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

기사 요약글

또 하나의 가족,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삶. 반려동물은 든든한 보디가드이기도, 친구이기도, 가족이기도 하다.

기사 내용

 

 

 

 

세상의 모든 생명을 위하여

조각가 강은엽과 반려견들

 

 

"무슨 대단한 사명감이 있는 건 아니에요. 다만 사람에게 버려지고 고통받는 생명을 사람의 손으로 거두어야 한다는 마음뿐이지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인데 내가 그 일부를 맡았을 뿐입니다. 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은 평생을 함께하는 가족을 반려하는 일임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문이 열리자 십 수 마리의 견공들이 먼저 달려 나와 맞는다.

 

“버려졌거나 직접 구조한 아이들이에요. 국내외로 입양 보낸 아이들까지 합하면 셀 수도 없이 많은 아이들이 이 집에서 생활했지요.”

 

‘유기견’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훨씬 전부터‘강아지 엄마’로 불려온 사람, 조각가 강은엽이다. 20년 전 교통사고를 당한 채로 동물병원 앞에 버려진 누렁이를 차마 모른 척할 수가 없어서 입양하게 된 게 시작이었다. 이후 열악한 상황에 놓인 개들이 눈에 들어와서 돌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동물보호단체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아름품(사단법인 카라의 전신)’ 대표직을 맡아 몸과 마음을 바쳐 활동했다.

 

회장직에서 물러난 지금도 매일 40여 마리분의 사료와 물을 싣고 일일이 찾아다니며 거두어 먹이고, 개를 물건이라 생각하는 주인들을 설득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많은 아이들을 돌보느라 화장 한 번 해볼 새가 없던 엄마가 오랜만에 단장을 하고 카메라 앞에 앉았다.

 

“오늘, 두부랑 꼭 같이 사진을 찍고 싶어요. 열일곱 살인데 지금 입안에 암덩이가 생겨서 제대로 먹지도 못해요. 하지만 저 표정을 보세요. 오줌을 시원하게 누고 나면 개운하다고 웃고, 이렇게 주목받는 게 좋아서 또 웃잖아요. 마지막 날까지 두부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카메라 앞에 앉은 두부가 선생의 말처럼 해사하게 웃는다. “엄마, 고마워요. 날 포기하지 않아 줘서”라고 말하는 듯이.

 

 

 

 

환상의 짝꿍

화가 변웅필과 만득이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서로의 마음을 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말 못 하는 동물과 어떻게 교감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지만, 녀석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낍니다. 능청스럽게 다가와 제 몸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을 때는 나와 함께 있고 싶어 하는구나, 나를 좋아하는구나 고스란히 느껴지거든요."

 

변웅필 작가의 반려견 만득이는 페이스북 스타다. 작가의 팬과 지인들뿐 아니라 그의 그림을 잘 모르는 이들도 안부를 묻고 선물을 보내올 정도로 유명한 스타 견공! 주인의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듯 능청맞은 모습이 담긴 영상은 볼 때마다 신기하고 놀랍다.

 

“교육을 시킨 적도 없고 천재견도 아니에요. 다만 어릴 때부터 둘이서 지냈기 때문에 일체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작가와 만득이는 5년 전, 강화 5일장에서 만났다. 10년간의 독일 유학을 마무리하고 귀국, 성공적인 전시도 열었지만 유명해질수록 서울 생활이 싫어졌다. 작정하고 이곳 강화도로 들어왔다.

 

“주로 밤에 그림을 그리는데 새벽이면 뒤통수가 좀 서늘해지더라고요. 삽살개가 귀신을 쫓는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어서 장터에서 보자마자 데리고 왔지요.”

 

그러나 집에 온 지 며칠 만에 피를 토하며 죽을 고비를 넘겼고, 목숨을 바쳐 충성한다는 삽살개답게 낯선 이들에게 입질도 있어 애를 먹였다.

 

“지난 5년 동안 맘 편하게 여행 한 번 못 떠났지요. 그래도 짐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만득이가 없었다면 강화도 생활을 못 버텼을 거예요. 울적해지면 함께 산책하고,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만득이에게 먼저 얘기해줍니다. 너무 정들면 녀석이 떠났을 때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거리를 둬야지 싶다가도 어느새 껴안고 비비고 뒹굴며 자곤 하지요. 지금,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참 좋아요.”

 

어쩌면 변웅필 작가의 작업 일부는 이 사랑스러운 견공에게 빚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의 비밀을 가르쳐주는 존재

만화가 이우일과 동화작가 선현경& 카프카와 비비

 

 

"고양이와 함께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한때는 고양이만 봐도 놀라 달아날 정도로 동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제가 이들이 우리와 똑같이 소중한 생명이라는 걸 느끼고, 깊이 사랑하게 되었으니까요. 삶에서 단정 지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세상의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는 카프카와 비비에게 너무나 고마워요."

 

이우일과 선현경의 팬이라면 그들이 아름다운 고양이 두 마리와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홈페이지와 몇몇 작업을 통해 심심찮게 등장하는 페르시안 고양이‘카프카’ 양과 스코티시 폴드‘비비’ 군이다. 가끔씩 업데이트되는 두 미묘의 일상사가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어릴 때부터 다양한 동물을 키웠던 남편이 12년 전 고양이를 입양하자고 한 것이 시작이었다.

 

“고양이들은 독립적이에요. 먹을 것만 챙겨주면 스스로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관리하거든요. 저희처럼 게으르고 밤늦게까지 작업하는 사람들과 궁합이 잘 맞지요. 사랑을 달라고 하지도 않아요.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따라다니며 사랑을 갈구하게 만드는 묘한 존재지요.”

 

왕성한 호기심과 날카로운 눈으로 인간을 관찰하는 그들은 부부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까칠 고양이 카프카의 시선으로 가족의 일상을 담아낸 카툰 에세이<고양이 카프카의 고백>(이우일, 웅진지식하우스)은 고양이 집사들의 필독서가 된 지 오래. 이제 열두 살, 열한 살 그야말로 장년의 고양이가 되어서 가슴 철렁한 일들도 생긴다.

 

“가슴 아프고 힘들지만 이별하는 것까지도 동물을 반려하는 일이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해요.”

 

가을 즈음, 부부는 외동딸과 함께 1년 정도 포클랜드로 긴 여행을 떠난다. 물론 카프카와 비비도 함께.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아 뛰노는 이야기가 담긴 포틀랜드발 ‘캣 다이어리’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너는 나의 영감이다

소설가 이제하와 쿠쿠

 

 

"이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나와 참 닮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쿠쿠, 너도 나처럼 떠돌이로구나. 가만히 있다가도 좋아하는 사람이 일어나면 따라가면서 꼬리를 막 흔들어요. 왜 벌써 가냐고, 좀 더 있다 가라고 말하는 듯이 컹컹 큰 소리로 짖으면서. 내 마음 같아서 혼자 웃곤 하지요."

 

대학로의 카페 ‘마리안느’에 가면 이제하 선생이 있고, 그의 곁에는 늘 반려견 쿠쿠가 있다. 카페 한 켠에 마련된 작업 공간에서 선생이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면 엉덩이를 붙이고 조용히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녀석, 오랜만에 찾아가도 제일 먼저 달려 나와 꼬리를 흔드는 그 녀석이 보고 싶어 그곳에 간다는 문인들도 많다. 쿠쿠는 유기견이었다.

 

“전에 키우던 개가 아파 동물병원에 갔는데 철창 속에 있던 녀석이랑 눈이 마주쳤어요. 어찌나 눈에 밟히던지 다음 날 가서 바로 데려왔지요. 여러 종이 섞여 있는 것 같은 요상한 외모도 그렇지만 성격이 아주 대단했어요.”

 

갓난아기 키우듯 따라다니며 치우고, 야단치면서 든 정 때문일까. 선생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함께 다니며 그야말로‘단짝’이 되어 생활한 지 여섯 해 반이 지났다.

 

“쿠쿠는 유기견이라 그런지 미처 헤아리지 못한 마음의 상처들이 드러날 때마다 마음이 아파요. 사람은 시시콜콜 자기주장을 하지만 개들은 끝없는 사랑을 주지요. 단순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이 녀석들이 너무 좋아요.”

 

등단 이후 지난 50여 년간 한국 문학의 흔들림 없는 거목이자 살아 있는 스승인 이제하 선생이 쿠쿠의 등을 다정히 쓸어주며 웃는다. “얼마 전에 털을 싹 밀어 아주 못생겨졌어. 더 예쁜 놈인데 아쉽네.” 자식이 좀 더 예뻐 보이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 같아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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