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핫플, 30년 전 그 신촌 미네르바

기사 요약글

20대 때 자주 찾던 미네르바 카페를 50대가 되어 다시 찾았습니다.

기사 내용

 

 

“12시, 독수리다방 앞에서 봐!”

 

휴대전화 대신 공중전화를 사용하던 시절, 우리에겐 늘 만남의 장소가 있었다. 혹여나 약속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땐, 다방 내부 게시판에 전할 말을 종이에 써서 꽂아두기도 했다. 독수리다방이 신촌을 대표하는 만남의 장소였다면, 미네르바는 클래식과 커피를 좋아하는 학생들의 아지트였다. 본래 미네르바는 커피를 좋아하는 연세대 대학원생 친구들끼리 만든 카페였기 때문이리라.

학생들이 연 카페였으니 시설은 그야말로 열악했다. 수도 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아 물통에 물을 길어가며 커피를 만들었을 정도다. 이 열악한 공간이 뭐가 좋다고, 좁은 공간에 어찌나 찾는 사람이 많았는지 손님들이 밖에서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손님 한 명이 나가면 한 명씩 들어오는 식이었다.

특히 미네르바의 매력은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진하게 번지는 고소한 원두향에 있다. 소설가 성석제는 <쏘가리>에서 미네르바를 이렇게 묘사했다.

“클래식 음악보다는 커피향이 더 인상적이고, 커피향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커피를 끓이는 알코올램프이고,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구석자리에서 눈을 감고 인상을 쓰고 있는 70년대식 낭만주의자들이다.”

필자 또한 촌스러운 낭만에 심취해 격자 무늬 나무 창틀을 바라보며 미간에 힘을 줬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청춘이 머물러 있는 이곳에서 수집하게 될 추억을 기대하며 미네르바를 다시 찾았다.

 

 

북적거리고 화려한 신촌 거리에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간판이 유독 눈에 띈다. 미네르바 COFFEE. 더 돋보이는 건 달과 별 모양의 외관 장식. 1975년부터 45년간 신촌 거리를 비추고 있었기에 더 의미가 깊다.

반갑다고 인사하듯 삐걱대는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가 설레는 마음을 한아름 안고 문을 열었다. 아, 30년이 지났음에도 그때 그 시절 그대로 나를 반기는 이곳.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귀에 흘러들어오고, 방금 로스팅된 원두의 고소한 향이 코끝에 스며들었다. 카페 내부의 천장부터 벽, 그리고 바닥까지 뒤덮인 갈색 나무 판자는 분위기를 더 고풍스럽게 만들었고, 햇빛이 스며드는 격자 무늬 나무 창틀은 미네르바의 매력을 다시금 확인하게 해주었다. 

 

Q 30년 전 분위기가 여전히 살아 있네요. 오히려 더 고풍스러워진 거 같은데요.

A 제가 이 가게를 인수하겠다고 다짐한 것도 이 분위기 때문이에요. 가게가 주는 묘한 편안함이 있더라고요. 여기서 커피를 마시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인테리어도 조명과 소품 정도만 바꾸고 거의 그대로 유지했어요. 제가 이 카페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것처럼 손님들에게도 카페에 들어왔을 때 ‘유럽의 시골 다락방’ 느낌이 들게끔 하고 싶었거든요.

 

 

30년 만에 이곳을 찾았지만, 전혀 낯설지 않음이 더 놀라웠다. 오히려 포근하고 편안한 마음이 들어 소박한 위로를 얻는 느낌이랄까. 문득, 지금의 나처럼 옛 청춘의 나와 마주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단골손님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들은 이곳에서 어떤 생각과 감정들이 교차하는지 궁금했다. 

 

Q 단골손님이 많겠어요.

A 그럼요. 한 분은 외국에 사셔서 1년에 한 번씩 한국에 오시는데, 그때마다 카페에 꼭 방문하세요. 그리고 오실 때마다 아직까지 있어 줘서 고맙다고 하세요. 앞으로도 계속 있어 달라고 부탁도 하시고(웃음). 예전 미네르바의 추억이 좋았던 분들은 이곳에 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며 힘을 얻고 가시지요.

 

Q 추억의 장소에 가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군요.

A 저도 그래요. 어렸을 때 갔던 분식점을 다시 가면 옛날 그 모습이 반갑더라고요. 그곳이 나한테 의미 있는 곳이라면 그곳에 있는 나 또한 의미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와 비슷한 거죠. 내가 슬프거나 힘들 때 과거의 소중한 추억들을 떠올리면, 거기서 비롯되는 다양한 감정들이 현재를 벗어나게 해주는 해독제 역할을 해주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미네르바도 많은 분께 소박한 위로가 될 수 있는 거 같아요.

 

 

미네르바가 건네준 따뜻한 위로의 근원을 알고 나니, 카페를 가득 메운 커피향을 맛보고 싶어졌다. 미네르바가 인기 있었던 이유가 ‘사이폰 커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코올램프같이 생긴 사이폰(Siphone)이라는 도구에 커피를 추출하는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Q 사이폰 커피가 여전히 메뉴에 있어서 반갑네요.

A 45년 동안 지켜오고 있죠. 증기압으로 추출하다 보니, 한 잔 내리는 데 10분 정도 걸려요. 그래도 손님들이 계속 찾아요. 주문이 들어오면 사이폰을 세팅하고 손님 책상 위에서 직접 만들어드리거든요. 정성 들여 커피를 만드는 걸 직접 두 눈으로 보니까 손님들도 엄청 좋아하세요. 보는 것도 신기한데, 만드는 동안 고소한 원두 향도 맡을 수 있으니 10분이 짧게만 느껴진다고 하더라고요.

 

Q 미네르바 커피가 더치커피의 원조인거죠?

A 그렇다고 볼 수 있겠죠. 미네르바의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은 한 잔의 커피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점에도 점수를 줍니다. 사이폰 추출 방식이 보여지는 노력이라면, 보이지 않는 노력도 있어요. 바로 ‘원두’예요. 30년 전만 해도 원두커피는 고급커피라는 인식이 강했어요. 단순히 값이 비싼 걸 넘어서 커피 한 잔이 매우 귀했던거죠. 그런데 지금 보면 커피 한 잔의 가치는 모르는 상태에서 시장만 너무 커졌어요. 커피의 가치가 ‘의미’가 아닌 ‘돈의 규모’로 평가받는 것이 안타까워요. 커피 맛과 향기는 매우 민감해서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은 금새 알아차려요. 원두의 질과 가공 정도, 물의 온도, 타이밍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정성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죠. 

 

 

수많은 프랜차이즈 카페들 속에서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미네르바. 45년 동안 신촌의 시간과 함께해 온 미네르바는 2015년에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1970년대 신촌 대학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추억의 장소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현재도 젊은 세대에게 핫플레이스라는 점. 뉴트로 감성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이유다.

뉴트로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젊은 세대들에게 미네르바는 ‘감성’적인 곳이 아니다. ‘갬성’적인 곳이다. 갬성 라이프를 즐기기 딱 좋은 곳인 것이다. 세대를 아우르는 낭만과 감성을 가진 미네르바에서 바쁜 일상에 쉼표를 찍음으로써 소박한 위로를 얻고, 요즘 핫한 뉴트로 갬성을 통해 젊을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서울미래유산이란?

서울미래유산은 서울특별시가 서울의 역사를 미래 세대에게 전하기 위해 가치가 있는 자산을 발굴하여 보전하는 프로젝트다. 아직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았지만 서울 사람들이 근현대를 살아오면서 함께 만들어 온 공통의 기억 또는 감성으로 미래 세대에게 전할 100년 후의 보물이라 할 수 있다.
 

 

미네르바 카페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명물길 18 2층

문의 02-3147-1327

영업 시간 월~토요일 오전 11시~오후 10시 30분, 일요일 오후 12시~오후 10시(매달 첫째 주 일요일 휴무)

가는 방법 신촌역 3번 출구에서 도보로 5분

 

 

기획 우성민 사진 지다영(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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