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와 나눔, 때는 있지만 한계는 없다

기사 요약글

청계천에서 시작한 작은 모자 상점을 세계 모자 제조 1위 기업으로 성장 시킨 ‘영안모자’ 백성학 명예회장은 나눔과 기부 활동도 국내를 넘어 전 세계를 무대로 성실하고 뜨겁게 펼치고 있다. 나눔의 기회 앞에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그가 여생을 바쳐 이루고자 하는 나눔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기사 내용

 

 

 

올해 참혹한 전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구호품을 직접 전달했다고요.

 

 

신문 1면에서 우크라이나 난민이 어린 딸의 등에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둔 사진을 보았습니다. 그건 바로 72년 전 우리가 겪었던 일아닙니까? 6 ·25전쟁을 직접 겪은 사람으로서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 전쟁 통에 가장 필요한 분유, 이유식, 고기, 약품 등을 직접 전달해 줄 사람을 찾았죠. 마침내 우크라이나 올림픽위원장과 연락이 닿아 5만 여개의 구호품 배급을 1차로 마쳤습니다. 독일의 계열사와 전 세계 클라크 법인(영안 계열사 중 세계 최초로 지게차를 발명한 클라크의 12개 법인이 있다)들이 공동 지원에 나섰지요.

 

 

구호품 지원뿐 아니라 편지도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물품 지원보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세계 주요 지도자들에게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여자와 어린아이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탈출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편지를 발송하고 있어요. 6·25전쟁을 직접 겪은 제 이야기도 담아서 말이죠. 편지가 직접 전달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도자 한 명의 마음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헛된 시도는 아닐 겁니다.

 

 

편지에 담긴, 회장님이 겪으신 6 ·25전쟁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6·25전쟁 때 고아가 되었습니다. 원산 갈마항에 갔다가 피란민들 사이에 휩쓸려 얼떨결에 피란선을 타면서 가족과 생이별을 했죠. 그때 고작 만 열 살이었습니다. 남한에 혼자 떨어진 후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며 별별 일을 다 했습니다.

 

그러던 중 데이비드 비티라는 미군 병사가 저를 미군 부대로 데리고 와 하우스보이로 일할 수 있게 해주었어요. 제게 영어를 가르쳐주고 자기 야전침대 옆에서 잠을 재워주었죠. 크리스마스에는 미국의 가족들이 보내준 선물을 제게 주었고요. 제가 포탄 폭발로 전신에 화상을 입었을 때도 비티 덕분에 야전병원에 19개월간 입원해 치료를 받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비티가 미국으로 돌아가고 난 뒤에도 한시도 그를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참혹한 전쟁터에서 소중한 인연을 맺었군요.

 

 

미국 출장 때마다 수소문한 끝에 1989년 필라델피아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비티를 극적으로 만났습니다. 저는 은혜를 갚고자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려고 했지만 그는 한사코 거절했어요. “너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선물이니, 나 말고 네 이웃을 도와주어라”고 말하더군요. 2010년 췌장암으로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우리는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나눴습니다.

 

 

이런 경험이 마중물이 되어 평생 나눔을 실천하게 되었나 봅니다.

 

 

생명의 은인인 비티가 제 나눔의 삶에 밑거름이 되었죠. 또한 제 삶의 뿌리에도 나눔의 DNA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조부인 백운휘 선생은 3·1운동 당시 신의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된 후 형무소를 폭파하고 만주로 이주하여 그 곳에서 독립운동을 계속 이어갔던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정의를 위해 끝까지 싸우는 저의 기질은 조상에게 물려받은 DNA에서 온 듯합니다.

 

 

 

 

회장님의 나눔에는 어떠한 원칙이 있습니까?

 

 

큰 금액을 요란하게 기부하는 게 아니라, 어려운 사람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도록 기부하는 것이 제 철칙입니다. 또한 무엇보다 누군가를 돕는 일은 때를 놓쳐선 안 됩니다. 사람이 돈을 버는 건 계획에 따라 차근차근 노력하면 되지만, 돈을 쓰는 건 달라요. 기부할 수 있는 찬스는 놓치면 끝입니다.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도 전쟁이 다 끝나고 그들이 잘살게 된 다음에는 나눔이 필요 없습니다. 전쟁 중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게 있기 때문에 기부할 기회가 생긴 것이죠. 기부할 찬스를 놓치지 마세요. 망설이다가 기회를 놓치면 그 타이밍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영안모자를 설립해 세계 1위 모자 기업으로 키우셨지요. 지게차, 버스, 학교, 목장, 방송국까지 수많은 사업을 성공시킨 비결은 무엇입니까?

 

 

소년 시절 모자 공장에서 3년간 하루 18시간씩 일을 했습니다. 열아홉 살이 되던 1959년, 청계천에 노점 형태의 모자가게를 차려 국내 최초로 파나마모자(중절모)를 만들었어요. 이후 일본, 미국으로 수출하고 코스타리카, 스리랑카, 방글라데시에 공장을 설립하면서 세계적인 모자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전 세계에 연 1억 개를 판매해 세계 모자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죠.

 

세계 최초로 지게차를 생산한 미국 기업 클라크를 인수해 다 쓰러져가던 100년 기업을 회생시켰고, 자일자동차와 자일대우버스, 목장 사업, 숭의재단 학원 사업, OBS 경인TV 등 다양한 사업분야에 진출했습니다. 모자와 전혀 상관없는 분야라 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세밀한 작은 모자 하나를 잘 만들 수 있으면 다른 사업도 잘할 수 있는 겁니다. 사업을 관통하는 원리는 같으니까요.

 

 

회장님의 나눔 사업 중 대표적 결과물인 백학마을은 어떤 곳인가요?

 

 

백학마을은 1985년 강원도 홍천에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홍천은 6·25전쟁 당시 한국군 포부대와 미군들을 만나서 제가 가까스로 생명을 구한 곳입니다. 37년 전 홍천은 매우 열악했어요. 척박한 마을에 양로원, 병원, 교회 등을 지어 노인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국가 지원 없이 민간자금으로 운영하는 시설인데, 1990년대 부터는 영안의 해외 지사가 본격적으로 세워지면서 해당 지역에 백학마을을 함께 지어 마을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스리랑카·코스타리카·베트남·에티오피아·온두라스 등 세계 일곱 곳에 있는데, 그 지역의 상황과 필요에 따라서 전쟁고아를 돕거나 노인, 장애인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현지 가톨릭 단체나 국가에 필요한 시설을 기증해 직접 운영하게 하고, 우리가 비용을 지원하는 식이지요. 그들이 실질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입니다.

 

 

 

 

나눔도 사업만큼 열정적으로 하시는 것 같습니다. 현역에서 은퇴한 지금도 여전히 바쁘다고 들었습니다.

 

 

창립 63주년을 맞은 올해 5월 5일, 명예회장으로 한 발 물러나 봉사 위주로 활동하고 있는데, 최근 제주도 대형 역사 박물관 프로젝트를 준비하느라 어느 때보다 바쁩니다.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영안역사기록관을 비롯해 단성사영화역사관, 보석역사관, 방송역사관, 지게차100주년역사관, 숭의역사관 등 자체적으로 역사관 사업을 진행해 왔어요. 이번에는 제주도에 100만m2(약 30만평)에 이르는 보유 부지에 대형 역사 박물관 건립을 추진 중입니다. 2028년경 1차 완공할 예정인데, 제가 시작해서 3세대에 걸쳐 완성할 초대형 장기 프로젝트입니다.

 

 

제주 역사 박물관에는 어떤 내용이 담기나요?

 

 

제가 종합역사박물관을 만들려고 하는 이유는 지난 200년간 인간이 야기한 환경문제를 교육하고 이로 인한 재앙을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현재 지구에는 핵전쟁보다 무서운 환경 재앙이 닥치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는 이미 심각하게 진행중이죠. 2050년에 지구 평균기온이 1.5℃ 올라갈 것이라고 과학자들이 예측했는데, 2022년 현재 이미 1.1℃ 이상 상승했어요. 저는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과 같은 종합 박물관 단지를 만들 계획입니다. 우주의 탄생부터 인간의 진화, 전기 방송 통신과 자동차, 종교 등에 대해 한 곳에서 알아볼 수 있는 종합 역사 박물관을 건립하고 이후 미국, 호주, 유럽 등 세계 곳곳에도 이러한 박물관이 생겨나 지구의 환경문제를 교육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제 여생의 마지막 사업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생을 건 전 지구적 프로젝트군요.

 

 

누군가는 나를 미친 사람이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 잘 살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 할지도 모르고요. 북극의 빙하가 녹고 있다는 뉴스가 매일 나와도 우리는 크게 실감하지 않지요. 하지만 기온 1℃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인류는 45억 년 지구 역사에서 멸종되는 또 하나의 생물종(種)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구온난화가 중요한 문제이긴 합니다만, 회장님이 현역 시절에 해오던 기부 활동과는 결이 좀 달라 보이네요.

 

 

공부도, 사업도 늘 하던 것만 하면 제 자리걸음이듯 나눔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지금은 세계적 차원의 환경 운동이 필요한 시점이고, 제가 가진 재산과 열정과 노력을 지구온난화를 막는 데 쓸 수 있는 나눔의 타이밍이 지금인 거죠. 현재 80억인 지구 인구가 너무 많은 물자를 생각 없이 소모하고 있어요.

 

가구에 들어가는 쇠파이프 하나 만들려면 광석을 캐서 녹여야 하는데, 그 광석은 한 번 캐면 영원히 없어집니다. 지구가 45억 년 동안 만든 광석이 사라진다는 의미이니 어떠한 물건도 허투루 소모하면 안 되겠지요. 반면 장사꾼들은 그렇게 살면 경제가 엉망이 된다고 말합니다. 저는 경제를 망가트리자는게 아니라 수준에 맞게 살자는 말입니다. 친환경적 삶의 방식이 몸에 배도록 지구온난화에 대한 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은퇴 이후 의미 있는 나눔의 삶을 고민하는 시니어에게 조언해 주신다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는 수차례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이렇게 살아서 이야기하고 있는 지금이 제겐 너무나 귀하고 아까운 시간입니다. 제게 시간은 돈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지구는 24시간에 한 바퀴를 돌고, 365일 동안 태양 주변을 한 바퀴 돕니다. 오늘의 일이 내일을 바꾸고, 그 결과 모레가 바뀝니다. 매 순간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춰 알차게 살아야지요. 저는 제게 주어진 생명의 시간을 무척 아낍니다. 그 시간에 잘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 그게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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