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들의 여행, 새로운 길에 서다

기사 요약글

50대에 떠난 여행에서 새로운 길을 만났다. 두 번째 인생을 찾은 그들의 여행 이야기를 들어보자.

기사 내용

 

 

 

 

여행 읽어주는 인문학자

고전평론가 고미숙

 

 

“단순히 재미있는 것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것을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지금, 우리가 떠나야 하는 이유는 새로운 길에 서기 위해서입니다. 낯선 길 위에서 정신과 육체가 끝없이 유동하는 가운데 우정과 지혜를 얻고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녀가 여행을 다룬 동서양 고전들을 함께 읽는 ‘로드 클래식’ 이란 이름의 강의를 시작했다는 소식은 반가웠다. 그간 고미숙의 다양한 저서와 강연을 통해 고전이야말로 자기 삶을 사랑하는 기술임을 알게 된 사람들은 그녀가 들려주는 길 위의 인문학에 주목하고 있다. 왜 지금, 여행인가?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주하는 존재입니다. 집의 시대가 가고 길의 시대가 오고 있어요. 혈연이나 가족을 뛰어넘어 생명과 우정의 네트워크를 활성화해야 하는 시대지요. 길 위에서는 소유와 증식, 서열이나 위계 같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자신이 서 있는 낯선 시공간이 삶의 전부가 되고 완전히 새로운 일상과 관계들이 펼쳐지지요.” 

 

단순히 관광이나 휴양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던 여행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깊고도 명쾌한 대답이다. ‘진짜 길’을 찾을 수 있는 여행을 위해 고전이라는 시대의 별을 뽑아 들라고 조언한다. 

 

“길 자체가 주인공이자 주제인 고전들을 읽으세요. 박지원과 조르바, 돈키호테가 오대양 육대주를 넘나들며 마주친 삶과 이야기, 다시 길을 찾는 과정을 함께 읽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떠나면 언어와 욕망의 회로가 완전히 바뀐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이제 여행을 위해 천편일률적인 가이드북을 사는 대신 <열하일기>와 <그리스인 조르바>를 뽑아 들어야 할 때다.

 

 

 

 

도시와 원시 자연 사이에 서다

사진가 안웅철

 

 

“여행이 좋은 건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죠. 일생에서 유일한 순간이고, 나 혹은 우리만의 추억이 만들어지는 찰나잖아요. 그래서 요즘 폴라로이드 사진에 푹 빠져 있습니다. 구형 필름 카메라에서 만들어진, 나조차 알 수 없는 사진 한 컷을 크게 확대해보면 그 안에 나의 걸음과 시선, 감정까지 녹아 있는 걸 알게 되거든요.”

 

사진가 안웅철이 사진보다 음악을 더 사랑하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한 적이 있었다. 그의 집 안을 온통 채운 음악 CD, 대화의 끝을 어김없이 물들이던 음악 이야기, 무엇보다 몇 해 전 그는 사진과 함께 재즈 음악을 선곡한 컴필레이션 음반을 선보였고, 지난해부터 독일 유명 음반 회사 ECM의 앨범 사진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 그가 파리와 뉴욕이 아닌, 제주도를 오가며 사진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몹시 궁금해졌다.

 

“뉴욕을 좋아해요. 가까운 홍콩도 여행지로서 사랑하고요. 하지만 도시만 관찰했던 게 아니라 늘 극단적인 비주얼에 마음을 빼앗겼던 거예요. 몇 해 전 우연히 제주를 찾았다가 곶자왈의 초자연적 풍경에 반했고, 사진가로서 온전히 표현하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였어요.” 

 

새로운 파노라마 사진기까지 주문했다는 그는 모처럼 박학다식한 음악 리스너나 여행가가 아닌 본업에 충실한 사진작가의 표정이었다.

 

“디지털 프린트가 아주 보편화된 시대인데도, 저는 삶도 여행도 폴라로이드 사진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 한 번뿐인 순간이고, 어떻게 나올지 사진가 본인도 알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삶과 여행이 늘 흥미로운 것처럼 이번 작업도 심장을 뛰게 합니다.” 

 

자신의 뷰파인더에 담기는 제주 곶자왈이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며 그는 경계했다. 그로테스크한 식물군의 자태에서 음악이 들려오고 강력한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는 그의 작업은 현재 진행형이다.

 

 

 

 

진짜 여행을 찾아서

신발끈여행사 장영복 대표이사

 

 

“여행을 다닐수록 혼자서는 못 가는 곳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남극과 북극을 가거나 하루 200명만 허가해주는 페루 잉카트레일에 오르는 일은 현지에서 바로 해결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한두 달 길게 여행하는 외국인이라면 몰라도 짧은 기간 제대로 여행하고 싶은 우리에게‘진짜 여행지’로 안내해주는 여행사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입니다.”

 

배낭여행은커녕 해외로 나가는 일조차 쉽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국가시험인 자비 유학 시험을 치르고 70점 이상을 받아야만 여권이 발급되던 그 시절. 대학생이던 장영복 대표는 의기양양하게 호주 어학연수에 올랐고,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으로 인도네시아 배낭여행을 떠났다

 

.“여행 자체를 굉장히 꿈꿔왔다기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이 컸습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이곳과 전혀 다른 세상 속에서 더 많은 걸 보고 경험하고 싶은 욕망이죠.” 

 

소위 배낭여행 1세대라 불리는 그는 1991년 신발끈여행사를 차렸고, 킬리만자로부터 갈라파고스 군도, 산티아고, 아마존 그리고 남극과 북극까지 여행지로 개발했다. 직원 16명과 연 매출 30억 원 규모의 작은 회사지만, 매년 그는 여행업계를 움직이는 파워 인물로 선정되곤 한다.

 

“저희 여행사에는 태국 상품이 없습니다. 그 대신 파타고니아와 실크로드, 사하라 상품이 있죠.” 

 

그는 지구상에 오지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진짜 여행지’와 만날 수 있도록 도울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살가운 한국인 가이드에 너무 집착했던 것은 아닐까? 장 대표의 귀띔처럼 여행지를 가장 잘 꿰뚫고 있는 사람은 현지인 전문 가이드다. 장영복 대표처럼 믿을 수 있는 여행 친구와 함께라면 우리는 새로운 세상과 더 가까이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의미 있는 세상을 넓히는 법

여행 저널리스트 탁재형

 

 

“여행을 하면 자신에게 의미 있는 세상이 넓어집니다. 한 번이라도 다녀온 곳이라면 거기가 더 이상 남의 나라가 아니니까요. 밟았던 땅이며 아름다운 햇살, 나를 바라보던 아이들의 눈망울을 기억하고 있는데 가뭄이 들어 굶주린다는 뉴스를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요? 제3세계를 여행하고 온 사람이 자발적으로 기부를 시작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일 거예요.”

 

탁재형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오지 전문 다큐멘터리 PD’라는 설명이 붙는다. 지난 십수 년간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들만 단골로 다녔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는<도전! 지구탐험대>를 시작으로 무려 14년간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왔다. 자타가 공인하는 ‘여행의 달인’이 된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자연인’ 탁재형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오롯이 누리는 여행을 즐긴다

 

.“머무는 여행자라고 할까요? 맘에 드는 카페를 정해 하릴없이 앉아 있어요. 사나흘 지나면 눈인사를 주고받는 친구가 생기고, 정보를 교환하다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누고, 계획에 없던 길을 가게 되기도 하지요.”

 

진짜 여행의 맛을 아는 그에게 꼭 물어보고 싶었다. 탁재형이 꼽는 최고의 여행지는?

 

“라오스요. 최남단의 시판돈 같은 곳에는 화가 날 정도의 느긋함과 원시의 고요함이 그대로 살아 있지요.” 

 

작년, 마침내 프리랜서 선언을 한 그는 ‘여행 저널리스트’라고 적힌 새 명함을 만들고 다양한 분야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여행이 거창한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너무 멀리까지 계획하지도 마시고요. 그저 삶의 한 장면에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때 그 사이를 채워주는 게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어때요?”

 

삶의 빈 공간들을 좀 더 풍요롭게 메꾸고 싶다면 이제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늘어놓는 대신 떠나야 할 이유를 찾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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