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마시면 더 맛있다

기사 요약글

강남역 뒷골목에 우리 술을 무료로 가르쳐주는 박물관이 있다.

기사 내용

 

많은 가게와 사람들로 늘 번잡한 강남역이지만, 중심 거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의외로 한적한 주택가 골목이 있다. 그 골목 어귀에 자리한 전통주갤러리는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시음 명소’로 꼽힌다. 매달‘이달의 술’ 4~5가지를 선정해 시음을 진행하는데, 단순히‘맛’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술의 명칭과 재료, 지역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를 곁들여 한층 재미있고 흥미로운 시간을 제공한다. 무료인 데다 매달 새로운 전통주가 등장해서 한번 방문한 사람은 방앗간의 참새처럼 주기적으로 이곳을 찾는다고.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협업해 운영하는 이곳은 우리 농산물을 이용해 만든, 각 지역의 전통주를 한곳에서 소개·판매하자는 당초의 취지를 살려 전통주에 대한 교육과 시음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 가면 무엇을 배우고, 어떤 술을 맛볼 수 있을까?

 

 

1층 전통주갤러리
2층 홍보관 카페 겸 전국 식품 명인들의 제품을 만날 수 있는 장소다.
3층 체험장 다도 체험, 조청고추장 만들기, 보자기 포장법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열린다.

 

각 지역의 대표 전통주를 한곳에서 만나다

오후 1시가 되자 한 무리의 중년들이 전통주갤러리로 들어섰다. 사전 예약을 통해‘전통주 체험 프로그램’을 신청했다는 그들은“강남역에 이런 고즈넉한 공간이 다 있었냐”며 감탄하기 바빴다. 신청자가 다 모인 것을 확인한 직원은 곧 전통주에 대한 상식을 전했다.

“우리 선조들은 계절별로 각각 다른 술을 빚어 즐기곤 했습니다. 봄에는 두견주라 해서 진달래 꽃잎을 주재료로 술을 빚었는데요, 향기가 아주 일품입니다.지난번 남북정상회담의 만찬주로 등장한 술이 바로 이 두견주죠. 그런가 하면 여름에는 여름을 잘 넘긴다는 의미의 과하주를 담가 마셨습니다. 여름에는 기온이 높아 식재료가 금방 상하기 마련인데, 약주에 소주를 섞어 빚는 방식으로 쉽게 변질되지 않는 술을 개발했으니 조상들의 지혜가 대단하죠. 지역마다 과하주의 맛이 조금씩 다른데, 전남 영광에서는 술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수령들이 타 지역 발령이 싫다며 승진을 거부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밖에 가을에는 햅쌀로 빚은 신도주를, 겨울에는 눈 속에서도 피어난다는 매화를 이용해 만든 매화주를 즐겼습니다.”

 

 

갤러리에 전시된 술을 쭉 둘러보며 증류주의 원리, 전국 각지에서 생산된 술의 종류, 한국형 와인이 만들어진 배경 등에 관한 설명이 이어졌고, 참가자들은 감탄하거나 메모하며 각자의 방식대로 전통주를 배워갔다.
이번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인 시음회는 갤러리 중앙에 마련된 코너에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정갈하게 놓인 술잔을 앞에 둔 채 서서 시음을 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스탠딩 바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매달 특정한 테마를 정해 술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이달엔 그윽한 가을밤처럼 깊은 맛을 자랑하는 우리 술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여기 이 다섯 종류의 술을 차례대로 시음하는데 도수가 점점 올라가게끔 순서를 배치했으니 참고해주세요.”

참가자들에게 돌아간 첫 번째 술은 경북 상주에서 올라온‘은자골 곶감 생 탁배기’. 탁배기는 막걸리란 뜻의 경상도 사투리로 곶감 분말이 첨가돼 끝맛에 살짝 곶감 향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은은한 단맛을 자랑하는 탁배기 시음이 끝나자 이번에는 익산의 명주, 호사춘을 300년 만에 복원했다는 전북 전주의‘우리술 오늘’이 등장했다. 양조자가 직접 재배 한 쌀로 빚은 이 술은 진한 맛과 특유의 산미가 돋보여 여기저기서“맛있다”는 평이 절로 나왔다. 뒤이어 홍고추와 들국화로 빚어 매콤한 향이 도는‘한산 소곡주’를 시음했는데 술의 명칭에 대해 백제 사람들이 나라를 잃고 슬픔에 잠겨‘곡’을 하며 만들었다는 설과 누룩을 적게 써‘소곡’이라고 한다는 설 등 재미난 설명이 이어졌다. 그 밖에 공주 계룡산에서 백 일을 발효해 만들었다는‘계룡 백일주’, 제주산 꿀과 잘 익은 황매실의 조화가 환상적인‘매실원주’까지 맛보고 나서야 시음회가 끝났다.

슈퍼에서 파는 막걸리와 제사 때 올리는 정종이 전통주의 전부인 줄 알았다는 한 참가자는“우리나라의 전통주가 이렇게나 다양한 줄 몰랐다”며“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니 술 하나하나가 훨씬 더 귀하고 특별하게 느껴진다”는 후기를 전하기도 했다.

 

 

한편 전통주갤러리에서는 무료 시음회 외에도 다채롭고 수준 있는 전통주 체험을 위해 유료로 프리미엄 시음회를 운영하고 있다. 탁주, 약주, 증류주, 과실주 등 열 가지 이상의 술을 접할 수 있는 데다 전통주에 관한 깊고 풍부한 지식을 전해 의미 있는 모임을 기획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4~10인이면 신청이 가능하고, 가격은 1인당 2만5000원이다.
꼭 단체를 구성하지 않아도 참여가 가능하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정기 프리미엄 시음회가 열리니 관심이 있다면 신청해보자.

 

+PLUS INFO 1
전통주갤러리

• 운영 시간: 오전 10시~오후 8시(월요일 휴관)
• 주소: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5길 51-20
• 문의: 02-555-2283

상설 시음회(시음주 4~5종/무료)
• 한국어· 일본어: 오후 1, 3, 5시
• 영어: 오후 2, 4시

프리미엄 시음회(10여 종/1인 2만5000원)
• 4~10인 단체 시음(일정은 협의)

정기 프리미엄 시음회(10여 종/1인 2만5000원)
•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3시 30분
• 1인 이상 신청/선착순

예약 방법네이버 검색창에 전통주갤러리’ 검색
→ 네이버 예약을 통해 접수

+PLUS INFO 2
12월에는 이런 술을 시음 할 수 있어요

•‘향수’ 충북 옥천90년 전통의 옥천 이원 양조장에서 빚은 밀 막걸리.
•‘영일만 친구’ 경북 포항포항공과대학교에서 개발한 포항 쌀에 우뭇가사리를 더했다!
•‘천안 연미주’ 충남 천안일곱 가지 한약재를 넣어 더욱 은은하고 부드러운 맛이 난다.
•‘소호’ 경기 평택한반도를 호랑이로 치자면 경기도 평택은 배꼽! 평택에서‘웃는 호랑이’란 뜻을 담아 출시한 증류주.
•‘허니비와인’ 경기 양평양평의 우수한 벌꿀 맛을 느낄 수 있다.

 

 


INTERVIEW
전통주갤러리 관장 남선희


전통주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요.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대축제 수상작, 전통주 명인이 만든 술, 그리고‘찾아가는 양조장’ 사업에 참여하는 전국 양조장의 술이죠. 전국에서 수많은 술이 생산되는데 그 가운데 양질의 제품을 선정해‘믿고 마실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한 달 4~5가지씩, 1년이면 대략 60종류의 술을 맛보실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술을 접한 뒤 명절이나 모임 때‘점 찍어둔 술’을 구입해 가시는 분이 많습니다. 해당 술의 특징, 유래를 직접 지인들에게 설명하며 즐기고자 하시기 때문에 저희도 최대한 다양한 설명을 드리고자 노력하죠. 이곳은 전통주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일깨우는 정도의 교육을 진행하지만, 좀 더 전문적이고 심화된 공부를 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에게는 전국에 있는‘찾아가는 양조장’이라든지 국가가 인증하는‘우리 술 빚기 교육기관’을 소개해드리기도 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전통주에 대한 문화와 역사를 알면 풍미(風味)는 배가됩니다.

 

*찾아가는 양조장이란?
농림축산식품부와 aT가 선정하는‘찾아가는 양조장’은 말 그대로 양조장에 찾아가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 역사, 문화 등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현재 전국 34개 양조장에서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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