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봉틀 돌려 미혼모 돕는 주부협동조합

기사 요약글

성남 판교도서관 근처 골목에서 7년 째 버려진 제품으로 새 물건을 만들어 팔며 환경을 고민하고, 미혼모들을 도울 방법을 찾는 주부들의 공간이 있다. “우리는 여태껏 뭘 잘못하고 살았을까?”라는 느닷없는 질문에서 시작된 일이다.

기사 내용

 

 

 

 

판교동 뒷골목에 아기자기한 수공예 패브릭 제품이 가득한 가게가 있다. <나누리창작공방협동조합>이라는 간판이 단순히 수공예 수업을 하는 곳은 아님을 예상케 한다. 지구와 환경, 그리고 용기 있게 엄마의 삶을 선택한 미혼모들의 자립을 응원하고자 모인 동네 주부들의 협동조합이다. 2014년 이곳에 터를 잡아 7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운영될 수 있었던 데는 윤미경 대표의 공이 컸다.

 

 

 

 

 

“세상을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말이죠”

 


윤 대표는 89년부터 99년까지 정치사상학 공부 중인 남편을 따라 영국으로 떠나 그곳에서 치열하게 일 하고 육아도 했다. 영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니 문득 그녀는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지, 식구들과 주말을 함께 보내는 것 조차 왜 이렇게 어려운지, 부부가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미혼모들은 얼마나 힘들지, 여태껏 뭘 잘못하고 살았는지 원론적인 질문에 맞닥뜨렸다.

 

그렇게 사회 문제에 관심이 커가던 중 (故)최진실 주연의 가난으로 인한 입양 문제를 다룬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을 접하곤 하염 없이 눈물을 쏟을 만큼 그녀의 마음은 크게 흔들렸다. 이후 윤 대표의 삶의 가치는 완전히 바꼈다.

 

 

 

 

 

협동조합에 푹 빠지다

 


끝 없이 버려지는 것들과 이로 인한 환경 오염,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의 어려움, 미혼모 문제 등 여러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차 윤 대표는 스스로 바꿀 수 있는 것부터 하기로 했다. 2011년, 윤 대표는 초창기 판교에 이사를 온 뒤 ‘자연드림’, ‘한살림’ 등 유기농업을 바탕으로 도시 소비자와 농민 생산자들을 잇는 협동조합에 모두 가입했다.

 

대량생산과 유통업의 소비를 제한하고 질 좋은 유기농 식품을 필요한 만큼만 구매해 물건을 쉽게 쓰고 버리던 습관을 끊어내기로 한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협동조합 이념에 푹 빠진 윤 대표는 자연스레 자연드림, 한살림 등의 간단한 홍보 글 작성을 도맡았고 판교 '마을지기' 제안까지 받게 된다.

 

 

 

 

손재주 좋은 엄마들의 착한 모임

 


윤 대표는 마을지기를 하며 자신과 뜻 맞는 주부들이 생각보다 많음을 알게 됐다. 자식을 키우다 보니 좋지 못한 환경에 노출되어 걱정인 주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지만 그 방법을 모르는 주부,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싶다거나 스스로 적은 돈이라도 벌고 싶은 주부 등이 있었다.

 

“돈을 벌고 싶어? 남을 돕고 싶어? 하면 되지! 그 길을 제가 뚫기로 했어요.” 윤 대표는 뭐든 일단 해보면 된다는 주의였다. 물론 주부들이 모여 돈도 벌고 남도 도우려니 막연했던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했다. 공통점을 생각하니 주부들은 손재주가 좋았다.

 

마을 모임의 일환으로 재봉이나 뜨개질을 삼삼오오 모여서 해왔다. 이 손재주를 활용할 방법을 궁리하니 퍼즐이 맞춰졌다. 버려진 물건을 모아 주부들의 재능으로 업사이클링을 하면 환경도 위하고 수익도 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 수익으로 미혼모 기관 등에 후원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큰 골조를 짠 뒤 성남시청의 창업 지원 관련 3건의 공모전에 과감히 서류를 제출했고, 모두 통과했다. 주부들의 지향점과 가장 맞는 공모전의 지원금 2천만 원을 받아 지금의 공간을 열었다.

 

 

 

 

 

주부들은 어떤 일을 하나요?

 

 


버려진 자원을 활용해 현미찜질팩, 순면생리대, 앞치마, 가방, 인형옷 등의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들어 판다. 모두 주부들의 손에서 완성된다. 또 정기적으로 사회복지관, 어린이 동아리 등 기관과 연계해 재활용품을 분류해 창작 활동을 하고 지속 가능한 환경에 대해 고민하는 수업을 진행한다. 기본 체험료는 1회 당 1~2만원 선이고 요청 기관의 예산에 따라 프로그램은 달라진다. 이 외에 손바느질, 재봉, 수공예 패브릭 수업 등 주부들의 재능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이뤄진다. 코로나 시국에도 주 1~3회 가량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궁극적인 목표인 미혼모들을 돕기 위해 성남시청의 미혼모자 공동생활 가정인 <새롱이새남이집>를 후원하고 있다. 발생 수익이 크지는 않지만 힘 닿는대로 돕고 있으며 매번 일정 금액을 후원하지 못해도 새롱이새남이집에서 이불이 필요하다고 하면 주부들이 모여 이불을 만들어 보내고, 독립한 미혼모들이 카페를 연다고 하면 그곳 인테리어 제품을 재능 기부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주부들의 따뜻한 마음과 힘을 보태고 있다.

 

 

 


협동조합 직접 운영해보니

 

 


그저 좋은 일을 목적으로 하면 설립하는 줄 알았는데, 협동조합은 개설 과정부터 윤 대표가 생각한 것처럼 순탄치만은 않았다. 협동조합 운영을 위한 요건 중 기준 인원도 정해져 있어 주부들 중 누가 조합원이 되고 누가 일반 회원이 될 지부터 난제였다. 이 외의 모든 요건을 충족하면 시군구청에 설립 허가 신청을 먼저 하고, 허가증을 첨부해 기타 서류와 함께 등기소에 설립등기신청(등기서류 접수)을 해야 비로소 완료 된다. 

 

또 필수적으로 법인 등록을 해야 하는데 한 번도 사업을 해보지 않은 윤 대표에게 그 과정이 특히 어려웠다고. 설립 후에도 법인으로써 처리해야 할 서류만 산더미였다. '80년대부터 참 여러 가지 일을 해왔지만, 법인까지 직접 세울 줄이야' 그녀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시청이나 관련 기관에서 협동조합, 법인 운영에 대한 교육은 들을 수 있지만 포괄적인 내용이라 어느 정도 습득한 뒤 자신의 업무에 맞춰서는 스스로 부닥치고 경험해 익혀야 한다.

 

 

 


업사이클링과 협동조합에 대한 오해

 


‘협동’, ‘조합’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비영리 기관 혹은 이익이 생기는 집단으로 오해하기 십상인데, 협동조합도 여타 사업체와 마찬가지로 매달 수익 창출을 고민 하는 영리 기관이며 여기에 사회적 책임까지 주어진다. 또 새 천을 사서 제품을 만드는 게 수월하지 재활용한 소재로 상품을 만들려면 세척부터 시작해 그 과정과 비용이 더 많이 든다고. 업사이클링이 투자금 없이 수익을 낼 수 있는 창작 활동이란 생각도 오해다.

 

그녀가 매달 왜 수업을 하나라도 더 하고, 상품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내는지 이해가 간다. 아무리 골목에 자리한 작은 공간이지만 임대료부터 걱정해야 하는 달도 허다하고 가끔 운영비가 부족할 때는 윤 대표의 사비로 채우기도 했다. 그래도 그녀에게는 임대료와 운영비만큼은 이 공간의 수익을 통해 독립적으로 운영하자는 신념이 있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이 일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50대 중반을 훌쩍 넘은 또래 친구들은 집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하소연하곤 해요. 하지만 저는 너무 바빠서 심심할 틈이 없죠. 매일 할 일이 차고 넘쳐요. 어차피 인생은 아무 것도 안 하기엔 길어요. 무의미하게 살고 싶지 않았고, 이곳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 행복합니다. 무엇보다 업사이클링은 정년이 없는 일이잖아요?”

 

 

나누리 창작공방 협동조합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617-7
평일 10:00~18:00
협동조합에 대한 더 많은 정보 https://www.coop.go.kr/COOP/

경기 성남시 분당구 운중로277번길 48ㄱ겨경경기긷기도

 

 

기획 임소연 사진 이준형(스튜디오텐),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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