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를 위한 공동주택, 구름정원

기사 요약글

은퇴자를 위한 공동주택이 있다.

기사 내용

우리나라 최초의 주택협동조합

서울 은평구 불광동, 북한산으로 올라가는 독박골 자락에 신축 건물이 한 채 들어섰다. 총 8가구가 사는 건물은 친척도 친구도 동네 사람도 아닌, 뜻이 맞는 여덟 가구가 모여 지었다고 한다. ‘은퇴 후에 살 주택’이라는 공동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이다. 건물 출입구에 걸린 현판에는 ‘구름정원 사람들 주택은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 이사장 기노채와 건축가 윤승현의 노력으로 지어졌다’고 적혀 있다. 구름정원은 북한산 둘레길 8코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고, 건축가는 집의 필수 요소이니 당연히 기록될만한데,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이라는 말은 무엇인가 싶다.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이후 국내에 다양한 종류의 협동조합이 생겼다.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도 그런 협동조합의 하나로 구름정원 401호에 거주하는 하기홍 씨와 공정건설의 기노채 이사장이 2013년 6월에 창립했다.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 기노채 대표는 이윤의 극대화가 아닌 주거자의 욕구를 반영한 주택을 조합원에게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하기홍 이사는 평소 공동체가 복원되고 이웃과 단절되지 않는 삶을 꿈꿔왔다. 그러면서 혈연에서 확장된 사회적 가족이라는 개념을 생각했고,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을 설립해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구름정원을 지었다.
“시니어 주택으로서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것을 생각했어요.
화학 자재도 최소한으로 쓰고, 단열에 신경 쓴 에너지 절약형 주택을 지었어요. 텃밭에서 유기 농산물도 생산하고, 노후 소일거리를 위해 1층에 상가도 마련했습니다.”
고등학교 수학 교사인 402호 전봉수 씨는 신문에 난 협동조합 공고를 보고 구름정원 사람이 되었다.
“아이가 대학에 진학한 뒤 어디에 정착할까 하던 참에 공고를 보았습니다. 집은 한 번 사면 팔기도 어렵고 아내도 반대를 하고, 살던 동네도 아니고, 협동조합을 만들어 집을 짓는 것이 실험적인 일이기도 해서 처음엔 망설임도 있었어요.”
실제로 8명의 구름정원 멤버가 확정되기까지 중간에 빠진 사람도 있고, 새로 오기도 하고 변동이 꽤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처음 멤버가 절반에 이른다.

 

 

집집마다 다르다

실버 주택이라는 목적은 같았지만 살던 동네도 가족 구성원도 원하는 집의 구조도 모두 달랐다. 사실 친한 친구나 가족이 모여 집을 지어도 불협화음이 나게 마련 아닌가. 그런데 지난가을에 입주를 시작해 겨우 몇 개월 남짓 산 주민들은 서로 무척 친밀했다. 워크숍을 다녀온 추억이며 엊그제 해남에서 굴이 올라와 모였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오랜 사이 같다. “1년여를 1주일에 1~2번씩 만났어요. 집을 짓고 공동주택 주민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공부했습니다. 건축에 관한 것, 협동조합이 무엇인가, MBTI, 애니어그램, 동그라미 대화법 등을 함께 배웠죠.” 전반부가 설계사와 집에 대해 의견을 나눌 때 필요한 건물을 위한 공부라면 후반부는 모르는 이들이 모여 사는 데 필요한 지식과 지혜다. 서로의 성향을 알고 나니 이해의 폭이 넓어졌고, 특히 대화법은 반대하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서로 소통하는 데 무척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과정은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에서 마련해준 것. 생각은 비슷해도 각자 주장은 무척 달랐는데 위의 과정을 통해 합리적 이유를 찾고 풀어나가며 안착할 수 있었다.

 

 

 

8가구가 사는 이야기

대지 150평에 4층 건물. 8가구가 면적을 나눠 1가구당 19평의 대지, 건평 25평을 최대치로 집을 지었다. “7가구라면 30평 정도를 가질 수 있지만 그러면 가격이 3억이 넘어가요. 8가구면 25평 정도, 2억대 중반의 비용이 나오더라고요. 협동조합으로 짓는 것이니 너무 크지 않은 국민주택 규모가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지요.” 8가구 중 복층이 3채, 단층이 5채다. 호수는 복층과 단층 선호자를 나눠 제비뽑기로 결정했다. 살림을 좋아하는 안주인은 주방에 정성을 기울였고, 작가는 소나무가 내다보이는 작업실을, 강아지가 있는 집은 덧문을 달아 소란스러움을 잠재웠다. 아이 셋을 키우는 목사님 댁은 한 켠에 기도하는 공간을 마련했다. 사다리로 올라가는 다락이 있는 집, 한 뼘짜리 발코니를 가진 집 등 집의 크기는 엇비슷하지만 집집마다 생김이 다르다. 공급자 중심의 주택 시장을 수요자 중심으로 가져가기 위한 시도, 같은 모양을 주거자의 성향과 삶의 환경을 반영한 주택으로 설계했다는 인터커드 윤승현 건축가의 설명 그대로다. 구름정원은 외관부터 환경과의 어울림에 주안점을 두었다. 북한산의 바위가 굴러 와 덩그러니 놓인 듯한 ‘돌멩이’를 콘셉트로, 건물을 위에서 보면 5각형이다. 5각형 중심에 계단과 작은 텃밭, 테라스, 공동 세탁실 4층에는 마을회관 역할을 하는 커뮤니티 공간이 있다. 기타를 치든 책을 읽든 구름정원 사람들에게 언제나 열려 있다. 공동 세탁실은 이불처럼 큰 빨래를 세탁할 때 사용하려고 마련했다. 공유 공간을 묶어 공간 효율을 높인 것. 여러 집을 구경하느라 계단을 오르내려보니 여느 빌라의 침침한 복도나 계단과는 달리 환하고 편안한 느낌이 든다. 의도적으로 계단은 넓게 설계했고, 4층은 양쪽을 터서 테라스와 텃밭을, 3층은 앞쪽을, 2층은 뒤쪽을 오픈해 중심까지 빛이 들어오도록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층 공유 공간은 천장에서 빛이 들어와 아늑한 느낌을 더한다. 산 아래에 위치한 집인데도 기자가 사는 아파트보다 더 따뜻했던 것도 애초에 환경을 생각하고 에너지 절약을 위해 단열에 집중한 패시브하우스로 지었기 때문이다.
“집짓기 전보다 얼굴을 더 못 봐요. 은퇴자가 아직은 한 분이고, 아직 입주를 못한 가구도 있기 때문이죠.” 요즘 소원하다면서도 202호와 402호는 ‘우쿨렐레를 배우네’ ‘독서 토론회를 하네’ 하며 즐거운 계획을 주고받는다. 듣다 보니 이렇게 친하면 자칫 사생활이 방해받지 않을까 우려도 된다. “그래서 ‘문 두드리기 없기’를 정했어요. 밴드에 올리고 안 오면 그만인 거죠. 제안은 하되 강제는 하지 않죠. 1년 동안 공동주택 공부를 하며 친해졌고, 집도 완성되었지만 아직 구름정원은 완성되지 않았어요.
집은 그저 건축물이고 소프트웨어는 사람이니까요.” 구름정원 공동주택을 지원했던 하우징쿱의 기노채 대표가 ‘집을 지으며 이웃으로 살아갈 사람들끼리 친밀한 교류가 있어야 입주 후 주거 만족도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는데 구름정원은 이 협동조합의 첫 집이자 주거 만족도도 높은 공동주택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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