길 수도 있죠. 일본 전통 요리에 살짝 서양식 변형을 섞은 가이세키도 예술입니다. 메이지 원년(1868)에 문을 연 야토야마 본관의 가이세키는 ‘제철의 지역 재료를 사용한다’는 기본 콘셉트에 ‘색보다 맛을 추구한다’는 철학까지 덧붙여져 식전주에서 디저트까지 12가지 코스 요리는 어느 하나 입맛을 끌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전차가 도고온천 마을에선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나무 바닥을 깐 한 냥짜리 전차는 느릿느릿 도고온천역을 출발해 마쓰야마 시내까지 운행한다.


소설<도련님>의 무대, 도고온천 마을

도고온천 본관이 만화의 모티브가 되었다면 도고온천 마을은 소설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일본 현대 소설의 기초를 닦은 나쓰메 소세키(1867~1916)의 대표작 <도련님>의 주인공은 틈만 나면 기차를 타고 도고온천을 찾았거든요. 실제로 소세키는 도고온천을 즐겨 찾았다고 하는군요. 도고온천 마을에는 지금도 소설 <도련님>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도련님이 타던 증기기관차는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운행하고 있고, 도련님이 즐겨 먹던 삼색경단 또한 온천 마을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기차역 옆에는 <도련님>의 등장인물이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탑도 있습니다. 250m 거리의 도고온천역과 도고온천을 연결하는 온천 마을의 유일한 번화가(?)인 아담한 상점가를 걷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비슷비슷한 기념품 가게들이 몰려 있기 십상인 우리네 관광지 상점가와는 달리, 이곳 가게들은 저마다 개성이 뚜렷합니다. 이 지역 명물인 수건 전문점에서 그릇 전문점, 오렌지 주스 전문점까지, 독특한 상점들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습니다. 옛 온천탕에 몸을 담갔다가 ‘도련님 경단’을 먹고, ‘도련님 시계’ 소리를 들으며 쉬엄쉬엄 온천 마을을 거니는 것이 최고의 온천에서 즐기는 최고의 휴식입니다.

 

 

오즈 성(좌측), 우치코 거리(우측) 사진


도고온천 주변의 볼거리

도고온천 본관에서 걸어서 20분 안짝의 거리에도 소소한 볼거리들이 꽤 있습니다. 도고온천의 수호신을 모시고 있는 유신사와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사찰인 호곤지, 하이쿠의 전당인 마쓰야마 시립 기념박물관과 도고 기야만 유리 미술관 등이 그것이죠. 좀 더 근사한 볼거리를 원한다면 도고온천 마을을 벗어나는 것도 좋습니다. 도고온천역에서 기차나 택시를 타면 10분 거리에 있는 마쓰야마 성은 1602년 지어진 건물로 천수각을 비롯해 건물 스물한 채가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성 아래에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면 마쓰야마 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성 입구가 나오는데 특히 당시 토목 기술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깊이 44m의 우물은 놓치면 아쉬운 볼거리죠.도고온천에서 자동차로 20분쯤 가면 나오는 우치코 거리와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오즈는 옛날 에도시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마을입니다. 우치코 거리에는 100년 역사의 가부키 극장인 우치코자도 있습니다.

 

 

도고온천에서 먹어봐야 할 것

  • 쓰보야의 도련님 경단

    쓰보야의 도련님 경단(사진)

    1883년에 창업한 쯔보야는 지금도 도고온천 상점가의 터줏대감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에 등장하는 경단이 바로 이곳의 것이다. 말차와 달걀, 팥으로 만든 삼색 경단은 무척 달지만 뒷맛이 상쾌하다.

  • 마쓰야마 즈시

    마쓰야마 즈시(좌측사진), 도고 비어(우측사진)

    도고온천이 속해 있는 마쓰야마 지역의 향토 요리. 해산물을 듬뿍 넣어 만든 초밥으로 회도 밥도 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 도고 비어

    일본에는 지역마다 지역 특산 맥주가 있는데, 이 지역의 도고 비어는 아사히나 기린보다 뛰어난 풍미를 자랑한다.

  • 풍로 바비큐

    풍로 바비큐(사진)

    도고온천에서 1시간 거리의 세토우치시마나미 해도를 보러 갔다면 반드시 요시우미 이키이키관에 들러 풍로 바비큐를 맛볼 것. 풍로의 숯불에서 구운 신선한 해산물을 살짝 조미한 밥 위에 얹어 먹는 맛이 기가 막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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