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에 반대합니다

기사 요약글

요즘 SNS상에는‘만일의 갑질’에 대비해 나름의 경고를 내건 가게들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기사 내용


‘반말하면 반말로 답합니다’‘커피 나왔다 가져가~ 반말 들으니까 어때요?’ 하는 문구를 계산대 앞에 붙여두는 식이죠. 그런가 하면 모 병원에서는 간호사들이‘반말 금지’‘상호 존중’ 등이 적힌 배지를 자율적으로 착용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는 엄연히 갑질이 존재하며 이에 저항하는 움직임 역시 동시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민들은 지금껏 어떤 갑질을 경험했을까요?“이거 실화냐?”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갑질의 천태만상을 공개합니다.

 

 

결코‘당하는 을’로 살지 않겠다는 김효린(가명) 씨

자칭‘일 잘하는 직원’이었던 제 상사는 사실‘횡령’에 특기가 있는 사람이었어요. 개인적인 용무로 회사 퀵을 이용하는 건 애교였고 회사 출장을 가면서 가족과 함께 머물 숙소, 거기다 항공권까지 함께 결제를 시켰거든요. 가족의 회사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대량 구입해 거래처 선물로 돌리는 일도 있었고, 업무와 상관없는 외식도 법인카드로 결제하곤 했어요.

저는 바로 그 아래 직원인지라 그녀의 만행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는데 윗사람에게는 입안의 혀처럼 굴면서 부하 직원들에게는 폭언과 비아냥을 일삼는 그녀의 태도가 특히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렇게 인간적인 실망을 거듭하던 어느 날, 일이 터지고야 말았죠.

그녀가 지시한 대로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거든요. 그런데 모든 직원이 보는 앞에서 마치 제가 단독으로 의사결정을 하다 문제를 일으킨 것처럼 몰아붙이더라고요.‘왜 항상 그런 식이냐’는 말에 이성이 날아가버린 저는 그간의 과정을 줄줄 나열하며 지시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드러냈는데,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던 그녀의 입에서 급기야‘해고’ 소리가 나오더라고요. 이런 버릇없는 직원과 함께 갈 수 없으니 앞으로 복종을 하든가 회사를 떠나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며 갑질을 하길래 미련 없이 후자를 택했어요.

물론 곱게 나오진 않았죠. 그녀의 부당한 업무 지시, 회사 뒷담화가 카톡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 모든 대화를 갭처해 회사 대표에게 전송했거든요. 결과적으로 그녀도 회사에서 쫓겨났어요. 듣자 하니 요즘 이직 준비 중인지 회사로‘평판 조사’ 전화가 걸려 온다는데 호의적으로 말해준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다 자업자득이죠.



+INFO
국가인권위원회가 2018년 20~64세 성인 남녀 노동자 1,5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1년 동안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73.3%나 됐다. 가해자의 77.5%는‘상급자’였고 회사에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10명 가운데 1명꼴이었다.

 

 

이 직장의 장점은 ‘칼퇴’뿐이라는 윤지환(가명) 씨

요양병원의 물리치료사로 근무하고 있어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재활을 돕고, 아픈 곳을 치료하는 일인데 몸을 쓰는 일이라 체력적인 부담이 만만치 않죠. 그런데 몸보다 더 힘든 건 상사의 갑질이에요.

특정 치료의 경우 물리치료사에게 따로 수당이 돌아가기도 하거든요. 아주 큰돈은 아니지만 운이 좋으면 한 달에 20~30만원의 부수입을 올릴 수 있을 정도죠. 그런데 저희 병원의 경우 환자 배정에 관한 권한이 팀장 한 사람에게 있어요. 자연히 자기가 좋아하는 직원에게는 수당이 붙는 환자를 배정하고, 못마땅한 직원에게는 수당은커녕 성격이 괴팍하거나 유난히 힘이 세 컨트롤하기 어려운 환자를 배정해버려요.

저 같은 경우는‘못마땅한 직원’으로 분류돼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수당은 적죠. 정말 얄미운 건 본인이 늘 3~4번째로 수당을 받아 가게끔 포지셔닝한다는 점이에요. 보는 눈이 있으니 1, 2등 자리는 늘 후배들에게 주고 본인은 적당히 3~4위를 유지하면서 수당을 가져가겠다는 속셈인데, 매달 그런 계산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 떨어지죠.

동료들이 저더러 속된 말로‘싸바 싸바’하며 팀장한테 잘 좀 보이라는데 성격상 안 되는 걸 어떻게 해요. 저도 이 상황이 그저 답답합니다.



+INFO
2017년 설립된‘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부당행위를 제보 받고 이를 해결하고자 만든 시민단체다. 변호사, 노무사 등의 전문가가 참여해 운영되는 이곳에 1년간 들어온 제보는 총 2만2,810건. 한편 직장갑질119에서 발표한 2018년‘대한민국 직장갑질 지수’는 100점 만점에 35점이었다(직장인 1천명 대상, 68개 유형의 갑질 설문조사에 대한 결과).

 

 

지금 같았으면 같이 싸우고도 남았을 거라는 장지연 씨

고3 때 모 백화점의 아동복 코너로 취업 실습을 나간 적이 있어요. 물건을 판매하거나 포장하는 일을 주로 했는데, 한번은 한 달 전 구입한 아이 옷을 가져와 환불해 달라는 아주머니를 응대한 적이 있었죠. 환불 기간이 지나기도 했지만 섬유유연제 냄새가 폴폴 나는, 누가 봐도 몇 번 세탁한 옷을 물러 달라는데 정말 어이가 없었어요.

아이 피부에 트러블이 났다, 불량품인 것 같다며 트집을 잡기에 규정에 의해 환불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되레 매니저 나오라고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그렇게 진상을 부려 환불까지 받아놓고 이번에는 제 태도에 문제가 있다며 사과를 요구했어요. 쳐다보는 눈빛이 기분이 나빴다면서요. 결국 눈물까지 뚝뚝 흘려가며 빌었어요. 그 일이 트라우마가 돼 서비스직은 쳐다보지도 않게 됐죠.

 

 

요식업 종사 4년 만에 스트레스로 위장병을 얻었다는 김장원(가명) 씨

패밀리 레스토랑 내 키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의 일인데 얼굴에 화상을 크게 입은 아이가 들어왔어요. 어린 것이 얼마나 아프고 뜨거웠을까 안타까운 마음으로 괜찮은지 물어봤는데, 조금 있다 어떤 여자가 들어와 제 따귀를 때리더라고요.“네까짓게 뭔데 내 새끼 얼굴을 보고 표정을 구기냐”며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는데 너무 놀라서 손이 바들바들 떨렸어요. 난 그냥 걱정을 했을 뿐인데… 전후 사정은 들어보지도 않고 사람에게 손찌검을 하는 게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어떻게 된 일인지 충분히 설명을 했고 본인도 납득을 한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사과를 하지는 않았어요.

 

 

요즘 진지하게 다른 업종을 고려하고 있다는 주영환(가명) 씨

편의점 점주 2년 차, 세상의 모든 진상은 다 만난 기분이에요. 아마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면 저 역시‘진짜 그런 사람이 다 있을까’ 의심했을 거예요. 피던 담배를 그냥 들고 들어오는 손님, 신용카드를 집어 던지며 계산하라는 손님,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살이 그렇게 쪄서 시집이나 가겠냐는 망언을 하는 손님, 외롭다며 30분간 드라마 줄거리를 늘어놓는 손님 등 애를 먹이는 방법도 다양하죠.

한번은 맞은편에 영업 중인 은행이 있는데도 500원짜리 동전 8만원 어치를 가져와 지폐로 바꿔 달라는 손님도 만났어요. 실랑이할 힘도 없어 세어보지도 않고 그냥 내어줬죠. 휠체어를 타고 오시는 어떤 손님은 꼭 문밖에서 초코우유를 달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선의로 직접 카드를 받아 계산을 해드렸는데도 꼭 우유갑을 문 앞에 던지고 가더라고요. 매일 이런 상황을 접하다 보니 모든 손님을 친절히 대하겠다는 초심도 잃게 돼요.

담배, 종량제봉투, 택배, 복권 이런 건 마진이 거의 남지 않는 그야말로 서비스 품목인데, 그런 손님들이 와서 갑질을 하면 솔직히 더 화가 나죠. 요즘 저는 손님은 왕이라는 말이 제일 싫어요.

 

 

기내 서비스 하다 손목 관절염이 다 왔다는 정이연(가명) 씨

10년간 두 개 항공사의 승무원으로 활동했어요. 유니폼을 받아 든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죠. 이름이 궁금하다며 가슴에 손을 뻗어 명찰을 만지려던 남자 승객, 비즈니스 좌석이 텅텅 비어 있는데 왜 업그레이드를 해주지 않느냐며 따지던 승객, 발로 자신의 가방을 툭툭 치며 대신 올려 달라던 승객 등. 이렇게‘손님의 갑질’로 피곤할 때가 많았지요.

77.9%
한 인권운동단체에서 2018년 승무원 521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77.9%가 적어도 한 번 이상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피해 유형으로는 언어폭력이 61%로 1위를 차지했고 성희롱 및 성폭력이28%로 2위였다. 

 

 

세월이 흘러 자기도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는 간호사 염진희(가명) 씨

후배들의 눈에 제가 어떤 선배로 비쳐질지 모르겠지만, 저는 신입 간호사 때 겪었던 이른바‘태움’ 문화를 반복하기 싫어 나름 절제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선배들이 후배들을 가르칠 때‘영혼이 재가 될 정도로 엄격히 다룬다’는 뜻에서 태움이라는 은어가 생겼는데,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병원이니만큼 실수하지 말고 긴장하며 환자를 돌보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고 해요. 하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인격 모독, 히스테리, 화풀이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게 사실이죠.

제 사수로 배정된 선배는 두 아이를 낳고도 여전히 직장 생활을 한다는 점에서 스스로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사소한 실수에도 그럴 거면 그만두라는 둥, 직장 생활이 장난인 줄 아냐는 둥 폭언을 일삼았어요. 환자 케어에 대한 실수를 지적하는 건 그나마 괜찮았지만 허리가 통짜라 유니폼이 안 어울린다, 네가 노안이라 열 살이나 많은 내가 동생처럼 보인다는 식의 인신공격 앞에서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곤 했죠.

의사에게 싫은 소리를 듣거나, 환자로부터 기분 나쁜 일을 겪은 날이면 히스테리의 정도가 훨씬 심해져 나도 덩달아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는데, 이런 일상이 반복되면서 우울증까지 찾아왔어요. 이런 사정을 모르는 부모님은 딸이 큰 대학병원의 간호사가 됐다며 좋아하셨지만, 그 시절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사표를 쓸까 말까 고민하며 병들어갔죠. 그렇게 버티는 와중에 새로운 신입이 들어오면서 저에 대한 감시가 좀 느슨해졌어요. 물론 그 스트레스는 다 신입에게로 갔죠. 된통 깨지는 후배가 안쓰러웠지만, 저로서도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더라고요. 시집살이는 당해본 사람이 더 시킨다더니 함께 비슷비슷한 경험을 한 동기들도‘교육’이라는 명목으로 후배들에게 많이들 까칠하더라고요. 수액을 잘못 놔 환자 팔을 퉁퉁 붓게 만들었다는 등의 이유로 혼내기는 하지만, 적어도 저는 생긴 것 가지고 트집을 잡는 이상한 선배는 아닌 것 같아요.


+INFO
모 병원 간호사의 자살 등, 일명‘태움’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야기되자 정부에서는 대한간호협회 산하에 인권센터를 마련해 병원 내 가혹행위 적발 시 간호사·의사 면허를 취소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말말말

우리 며느리는 꼭 이름도 요상한 식재료를 들먹이며 입버릇처럼‘어머님 그거 모르세요?’ 소리를 잘해요. 로마네스크, 아크라 내가 그런 채소를 어떻게 알아요. 모를 거 뻔히 알면서 자꾸 묻는 것도 일종의 갑질 아니에요?

애기를 봐주시는 아주머니가 전에 일하던 곳과 저희 집을 은근히 비교해요.‘전에는 반찬으로 꼭 장조림을 해놨다’‘전에는 애기 엄마가 좀 일찍 들어와 퇴근을 일찍 시켜주는 적이 많았다’ 등. 요즘은 누가 누굴 고용한 건지 잘 모르겠어요

은퇴 1년 차, 아내의 갑질에 기가 죽었습니다. 나는 그저 냉장고에 오래된 음식을 버리라고 했을 뿐인데, 건강을 위해 국을 좀 싱겁게 끓이라 했을 뿐인데, 그때마다 내일부터는 당신이 밥을 지어 먹으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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