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얼굴 배종옥 편

기사 요약글

운명은스스로 선택하고 개척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하늘의 뜻도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은 셈이죠.

기사 내용

그러고 보니 김수미, 윤현숙, 변정수 씨와 찍은‘비키니’사진이 화제예요. 그들은 어떤 존재인가요? 공개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과감하게 찍었는데 모 예능 프로그램에 노출되면서 사람들이 알아버렸네요. 사실 서로 바빠서 잘 만나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왜 그런 거 있죠? 김수미 선생님이 TV 화면에 나오면 반갑고 다른 두 친구들 소식을 들으면 다들 잘 사나 싶어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 다 같이 괌 여행을 다녀온 뒤로 더 친해져서 자주 연락하고 있네요. 

‘배종옥’ 하면 차갑고 도시적인 모습을 떠올리는데 실제로 보니 온화하게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가 강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거든요. 하지만 제 탓이 큰 게 배우는 너무 많이 노출되면 좋지 않다고 생각했었어요. 예전에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죠. 그러다 보니 작품에서 드러난 캐릭터가 곧 제 이미지가 된 셈이죠.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린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챙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대학교에서 강의를 오래 해서 그런지 어린 친구들이 다 제 학생 같고 그랬죠. 모두 ‘연예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보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나기도 했고요. 제 딸과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도 있어서 요즘 애들은 어떤 관심사를 갖고 사는지를 배울 수 있어 좋았습니다.

SBS 예능 <아빠를 부탁해>가 대센데 번외편<엄마를 부탁해> 같은 예능에 출연하면 잘 어울릴 것 같은데요?

저는 늘 인터뷰 때마다 코미디 연기를 하고 싶다고 얘기해요. 사실 그래서 SBS 예능 <룸메이트>에도 출연했고. 이제 예능을 터부시하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해도 늘 좋은 배우가 되고 싶은 열망을 갖고 있답니다. 근데 딸과 출연하는 건 그 아이 프라이버시도 있으니 힘들지 않을까요?

동안이라서 실감 나지 않는데 대학생 딸이 있잖아요. 어떤 어머니인지 궁금하네요.

그냥 딸에게 터치 안 하는 편한 엄마? 저는 제 딸이 무엇을 하든지 걱정하지 않아요. 바쁘다 보니 잘 챙기지도 못했지만 스스로 잘 하는 아이기도 하고. ‘미국에서 졸업하고서 1년 정도 엄마랑 살고 싶다’고 하길래 더 안 물어보고 그러라고 했어요.

드라마 종영 후 휴식 시간이 주어졌는데 주로 무엇을 하며 지내세요?

‘다른 생각하지 말고 푹 쉬자’란 주의예요. 요새는 주로 사람 만나고 평소 보고 싶었던 연극과 영화, 뮤지컬을 마음껏 즐겨요. 최근에 <비비언 마이어를 찾아서>란 영화를 봤어요. 한 사진작가가 대중에게 작품을 공개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나게 되고, 우연히 작품을 발견한 주인공이 작가의 삶을 추적하는 내용이죠. 우리 같은 배우들은 감정을 표출하고 대중에게 드러내는 직업이잖아요. 영화 속 예술가가 우리와 정반대의 삶을 선택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계속 가슴속에 여운으로 남아 있네요.

얼마 전 지인들과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면서요?

프랑스 남부 지역을 여행했는데 오랜만에 친구들과 느끼는 여유라 즐거웠죠. 하루는 렌터카를 빌리러 갔는데 수동 차량이 더 싸길래 젊을 때 운전하던 것을 생각하고 빌렸죠. 두세 시간쯤 가는데 시동을 몇 십 번은 꺼뜨린 것 같아요(웃음). 완전 창피하고 친구들에게도 미안했는데 한 친구가 ‘그냥 돌아가서 다시 오토 차량으로 바꾸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친구 말을 잘 듣는 편이라 돌아가서 바로 바꾸고 편하게 여행을 다녔답니다.

빡빡한 곳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프랑스 남부 지역에 머물다 왔으니 생각도 달라졌겠는데요?

여유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잠깐 차 얘기를 했지만, 유럽은 중세도시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곳이 많다 보니 차를 위한 도로를 크게 만들지 못하잖아요. 대부분 소형차들을 애용하고 심지어 에어컨을 단 차도 거의 없었어요. 더우면 창문 열고 그래도 더우면 조금 쉬었다 가는 게 그들의 사고방식인 거죠. 그에 반에 우리는 조금만 불편해도 다른 사람에게 불평하고 원하는 것을 쟁취하려 싸우기까지 하잖아요. 저부터라도 불편한 것은 조금 감수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젊은 배우들이 연기의 ‘롤모델’로 꼽는데 정작 메릴 스트리프 때문에 3일간 잠 못 이룬 적이 있다고 들었어요. 요새는 어떤 배우에게 감동을 느끼세요?

메릴 스트리프는 여전히 멋져요. 배우란 직업을 완벽히 이해하고 표현하는 느낌입니다. 최근에는 줄리앤 무어를 흥미롭게 보고 있어요. 지난번 개봉한 영화 <스틸 앨리스>에서 치매가 찾아온 중년 여성을 연기했는데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치매 환자를 둔 가족이란 소재를 잘 살렸더군요. 요새는 세월이 흐를수록 멋지게 변하는 배우들이 많은 것 같아요.

작품을 감상할 때 관객으로서 즐기지 않고 배우로서 관람하는 편인가요?

처음 의자에 앉을 때까지만 해도 관객으로서 즐기려 하는데 직업이 배우다 보니 그게 잘 안 돼요. 저와 같은 연배의 배우가 어떻게 활동하고 연기하는지, ‘나라면 어떻게 (연기)했을까?’를 자꾸 떠올리고 따지며 보게 돼요.

 

그래서 과거에는 배우로서의 삶을 만족하지 않았지만 현재는 운명처럼 받아들인다고 한 거군요.

예전에는 모든 것이 제 중심이었어요. 스스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뜻대로 안 되니 좌절도 많이 했죠. 지금도 운명결정론자는 아니어서 (운명은) 스스로 선택하고 개척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많이 겸손해져서 하늘의 뜻도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은 셈이죠.

그럼 배종옥 씨에게 다음 운명적인 작품은 무엇일까요?

코미디라니까요!(웃음) 얼마 전 김수미 선생님을 만났는데 재미있는 작품이 들어왔다고 얘기하셔서 저도 출연하게 해 달라고 조른 적 있어요. 작품이 가볍다고 어떤 메시지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편견이라 생각해요. 가벼운 작품이라도 진지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거죠. 전 재미있고 밝은 캐릭터가 들어오면 무조건 할 겁니다.

가끔 20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나요?

아니요. 혼돈과 혼란에 빠져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매일 밤 고민하느라 힘들었는데 절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소위‘더’ 잘나가는 시절이었다고 해도요(웃음). 20대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다는 점은 부러워요. 우리 세대는 열정의 무게는 같아도 체력의 무게는 줄어들잖아요. 그래서 운동을 더 열심히 해요. 우연히 90대 할아버지들이 축구 하는 모습을 봤는데 잘 하시더라고요. 저도 죽는 순간 직전까지 건강하게 살다 수명이 다하는 순간 딱 떠났으면 해요.

지금이라도 다시 하고 싶거나 배워보고 싶은 게 있나요?

요리를 배워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 쪽은 적성이 아닌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먹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스스로 걸어서 다닐 수 있을 때 여행을 최대한 많이 다니려고 해요. 오랜만에 유럽 중세 시대 화가들의 작업실이나 레스토랑, 그리고 그들이 바라본 자연과 풍광을 보고 오니 너무 좋았어요. 외국어도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곧 있으면 생일이 돌아옵니다. 특별한 생일 파티 계획이 있나요?

젊을 때야 파티도 하고 술도 마시고 했는데 지금은 그냥 조용히 보내고 싶어요. 딸이 한국에 나와 있으니 같이 케이크나 자르고 그러겠죠. 예전에 제 어머니는 ‘나 뭐 갖고 싶다’ 말씀하셔서 되게 편했는데 저는 그런 편도 아니라서. 근데 뭐 꼭 특별해야 하는 건가요?(웃음)

오늘 촬영은 어땠나요? 모든 스타일을 완벽하게 소화해서 놀랐습니다.

다양한 의상을 입어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고 함께 작업해봤던 스태프가 있어 편하게 촬영했네요. 오늘처럼 도심 속에 넓은 정원이 딸린 장소에서 촬영하니 여행을 떠난 기분도 들고. 아파트보다 주택이 주는 ‘한가로움’‘여유’가 있는 것 같아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배종옥에게‘전성기’란 무엇일까요? 삶을 살아가는‘이유’‘원동력’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사실 20대 때 대중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았어요.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그때가 저의 첫 번째 전성기였죠. 앞으로도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 믿고 있어요. 좋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더 좋은 작품에 캐스팅될 수도 있다는 뜻이죠. 지금은 두 번째, 세 번째 전성기를 기다리는 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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