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불륜일까요? <부부의 세계> <화양연화> <한 번 다녀왔습니다>

기사 요약글

결혼과 이혼 사이에는 불륜이 있다. 현재 한국을 가장 뜨겁게 달구는 드라마 세 편이 불륜을 다루는 방식.

기사 내용

 

 

<부부의 세계>, 배신은 배신을 낳는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는 대사로 시청자들을 속 터지게 했던 <부부의 세계> 속 불륜 남편 이태오(박해준)는 이 드라마의 12회에서 전 부인인 지선우(김희애)와 다시 밤을 보내고, “나 돌아올까?”라는 대사로 또 한 번 불을 지른다. 6회 이후 원작인 영국 드라마와 다른 방향으로 간 한국 드라마는 일종의 풍속극이 되어 제목처럼 부부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부부의 세계>를 보는 시청자들이 가장 분개하는 요소 중 하나는, 남편의 배신으로 고통을 겪은 지선우가 다시 그의 배신행위를 또 한 번 유도해서 자신이 이번에는 불륜을 저지른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어의 ‘불륜’이라는 말에는 외도의 비도덕성을 신랄히 비난하는 한국인의 정서가 분명히 담겨 있다. 결혼을 시작할 때는 대부분이 종신 계약이라는 암묵적 전제가 있으므로, 이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깨는 행위, 그중에서도 외도는 심각한 배신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배신에 괴로웠던 지선우가 다시 그 배신을 유도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그 캐릭터에 대한 실망감을 가져온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역시 재혼한 이태오가 또 한 번의 결혼 계약을 위반했다는 면에서 행위에 대한 주체적인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태오에게는 더 실망할 것도 남아 있지 않을 따름이다.

 

 

<화양연화>, 불륜 미화냐? 간절한 사랑이냐?

 

 

 


외도라는 상황을 그리는 또 다른 드라마는 tvN의 <화양연화>이다. 다만 이 드라마에서 결혼 외 관계를 다루는 태도는 다르다. 91학번인 한재현과 (유지태/젊은 시절 박진영) 93학번인 윤지수 (이보영/젊은 시절 전소니)는 대학 때 캠퍼스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삶의 무게로 인해 이별을 겪고 각자의 길을 간다. 그로부터 20년 후, 이제 지수는 이혼한 상태로, 재현은 껍질만 남은 결혼의 상태로 다시 만난다. 두 사람의 애절한 마음은 세월과 결혼 계약을 넘는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줄거리이다. 지난 4회에서는 20대에 함께 갔던 바닷가에 다시 돌아간 지수와 재현이 키스를 하면서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불륜 미화 아닌가”라는 비판과 ‘시간을 버티는 사랑’이라는 호평을 동시에 듣는 이 드라마는 시청자의 결혼관이나 윤리의식에 질문을 던진다. 제목만 봐도 이 드라마는 왕자웨이 감독의 2000년 걸작 <화양연화>를 모델로 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아파트에서 이웃에 사는 리첸(장만옥)과  차우(양조위)는 서로의 배우자가 불륜을 저지른다는 걸 알고 함께 괴로워하다 서로를 향한 연민에서부터 사랑이 시작된다. 두 사람의 사랑은 깨어진 결혼 계약에서 시작했지만, 자기들 또한 계약을 깼다는 데서 가책을 느낀다.

 

드라마 <화양연화>의 경우에도 그런 식으로 지수와 재현의 관계에 면죄부를 주려 한다. 재현의 아내인 장서경(박시연)은 이미 오래전부터 바람을 피우고 있으며, 그들의 결혼 서약은 상대방이 먼저 위반한 것이다. 결혼 계약을 유지할 의지가 쌍방에 없을 때, 결혼과 외도의 구도는 복잡해진다. 다만 재현이 오랫동안 지수를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은 이미 벌써 계약의 위반이 아닌가, 라는 질문도 떠오른다.

 

 

 

오랫동안 불륜을 연구했던 미국의 철학자 리처드 테일러는 <결혼하면 사랑일까>라는 책에서 불륜이 결혼의 실패가 되는 원인이 아니라, 실패한 결혼의 징후라고 말했다. 불륜에는 다른 배우자도 책임이 있다고 뒤집어씌우는 것과는 다르다. 한쪽이 일방적으로라도 기만을 저지르고 있다면 이미 그 결혼은 망가져 있다는 뜻이다. 외도는 용서할 수 없는 배신행위인 것과 사람에게 남기는 상처가 크다는 사실 자체도 테일러는 이해한다. 다만 성적인 일탈로 표현되는 불륜 전에 이미 그 결혼은 깨어졌다.

 

이 두 가지는 <부부의 세계>나 <화양연화>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부부의 세계>의 이태오는 정절의 배신과 함께 몰래 계좌를 만드는 탐욕의 배신도 동시에 저질렀다. <화양연화>에서 재현 부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생활 공동체를 이루고 있지 않다. 따라서 대중이 불륜을 판단하는 태도는 기만이라는 요소에서 갈라지는 것 같다.

 

실패한 결혼에 대한 인정을 배우자 양쪽 다 하고 있는지, 혹은 그런 상황이 얼마나 공적으로 굳어졌는지. 한쪽 배우자가 모르는 상태에서 일어난 상태에서는 배신감이 크고 용서할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기만이 아니라도, 법적인 계약이 유지된 상태에서는 실제 어떤 감정이든 간에 비난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한번 다녀왔습니다>, 배신과 죄책감은 어디까지?

 

 

 

깨어진 결혼 계약이 다른 배신으로 이어지기 전에 정리할 수 있다면, 그나마 역설적으로 운 좋은 경우이다. 그런 상황은 KBS2의 주말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에서 볼 수 있다. 같은 의사 부부인 나희 (이민정)와 규진 (이상엽)은 성격 차이로 이혼을 하지만, 집값 분배 및 가족 문제로 인해 주변에 알리지 못하고 형식적인 생활 공동체를 유지한다. 

 

그들은 법적인 계약을 해지했기 때문에 새로운 관계를 찾아 나선다고 해도 불륜은 아니지만, 여전히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상황들이 발생하고, 여기서 오는 긴장감이 이 드라마의 플롯에 동력을 준다. 나희는 대학 선배를, 규진은 첫사랑을 다시 만나지만, 그들은 아직 어떤 관계도 시작할 수 없다. 여기서 또 한 번 알게 되는 건 결혼이라는 계약은 단순히 법적으로만 정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배우자의 심적인 의무가 동반된다. 배신과 죄책감이라는 감정은 모두 결혼 배우자에 대한 신뢰, 서로의 삶에 대한 인간적인 존중이 남아 있을 때 나온다.

 

 

 

 

 

다시 한 번 리처드 테일러를 인용하면 “불륜은 전쟁과 같다. 모든 사람이 이를 흥미롭게 여기지만, 여기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파멸의 위험이 뒤따른다.” (<결혼하면 사랑일까>, 352쪽) 드라마나 영화에서 늘 불륜을 다루는 건 이것이 일상이 부서질 정도로 파괴적인 일이고, 경험한 사람이든 해보지 않은 사람이든 이 파괴에서 오는 좌절과 분노에 대한 공감을 끌어내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불륜의 파괴력이 미치는 범위와 맥락에 대해서 다각도로 고려하지 않는다면, 결혼과 이혼이라는 인생에서 중요한 계약과 해지에 대한 피상적인 묘사만이 남을 뿐이다. 그리고 이 계약은 법적인 것만이 아니라, 늘 그에 참여한 사람들의 마음에 대한 것임을 잊지 않는 작품만이 이를 섬세하게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기획 신윤영 박현주(TV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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