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세종 <나랏말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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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세종의 한글 창제 과정을 담다
<나랏말싸미>


조선의 임금 세종에 관한 영화와 드라마는 많지만, 신작 영화 <나랏말싸미>는 기존 작품들과 다른 차별점을 지닌다. 세종의 한글 창제 과정에서 승려 신미가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가설을 집중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영화 속 세종은 이상을 지향하면서도 현실과 타협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한글을 창제해 백성들이 자기 뜻을 쉽게 펼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그의 이상이다. 그러나 유학을 국가이념으로 삼고 있는 나라의 군주인 만큼 유자(儒者)인 신하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게 그의 현실이다. 이 영화에서 세종은 늙고 병든 자신의 신세를 자주 한탄한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뿜어냈을 것이란 기존 관념을 뒤집는 모습이다. 2011년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도 세종은 자신의 감정을 마구 표출하는 캐릭터로 그려진 적이 있다.

<나랏말싸미>에서의 세종도 희로애락의 감정에 휘둘린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대로 일을 진행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두루 들어주려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무엇보다 눈병으로 인해 시력을 다 잃기 전 한글 창제 작업을 끝내야 한다며 조바심을 내는 장면이 크게 부각된다.

이는 성군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역사 속에 박제된 인물처럼 느껴지는 세종을 인간적 측면에서 새롭게 조명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휴머니티를 표현하는 연기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배우 송강호가 세종을 맡은 것은 그런 점에서 적절하다.

박해일이 연기한 승려 신미는 이 영화를 통해 논쟁적 인물로 떠올랐다. 과연 신미가 한글 창제 과정에서 그토록 큰 역할을 한 것일까? 제작사가 분명히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가미해 꾸민 이야기’라고 밝혔음에도 ‘신미 주도설’은 논쟁을 부르고 있다. 이것이 비생산적 논전에 그치지 않고, 한글 창제 과정을 좀 더 잘 드러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영화가 ‘신미 주도설’을 채택한 것은, 기존 사극과 차별성을 두려했기 때문인데 결과적으로 유교의 나라가 불교의 세계를 어떻게 품었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신미는 한글을 창제하는 데 기여해 불국정토를 부흥시키려는 야심을 지닌 인물이다. 유교 국가를 유지해야 하는 소명을 지닌 세종과 길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길이 다른 두 인물이 한글 창제를 위해 손을 잡고, 때로 갈등하고 협력하는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이 영화에서 신미 못지않게 새롭게 조명된 인물이 소헌왕후다. 무엇보다 소헌왕후는 진취적인 미래관을 지녔다. 그녀는 궁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암탉이 울어야 나라가 번성한다. 새 문자를 열심히 익혀 각자 사가의 여인들에게 퍼뜨려라.”

자신의 아버지가 태종에게 역적으로 몰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한을 품고 있는 소헌왕후. 그러나 그녀는 지아비를 원망하는 대신에 백성을 위한 길에 동참하고 여인들이 새 문자를 지켜낼 주역임을 내다봤다. 배우 전미선은 그런 소헌왕후 역에 적임이었다. 다른 배우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배역과의 일체감을 보여줬다. 전미선이 영화 개봉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은, 극중 소헌왕후의 죽음과 겹치면서 참으로 아릿한 느낌을 준다.  

 

 <나랏말싸미>는 너무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집중적이지 못한 측면이 있으나, 그 메시지들은 하나같이 우리 시대에도 새겨볼 만한 가치가 있다. 조철현 감독은 각본가 출신답게 극 곳곳에 기억해둘 만한 대사를 배치한다. “나는 새 문자로 그 독점을 깨버리고, 세상의 모든 지식을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산스크리트어에서 걱정과 장작은 같은 말이랍니다. 장작은 죽은 자의 몸을 태우고, 걱정은 산 자의 마음을 태우기 때문에.” “그래, 언문(諺文)이라고 하자. 언문의 언에는 상스럽고 속되다는 뜻과 함께 강하고 억세다는 의미도 있으니.” 같은 것들이다.

 

이 영화는 팔만대장경을 보존하기 위해 내부 출입이 금지된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을 구경하는 특별한 재미도 준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등 우리 건축의 미려함을 사철의 풍경과 함께 만날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이다.

 

추천영화 

 

<주전장>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 다큐멘터리. 일본계 미국인 감독은 일본에 치우치지도, 그렇다고 한국을 대변하지도 않는 제3자의 시각으로 영화를 다룬다. 제목은 위안부 문제를 논하는 것은 편견과 싸우는 것이라는 뜻.

 

 

<사자>

격투기 챔피언 용후가 구마 사제인 안신부를 만나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 강력한 악(惡)에 맞선다는 스토리다. 주연배우 박서준과 안성기의 연기가 하모니를 이뤄 관객 기대에 부응한다. <기생충>으로 주목받은 배우 최우식이 특별 출연했다.

 

 

<엑시트>

청년 백수 용남과 대학 동아리 후배 의주가 원인 모를 유독가스로 뒤덮인 도심을 탈출해야 하는 비상 상황을 그린 재난 탈출 액션영화. 배우 조정석이 그의 주종목인 코믹으로 돌아왔다. 여기에 가수와 배우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윤아가 합을 맞췄다.

 

 

<누구나 아는 비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 부부인 페넬로페 크루스와 하비에르 바르뎀이 주연을 맡았다. 동생의 결혼식 파티 중 딸이 갑자기 사라지고, 가족 모두가 오랫동안 숨겨온 과거의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며 서로를 의심하게 되는 미스터리영화. 

 

 

기획 장혜정 장재선(문화일보 선임기자/영화평론가) 사진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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