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섭 행자부 장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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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은 누구인가?

경북 경주 출신으로 헌법학자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을 거쳐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 미국 하버드 법대 교수 등을 지냈다. 대통령자문 교육개혁위원회 특별위원, 대통령자문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 문화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정부 서울청사에 있는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의 집무실은 인문학의 향기를 풍겼다.
정 장관이 직접 쓴 휘호, 유명 서예가들의 작품, 만화가 이현세 씨가 그린 정 장관의 캐리커처 등이 어우러져 갤러리가 연상됐다. 서예에 전문가적 식견과 실력을 갖고 있는 정 장관은 온 힘을 모아 획을 긋듯, 행정자치부 장관으로서 한 땀 한 땀 공직 개혁 작업을 펼치고 있다. 보고 관행과 근무 행태를 바꾸고, 공무원 조직의 변화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를 만났다.

장관으로 취임한 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공직 사회에 들어와 느낀 소감이 궁금합니다.

학계에서 이론을 중심으로 살다가 실제 행정 실무를 맡아보니 책임이 막중함을 절감합니다. 이론은 분석, 평가 위주이지만 실무는 현재 직면하는 일들에 대해 해결책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 크게 다릅니다. 저는 국가 혁신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공직 사회가 먼저 혁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틀에 짜인 업무 방식을 창의적 관점으로 바꾸기 위해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초과근무나 주말 대기 관행을 없애고, 주 2회 가족 사랑의 날을 확산하고 정착시키는 데 노력하고 있어요. 결재판 없는 보고, 회의 자료 없는 회의, 자유 토론 등 보고와 결재 관행을 개선하는 일에도 땀을 흘리고 있지요. 행정자치부가 일하는 방식을 혁신하는 시범 부처가 되어 이를 다른 부처나 기관에 전파해 개혁을 선도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면서 작은 것부터 바꿔나갈 것입니다.

장관 취임 전 경력을 보니 본업인 헌법학 교수 이외에 문화재위원회 위원, 미래를 위한 국가유산자문위원회 위원장, 한국고전번역원 이사 등 이색적인 경력이 눈에 띕니다.

선조들이 남긴 기록문(고전) 대부분은 한문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문 공부가 필수입니다. 요즘 세대 대부분이 한자(漢字)는 물론 한문(漢文) 공부를 해본 일이 없기 때문에 우리 고전을 직접 읽고 느낄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실상 한문 문맹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저는 어려서부터 한문을 배웠고, 서예를 하면서 공부해왔기 때문에 늘 우리 고전의 번역이 절실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던 차에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권유해 고전 번역 활동을 뒤에서 돕는 활동을 해왔어요. 문화유산, 자연유산의 보호는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는데, 그에 관한 우리 법, 제도가 낡은 것이라 이를 체계화하고 혁신하는 일에도 참여했어요. 문화재위원회의 중요한 안건은 대부분 문화유산 보호의 이익과 개인의 사유재산 보호 이익이 서로 충돌하는 것입니다. 법률가들의 참여가 매우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요. 저는 이런 맥락에서 문화유산, 자연유산, 세계유산 보호에 적극적이고 이에 대한 법, 제도적 작업을 해왔습니다.

장관직을 맡으면서 이것만은 꼭 하겠다고 목표를 세운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대한민국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국가 모습을 정립하겠다는 것입니다. 국가 전 부문에서 변화와 혁신을 선도하되, 정부 혁신과 지방자치 혁신이라는 두 축을 중심축으로 삼을 예정입니다. 정부 기능을 새롭게 정립하고 정부 조직을 다시 설계할 것입니다.
또 지방자치 시행 20년을 계기로 ‘주민 중심 생활 자치’로 지방자치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방만한 지출과 재정의 수요 확대에 대응할 수 있도록 ‘지방재정 구조 개혁’과‘지방 공기업 혁신’도 추진하겠습니다. 중앙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를 아우르는‘국가혁신부’를 이끈다는 각오로, 혁신 과정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국민이 행복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장관직을 맡은 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DMZ의 유일한 민간인 마을인 대성동을 국민들이 함께 참여해 ‘통일맞이 첫 마을’로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대성동 마을은 분단의 시련과 통일의 염원이 담긴 특별한 공간으로서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이에요. 1980년대 조성한 이후 정비를 못해 주택이 노후화되는 등 주민들이 주거 환경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대성동 마을의 역사성, 민족성, 민관이 합치된 환경 등 세계 유일의 특성을 고려할 때 단순한 주택 개량 사업이 아니라 마을 전체에 대한 재생 사업을 통해 역사적 마을로 재구성할 생각입니다. 행정적 차원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의견을 담아서 집단 지성을 활용해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에요. ‘통일맞이 첫 마을 대성동’ 프로젝트는 모든 국민이 자유롭게 참여하고 논의하는 과정을 통해 추진해갈 것입니다.

 

 

올해 대통령 업무 보고 내용을 보니 부실하게 운영되는 행정기관위원회를 대폭 통합, 폐지하고 운영 실적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겠다고 했습니다.
부실 운영이 그렇게 심각한가요?

2014년 기준 537개 행정기관위원회 중 201개(37%)는 회의를 1년에 두 번도 열지 않았어요. 그런데 2014년에 이런 위원회에 총 247억원의 예산이 쓰였습니다. 이것은 국고 낭비예요. 유사한 위원회가 난립해 기관 간, 분야 간 칸막이를 조장하는 경우도 있어요. 행정기관위원회 전반에 대한 운영 실적과 필요성을 일제히 점검하고 있습니다. 꼭 필요한 위원회는 활성화하고 필요성이 없다고 인정되면 과감히 정비하겠습니다. 537개 위원회의 20% 규모인 110개 내외를 감축하는 것이 목표예요. 연 회의 실적 2회 미만은 원칙적으로 폐지· 통합 대상입니다. 또한 위원회 운영 실적을 분기마다 공개해 자발적 개선과 활성화를 유도할 계획입니다.

 

공직 사회 개혁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개선해야 할 관행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외부에서 생각했던 공무원들의 근무 행태와 실제 근무 행태가 너무 달라 놀랐습니다. 6시 정시 퇴근이 아니라 밤 11시~12시, 심지어 주말까지 출근하는 초과근무가 문제된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저는 일과 가정생활이 양립해야 창의성도 생기고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직원들은 사무실에 오래 있는 게 일 잘하고, 성실하다는 타성에 젖은 인식을 갖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이러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6시 정시 퇴근, 주말· 야간 근무 금지, 가정의 날을 1일(수)에서 2일(수ㆍ금)로 확대했어요. 무조건 6시에 퇴근해서 재충전하도록 하고, 불필요한 일 없애기를 통해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주간 업무 집중도를 높였습니다. 보고 관행에도 문제가 있어요. 두껍고 내용도 너무 자세한 보고서를 딱딱한 결재판에 넣어 보고하고 있어요. 보고는 핵심만 전달하면 되는데, 직원들은 양이 많은 보고서가 잘 만든 보고서이고, 결재판을 사용하는 것이 상사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더군요. 저부터 모범을 보여 장관실로 오는 모든 보고서는 결재판에 넣지 말고, 분량도 1쪽 이내로 작성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현장, 구두 보고, 토론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요. 실무자의 보고서 작성 부담은 줄고, 간부들은 평소 업무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이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행자부가 공무원 조직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 일하는 방식을 혁신하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무엇을, 어떻게 추진하고 있나요?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공개 문서는 사무실 밖에서도 스마트 기기로 전자 결재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어요. 업무에 공무원 전용 모바일 메신저를 활용하는 한편, 보안성도 강화해갈 생각입니다. 출장을 나가서도 업무를 볼 수 있도록 스마트워크센터를 확충하고, 거리가 먼 정부 기관 근무자들이 직접 만나지 않고도 회의를 할 수 있도록 화상회의를 활성화할 계획입니다. 또 정부 업무를 줄이기 위해 복지 분야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부터 업무 절차를 간소화하고, 행정 정보 공유, 서식 간소화 등을 통해 업무량을 줄여나가겠습니다. 또한 직원들의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 유연 근무를 활성화할 생각입니다. 국장들이 회의와 보고서 더미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찾아낼 수 있도록 재량 근무를 실시할 것입니다.

 

 

올해가 지방자치 20년을 맞이하는 해라 지역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진 듯합니다. 지방자치발전위원회에서 지방자치 개혁과 관련한 설명회를 열고 있던데, 장관님은 지방자치 20년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우선 민주주의가 강화됐다는 것을 성과로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행정의 객체였던 주민이 지방선거와 주민 참여 제도 등을 통해 의사를 결집하고 실현시킬 수 있는 ‘주인’으로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주민감사청구(2000), 주민투표(2004)에 이어 주민소환(2007) 제도까지 도입되었습니다. 주민 의사를 반영한 행정 서비스와 정책 경쟁이 활성화되고, 공무원은 친절한 대민 봉사자로 바뀌는 변화도 일어났습니다. 원스톱 민원 처리, 고객 응대 공무원 태도 평가, 찾아가는 주민 고충 처리 등이 보편화된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또 향토 자원을 활용한 특색 있는 지역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지역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반영한 지역 발전 전략을 추진해 다양한 성공 사례를 창출하며 주민 소득 증대와 지역 브랜드 제고에 기여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산천어축제(화천), 나비축제(함평), 머드축제(보령) 등을 들 수 있어요. 2007년 태안 유류 유출사고, 2011년 구제역 대응 및 경기 부양에서 보듯 중앙과 지방 간 상생과 협력 관계도 형성되었습니다.

 

장관님의 삶의 신조나 좌우명, 취미 등이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끊임없이 탐구하는 삶을 사는 것, 순간순간 모든 일에 진지하자는 것입니다. 공직자로서는 ‘위국헌신 공인본분(爲國獻身 公人本分,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공인의 본분이다)’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어요.
제가 평소 즐기는 서예는 취미나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탐구 영역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붓[筆]· 먹[墨]· 종이[紙]· 벼루[硯]를 문방사우(文房四友)라 일컬으며 글 읽는 사람의 기본 소양으로 서예를 꼽았어요. 서예는 단순히 재능이 아니라 미학적, 문자적, 인문학적으로 방대한 탐구 영역입니다. 한학자인 부친의 영향으로 유년기부터 문방사우와 생활한 것이 40여 년이 되었습니다. 서예의 이론과 미학은 철저히 공부해야 하는데 이 공부는 끝이 없다는 것을 항상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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