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명사 - 음악가들의 초대

기사 요약글

막상 시작하고 나니 너무 즐겁고 행복해요. 잃어버렸던 내 음악을, 나를 찾는 느낌이 들어요.

기사 내용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느린 시간의 예술가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여섯 살부터 50년 넘게 바이올린과 함께해왔지만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은 여전히 자신에게 인색하다. 연주하는 순간의 즐거움에 대해서는 “잘 안될 때 우울해지죠” 라고 웃어넘기고 예술감독으로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를 9년째 이끌어온 것에 대해서는 “끈기가 있는 타입은 아닌데(웃음) 엊그저께 시작한 것 같은데 세월이 참 빨리 지나가네요” 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가 어린 시절 3대 바이올린 콩쿠르를 석권하고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 기사훈장을 받은 이력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듯, 어느 사회학자 말대로 “가장 평등한 연주 형태” 인 실내악을 전파해온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 도시를 여행하면서, ‘아메리칸 드림’ ‘아니시모’ ‘못다 한 여정’ 등 다양한 주제로 여러 작곡가의 잘 안 알려진 곡들을 조금씩 선보인 덕분에 우리는 실내악의 매력이 뭔지 알게 됐다. 겸손한 그를 보면 클래식은 ‘시간의 예술’ 이라는 생각이든다. 청중이 인내하며 기다려주는 시간이 필요하고 연주가가 자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다.

“음악가들끼리 하는 말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은 평생 씨름하다가 은퇴한 뒤 연주해야 하는 곡이라고 하죠(웃음). 악기를 다루는 수준이 아무리 높다 해도 음악은 거기서부터 시작이죠. 시간을 축소할 수는 없거든요.”

80세의 강동석이 연주하는, 장중한 생명력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이 기다려진다.


테너 김재형

관객과 살아 숨 쉬는 무대

테너 김재형

 

“5, 6년 전까지만 해도 무대는 배우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기억에 남는 무대가 없었어요. 지금도 완벽하게 부르는 건 아니지만 이제 즐기게 되니까 최근 3, 4년간 했던 오페라는 다 즐겁고 기억에 남아요.”

<투란도트>의 칼라프,<돈 카를로스>의 돈 카를로스 등 짧은 순간 한 사람의 역동적인 인생과 예술가의 고뇌를 표현해온 그는 실수하는 것도 살아 숨 쉬는 무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다. 더불어, 뉴욕 메트로폴리탄이나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 등 큰 무대에 섰던 그는 요즘 오히려 작은 고민부터 움직이려 하고 있다. “청중에게 친근한 것이 비예술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가장 쉬운 곡을 나답게, 제일 잘 부를 수 있게 공부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요.” 그런 의미로 그는 올해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이뤄진 가곡 음반을 발표했다. 가장 본질적인 것, 인간의 목소리에 집중하자는 의미였다. ‘예술의 전당 클래식 스타 시리즈’ 라는 익숙한 형식 안에서는 국내 관객에게 다소 낯설 수도 있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인생을 시기별로 들려주기로 결심했다. 짧은 설명도 함께 곁들여서 말이다. “관객들을 기다리는 거죠. 제가 던진명제에 조금이나마 반응해주는 관객이 있다면 그건 무엇으로도 환산이 안 되는 소중한 거니까요.”


소프라노 한경미

절제된 시간의 아름다움

소프라노 한경미

 

“사람들이 절 보면 성악한다고 생각을 안 해요(웃음). 기악 중에서도 어두운 콘트라베이스나첼로를 떠올리더라고요.”

말할 때 그녀의 목소리는 작고 부드러워서 귀를 기울여야 잘 들리고 걸음걸이 역시 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다.

“악기가 제 몸이고 저 자신이기 때문에 목소리를 가꾸면 되지, 화려하게 꾸미고 감정적으로 흥분 상태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가 남들보다 표현하는 영역이 적을 수도 있어요. 근데 전 이대로가 좋아요(웃음).”

오페라보다는 가곡을 좋아하고 화려한 면보다는 절제된 면을 더 좋아하는 이런 태도는 그녀를 올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공연에 자주 초청하는 계기가 됐다.

슈트라우스 탄생 150주년을 맞아 지난 11월에는 최수열 지휘자와 KBS교향악단의 제 45회 FM콘서트 홀 ‘독일 낭만음악의 완성’에, 그리고 오는 12월에는 김대진 지휘자가 이끄는 수원시립교향악단의 ‘슈트라우스 시리즈’에 함께 서게 된것. 특히 최수열은 그녀에게 “슈트라우스를 저렇게 아름답게 표현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목이 안 좋아서 8개월간 노래를 부르지 못했던 시간을 경험하면서 오히려 나이 들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변화마저 껴안게 됐다.

“설사 목이 안 좋아져서 음악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음악을 할 수 있었던 지금까지의 시간 때문에 미련이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지금 최대한 노력하면서 제가 노래할 수 있는 기간을 늘려나가려고요.”


피아니스트 김정원

자아를 찾는 행복한 여정

피아니스트 김정원

 

피아니스트 김정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쇼팽, 아니면 친구들일 거다. 쇼팽 음악의 세밀한 감정과 음색을 다 살려 낸 연주로 주목받았고 ‘김정원과 친구들’이란 이름으로 오랫동안 공연을 해왔기 때문이다.

“‘김정원과 친구들’은 대중보다는 저를 위한 거였어요. 제가 피아노를 치는 동안 보고 싶은 사람을 못 보는 게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그는 친구들과 즐겁게 놀 수 있는 무대를 만들었고 그중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함께한 슈베르트의<네 손을 위한 환상곡>은 드라마<밀회>에도 사용됐다. 하지만 올해 그는 다시 혼자다. 지난 8월 독주회를 시작으로 슈베르트 피아노소나타 전곡 21개 작품을 앞으로 3년 반에 걸쳐 연주하고 녹음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슈베르트는 가곡의 왕으로 알려져 있지만, 피아니스트가 본 슈베르트는 그야말로 위대한 피아노 음악 작곡가예요.” 여기엔 그의 혹독했던 유년기도 관련이 있다. 열다섯 살 때부터 빈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그는 을씨년스럽고 외로웠던 첫 겨울, 자취방과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슈베르트 생가를 발견했다. “그렇게 반갑고 기쁠수가 없었어요. 아는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틈나면 슈베르트 생가를 방문해 위로를 받았어요.” 그는 슈베르트를 시작으로 후기의 베토벤, 브람스, 슈만 등 독일 낭만주의음악을 깊이 파고들 예정이다. “막상 시작하고 나니 너무 즐겁고 행복해요. 잃어버렸던 내 음악을, 나를 찾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지금은 겁내지 않고 기대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그의 고독을 응원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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