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거리’를 찾아 성실하게 준비한 작가의 길

기사 요약글

위트 있는 말솜씨와 친근한 맞장구로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던 방송인 이상벽은 자신의 대표작이라 불리던 프로그램에서 스스로 물러나며 본격적인 인생 2막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다시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상벽은 지금의 인생 2막이 방송인으로 맞았던 전성기만큼이나 왕성하다고 말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좋아하는 일을 끊임없이 찾아 성실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 내용

 

 

 

최고 전성기를 만들어준 프로그램 <아침마당>을 11년 동안 진행해 오다가 그만둔 것이 2003년입니다. 당시 갑작스럽고 너무 빠른 은퇴가 아닌가 의아해하는 이들이 많았어요.

 

 

시청자들이 그렇게 아쉬워해 주신 건 참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아침마당>을 안정적으로 진행하고 있었지만 언젠가는 ‘잘릴 때’가 올 것이고, 그때 무엇을 할 것인지 늘 생각해 왔거든요.

 

저는 방송사와 시청자의 선택을 받는 입장이니까요. 그래서 ‘그때’가 오기 전에 스스로 물러나자고 생각했고, 딸(이지연 전 KBS 아나운서)이 방송국에 입사하면서 실행에 옮긴 겁니다.

 

 

스스로 물러나기 위한 나름의 준비를 어떻게 하고 있었나요?

 

 

‘거리’를 끊임없이 찾는 거지요. 흔히 일거리, 먹거리, 놀거리 할 때 그 ‘거리’ 말입니다.

 

제 나이 일흔이 훌쩍 넘은 지금도 여전히 앞으로의 삶을 치열하게 고민해요. ‘전공을 살려 그림을 그릴 것인가? 기자 시절 기사를 썼던 경험을 살려 글을 쓸 것인가? 아니면 좋아하는 사진 찍는 일을 계속할 것인가?’ 이런 고민이지요.

 

내게 여전히 이런 ‘거리’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그 ‘거리’들은 제각각이지만 모두 다 제가 인생의 시기마다 무척 좋아한 일이고, 그래서 잘하기 위해 노력했던 일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게 지금까지 제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주었고요.

 

 

오랜 시간 상징과도 같았던 자리를 잘 떠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군요.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이상벽의 ‘거리’를 꼽는다면 사진일까요?

 

 

맞아요. <아침마당>을 그만두면서 곧바로 잡은 것이 카메라예요. 모든 활동을 접고 3년 동안 매일 사진만 찍었습니다. 국내에서 몇 차례 전시회를 가졌고, 이후 공공연하게 해외 진출이 목표라는 얘기를 했는데, 미국에서도 사진전을 열면서 꿈을 이뤘지요.

 

 

주로 무엇을 찍었나요?

 

 

제 사진의 테마는 한결같이 나무입니다. 나무에 대한 저 나름의 철학과 애착이 있어요. 나무는 선 자리에서 일생을 마치는데, 수백 년 된 나이테를 보면 우리 삶이 하잘것없다는 것이 느껴지지요.

 

나무는 살아서 서 있을 땐 동물의 그늘이 되어주고, 새들을 위해 잠자리를 내주고, 꽃을 피워서 향을 건넵니다. 죽어서는 가구나 이쑤시개 재료로 쓰이고요. 살아서도 죽어서도 버릴 게 없는 삶이에요. 아낌없이 주는 삶에 감동해 나무를 닮고 싶었습니다.

 

제 사진전 도록 첫 페이지에도 감나무를 넣었는데, 아버지가 늘 감나무가 많은 곳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감나무는 동해를 잘 입어서 양지바른 곳이 아니면 못 삽니다. 양지바른 곳에 터를 잡은 마을은 온화한 기운이 감돌아 대체로 사람들도 온화하고 인심이 좋다는 겁니다. 배고픈 시절에도 감을 딸 때 맨 꼭대기에 달린 한두 개는 까치 먹이로 남겨두잖아요.

 

그래서인지 우거진 감나무를 보면 고향 외할아버지를 만난 기분이에요. 듬직하고 반갑습니다.

 

 

좋아하던 ‘거리’를 통해 사진작가라는 새로운 타이틀까지 얻은 비결을 꼽는다면요?

 

 

제 인생의 모토가 성실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성공의 조건이라는 학연, 지연, 혈연이 없거든요. 그러면 열심히 하는 것밖에 없지요. 자녀들을 키울 때도 그 점을 강조했어요. 아이들에게 우등상보다 개근상이 더 중요하다고 늘 얘기했습니다. 덕분에 자식들 모두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12년을 개근했는데, 자식들에게 정말 고맙고 자랑스러운 부분이에요.

 

그게 습관이 되어 지금까지 저희 가족은 어떤 자리에도 지각하는 법이 없어요. 예전에 딸과 함께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저희 부녀는 늘 두 시간 전에 도착했어요. 베테랑들인데 그렇게 일찍 와서 할 게 뭐가 있냐고 반문하겠지만, 대본을 보고 촬영 현장을 둘러보며 감을 익힙니다. 현장에서 저를 최상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죠.

 

그런 훈련이 사진을 찍을 때도 큰 도움이 되었어요. 하늘, 빛, 날씨, 계절 등 환경적 요건이 최상인 상태를 프레임에 담기 위해 새벽에도, 해질 녘에도 계속 갑니다. 나무 한 그루를 찍기 위해 1년 동안 찾아간 적도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어느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성실하게 꾸준히 하지 않으면 결국 평범한 사람과 다르지 않더라고요.

 

 

결국 좋아하는 일이 취미로 머물지, 직업으로 확장할 수 있을지를 가르는 것이 성실함이군요.

 

 

가수 나훈아가 절친입니다. 저를 보면 “요새 운동하냐”고 묻곤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처럼 무대에 서고,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직업은 몸을 철저하게 가꿔야 한다”고 말하지요. 나훈아 같은 대가도 매일 연습합니다. 삶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인생 후반기인데, 자신에게 좀 관대하고 여유 있게 살아도 될 시기 아닌가요?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 구실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그런데 속된 말로 일흔이 넘은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기한은 얼마 남지 않았어요. 당연히 제 나이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금쪽같을 수밖에 없지요.

 

얼마 남지 않았기에 항상 무언가를 하려 하고 열심히 살려고 합니다. 또 몸을 많이 활용하니까 건강하고요. 그렇게 살면 병이 올 틈이 없습니다.

 

 

방송보다 사진작가에 더 비중을 두면서 서울을 떠나 새로운 삶의 거처를 마련했지요?

 

 

충남 홍성군 백월산 중턱에 세컨드 하우스를 마련해서 일주일에 반 정도를 이곳에서 보냅니다. 호수를 바라보고 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에요.

 

단지 쉼을 위한 공간으로 마련한 건 아닙니다. 이곳에서 기왓장에 그림을 그리고, 석탑을 만들고, 소나무와 감나무 등 조경도 손수 다 합니다. 여기에 있는 동안에는 몸도 머리도 쉴 틈 없이 움직여요. 창을 새로 내면 좋겠다, 방과 방을 이렇게 연결하면 어떨까 하고 나름대로 설계하는 것이지요.

 

조경도 큰 나무 옆에 작은 나무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고민하며 새로운 풍경을 발견해 내려고 노력합니다. 창조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과정이죠. 다만 뭐든 과하지 않게 합니다. 집을 가꾸든, 텃밭을 일구든 내가 지닌 에너지에 맞게 규모를 정합니다.

 

 

쉬는 시간은 어떻게 보내나요?

 

 

창밖으로 펼쳐진 소나무를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곤 합니다. 일종의 명상이지요. 그러다 졸리면 10~20분 정도자고요.

 

절에도 다닙니다. 제겐 삶의 정비소를 찾는 시간이라고 할까요? 나를 잠깐 그곳에 세워두고 ‘여기까지 잘 왔나?’ ‘너무 속력을 내지 않았나?’ ‘내 차에 타고 있던 가족들이 불안해하지 않았나?’ ‘내가 추월해서 남들을 놀라게 하지 않았나?’ 가만히 생각합니다. 그리고 염주를 돌리듯 나와 관계된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돌아봅니다.

 

 

이러한 인생 2막의 경험을 토대로 요즘 중년들과 소통하는 기회도 많아졌다고요. 주로 어떤 메시지를 전하나요?

 

 

적절한 타이밍에 은퇴해서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했고, 크고 작은 성공을 경험한 덕분에 인생 2막을 잘 사는 인물로 봐주시더라고요. 또 오랫동안 방송인으로 살았으니 어디가서 어떤 사람들과도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강연 자리에 종종 불려다닙니다.

 

주로 한글 ‘ㄲ’으로 이뤄진 글자 여섯 개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끼, 깡, 끈, 꾀, 꼴, 꿈이 그것이지요. 그중 ‘꿈’은 나이를 불문하고 가져야 하는 행복한 삶의 중요한 요소고요.

 

 

이상벽의 70대는 꿈꾸던 모습과 비슷한가요?

 

 

제가 어렸을 때 60~70대 어른을 보면 ‘저분들은 무슨 낙으로 살까?’ 항상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백수(白壽)를 맞이하신 노교수님의 말씀이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니 70대가 전성기였다. 70 즈음 되니까 제자들이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을 발휘하고 주변에서도 어른 대접을 하더라”였습니다.

 

100세를 눈앞에 둔 사람으로서 70대가 가장 전성기였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용기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하루하루를 아주 금쪽같이 쓰려고 노력하지요. 지금 주어진 시간을 아끼고 최선을 다해서 좋아하는 일들을 하고 있으니 꿈꾸던 삶이고, 또 행복한 인생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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