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여자와 연애하는 남자는 다 도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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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여자와 연애하는 남자는 다 도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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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연령도 여성 상위 시대

올봄, 드라마 <밀회>가 화제를 모았다. 40대 중반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미모를 뽐내는 김희애도 대단했고, 19세 연상의 대선배와 주고받는 감정 연기에서 밀리지 않은 유아인도 칭찬받을 만했다. 언젠가 부터 드라마에서 연상녀와 연하남 커플이 대세가 되었다. 그런데 재미난 점은 남녀 사이의 나이 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하남과의 러브 스토리를 잘 소화하기로 유명한 하지원, 그녀가 등장하는 드라마에서 연인의 나이 차는 몇 살을 넘지 않았다. 그런데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이종석이 10세가 많은 이보영 누님에게 말과 마음을 함께 놓기 시작하더니, <밀회>에서는 유아인이 ‘어쩌면 엄마뻘’일 수 있는 김희애 앞에서 정신 줄을 놓기에 이른 것이다. 연상녀 신드롬은 여성의 지위 향상이 라는 사회적 현상을 반영한다. 아이를 낳고 집 안에서만 생활하는 게 아니라 여성도 사회 활동을 열심히 할 권리가 있다는 의미. 2000년대 초반에는 ‘올드미스가 아니라 골드미스’라는 가설이 기정사실로 자리 잡았다. 평균 결혼 연령이 점점 높아지는 것도 분명하다. 여성의 사회적 성취와 노력에는 찬사를 보낸다. 박수 받을 일이다. 그런데 사실, 경쟁 사회에서 전문성을 확보하고 자기 자리를 찾아 뿌리를 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건 남자도 마찬가지다.

 

 

남자의 나이가 범죄?

그런데 드라마 속 연상이 남자라면 어떨까? 40대 김희애 역할의 성을 바꿔보자.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40대 남자가 20대 초반의 여자‘아이’와 사랑에 빠지는 거다. 이들 사이에 ‘갑을’ 관계까지 형성되어 있다면 왠지 위험한 냄새가 솔솔 난다. 사랑 이야기는 범죄극으로 장르가 변경된다. 더 나아가서 남자의 연령이 50대나 60대로 올라가면 죄질은 더 나빠진다. 사랑에 국경은 없다지만 성의 차이는 있다. 사랑 앞에서 남녀는 평등하지만 여자가 좀 더 평등하다. 여자의 능력은 아름다운 성취지만 남자의 능력은 추잡한 욕망을 실현하려는 미끼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런 시각이 드라마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서울 시내처럼 인파가 북적이는 곳에서 손을 잡은 중년 이상의 남자와 젊은 여자에게 쏟아지는 시선은 둘 중 하나다. 다정한 부녀 관계로 본다면 따뜻한 시선을, 비용과 쾌락의 교환관계로 본다면 경멸로 가득 찬 시선을 보낸다. 그냥, 어쩌다 보니, 나이가 좀 많은 남자가, 나이가 좀 어린 여자와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는, 시나리오는 쉬 만들어지지 않는다.

 

 

할리우드의 연애 생태계

할리우드에는 다양한 커플이 존재한다. 1960년생 배우 더그 허치슨과 1994년생 모델 겸 컨트리 싱어인 코트니 스터든은 한때 깨알 쏟아지는 결혼 생활을 즐겼다. 최근 이혼한 이 커플이 부부의 연을 맺은 건 3년 전인 2011년, 그때 스터든은 미성년자였는데 부모의 동의가 있으면 가능하다는 네바다 주법(州法)에 따라 결혼할 수 있었다. 더그 허치슨은“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나이 차이를 떠나 진실한 사랑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어쩌면 자랑)했다. 우디 앨런은 동거녀인 미아 패로의 양녀였던 순이 프레빈과 결합했다. 둘은 1990년대 중반에 만났으니까 50대와 20대의 연애였다. 이제 77세와 42세가 된 그들은 함께 잘 늙어가고 있다. 멘사에 회원으로 가입할 만큼 할리우드 최고의 두뇌로 꼽히는 제임스 우즈도 46세 연하녀와 열애 중이다. 알 파치노의 여자 친구도 40세나 어리다. 이들 모두 ‘과속 스캔들’을 일으키기라도 했으면 딸도 아닌 손녀가 될 수도 있었던 여인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아무도 이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나이 차가 큰 남녀의 사랑도 그냥 다양한 사랑의 한 모습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옛날 연애 이야기

‘남자 어른’과‘여자아이’의 사랑을 사랑이 아닌 범죄처럼 바라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어린 여자의 정기를 빨아들여 회춘하려는 전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서 에너지를 얻으려는 인간의 유구한 욕망을 ‘슈나미티즘’이라 한다. <구약성서>의 다윗 왕이 나이가 들어 몸이 허해지자 슈나미(또는 수넴) 마을의 어린 여자아이를 차출해서 왕의 침실에 들였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슈나미티즘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알 수 있다. 로마제국의 어진 황제로 손꼽히는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소녀와 동침해서 건강을 되찾았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퍼지면서 유럽에서도 슈나미티즘 열기가 18세기까지 이어졌다. 프랑스 파리에선 14~15세의 호스티스들이 있는 슈나미티즘 살롱이 즐비했다. 살롱을 찾은 신사들은 어린 여자아이들과 동침했는데, 직접적인 성관계는 금지됐다. 여자아이의 ‘남자 어른’과 ‘여자아이’의 사랑을 사랑이 아닌 범죄처럼 바라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어린 여자의 정기를 빨아들여 회춘하려는 전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서 에너지를 얻으려는 인간의 유구한 욕망을 ‘슈나미티즘’이라 한다. <구약성서>의 다윗 왕이 나이가 들어 몸이 허해지자 슈나미(또는 수넴) 마을의 어린 여자아이를 차출해서 왕의 침실에 들였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슈나미티즘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알 수 있다. 로마제국의 어진 황제로 손꼽히는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소녀와 동침해서 건강을 되찾았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퍼지면서 유럽에서도 슈나미티즘 열기가 18세기까지 이어졌다. 프랑스 파리에선 14~15세의 호스티스들이 있는 슈나미티즘 살롱이 즐비했다. 살롱을 찾은 신사들은 어린 여자아이들과 동침했는데, 직접적인 성관계는 금지됐다. 여자아이의 인권보다는 슈나미티즘의 효과 때문이었을 텐데 아무튼 남자들은 정조대를 착용해서 기가 새어 나가는 걸 방지해야 했다. 동양에서도 정액의 방출을 금지하는 건 비슷하다. 도교의 ‘음양의 도’ 역시 어린 여자아이와 합방하지만 사정하면 회춘 효과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자아이를 잠자리에 들여 회춘하려는 관행이 해방 직전까지 이어졌다. 노인이 직접 아이를 물색하는 게 겸연쩍었는지 ‘윗방아기’ 넣는 일은 아들 몫으로 여겨졌다. 종이나 채무자의 나이 어린 여식을 아버지 침실에 넣어드리는 게 최고의 효도로 통했는데,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드라마 <추노>에서 살짝 엿볼 수 있다.

 

 

모든 사랑은 평등하다

슈나미티즘이 과학적이지 않을뿐더러 인권유린의 요소가 있다는 데에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가 회춘 목적으로 미성년 여자아이를 침실에 들이겠다는 이야기가 아니지 않은가? <밀회>에 등장하는 중년 여인과 청년 남성의 사랑에 고개를 끄덕였다면, 현실에서 중년 이상의 남성과 성년 여성의 사랑에도 눈을 흘기진 말아 달라는 것이다. 할리우드에선 만남과 헤어짐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국경과 연령은 장벽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할리우드의 사랑을 짐승 같다며 ‘그들만의 리그’로 치부하기도 한다. 뭐, 암컷과 수컷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나쁘지 않다. 남과 여를 바라보는 기준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수컷과 여성으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우리 사회의 이중적인 시선이 문제다. 50년 전에는 신성일과 엄앵란 결혼이 화제였다. 엄앵란이 한 살 많은 연상녀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거의 20세 많은 연상녀와 연하남의 사랑 이야기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시대가 됐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그만큼 향상되었기 때문이며, 이러한 변화에 우리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여성들만 나이를 떠나 사랑할 수 있다면 이상한 일이다. 사랑 앞에서 남녀는 평등하지만 여성이 좀 더 평등한 것일까? 미성년자와의 사랑을 인정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윗방아기를 허가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남자 역시 어떤 여자를 사랑하는 데, 여자 나이가 좀 어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회춘의 욕망은 끝이 없다, 1920년대까지 중국 상하이에는 회춘약국이 존재했다. 약국에는 구멍 뚫린 널빤지 벽이 설치되어 있고, 남자아이들이 그 구멍으로 성기를 내밀고 서 있었다. 노인들은 돈을 내고 널빤지로 튀어나온 성기를 쭉쭉 빨아댔다. 이렇게 섭취한 정액이 회춘에는 최고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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