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 농원 김형광 회장

기사 요약글

검게 그을린 얼굴에는 생기가 넘쳐 흘렀다.

기사 내용

올해 70세가 된 대산농원 (www.grandmountain.co.kr)
김형광 회장은 기자 일행에게 호두 농장을 보여주겠다며 SUV 차량에 시동을 걸었다. 어지간한
타이어는 죄다 찢어져 나갈 정도라는 험한 산길을 올라, 철문을 두 번이나 열고서야 빽빽이 들어찬
호두나무 숲을 구경할 수 있었다. 이곳은 경북 안동 길안면 대사리에 위치한 해발 400미터 산이다.
1997년 그는 이 산의 80만㎡를 사들여 그중 20만㎡에 4,000그루의 호두나무와 6,000그루의 매실을 심었다. 17년이 지난 지금 호두 한 그루에서 나는 양은 적게는 40kg에서 많게는 80kg 정도. 품종개량을 통해 껍질은 얇고 알맹이는 두꺼운 ‘황금호두’를 개발한 덕에 그는 1kg당 5만원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10억원대 수익을 올린 그는 향후 3년 안에 매출이 40억원대로 뛸 거라고
장담했다. “예상이 아닌 현실” 그는 이 표현을 자주 썼다.

 

 

군대 말뚝 박으려다 농부가 된 사연

1979년,‘체질’이었던 군 생활을 마무리 짓고 공군 소령에서 호텔CEO로 직함을 바꾼 건 당시
신사동에서 한 호텔을 경영하던 처가의 요청 때문이었다. “호텔에서 딱 10년을 일했어. 일이 힘든 건 둘째고 그렇게 마음이 괴롭더라고. 저놈이 나한테 사기를 치지 않을까, 이번 영업이익은 또 얼마나
될까. 늘 근심 걱정이었지. 우리 아버님이 그런마음을 알아보셨는지 마침 나와서 농사를 지어보라고 권유하셨어.”충북 영동군 일대에서 60년간 호두 농사를 짓던 그의 아버지는‘초짜’나 다름없는 아들에게 아낌없이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했다. 황금호두를 개발해 낸 것도 그의 아버지였다. 그렇게 5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자 김 회장의 머리엔 호두 농사에 대한 확실한 비전이 생겼다. 한 단계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철저한 사전 조사에 성공의 비밀이 있다

본격적으로 호두 농사에 뛰어들기로 작정한 그는 산림청 산하기관의 박사를 찾아가 호두 재배에 대한 전문적인 자문을 구하는 한편, 최적의 재배지를 찾기 위해 14개월간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토양을 채취해 전문기관에 성분 분석을 의뢰할 정도였는데 고지대, 청정 지역, 넓은 면적 등 까다로운 그의
조건을 만족시킨 곳이 바로 지금의 농장이었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았다. “17억이 들었어. 아파트니 부동산이니 다 팔았지. 나야 확신이 있었다지만 우리 식구들은 도통 이해가 안 됐던 모양이야. 뜯어말려도 안 되니까 다들 팩~ 토라져버리더라고.(웃음) 별수 있나? 나 혼자 (산에다) 집 짓고 살면서 밤낮 호두나 가꿨지.” 지금은 껄걸 웃으며 얘기하지만 돌이켜보면 참 험한 세월이었다. 경사가 40~50도나 되는 호두 밭에서 풀을 베다 굴러떨어지는 일이 허다했고 예초기를 돌리다 쇳조각이 눈에 박혀 큰 수술까지 받았다. 그러나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건 외로움이었다. 입에도 잘 대지 않던 소주를 밤마다 한 병씩 마셨다. 호두 농사의 특성상 식재 후 6년 정도를 기다려야 본격적인 수확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쑥쑥 커가는 나무를 위안 삼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담대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그였지만 박쥐나방 유충병 앞에서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꼭 애벌레 크기만 한 박쥐나방 유충은 가지나 기둥을 갉아먹어 종국엔 나무를 고사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특별히 손써볼 도리가 없어 농가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의지의 김 회장은 박쥐나방 유충병을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호두 농사의 비밀 병기‘살충제’를 개발했다. 그 비법은 부인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다고. 그렇게 산전수전을 다 겪고서야 달콤한 성공이 찾아왔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식구들 역시 지금은 존경의 눈빛으로 그를 대한다. 외국에서 의학을 전공하던 큰아들도 아버지 밑에서 가업을 이어갈 정도다. 이 같은 소식이 경제지에 소개되면서 한 대기업에서는 막대한 개런티를 제시해가며 기업적 영농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거절을 택했다.

 

 

마지막 꿈은‘호두전도사’

김 회장은 요즘 봉화로 출근 도장을 찍는다. 그곳에 1~2년생 호두나무 묘목이 7만 그루나 심어져
있다. 그루당 1만5천원~2만5천원 선에서 거래되는 이 묘목은 전국 각지로 팔려나가 열매 맺을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국산 호두가 1kg당 1만5천원 정도를 받아. 품종개량이 된 우리 호두는 5만원씩을 받는다고. 그래도 대형 마트, 단골 고객, 거기다 호두에 초콜릿을 입혀 백화점에 납품하니 물량이 달려서 못 팔 지경이지. 이 좋은 걸 사람들이 좀 알았으면 좋겠더라고. 대기업에 호두농장을 넘기면 농법이니 살충제니 하는 노하우를 공유하기가 어렵잖아. 그래서 더 못 팔았어.” 그는 호두 묘목을 구입해 간 사람들에게 식재 방법, 열매 생산방법 등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는 등 철처한‘애프터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묘목 판매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는 이에겐 대리 영농의 방식으로 분양해주기도 한다. 분양받은 묘목을 수확하기 시작하면 매해 그 판매 대금이 투자자에게 돌아가는 개념이다. 호두의 수익성이 사과의 5배, 제조업의 10배라고 강조하던 그는 경작비는 적고, 작업량도 많지 않으며, 낙과의 피해도 거의 없다며 호두 농사의 가능성을 피력하기도 했다. 세계 어느 곳의 호두와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호두만 한 품종이 없다고 자신하던 김형광 회장. 그의 마지막 꿈은 호두 농사 희망자들의 든든한 길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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