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인기 - 한옥에 살아볼까?

기사 요약글

친환경 주택이라는 점과 한옥의 운치, 골목과 사람에 대한 향수로 부쩍 주목을 받고 있는 한옥 주거. 서양식 주택과는 다른 한옥 특유의 맛 때문에 여생을 한옥에서 살고 싶은 이들이 많다. 한옥에 사는 이들과 한옥 건축가에게 한옥에 대해 들어봤다.

기사 내용

 

가회동p(구가도시건축, 2013), 대지면적 126.9㎡, 건축면적 70.77㎡©박영채

 

 

친숙한 마당이 있는 건강한 집

오십 평생 한옥에서 산 김성준 씨는 1년 6개월 전 1980년대 자신이 살던 통인동 한옥으로 돌아왔다. 이사 오기 전에는 체부동 한옥에 살았다. 한옥은 춥고 수납공간이 적다는 단점이 있지만 마당이라는 매력 때문에 다시 살기로 했다고 한다. 한옥의 마당은 주인과는 가까우면서 외부로부터는 차단된 개인 공간이라는 것. 그런데 흥미롭게도 다양한 형태의 한옥 프로젝트를 맡아온 구가도시건축 조정구 대표도 한옥 이야기를 묻자 마당의 특별함부터 이야기한다. 한옥의 마당은 집의 전면이나 건물 뒤에 위치한 서양 주택의 정원과는 달리 집으로 둘러싸인 안쪽에 두어 친숙하고 정이 간다는 것이다. 형태뿐 아니라 쓰임도 그러하다. 한옥의 마당에서는 빨래도 하고 잔치도 하고 꽃도 키우고 채마밭도 일군다. 은퇴 후의 삶은 할 일이 있는 일상이 행복의 요소 아닌가. 그런 면에서 일거리가 생기고, 취미를 만들 수 있는 한옥 마당에 관한 설명이 솔깃하다. 실제로 그가 작업한 어떤 집의 안주인은 생전 하지 않던 초목 가꾸기에 절로 빠져 즐겁다고 한다. 또한 한옥은 목조 주택이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다. 건강한 집이니 노년을 보내기에 더할 나위 없다.

성연재(구가도시건축, 2011), 대지면적 69.4㎡, 건축면적 36.4㎡©박영채

1. 마당이 내다보이는 안방 창은 내민창으로 만들고 벽체를 들여 수납공간을 만들었다.
 


2. 이 집의 보물은 부엌 옆의‘lazy room’. 햇살을 받으면 빈둥거릴 수 있는 휴식처다.
 


3. 주방은 기내의 주방 갤리(galley)를 차용해 콤팩트하고 효율적이다.

형태가 다양해진 한옥

한옥에 대한 호불호는 확연히 갈린다. 한옥을 좋아하려면 일차적으로 한옥 특유의 디자인에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 조선 시대 모습에 가까운 93전통 한옥부터 현대적 외관에 구들이나 문살 등 일부 디자인이나 개념을 차용하는 ‘가벼운 한옥’까지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한옥의 기와와 고전적 문양의 문과 담이 싫다면 목조 구조나 사방으로 개방된 형태만 실현해도 된다. 구가도시건축의 작업들을 보면 현대 주택과 한옥을 섞은 형태, 1층을 양식으로 2층을 한옥으로 설계한 창조적 형태도 있다. 다만 전형적인 전통 한옥의 디테일이 사라질수록 지원금을 받아 개보수를 할 수 있는 조건과는 멀어진다. 바꿔 말하면 지원금을 받으면 제한이 많아진다는 소리다. 물론 전통 한옥으로 짓는다 해도 한옥밀집지역으로 지정되지 않는 곳에서는 지원을 받지 못한다.

지원금 받아 고치고 짓기

지원금을 받아 한옥을 고치려면 ‘한옥 등록’부터 해야 한다. 한옥밀집지역 내에 있다고 해서 꼭 한옥 등록을 할 의무는 없지만 등록을 하면 비용 지원과 거주자 주차 우선권, 역사문화미관지구 내의 한옥일 경우에는 재산세 감면 혜택이 있다. 공사 비용을 지원 받으려면 한옥 등록 또는 한옥 예정 등록을 한 뒤 신청서와 함께 설계도와 공사비 견적서를 제출한다. 그리고 한옥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지원 여부가 결정된다. 이후에도 건축 허가와 공사 단계에 심의를 받아야 한다.

개보수와 신축 비용은 비슷하다. 그럼에도 신축보다는 개보수를 권장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기존 한옥을 개보수할 때는 건축법 특례 규정을 적용해 현행 건축법의 높이 제한, 건폐율 규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지만 신축은 현행 건축법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지원금을 받기 위한 심의 통과는 까다롭다. 한옥의 지붕 형태와 기와뿐 아니라 외벽도 상중하부로 나눠서 소재와 문양을 제한한다. 담장 높이는 한옥의 몸체가 드러나게 쌓고 맨 위에는 기와를 얹어야 하는 등 세세하고 복잡하다. 서울시에서 발간한 <알기 쉬운 한옥>이라는 책자를 참조하면 관이 원하는 바를 파악하기 쉽다. 한옥위원회 심의는 한 달에 두 번 있으니 날짜를 맞춰 하면 편리하고 심의 결과는 원안 동의, 조건부 동의, 재심로 나오는데 재심의 경우 보완해 다시 심의를 신청하면 된다.

 

 

건축가 조정구 씨가 꼽은편리한 한옥의 요건
첫째 : 밝고 공간감이 있도록 설계할 것. 한옥은 칸칸이 끊어지고 중첩되어 있어 갑갑한 느낌이 드는데 그런 부분을 정리하면 밝고 투명한 집이 된다.
둘째 : 방은 방답게 마루는 마루답게 만들 것. 한옥이 춥다고 하니 방과 마루 모두 단열에 온 신경을 쓰는데 마루는 가급적 시원한 것이 좋다. 마루는 천장이 열려 있어 한옥의 목구조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마루가 따뜻하면 도리어 한옥 특유의 시원한 여름 마루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된다. 방은 대신 따뜻하게 만들어야 한다. 방은 외부의 벽체 단열뿐 아니라 내부에도 단열을 더하고, 창을 너무 크게 내지 않는다. 또 전통 창호보다는 조금 비싸도 전통 시스템 창호를 단다.
셋째 : 마당을 편히 누리도록 만든다. 부엌과 마당의 관계를 좋게 하고 마당에 수도를 놓으면 마당 생활을 즐기기 좋다. 부엌 바닥을 낮춰 마당과 통하게 설계해 기단에서 조금 내려가면 마당에 닿게 하는 것만으로 심리적, 물리적으로 굉장히 가까워진다.

 

소안재(구가도시건축, 2010), 대지면적 136.8㎡, 건축면적 62.86㎡©박영채

 

춥고 불편한 한옥 바꾸기

통인동의 김성준 씨 한옥 택호는 취아당(就我堂)이다. 한글 발음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스스로 자신을 만들어가는 집’이라는 뜻이 좋아 그리 지었다고 한다. 그는 이웃에서 한옥 개보수를 하면 쫓아가서 보고, 평생 한옥에 살면서 불편했던 자신의 경험을 더해 아파트에서만 살았던 평범한 도시 사람이 봐도 눈에 쏙 들어오는 콤팩트한 도시형 한옥을 완성했다. 23평 땅에 14평으로 지은 자그마한 한옥. 기자는 취아당 대문을 열고 깜짝 놀랐다. 외관과는 달리 실내는 여느 아파트 못지않게 현대적 디자인이었다. 주방을 한옥의 부엌처럼 바닥 면을 낮춰 위 공간을 다락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고, 수납공간을 빌트인으로 넣어 드러나지 않으면서 요소요소 살뜰하게 공간을 활용했다. 실내에 욕실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ㄷ 자 형태의 집의 동선이 무척 편리하다. 줄곧 한옥에 산 집주인은 한옥이 겨울에 무척 춥기 때문에 이번 개보수에서 단열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운중동m(구가도시건축, 2012), 대지면적 230.5㎡, 건축면적 114.55㎡©윤준환

 

한옥에 산다는 것

도시 한옥은 작다. 한옥에 살려면 가지고 있던 짐의 1/2은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건축가 조정구 씨는 한옥의 수납공간을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는 어떤 점에서는 맞지만 한옥이라는 주거 공간이 애초에 소유 형태가 아니라고 말한다. 아파트처럼 소유한 것을 벽에 쟁이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조상들의 무소유의 삶의 형식이 투영된 집이 한옥이라고 생각한다. 평생 한옥에 살고 있는 김성준 씨도 버리는 삶을 이야기한다. “한옥에서는 짐을 줄이지 않으면 사람이 짐에 치여 어쩔 수 없이 버리게 됩니다. 한옥으로 이사 와 살림을 줄이고 차도 버린 이웃도 종종 봤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버려도 살아진다는 것. 이런 면이 한옥이 은퇴 후 주거 형태로 어울리는 특징이기도 하다. 한옥 하면 으레 고가구와 고풍스러운 무늬를 생각하고 그런 모습을 좋아하는 이들이 사는 곳이라 여긴다. 동시대의 한옥들을 살펴보니 한옥에 살기 위해 짐을 버리듯이 한옥이란 공간도 우리와 살기 위해 간소한 옷으로 바꿔 입는 추세인 것 같다.

취아당, 설계 박지민(lifeinstallo), 김한승(ssiz.com), 시공 황인범(서울한옥)


1. 주방은 현대식 시설로 불편함이 없다.


2. 마당에 흙이 많으면 비 오면 튀고 벌레도 많아 불편해서 돌로 막고 일부엔 나무를 심었다.


3. <작은 한옥 한 채를 짓다>(황인범, 돌베개) 한옥 관련 용어부터 과정, 시행착오까지 알기 쉽게 써 내려간 책.

 
한옥을 개조한 김성준 씨의 조언


1 공사 기간을 최소 6개월로 잡아라
보통 주택 리모델링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해체만 2주, 공사 기간은 6개월이 걸렸다.

2 현장에 가보라
그는 2012년 이웃인 로버트 파우저 씨가 한옥을 고치는 과정을 날마다 가서 봤다. 북촌과 서촌에 공사 중인 한옥이 많다. 해체부터 완공까지 실제를 보고 나니 한옥을 쉽게 알 수 있었다.

3 커뮤니티, 이웃에게 물어라
집주인이 공부를 해야 설계자, 시공자와 소통하기도 쉽고 잘된 것인지 아닌지 평가도 할 수 있다. 요즘은 온오프라인에 한옥 커뮤니티가 다양하다. 페이스북상의 한옥 3.0, 한옥살이(비공개 그룹) 등에 가서 살펴보면 기본 용어도 알 수 있고, 현장 답사 등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다.

4 반드시 전문가에게 맡겨라
한옥 공사비는 보통 평당 1000만원 이상이다. 비용을 아끼려고 비전문가에게 맡겼다가 한옥의 원형이 망가진 사례를 많이 봤다.

서울 시내 한옥밀집지역& 한옥마을
한옥밀집지역이란 한옥 보전 및 진흥이 필요한 지역으로 서울시 한옥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지정한다. 2002년 북촌을 시작으로 인사동, 운현궁 주변, 돈화문로, 경복궁 서측 등 7곳을 지정했다. 그중 주거용은 올해 1월 지정된 성북동을 포함해 북촌, 서촌이 해당된다.



북촌:최초로 한옥밀집지역으로 지정된 동네. 지정 지역 중 한옥이 가장 많은 곳으로 1200동 정도가 있다. 구릉지가 주는 운치가 있고, 조용한 편이라 품격 있고 고즈넉한 삶을 원하는 이들이 선호한다.

서촌:인왕산을 관망하는 경복궁 서쪽 지역. 600~700동의 한옥이 있으며 북촌과 비교해 시장도 있고 마을 사람들끼리 커뮤니티 활동도 활발한 따스한 동네다. 사람들과 부딪히며 인간적인 정을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맞다. 북촌과 더불어 역세권이라 도심 접근성이 좋고 젊은 사람들도 많다.

성북동 선잠지구와 앵두마을:선잠지구는 사극에 단골로 등장하는 동네로 58동의 한옥이 있다. 앵두마을은 선잠지구보다 한옥의 수가 적지만 주변 지역을 포함해 한옥 건축으로 유도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성북동의 한옥밀집지역 골목길 단위로 한옥이 들어서 있는 형태다. 성북구에서 전국 최초로 한옥 전수조사를 하였고 한옥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등 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 기대되는 지역이다.

은평 한옥마을:한옥밀집지역에 해당되지 않아 신축 및 개보수 지원금을 받을 수 없지만 심의는 받아야 한다. 북한산을 끼고 있는 탁월한 입지, 신축 단지이기 때문에 좁은 골목길과 주차 공간 부족 등의 문제가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2층 한옥을 허용한 점도 눈에 띈다. 블록별로 잘라놓아 한옥마을 특유의 운치가 없다는 평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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