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화제 - 그대, 라디오 스타

기사 요약글

가을 아침, 인천의 한 초등학교 강당에는 박수와 환호가 가득했다.

기사 내용

디스크자키 김광한
열일곱 살 아저씨


교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보다 더 들뜬 표정으로 꽃단장하고 아침 일찍 달려온 왕년의 팬들. 멋지게 등장한 김광한은 특유의 또렷하고 정확한 발음, 전성기 때와 다름없는 맑고 단단한 음성,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달변으로 좌중을 휘어잡기 시작했다.
라디오와 팝을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김광한을 모를 리 없다. 자타가 공인하는 음악 전문 디스크자키로서 1982년부터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진행했던 <팝스 다이얼>은 수십 년 동안 젊음의 대명사였다. “청취자와 팬들에게 받은 수많은 사연과 넘치는 사랑은 제 삶의 에너지였어요. 그들이 보내온 사연을 보면 DJ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예요. 그 내밀한 사연을 함께하며 저 역시 세상을 배웠습니다. 덕분에 ‘열일곱 살 아저씨’라는 평생 늙지 않을 별명도 얻었고요.” 라디오에 대한 애정이 깊은 만큼, 요즈음 방송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는다. “라디오의 가장 큰 매력은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것입니다. 꼭 교육적일 필요는 없지만 청취자들의 마음과 머리를 자극하는 것이 중요하죠.” TV나 디지털 기기에 빠져 있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듣는 즐거움과 행복을 선사하기 위해 오늘처럼 전국의 초등학교를 순회하며 <행복한 음악여행> 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제 손자손녀뻘 아이들에게도 멋진 오빠, 멋진 형으로 남게 될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에 어울리는 노래 선물을 부탁하자 그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Can’t Help Falling in Love’를 보내드립니다.”

 

 

방송인 이숙영
지금, 라디오를 켜요

방송인 이숙영


아침이면 듣고 싶은 목소리가 있다. 출근길 흔들리는 만원 버스나 지각이 걱정돼 서둘러 잡아탄 택시 안, 활기찬 에너지를 불어넣어 줄 것 같은 경쾌한 그 목소리! 그것이 방송인 이숙영의 성대가 오늘 아침도 쉬지 못하는 이유다.
그녀는 지금도 현역 DJ다. 1987년부터 10년동안 KBS에서 산뜻한 시그널 음악과 통통 튀는 목소리로을 진행했다. 아나운서 출신 DJ의 원조로 프리랜서 선언 후 17년 동안 SBS 라디오에서 <이숙영의 파워 FM>을 진두지휘했다. 지난해부터 SBS <러브FM>으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라디오 역사를 써나가는 중이다.
사실 우리 시대 직장인은 이숙영이 뿜어내는 힘찬 격려를 들으며 어깨를 펴고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무려 28년 동안 그녀는 정겨운 누이, 만만한 언니로 살갑게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자살을 결심했던 트럭 운전사가 그녀의 방송을 듣고 따뜻한 위로에 힘입어 삶의 의지를 다잡은 일화는 유명하다.
“DJ가 우선적으로 갖춰야 할 자질이라면 정확한 발음이겠죠. 전달자 역할을 명확하게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EQ(감성 지수)가 아닌가 해요. 세상을 들여다보고 사람들을 바라보는 깊은 시선이야말로 DJ만의 역량이죠.” 청취자들과 건강한 아침을 맞기 위해 열심히 책을 읽고 건강관리에 신경 쓰고 있다는 그녀. 오늘도 우리 곁에서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라디오의 굳건한 힘을 믿는다.

 

 

성우 배한성
라디오라는 로망, 라디오라는 희망

성우 배한성


물론 그는 <형사 콜롬보>와 <맥가이버><아마데우스>처럼 매력터지는 외화 주인공 목소리로 더 친근한 특급 성우다. 하지만 70년대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한밤의 멜로디>와 80년대 큰 인기를 구가한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DJ 배한성을 추억하는 이도적지 않다. 당시만 해도 김광한, 김기덕 같은 전문 디스크자키가 팝을 실어 나르던 낮 방송과 달리 심야 시간대는 하이틴 스타들이 대거 마이크를 잡던 시절이었다. “70년대 최고 스타였던 레이프 개릿이 영화 출연을 하면 제가 더빙했죠. 이소룡, 성룡 같은 시대 아이콘의 목소리를 맡다보니 라디오 속 제 음성이 친근한 매력을 발휘하더라고요.” 어른들이 TV로 눈을 돌리던 그 시절, 자기 방에 들어가 홀로 라디오를 켜던 청소년들에게 힐링을 선사했던 DJ의 역할은 배한성에게도 뿌듯한 추억이다. ‘Video Killed Radio Star’라는 팝송 가사처럼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개인 자동차 시대가 열리며 라디오는 다시 한 번 청취자와 밀착되었다. 배한성 역시 진행자로서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KBS <가로수를 누비며>와 성우 송도순과 찰떡 호흡을 자랑했던 교통방송 <함께하는 저녁길>을 10년 이상 진행하며 명실상부한 라디오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저에게 라디오는 식지 않는, 영원한 로망이에요. 많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일했지만 성우로서 나를 가장 빛내줬던 울타리죠. 작년까지 라디오 진행을 맡다가 잠시 쉬고 있는데, 언제든 다시 불러준다면 목소리를 전달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부디,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는 그 멋진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기를.

 

 

방송인 황인용
라디오는 음악을 싣고

방송인 황인용


40여 년간 TV와 라디오를 오가며 전천후 방송인으로 활약했지만 많은 사람의 기억 속 황인용은 박학다식하고 사려 깊은 DJ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로 잠 못 드는 청춘들을 설레게 했던 젊은 오빠였고, 다양한 팝 음악을 배달하는 믿음직한 창구였던 <황인용의 영팝스>의 멋쟁이 디스크자키였으며, <황인용 강부자입니다>에서는 무려 15년간 속 깊은 친정 오빠 역할까지 해냈던 그다.
“라디오는 아주 따뜻하고 정다운 매체입니다. 얼굴을 마주 보진 못하지만 청취자 한 사람 한 사람과 이야기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거지요. 그는 헤드폰을 끼고 앉아 마이크를 독대하는 그 고요한 시간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DJ였다. 지금, 전국의 클래식 마니아들이 뜨겁게 사랑하는 공간 ‘카메라타’ 역시 어쩌면 라디오와 맺은 오랜 인연 덕분에 탄생한 건지도 모르겠다.” “오디오는 평생의 취미였지만 라디오 진행을 오래 하면서 스스로 음악에 더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음악을 듣다 눈물을 흘리며 방송한 적도 많고, 너무 몰두하는 바람에 멘트를 하지못한 날도 있을 정도였어요.” 황인용이 좋은 음악을, 좋은 조건에서 함께 듣고 싶어 고향 파주 헤이리에 문을 연 음악감상실 카메라타는 올해로10주년을 맞았다. 몇몇 프로그램의 내레이션으로만 그의 목소리를 만나는 게 못내 아쉽다면 그곳에 가면 된다. 손바닥만 한 종이에 신청곡을 적어 건네면 그 시절, 그때처럼 LP를 골라 턴테이블에 조심스레 올려놓는 그를 볼 수 있다. 그러면 바로 그곳이 라디오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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