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의 얼굴 박정숙 편

기사 요약글

제가 번 돈으로 새로운 곳에서 새 인생을 시작한다는 기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네요.

기사 내용

박정숙

 

도도한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 이미지인데 웃음소리가 화통하네요.
제 웃음소리가 그랬어요?(웃음) 보기보다 털털하다는 얘긴 정말 많이 들었어요. 유독 여자 후배들한테 인기도 많았고요.

그런 털털함이 이번 <당신의 전성기, 오늘> 방송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럼 더 바랄게 없죠. 앞으로 <당신의 전성기, 오늘>에서 우리 <헤이데이> 독자를 비롯해 다양한 중년분들을 만날텐데 방송에 ‘소행성(소중한 우리들의 행복한 성)’이란 코너처럼 우리 사회에 터부시되던 문제에 편하게 화두를 던지고 싶어요. ‘어떻게 방송에서 저런 고민을 털어놓을까?’ 싶을 만큼 솔직한 얘기가 오고 갔으면 하는 게 제 바람이에요. 청취자분들의 경험과 지혜가 만만치 않아서 서로 다양한 솔루션을 제시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들고요.

그동안 나왔던 시니어 관련 방송과 어떤 차별성이 있을까요?
시니어를 겨냥한 방송은 꽤 있었지만 방송 시간이 대개 새벽이었어요. 저희 방송은 오전 10시부터 11시 황금 타임에 편성되어 있는데 느긋하게 아침 시간을 즐기다 점심 외출을 준비하며 들으시라는 의도에서죠. 저희 콘셉트가 ‘잡지 읽어주는 라디오’인 만큼 그냥 듣고만 있어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유익한 정보가 귀에 쏙쏙 들리실 거예요(웃음). 또 모든 콘텐츠가 철저히 50+의 관점에 포커스를 맞춘다는 점도 특징이에요. 예컨대 뉴스가 단지 보육교사 아동 폭행에 관한 팩트를 다룬다면 저희는 ‘손주 육아’의 관점에서 문제점을 짚는 식이죠. 전문가를 모시고 ‘손주가 보육교사로부터 학대를 당했을 경우 이런 불안 증세를 보일 수 있으니 유의하세요’ 하면서 구체적인 팁까지 일러드리면 좀 더 실용성 있는 방송이 되지 않을까 해요.

시어머니가 13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도영심 씨죠. 유엔세계관광기구 스텝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기도 하고요. 고부 갈등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두 분의 관계는 어떠세요?
남편보다 시어머니를 먼저 알고 지내서 스승과 제자 같은 사이예요. 배울 점이 아주 많은 분인데 매사 계획에 따라 행동하시기 때문에 예측 가능성이 있어 좋아요. 계획이 휙휙 바뀌면 맞춰서 준비해야 하는 아랫사람들 입장에서는 참 곤란할 수 있거든요. ‘너희 집에서는 네가, 우리 집에서는 내가’ 하는 룰을 정해놓으셔서 시댁에 가서 일을 하는 경우도 별로 없어요. 그렇게 매사 합리적인 분이라 트러블이 없죠. 아이가 태어난 뒤로 주말은 거의 함께할 만큼 편하게 지내요.

남편이 6살 연하인데 반대는 없었나요?
결혼 당시 제 나이가 마흔두 살인 데다 연상이라 반대하실 법도 한데 오히려 철없이 어린 것보다 낫다고 흔쾌히 허락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노처녀들의 희망이 됐죠(웃음). 몇 년 전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제겐 시어머니가 곧 엄마예요. 무엇보다 제 일을 지지해주셔서 정말 힘이 돼요. 며칠 전에도 일본으로 2박 3일 세미나를 다녀왔는데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공인이라는 점에서 남편에게 도움이 될 만한 활동도 많이 할 수 있지 않나요?
정치인의 부인은 숨은 그림자 같은 게 좋다고 생각해요. 제가 대외적으로 활발히 활동한다고 해서 남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건 아니거든요. 그건 본인의 노력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니까요. 다만 제 직업이 MC이다 보니 남편의 스피치에 어떤 점이 좀 아쉬웠다라는 지적 정도만 하고 있어요.

남편 이재영 씨가 새누리당 강동(을)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어요. 정치인의 아내로 사는 건 어때요?
매사 조심스럽죠. 결혼식도 굉장히 급하게 치렀는데 그 이유가 남편 국회의원 선서하기 전에 식을 치러야 해서였어요. 시어머니 말씀이 신분이 달라지면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챙기려고 하는 분들이 많아진다는 거였죠. 예물이라고는 반지 하나에 교회에서 양쪽 하객 100명 정도를 모시고 조용히 치렀어요. 신혼여행도 2박 3일간 ‘여수 엑스포’ 구경 간 게 다예요(웃음). 또 하나 고충이 있다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점이에요. 남편이 새벽 5시 50분이면 집을 나서기 때문에 마즙을 갈아주려면 일찍 눈을 떠야 하거든요(웃음). 지역구에서 만난 분들이 ‘전통 시장을 가고 싶어도 주차장이 없어 힘들다’ ‘어디 사는 어떤 분이 딱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하는 식의 얘기들을 하실 때마다 귀담아 듣고 남편에게 얘기해주는 것도 제 몫이에요.

2살 된 아들이 있죠. 늦게 본 자식이라 애정이 남다를 것 같아요.
예뻐 죽죠. 먼저 결혼한 친구들이 ‘밥은 먹었니’ ‘춥지 않니’ 하면서 자꾸 절 챙기는 게 참 어색했는데 엄마가 되고 보니 그 심정을 알겠어요. 신기하게도 “엄마 나가서 촬영하고 올게, 잘 놀고 있어” 하면 꼭 알아들었다는 듯이 울음을 뚝 그쳐서 마음이 한결 편하죠. 왜 그런 말이 있잖아요. ‘아기들이 하느님한테 모든 걸 다 배우고 태어나는데 단지 말을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그리고 그런 능력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잊어버리는 거’라고.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애가 일하는 엄마의 자식이 될 자세가 돼 있는 것 같다고 할까요(웃음)?

박정숙 씨한테 정치를 할 기회가 있다면요?
저는 안 돼요(웃음). 방송인으로 오래 살다 보니 대중이 원하는 쪽으로 자꾸 기울게 돼 있거든요. 정치인이 경계해야 것 중의 하나가 포퓰리즘인데 치우치지 않고 제 의지를 지킬 만한 뚝심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방송 일 열심히 해야죠. 그 대신 남편의 활동에 대해서는 굉장히 우호적인 편이라 옆에서 끝까지 응원하려고요.

엑스포 이후<출발, 모닝와이드>,<아주 특별한 아침> 등 아침 프로그램 MC로 이름을 날렸죠. 2004년에는<대장금>에서 연기 경험을 쌓기도 했고요. CF까지 휩쓸며 소위 ‘전성기’를 누렸는데 왜 미국행 비행기를 탔나요?
그때는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을 만큼 바빴어요. 아침, 점심으로 프로그램 2~3개씩 녹화하고 밤에는 <대장금> 촬영을 하러 다녔으니 쉴 틈이 없었죠. 삼십대 초, 중반까진 그렇게 ‘백미터 달리기’ 하듯 살았는데 어느 순간 내 일천한 능력이 드디어 바닥이 났구나 싶더라고요. MC들은 말이 술술 나오는 때를 가장 경계해야 되거든요. 진정성 없이 그냥 기계적으로 말하는 상황일 수 있겠다 싶으니까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미국으로 떠났어요.

 

박정숙

 

그래서 컬럼비아 대학에서 국제관계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석사 학위를,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국제문화를 공부하게 됐군요. 뒤늦은 공부가 힘들지 않았나요?
힘들었죠. 나이 들어서 영어 시험을 치려니 그렇게 단어가 안 외워지더라고요. 매번 남이 써준 원고만 읽다가 학회에서 직접 발표할 원고를 쓰려니 막막해서 눈물이 다 났어요. 그래도 하버드, 컬럼비아에서 내 발표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그렇게 벅차고 감동적이더라고요. 남들은 한창 방송할 때를 전성기라고 했지만 제가 꼽는 전성기는 그때가 아니었나 싶어요. 제가 번 돈으로 새로운 곳에서 새 인생을 시작한다는 기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네요.

‘늦깎이 학생’이 돼봤으니 공부하는 50+에게도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50+는 이미 삶에서 축적된 지혜와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논리력을 요하는 공부에는 확실히 유리한 면이 있을 거예요. 더군다나 중고등학생처럼 공부의 성과를 측정 당할 필요가 없으니 다양한 공부를 시도해볼 수 있죠. 특히 자신감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변해가는 세상의 흐름을 업데이트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공부는 꼭 필요한 것 같아요.

박정숙 씨가 생각하는‘웰에이징’은 어떤 개념인가요?
뉴욕과 도쿄에 살면서 정말 멋진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많이 봤어요. 그분들은 하나같이 오래되고 길이 잘 든 옷들을 입고 있었죠. 값비싼 명품이 아니라도 세월에서 비롯된 우아함이 있어요. 가끔 그런 분들의 초대를 받아 집에 가보면 평생 애정을 가지고 닦고 보살핀 집 안 살림이 가득했어요. 손때 묻은 촛대, 반들반들하게 닦은 서랍 같은 것들이 그 사람의 생애를 품위 있게 대변해주고 있었죠. 웰이징, ‘잘 나이 든다는 것’은 결국 그런 것 같아요. 인위적인 치장이나 꾸밈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드러내는 자신감. 뭐 그런 거죠.

내 나이를 실감할 때’ 반대로‘그래도 아직 젊구나’를 실감할 때는 언제인가요?
어떤 말이나 행동을 취하기 전 생각이 많아질 때, 나이 들었음을 실감해요. 반대로 라디오를 하러 상암동에 갈 때 반드시 지하철을 타야지 결심할 땐 그래도 아직 젊구나를 느끼고요. 왕복 2시간 정도 걸리는데 영어, 일본어 공부를 하기에 딱 적당할 것 같아요.

‘전성기’에 대한 정의를 내려본다면요?
사람에 따라 다른 것. 시기를 특정할 수 없는 것. 그때가 전성기 아닐까요. 분명한 건 뒤늦게 전성기를 맞을수록 좋다는 것이에요. 이미 지나간 전성기를 추억하는 것보단 앞으로 다가올 전성기를 기다리는 편이 더 나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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