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차 교사에서, 60세에 연극제작자로 인생 2막

기사 요약글

퇴직 후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인생을 즐기고 싶다? 모두가 꿈꾸는 2라운드 인생이다. 여기 그 꿈을 실현한 전직 중학교 영어교사가 있다. 연극제작자로 2라운드 인생을 사는 극단 ‘웃는 고양이’의 오수현 대표다.

기사 내용

 

 

 

 

인생이 길어졌다. 덕분에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졌다. 나이에 상관없이 새롭게 도전하고 그 도전 때문에 웃는 날이 많아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극단 ‘웃는 고양이’의 대표이자 연극제작자 오수현 씨. 극단 이름처럼 웃는 인상의 그는 연극제작자가 되기 전 25년간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인생을 3부로 살아야겠다는 게 평소 소신이었어요. 태어나서 25세까지는 배우는 기간, 26~50세는 돈 버는 기간, 51세부터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기간이라고 정했죠. 교직 25년을 채우던 해 명예퇴직을 했습니다. 교사였던 아내도 흔쾌히 동의해줬습니다. 아내 역시 몇 년 후 명예퇴직했습니다. (웃음)”

 

2008년 무렵 퇴직한 그는 즐길 줄 아는 삶을 꿈꿨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한 지출은 아깝게 생각하지 않겠다는 결심도 했다. 그때부터 자신에게 집중한 그의 삶은 탐색과 열심의 연속이었다. 하고 싶고, 가고 싶고, 보고 싶은 것을 직접 배웠고 경험했다. 온갖 강좌를 들었다. 역사 등 인문학 공부로 시작해 요리, 도자기까지. 

 

“이런저런 것들을 많이 배웠는데 5년이 넘어가니 더 배우고 싶은 게 없더군요. 그럼 내가 뭘 해야 할까 생각했죠.”

 

친구들로부터의 자극도 있었다. 제주도 오름을 답사하며 글을 쓰는 전직 역사 교사 친구, 야생화 전문가가 된 전직 국어 교사 친구 등. 그러다 불현듯 떠오른 기억 하나. <칠수와 만수>. 30여 년 전이던가. 군 제대 후 대학로에서 봤던 연극이었다. 배우 문성근과 강신일이 각각 칠수와 만수로 분했던 당시 최고의 화제작(1986년 초연 때 서울에서만 5만여 명 관객을 동원했다). 20대 중반의 그를 사로잡았던 감동이었다. 그렇게 좋았던 연극을 왜 잊고 있었을까. 

 

 

 

 

명예퇴직 후 연극 제작을 꿈꾸다

 

 

젊은 날 경험했던 두근거림은 삶에 흔적을 남긴다. 기억의 깊은 자리에 자리 잡고 있던 그 감동은 인생의 어느 순간에 변화를 추동하는 힘이 되어 준다. 마치 지레의 작용점처럼 말이다.

 

“취미로라도 연기를 해본 적이 없으니 배우가 될 수는 없겠다 했죠. 그렇다면 연극 제작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낯설지만 설레는 일, 연극 제작. <한국 직업 사전>을 찾아보니 연극제작자의 직무는 ‘연극을 공연하기 위하여 제작비를 투자하며 작품, 배우, 연극연출가 등을 섭외하고 공연 일정을 계획한다’로 정의되어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해가 피상적이었다. 아니, 거의 백지상태였다. 그럼에도 ‘하고 싶다’와 ‘해야 한다’라는 마음은 확고해졌다. 그 마음은 힘점이 되어 그의 삶을 크게 움직였다. 나이 60에, 참으로 아주 오랜만에 맨땅에 헤딩을 시도했다.

 

“1년 정도 무조건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어요. 연극배우, 연극연출가, 연극기획자 등을 두루두루 만나서 조언을 구했죠. 마침 제자 중에 연극계 종사자가 있어 도움을 받았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를 만류했다. 비전공자인 데다 연극계와 무관하게 살았기 때문이었을까?

 

“다들 첫마디가 ‘아예 시작할 생각을 말라’는 것이었어요. ‘연극 제작은 너무 힘든 분야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위험부담이 높다, 수익은커녕 금전적 손실만 본다, 그러나 미치면 손을 못 뗀다’라는 것이 이유였죠.”

 

결국 실제 제작을 하면서 경험치를 쌓을 수밖에 없었다. 먼저 극단으로 사업자등록증을 냈다. 2017년 12월이었다. 

 

 


 

 

가족 뮤지컬을 제작하다

 

 

인생 2막을 시작하는 데 인간관계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인생은 ‘노하우(know-how)’만큼 ‘노후(know-who)’도 중요하다. 어떤 사람과 일을 할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그 일에 대한 노하우도 쌓이게 되는 법. 그래서 어쩌면 ‘노후’가 더 중요할 수 있다.

 

“교직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선배가 있었는데 베스트셀러 동화작가였죠. 선배를 만나 연극을 제작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자신의 작품을 해보라고 하더군요.”

 

그의 친한 선배는 다름 아닌 김진경 시인. 판타지 동화 『고양이 학교』의 원작자다. 『고양이 학교』는 2001년 첫 책이 출간된 이후 2007년까지 총 3부 11권이 나왔다. 이 중 1부는 프랑스, 일본, 중국, 대만 등에서도 번역 출간됐으며 2006년에는 국내 동화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아동 청소년 문학상인 앵코륍티블 상을 받았다.

 

 

 

 

연극제작자로서의 첫 작품 <고양이 학교>는 그렇게 시작됐다. ‘웃는 고양이’라는 극단 이름도 이때 얻었다. 원작 중 1부 1권의 이야기인 ‘수정 동굴의 비밀’을 가족 뮤지컬 형식으로 제작했다. 제작비는 자신의 퇴직금으로 충당했다. 연출자, 기획자, 배우들을 모았고 약 5개월 정도 제작 및 연습 기간을 거쳐 2018년 5월, 극장 초연을 가졌다.

 

“교직 생활은 시계추처럼 정확하게 반복되는 일정을 따르죠. 학사일정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매년 비슷한 업무를 비슷한 시기에, 그리고 대부분 예측 가능한 선에서 해나갈 수 있어요. 그러나 연극 제작은 해보지 않은 것들, 예상할 수 없는 것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물론 예상치 못한 문제들과 자주 맞닥뜨려야 했지만 그런 문제들조차 뜨겁고 설레는 경험이었습니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으로 첫 작품을 제작했어요.”

 

 

첫 작품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경험 미숙에서 오는 중대한 판단 착오가 있었어요. 공연 시간을 잘못 배정했죠. 평일 오후 5시 공연이었는데 그 시간에는 핵심 관객층인 유치원생, 초등학생이 대개 학원에 있다고 하더군요. 관객 동원에 실패해 큰 손실을 봤어요. 물론 처음 제작한 작품이기에 제작비를 회수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수업료라고 여겼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컸습니다.”

 

두 번째 작품은 신인 연출가 겸 극작가의 제안으로 시작했다. <반디>라는 작품으로 독립운동가인 유관순 열사의 친구였던 남동순 선생의 이야기다. 선생은 3•1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가가 되었고 해방 후부터는 평생을 고아들을 위한 사회사업에 헌신했다. 선생은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고, 2010년 작고했다. 극단의 두 번째 연극 <반디>는 2019년 12월 무대에 올랐다.

 

“<고양이 학교>는 환경 문제를, <반디>는 역사 문제를 다룹니다. 교사였던 이력 탓인지 교육적인 주제에 관심이 큽니다. <반디>라는 작품을 통해 앞으로 제가 주력해야 할 주제가 정해졌어요. 앞으로는 순수 창작극이되 우리나라의 숨은 역사 인물을 재조명하는 작품을 중점적으로 제작할 생각입니다.”

 

 

 

 

잊힌 역사 인물 이야기에 주목하다

 

 

연극을 제작하겠다고 나선 지 4년. 무슨 일이든 꾸준함과 집중력으로 시간을 쌓아야 완숙해지는 법이다. 그러나 연극제작자로서 오수현 대표의 진심과 열심은 현재 잠시 멈춤이다. 공연계를 강타한 코로나19 때문이다.

 

“얼마 전에 연습실 계약을 종료했습니다. <고양이 학교 시즌 2> 제작 기획, <반디> 지방공연 등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모두 취소되고 연기되었어요. 게다가 좋은 작품을 제작한다는 것은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데 만남 자체가 너무 어려운 요즘입니다.”

 

그러나 그는 조바심내지 않고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연극을 제작해나갈 생각이다.

 

 

 

 

“연극이 배고픈 직업이라고 하죠. 한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하는데 길게는 2~3년. 짧게는 4~5개월도 걸립니다. 공연을 올려도 수익은커녕 얼마나 손실을 줄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죠. 모아 놓은 돈을 노후 자금으로 써야 하지 않느냐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연극을 통한 수입은 없지만, 다행스럽게도 저는 굶지는 않습니다. (웃음) ‘왜 연극 제작이냐’고 묻지 않고 묵묵히 지지해주는 아내에게는 늘 고마울 뿐입니다. 연극 제작이 남들에게 추천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저에게는 나이 60에 시작한 새로운 인생입니다. 한참 늦게 시작했지만, 이제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좋습니다. 생동감 있는 미래를 샀다고 생각해요. 현재 구상하고 있는 작품이 두 개입니다. 이 두 작품은 반드시 제작하겠다는 사명감이 큽니다.”

 

원하는 연극을 제작하면서 지금의 자신에게 충실하게 매일매일을 살아가겠다는 오수현 대표. 그의 입가에 잔잔하게 번지는 웃음이 참으로 맑았다.

 

 

김남희 사진 지다영(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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