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독서

기사 요약글

가을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만난 책들

기사 내용

메르타 할머니의 우아한 강도인생
 

글 카타리나 잉엘만 순드베리 출판사 열린책들

평균 나이 79세. 이들은 복면을 쓰고 총으로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은행 강도가 아니다. 누구도 다치지 않게 조심하며 친절하고 다정하게 범죄를 저지른다. 체력의 벽 앞에서 좌절도 하지만, 연륜을 앞세워 모든 작전을 성공시킨다. 게다가 쓰레기 차량의 진공파이프를 이용해 은행을 터는 방식은 가히 천재적이다.


이 책은 세계적으로 200만 부 이상 판매됐으며 스웨덴 공영방송 SVT에서 드라마로 제작 예정인<메르타 할머니>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메르타 할머니> 시리즈는 사회에 불만을 품은 70~80대 노인 다섯 명이 강도단을 만들어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사회를 바꿔나가고자 하는 내용을 담은 유머러스한 범죄소설이다. 1편에서 답답한 요양원에 사느니 차라리 감옥에 가는 게 낫겠다며 범죄를 저지른 메르타 할머니와 친구들. 결국 감옥에 들어갔지만 그리 살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2편에서 노인 강도단은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향한다. 카지노를 털어 그 돈으로 노인과 청소년 시설, 예산이 부족한 문화시설 등에 기부한다. 3편에서는 이제 은행 강도 정도는 쉬운 일로 여기는 프로 범죄자들(?)이 되어가는 이들의 모습이 유쾌하게 펼쳐진다.

 

이들의 최종 목표는 노인들이 편하게, 건강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이상적인 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인 강도단은 부호와 유명인들이 가득한 지중해의 휴양도시 생트로페로 가서 초호화 요트를 훔치기로 한다. 그러나 메르타는 생트로페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탈세와 사기로 돈을 모았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한편 약혼 중인 천재와 메르타 사이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하루빨리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 하는 천재와 달리, 메르타는 범죄를 계획하고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는 일에 푹 빠져 결혼에 대한 생각을 잊고 있기 때문. 천재는 자꾸만 결혼식을 미루고 돈에 집착하는 메르타가 서운하기만 하고, 두 사람 사이는 점점 소원해지며 황혼 로맨스도 재미있게 펼쳐진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마냥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메르타 할머니와 친구들은 맨 처음에는 요양원의 열악한 환경에 분노했지만, 점차 사회 곳곳에 있는 문제들을 깨닫게 된다. 복지정책이 난항을 겪고, 공공시설에 가야 할 예산은 갈수록 줄어들고, 사람들은 텔레비전과 컴퓨터 앞에서 무기력한 일상을 보낸다. 금융업자들이 엄청난 거액을 만지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애 쓰는 모습에서 씁쓸한 현실을 읽는다. 노인 강도단이 황당한 범죄를 저질러서라도 바꾸고 싶어 하는 사회 모습은 먼 나라 스웨덴의 이야기라고만 하기에는 너무나 익숙하다.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하며, 행동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엉뚱하지만 귀여운 5인조 노인 강도단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에어비앤비의 청소부
 

글 박생강 출판사 은행나무

가족이 있는 어엿한 가장에 40평대 아파트도 있지만 혼밥, 혼술처럼‘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길 희망하며 이태원 에어비앤비에 머물게 된다. 소설은 이태원의 어느 에어비앤비 룸 세팅과 청소일을 제안받고 실제로 그곳에서 일한 저자가 직접 겪은 흥미로운 일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어른이지만 어른이 되는 성장이 더 필요했던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내 삶에서 중요한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부엌 도구 도감
 

글 앨런 노스 출판사 그린라이프

요리법에 관한 책은 많지만, 부엌의 구조나 도구 사용법에 대한 궁금증에 해답을 제시하는 책은 거의 없다. 이 책은 부엌 자체는 물론 그 안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차리고, 보관할 때 쓰는 도구들에 대한 배경지식을 제공하는 가이드북이다. 특히 새로운 부엌 도구와 다양한 재료의 원리를 이해하기 쉬운 과학으로 설명해 흥미롭다. 부엌의 삼각 동선, 작업대의 위치, 부엌 배치, 부엌 도구 청소 등에 대한 팁도 제공한다.

 

나를 사는 순간
 

글 안드레아스 알트만 출판사 책세상

독일을 대표하는 여행작가인 저자가 수많은 여행지에서 만난‘단 한 번뿐인 인생을 아름답게 하는 순간’의 기록을 담은 에세이다. 다리가 한쪽밖에 없음에도 버스 안에서 여자에게 좌석을 양보하는 장애인 신사, 안부를 묻는 버스 기사의 친절한 한마디에 눈물을 흘리는 난민 여자 등 그의 프레임에 포착된 사람들은 우리네 삶을 온기 가득한 순간들로 바꿔주는, 기적 같은 힘을 보여준다.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글 김제동 출판사 나무의마음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헌법 제37조 1항이다. 저자는 신문 칼럼에서 우연히 이 조항을 읽고 마치 연애편지의 한 구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사랑하는 이유를 서른여섯 가지 적어놓고 마지막에 “내가 여기 못 적어놨다고 해서, 안 적었다고 해서 널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야”라고 추신을 붙인 러브 레터. 헌법을 유쾌하고 따뜻하게 풀어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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