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의 료칸 시리즈 5탄

기사 요약글

400년 넘은 숙박부가 반겨주는 니가타의 료칸 방문기

기사 내용

눈의 나라, 니가타

눈의 나라, 니가타

탁 트인 설경을 바라보며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노천탕에 몸을 담그는 일, 겨울 온천의 참맛이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니가타의 에치고유자와 온천은 겨울 온천의 꽃이라 부를 만합니다. 니가타는 일본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고 눈 축제가 가장 일찍 시작되는 곳입니다. 또한 온천의 수가 43개로 일본 현들 중 3번째로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에치고유자와 온천은 특별합니다. 바로 이곳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雪國)>이 태어났으니까요. 1930년대 중반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여기서 자신의 대표작을 썼고, 1968년에 이 소설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에치고유자와 온천의 다카한 료칸(高半旅館)에는 지금도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머물며<설국>을 썼던‘안개의 방(가스미노마, かすみの間)’이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설국>의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나라였다.’ 가와바타 선생이 집필했다는 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니 정말 온통 눈 세상이었습니다. 안개의 방 입구에는 당시의 흑백사진들이 걸려 있고, 그 옆으로는 400년 넘은 숙박부가 료칸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눈으로 빚은 맛, 고시노 간바이

눈으로 빚은 맛, 고시노 간바이

온천 마을은 사람 키 두 배쯤 되어 보이는 눈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도로에는 눈이 하나도 없이 깨끗하다는 사실입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따뜻한 온천수를 호스에 연결해 도로에 뿌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합니다. 덕분에 눈은 쌓이기도 전에 녹아버리고, 도로는 깨끗하게 유지될 수 있는 거죠. 과연 온천의 고장다운 제설 방법입니다. 수정처럼 맑은 눈 녹은 물은 맛있는 사케[酒]가 되었습니다. 니가타 현에 있는 양조장은 모두 95개로 일본의 현들 중 가장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케 출하량은 일본 1위가 아니라고 하네요. 이는 이곳 양조장들의 고급화 전략에 따른 것입니다. 그 대신 고급 사케의 대명사인 긴조슈(吟釀酒)의 출하량은 일본 1위이고, 인터넷 랭킹 사이트가 조사한 ‘꼭 한 번 마셔보고 싶은 사케 랭킹’에서 상위 1~3위를 니가타의 사케가 독점했답니다. 그중 1위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사케인 ‘고시노 간바이(越乃寒梅)’ 입니다. 고시(越)는 니가타의 옛 이름이니, 고시노 간바이는 ‘니가타의 겨울 매화’쯤 되겠군요. 그래서일까요? 고시노 간바이의 첫맛은 겨울 바람처럼 쨍한데, 뒷맛은 매화 향기처럼 부드러웠습니다.

 

그 시절 게이샤의 추억

술이 좋으니 일찍부터 술집이 많았고, 그곳을 무대로 살아가는 게이샤들 또한 많았습니다. 거기다 니가타는 에도시대부터 물류 거점으로 이름난 항구도시였습니다. 일거리와 돈을 좇는 사내들이 몰려들었고, 이를 상대로 하는 게이샤들 또한 번성했지요. 덕분에 니가타의 후루마치는 교토의 기온, 도쿄의 신바시와 함께 일본 3대 게이샤 고장 중 하나였답니다. 온천 마을에서 1시간쯤 걸리는 북방문화박물관(北方化博物館)에서 운 좋게 게이샤의 공연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북방문화박물관은 에도시대에 지어진, 이 지역 대지주의 전통 가옥을 박물관으로 꾸민 곳입니다. 미로 같은 일본식 복도 곳곳에 자리 잡은 방만 줄잡아 100여 개인 거대한 저택의 마루는 작은 공연장을 겸하고 있었습니다. 목까지 희게 분칠한 어린 게이샤 둘이 춤을 추고, 나이 지긋한 게이샤 둘이 샤미센을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지극히 형식적인 동작과 표정이 오히려 묘한 매력을 주더군요. 요즘의 게이샤들은 프로모션 회사 소속으로 활동하는 연예인 같은 존재라고 합니다. 정원이 내다보이는 공연장 겸 마루 한 켠에는 옛날 결혼식 피로연 메뉴를 표구해 걸어놨습니다. 거기에는 백 개가 훨씬 넘는 요리 목록이 적혀 있어서 ‘설마 이 모든 음식을 단 한 번의 피로연에서 다 먹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이 집안 후손인 부관장의 설명으로 의문은 쉽게 풀렸습니다. 결혼식 피로연을 3일 동안 했다고 합니다. 저 많은 음식을 3일 동안 모두 먹는다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
 

‘극한의 맛’ 기와미 초밥

눈의 나라 니가타에서 사케와 게이샤만 유명한 것이 아닙니다. 눈 녹은 맑은 물로 자란 쌀이 유명하고, 그 쌀로 만든 초밥이 맛있습니다. 니가타에서는 제철 생선으로 만든 초밥을 ‘기와미(極み)’라고 부릅니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극한의 맛’이란 뜻이죠. 거기다 보통 1인분에 6~8개 정도 나오는 일본 다른 지역의 초밥과는 달리 기와미는 초밥 10개에 계란말이가 서비스로 나옵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세 가지 간장이 나오는데, 새우가 그려진 종지의 간장에는 새우를, 오징어가 그려진 종지의 간장에는 오징어를 찍어 먹습니다. 다른 초밥은 아무것도 안 그려진 종지에 담긴 간장에 찍어 먹으면 된답니다. 간장 또한 새우와 오징어를 이용해 만들었다니 일본인들의 꼼꼼함은 늘 놀랍기만 합니다. 니가타 특산 생선 중 하나인 노도구로(のどぐろ, 눈뽈대)는 불에 살짝 구워 소금 간을 해서 먹는데 혀에 감기는 기름기가 향긋하더군요.

‘극한의 맛’ 기와미 초밥

보통 초밥은‘담백한 것부터 기름진 순서로’ 먹어야 한다고 하는데, 사실 이건 근거 없는 말이라고 합니다. 초밥은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순서대로 먹으면 된다고 하네요. 취향에 따라서는 (그러니까 맛있는 것을 아껴 먹는 사람이라면) 역순으로 먹어도 좋습니다. 다만 노도구로처럼 소금을 뿌려 나오는 것이 있다면 소금이 녹기 전에 먼저 먹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설국의 온천에서 눈 녹은 맑은 물로 빚은 고시노 간바이 한 잔에 극한의 맛을 낸다는 초밥 한 점을 먹으니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가끔은 번잡한 세상사를 버려두고 이런 여유를 즐기는 것, 인생의 각별한 맛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니가타에서 먹어봐야 할것, 센베이 센베이는 쌀로 만든 과자를 총칭한다. 니가타는 쌀과자 또한 유명한데, 일본 쌀과자 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단다., 고시노 간바이 일본인을 대상으로 조사한‘꼭 한 번 마셔보고 싶은 사케 랭킹’에서 1등을 차지한 니가타의 사케., 기와미 제철 생선으로 만든 초밥.‘극한의 맛’이라는 뜻처럼 최고의 밥과 신선한 해산물이 어우러졌다., 고시히카리 일본에서 가장 인기 좋은 벼 품종 고시는 니가타의 옛 이름, 히카리(光)는 빛을 뜻한다., 가는 방법<한국–니가타 현> 대한항공에서는 매일 1회 인천에서 니가타 현까지 직항을 운항한다. 인천 출발 시간은 오후 6시 45분, 니가타 출발 시간은 오전 9시 3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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