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육아 - 할아버지 육아 편

기사 요약글

“자신이 전염병에 걸려 앓게 되자 손자는 죽 먹이고 똥 누이는 일을 할아버지인 나에게 해달라고 졸라댔다.”

기사 내용

“(중략) 내가 밖에 나갔을 때 손자는 졸려도 자지 않고 안타까워하며 늦게 돌아온다고 원망한다. 집에 들어오면 문 앞에서 기쁘게 맞이하고 펄쩍펄쩍 뛰면서 마음에 있는 말을 한다.” 조선 중기 문신 이문건이 손자를 키우며 기록한 <양아록>의 일부다. 조선 시대 사대부가 기록한 유일무이한 육아 일기인데, 당시 보수적인 분위기에서도 이문건은 손자를 정성스럽게 돌봤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 ‘21세기 이문건’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이계진 전 의원은 육아 일기 <똥꼬 할아버지와 장미꽃 손자>를, 번역가 이창석 씨는 <하찌의 육아일기>를, 은행 지점장 출신 정석희 씨는 <네가 기억 하지 못할 것들에 대하여>를 펴내는 등 현대판 ‘양아록’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할아버지 입장에서 육아가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지 이야기한다. 정석희 씨는 “늙어서 애나 보게 되었구나 하는 자괴감은 잠시뿐, 외손자 둘을 돌본 지난 몇 년은 노년에 뜻하지 않게 찾아온 파릇한 봄이었다”고 고백한다. 이창석 씨 역시 “귀여운 외손자들의 재롱을 보며 사는 것이 만년에 홍복”이라 할아버지 육아면서, “요즘 세상에 아무나 누릴 수 있는 복이 아니다”라고 자랑했다. 할아버지 육아 블로거 차경선 씨는 “육아로 인해 부부 사이가 좋아졌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면 부부 사이에 말수가 적어지는데 아이를 돌보다 보니 대화의 소재들이 무궁무진해지더라는 것. 부부 싸움을 하더라도 손자 때문에 곧 자연스럽게 화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할아버지 육아는 은퇴 후 과거 자녀에게 못 다한 사랑을 베푸는 과정이기도 하다. 방송인 허참은 방송에 출연해 “아들이 어렸을때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지 못했다. 거의 밖에서 생활했다. 그런데 우리 아들이 낳은 손녀, 우리 딸이 낳은 손자를 보니 예사롭지 않더라. 우리 아이들에게 주지 못했던 사랑을 손녀, 손자들한테 다주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아버지’ 시절을 거친 이 세상 모든 할아버지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 그러나 자식을 낳아 기른 할머니들에 비해 사회생활만 해온 할아버지들은 육아에 서투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할아버지들이 육아에 불리한 것은 아니다. 육아법을 잘만 터득하면 할머니들보다 더 행복하게 육아에 참여할 수 있다.

 

 

육아 고수에게 듣는, 할아버지 육아의 왕도

육아에 있어 할아버지가 할머니보다 잘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강점을 활용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자.

 

1 아이가 불편함을 느끼는 원인을 파악하라

아이가 할아버지 곁에 가지 않는 이유중 하나는 낯설고 불편해서다. 양육경험이 없는 할아버지들은 안는 자세가 어정쩡해 아기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고, 할머니에게는 없는 수염 등 익숙하지 않은 외모 때문에 이질감을 줄 수도 있다. 또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클 때 공포심을 주기도 한다. 아이가 어떤점에서 자신을 불편하게 여기는지 파악해 변화를 줘보자.

 

2 육아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활용하라

할아버지들은 할머니들보다 분석적인 육아가 가능하다. 육아 블로거 차경선 씨는 아이들이 10개월 될 때까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활용했다고 한다. ‘언제 얼마나 먹었는가’ ‘하루 동안 배설한 대소변의 양, 색깔, 냄새 등은?’ ‘잠자고 일어나는 시간은?’ 같은 육아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다 보면, 아이의 상태를 면밀히 알 수 있고 안 좋은 증상을 미리 파악할 수 있다.

3 놀아주는 법을 모르면 무조건 나가라

할아버지들은 아이와 단둘이 있는 것을 어색해한다. 놀아주는 법을 잘 몰라서다. 그럴 때는 아이와 야외 활동에 나서보자. 놀이터에서 함께 그네나 미끄럼틀을 타거나 놀이공원이나 식물원, 동물원, 박물관 등에 방문하는 것도 좋다. 가까운 시장을 돌아보거나 공원에 가서 뛰는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좋은 시간이 된다. 블록 쌓기나 퍼즐 맞추기, 물장난, 모래 놀이, 찰흙 놀이, 텃밭 가꾸기 등 아이들과 손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함께하는 것도 좋다.

 

4 할아버지 냄새를 지워라

은퇴하고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잘 씻지 않게 되고 옷도 갈아입지 않아 소위 ‘할아버지 냄새’가 나기 쉽다. 냄새에 예민한 아이들이 할아버지 곁에 잘 안 가려는 이유 중 하나다. 할아버지 냄새가 나지 않도록 위생에 신경을 쓰자.

5 할아버지만의 필살기 개발

육아는 체력을 요하는 일이 많아 할아버지에게 더 유리하다. 안아주거나 업어주는 일 외에도 할머니나 엄마가 쉽게 해줄 수 없는 ‘목마 태우기’ ‘비행기 태우기’ 등의 놀이를 해준다면 아이 입장에서는 ‘할아버지랑만 할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라는 인식이 생겨 더 돈독한 유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6 잠재우기에도 요령이 필요하다

이창석 씨는 아이를 재울 때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얼른 생각나는 곡이 없으면 허밍으로라도 시도하길 권한다고. 또 깨어났을 때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주위에 아이가 좋아하는 인형을 놓아두는 것도 좋다고 한다.

 

7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와 율동을 익히자

아이들과 가장 빨리 친해지는 방법은 같이 노래를 부르고 율동을 하는 것이다. 할아버지에게는 가장 익숙하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주제가 등을 파악하고 배워보자. 반대로 할아버지 입장에서 옛날 동요나 놀이를 가르쳐주자. 서로 놀면서 교감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좋다.

8 강요하고, 조급한 할아버지는 인기가 없다

이창석 씨는 “할아버지들이 가장 잘 저지르는 실수는 아이가 싫다는데도 억지로 강요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불가피하게 꼭 시켜야 할 일이 있다면, 아이가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보자. 또한 스스로 의지가 생겨 즐거운 마음으로 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느긋한 자세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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