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완상 전 부총리와 런치 토크

기사 요약글

우리에게 절실한 ‘어르신’에 대한 이야기.

기사 내용

한완상 전 부총리(사진)

요즘 우리 사회는 도처가 전쟁터다. 이라크처럼 총성이 울리진 않아도 가정, 학교, 직장 곳곳에서 무한 경쟁과 양극화, 상대적 박탈감으로 상처받고 신음하는 이들이 많다. 이럴 때는 인생의 멘토가 될 만한 분을 만나 마음이 따스해지는 식사를 나누며 그분의 지혜와 더불어 음식으로 위안을 받고 싶어진다. 이때 떠오른 분이 원로 사회학자이자 초대 교육부총리와 통일부총리를 역임한 한완상 선생이다. 청담동 한적한 뒷골목에 위치한 식당에서 한 전 부총리를 만나 점심을 나누며 우리나라의 교육과 통일, 우리에게 절실한 ‘어르신’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세월호 사건을 비롯해 윤일병 사건 등은 결국 가정과 학교, 또 군대에서의 교육 문제에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교육 전문가로서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병폐는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세월호 사건은 대한민국 교육의 총체적 실패를 보여준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한국 사회 변화의 분수령이될 것입니다. 300여 명의 학생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참사를 통해 ‘국가가 뭔가’ ‘국가가 왜 존재하나’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윤일병 사건은 ‘대체 군대에서 어떤 교육을 하기에 도처에 악마가 존재하나’란 의문을 갖게 했지요. 그런데 정작 국민의 물음에 정부나 공공 기관 책임자들이 답을 하지 않고 억누르려고만 합니다. 교육의 기본은 사람을 더욱 사람답게 만드는 변화 과정입니다. 태어나 제멋대로 울고 똥 싸고 투정하는 아이를 사랑과 훈육으로 정상적 존재로 키워가는 것은 기본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의 입장에 서서 자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단련입니다. ‘거울 자아’란 말이 있죠. 한 여성이 거울을 보고 자기 모습을 인식하는 것이 자아라면, 애인을 만나기 위해 화장을 하고 남의 입장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를 생각하는 것이 거울 자아입니다. 그렇게 거울을 볼 줄 아는 능력은 없고 자신의 자리를 조금도 떠나지 않는 동물스러운 능력을 가진 존재로 키우는 것이 오늘의 교육 현실 같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21세기에 제대로 된 교육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만들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이 역지식지, 강자가 약자의 주식을 먹을 수 있는 감동적 결단입니다. 성서에서 이사야는‘참평화가 올 때 이리가 양과 같이 놀고 그들의 새끼들이 서로 친구가 되고 사자가 소의 여물을 먹을 때 비로소 평화가 온다’고 내다봤습니다. 강자가 약자를 먹거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약자의 주식을 먹어 스스로 체질을 바꾸는 것이 교육의 진정한 힘이자 참평화의 감동입니다. 그런데 요즘 가정과 학교에서는 사자가 사슴을 더 많이 잡아먹는 잔인한 짓, 강자가 더 강자가 되는 법만 가르칩니다.
아이를 잃고 참척의 슬픔에 빠진 유가족들에게 해결책은커녕 ‘세월호 피로감’만 강조하는 기득권층과 일부 언론 역시 나쁜 교육의 결과입니다.

요즘은 학생 교육보다 학부모 교육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교육 주체가 학생, 부모, 교사인데 모두에게 참교육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고도 압축성장의 시대를 살아온 요즘 부모들은 자식이 무얼 좋아하고 어떤 소질이 있는가를 살피지 않고 무조건 자신이 못 이룬 소망(恨) 을 자녀를 통해 성취하려고 하는데 이는 탐욕입니다. 그리고 교육의 기본은 개천에서 용이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엔 가난한 아이들도 열심히 노력하면 명문대도 가고, 성공 신화를 만들 수 있었죠. 그런데 요즘은 교육에도 부의 세습화가 구축되어 서울대 학생들의 학부모를 보면 대개 관리직, 전문직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그들은 자기만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려고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 힘든 교육을 선호합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흐뭇하게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 등은 엄청나게 감동적인 기부를 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식들은 개천으로 돌려보내 자생력을 키우게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열린사회가 이루어지지요.

통일과 관련해서 ‘햇볕정책’을 강조하셨는데 통일만이 아니라 우리 교육에도 햇볕정책, 즉 따스한 진심과 사랑을 서로 나누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얼마 전 CNN에서 미국의 한 시민단체‘선제적 사랑 연합(Preemptive Love Coalition)’의 활동을 봤습니다. 지금 이라크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이 심각한 곳에서 심장병에 걸린 아이들을 수술하고 지원하는 단체입니다. 심장 수술에는 수혈이 필요한데 수혈 과정에서 수니파와 시아파, 즉 원수끼리 피를 나눠야 합니다. 여기서 역지감지가 이루어지지요. 이런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원수가 친구가 됩니다. 이들은 선제적 사랑 실천을 통해 참평화를 만들지요. 테러리스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이 선제적 사랑입니다.

그게 아마 총리께서 책에서도 강조한 ‘발선(發善)’의 경지가 아닌가요?
서로 상대의 나쁜 점을 강조하고 싸우는 것이 발악(發惡)이라면 서로의 장점을 칭찬해주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나누는 것이 발선입니다. 발악은 상대의 잠자는 악마를 깨우는 동시에 내 속의 악마도 깨우는 것입니다. 국가 간 발악은 곧 전쟁이죠. 하지만 상대가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것을 줄 때 상대 속에 깊이 잠자던 선을 깨우지요. 이것이 곧 발선입니다. 제가 지난해 펴낸<한반도는 아프다>란 책의 부제는 ‘적대적 공생 관계의 청산을 위하여’입니다. 내년이 분단 70주년인데 우리 민족이 강대국에 의해 타율적으로 분단되어 서로 증오하며 대치하는 것은 지극히 슬픈 일입니다. 해마다 8월 15일은 광복절, 해방된 날이라고 기뻐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진정한 해방을 맞지 못했습니다. 해방되는 날 당시 조선총독이던 아베 노부유키가 한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오늘 우리가 졌지만 조선이 이긴 것은 아니다. 우리는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 교육을 심었다. 조선이 제대로 일어서려면 100년이 걸릴 것’이라고 저주했죠. 저는 그 저주마저 잊고 식민지와 분단의 고통을 망각하고 사는 오늘의 현실이 더 가슴 아픕니다. 이제라도 남과 북이 서로 발선하고 선제적 사랑을 실천해야 최악의 발악인 전쟁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한 말씀만 해주신다면?
참지식인은 기존의 문화적 텍스트를 뒤집어보는 창조 능력, 이면을 꿰뚫는 통찰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코페르니쿠스, 뉴튼 등이 그렇죠. 요즘 우리 사회엔 이런 창조적 통찰력을 지닌 용기 있는 지식인이 없어요. 우리 사회엔 이것이 참본질이고 이면의 진리라고 말하는 이도 드물지요. 현상의 미시적 모습에 만족하는 지식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정보가 풍부한 ‘어른 지식’보다 오히려 ‘줄씨ㅇㆍㄹ’에 희망을 겁니다. 줄씨ㅇㆍㄹ은 온라인에서 자유롭게 소통하고, 오프라인에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새로운 민주적 시민들이죠. 그들은 가장 억울하게 고통받는 밑바닥 사람들과 역지감지하고 역지식지하지요. 저는 선제적 사랑보다 더 진보적 가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구조를 변화시키고 어두운 역사를 밝게 해주죠. 이것이 참으로 진보적이고 참으로 변혁적인 감동의 힘이죠. 참으로 이 힘이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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