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건강 - 약 좀 쓴 게 약점은 아니다

기사 요약글

얼마 전 상가에서 친구들과 소주잔을 비우게 됐다. 엄숙해야 할 문상 자리였지만 한 잔 두 잔 술이 들어가니 화두는 자연스럽게 성과 건강으로 옮겨갔다.

기사 내용

20대, 30대에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소재가 오로지 여자에 국한되었는데 40대 이후부터는 남자와 여자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건강식품, 의약품, 운동 등)도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이번 모임에선 비아그라가 단연 화제였다.

 

가까이 다가온 발기부전 치료제

 

 

사방에서 비아그라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비아그라와 비슷한 발기부전 치료제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까닭이다.
1992년, 세계적 제약사인 화이자 소속 영국 웨일스의 임상실험 연구소는 심장약을 개발 중이었다. 그런데 임상실험 참가자들에게서 아랫도리가 빳빳해진다는 부작용이 다수 보고되면서 목적지가 바뀌었다.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하던‘유케이(UK)-92480’ 은 5년 후 ‘비아그라’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어 고개 숙인 남자들의 희망이 되었다. 하지만 약값이 비싼 데다 의사의 처방전까지 필요했다. 여기에 약물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밝히길 꺼려하는 우리 문화까지 가세했다. 처방전, 가격, 자존심 세 축의 균형 속에서 비아그라는 많은 남자들이 꿈꾸되 공공연히 입에 올릴 수 없는 음지 문화로 취급되어왔다.


하지만 2012년, 비아그라의 물질특허가 만료되었고,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을 노리던 제약사들은 곧장 복제약 시판 허가를 신청했다. 2012년 5월에만 18개 제약사의 33개 복제약이 시판 허가를 받았으니 제약사들이 비아그라의 물질특허 만료를 얼마나 학수고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2014년 8월현재 복제약 종류가 80가지에 이른다). 비아그라(사실은 비아그라의 복제약들)의 가격은 폭락했고, 의사의 처방전도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비아그라를 음지에 봉인해두었던 삼각동맹의 두 축이 무너진 것이다. 그러니 8명의 친구 가운데 5명이 발기부전 치료제를 ‘재미 삼아(라고 하지만 사실은 절실한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복용하고 경험담을 털어놓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가짜를 위한 효과는 없다

 

2014 상반기 비아그라 친구들 판매순위, 1위 시알리스(릴리, 100억원), 2위 팔팔정(한미약품, 61억원), 3위 비아그라(회이자, 47억원), 4위 자이데나(동아ST, 42억원), 5위 엠빅스에스(SK케미칼, 29억원)

5명 가운데 효과를 봤다는 친구는 2명뿐이었다. 1명은 ‘뭔가 다르지만 잘 안 됐고, 실패했지만 뭔가 다르긴 했다’는 괴이한 독백을 뱉었고, 2명은 아무 변화도 느끼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과거에는 고개 숙인 많은 사내들이 스팸메일을 통해서 아니면 인터넷 불법 쇼핑몰을 거쳐 ‘가짜’ 비아그라를 구입하곤 했다. 약국에서 판매하지 않는 발기부전 치료제는 거의 100% 가짜이며, 발기부전 치료제 이용자의 70% 정도는 가짜에 당했다는 통계가 있다. 그러니 효과를 보지 못한 2명은 가짜에 당한 것일 수도 있다.

 

전통의 치료제들

 

비아그라 등장 전에도 성기능 보조제를 찾으려는 인류의 노력은 잠시도 중단된 적이 없다. 마늘은 4천 년 전부터 정력제로 취급받았고, 근대 유럽에선 초콜릿과 바닐라가 최음제 겸 발기부전 치료제로 각광받았다. 초콜릿은 중세에 이미 유럽에 소개되었지만 지나치게 성욕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프랑스 왕실 등에서 금지된 바 있고, 바닐라는 막강한 정력제로 취급되었다. 동양에선 녹용과 사향, 장어, 인삼 등이 중요한 약재로 활용되었으며, 이들을 섞어‘공진단’이라는 약을 만들기도 했다. 비아그라의 등장으로 구사일생한 동물이 물개와 바다표범이다. 이들은 잘난 생식기를 달고 있는 죄 때문에 마구잡이로 포획되어 해구신이 추출되는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곤 했다. 캐나다의 바다표범은 연간 25만 마리에서 10만 마리 미만으로 포획되고 있으며, 물개도 비아그라 덕분에 멸종 위기를 넘겼다.

 

은밀하게 거대하게

 

비아그라만 전 세계적으로 20억 정 이상 소비됐다. 3천8백만 명 이상의 남성이 비아그라의 도움을 받았다. 초당 6명이 비아그라를 삼키고 침대로 달려가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성인 남성 1명이 연간 1정꼴로 발기부전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다. 비아그라는 ‘인간이 만든 최고의 명약’ ‘해피 드러그(또는 해피 필)’ ‘블루 다이아몬드’와 같은 칭송을 받게 되었다. 복제약의 등장으로 1~2만원대의 가격 부담은 2~5천원대로 내려갔고, 알약 위주였던 과거와 달리 필름이나 가루 등 형태까지 다양해지면서 휴대성까지 높아졌다. 특히 필름형 발기부전 치료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개발한 것인데, 알약 형태보다 약효가 빨리 나타나고 지갑 등에 휴대하기 편하다. 이렇게 다양한 노력과 잠재 고객들의 열의에 힘입어 발기 부전 치료제 시장은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 현재 국내시장은 약 1천억원 규모인데 전문가들은 3천억원까지는 무난하게 확대될 것으로 예측한다.

 

50+에게도 약은 필요하다

 

젊은 남자들은 자신들보다 불과 10~20살 많은 남자들이 발기부전 치료제에 관심을 보이면 강한 혐오 또는 처연한 동정심을 드러내곤 한다. 우리나라 40대 남성의 40%, 50대의 50%가 발기부전으로 고생한다는 통계가 있다. 2008년 비뇨기과 학회지의 한 자료는 50대 남성의 80%가 발기부전이라는 충격적인 데이터를 내밀기도 했다. 50대에 이르면 남성호르몬의 분비가 급속하게 감소하기 때문에 발기부전의 위험성이 높아지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젊다고 발기부전의 악마가 피해가지 않는다. 매사추세츠 의과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1950년대의 40대 가운데 아래 머리를 빨딱 세우지 못하는 사람은 3%에 불과했다. 그런데 1992년에는 절반에 가까운 40%의 40대가 잘 익은 벼처럼 겸손해졌다. 패스트푸드, 정크푸드 섭취는 늘고 운동량은 줄어들면서 혈관질환이 늘어나고, 0.03mm의 연약한 음경동맥까지 막히거나 좁아지면서 침대가 두려워지는 상황이 비일비재해진 것이다. 발기부전은 노인병이 아니라 현대병이 되고 있다. 전염병도 아닌데 발기부전 치료제를 먹는 중년 또는 노년을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볼 게 아니라 (잠재적) 환우로 여기고 연대해 나가는 게 올바른 일이다. 최근에는 발기부전 치료제의 여러 부수 효과까지 보고되고 있다. 시차 적응을 돕고, 심폐기능을 향상시키고, 기억력이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등장했다. 진통 효과는 물론 당뇨병에 효과적이라는 보고까지 등장하니 현대 의학이 만들어 낸 인삼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이렇게 좋은 의학적 개가를 놓고 나이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진 말자. 그리고 과학의 도움을 받으면서까지 성행위에 탐닉하는 호색한으로 취급하지도 말자. 마른 기침이 나서 용각산을 먹고 대화를 나눈다고 지난친 수다쟁이가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마찬가지다. 몸으로 하는 대화가 그립다고 색마는 아니다. 살냄새 속에서 태어난 인간이 고향의 내음인 살냄새를 그리워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닐까.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