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 나이가 어때서

기사 요약글

빈센트가 무언가를 이해할 때‘나이’는 필수 조건이 아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나이에 따라 본연의 가치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기사 내용

“런던에서는 중고품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 부자라서 새것만 쓰고 가난하다고 중고품을 쓰는 게 아니다.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다들 중고에 열광한다.”

책<런던 비즈니스 산책>에는 영국인의 중고품 사랑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할머니가 입었던 웨딩드레스를 손녀가 입는 경우가 흔하게 등장하고 오래된 가구, 물건 등을 버리지 않고 쓸모에 맞게 조금씩 고쳐서 쓰는 장면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가치 있는 옛 물건을 자손들이 잘 관리해 쓰는 경우가 많지만 쉽게 사서 빨리 버리는 습관이 만연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중고품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필요하다. 빈센트는 중고품을 구입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골동품을 생각해봅시다. 골동품과 중고품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생활용품을 중고로 사면 숨기는 경우가 많지요. 그 물건이 나에게 필요하고 잘 쓸 수 있다면 가치는 똑같은 게 아닐까요?”



▼오래 신어 때가 탄 고무신에 색을 더해주니 그만의 명품 신발이 탄생했다.

 

명품 중고의 조건


빈센트의 집 곳곳에 놓인 의자는 모두 그가 직접 을지로와 서울중앙시장 등지를 돌며 구입한 중고품이다. 오래되어 녹이 슬거나 때가 탄 것들을 닦고 조이고 칠해 새 모습을 찾아주었다. 그는 중고를 사는 이유에 대해 마음에 쏙 드는 기성품을 찾는 것이 힘들고, 설사 마음에 든다 해도 값이 비싸거나 관리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 망설이게 된다고 설명한다. 반면에 중고품은 저렴한 데다 조금만 손을 보면 마치 오래전부터 써온 것과 같은 편안함을 주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함까지 있다고. 그의 말을 빌리면 식탁 의자도 그렇게 탄생한 ‘중고 명품’이다.

“한국에 들어오기 전 외국에서 쓰던 식탁 의자를 가져오지 못했어요. 새로 장만해야겠다 싶어 가구 매장에 가보니 예쁜 의자는 많은데 높이도 색도 그리고 집 안 분위기와도 어울리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중고 시장을 매일같이 돌아다녔죠. 그러다 어느 상점 한편에 먼지가 가득 쌓여 있는 저 의자를 발견했습니다. 요리조리 뜯어보니 나무의 질이 좋고 누구나 들고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무게도 가벼운 데다 가격까지 저렴하길래 집으로 데려왔죠. 저는 식탁 밑으로 의자가 숨겨지길 원했어요. 그래서 등받이의 절반을 잘라 사포질을 하고 기름을 칠했더니 비로소 제 마음에 쏙 든 식탁 의자가 탄생했죠.”

식탁 의자뿐 아니라 거실에 놓은 녹색 의자 역시 색을 칠하고 가죽을 교체해 만든 중고품이고, 키가 큰 철제 의자도 녹을 닦아 내고 색을 칠해 완성한 중고품이다. 모양도 용도도 모두 다르지만 그의 집에 잘 스며드는 의자를 보니 좋은 중고품을 고르는 방법이 궁금해졌다.

“질이 좋을 것, 값이 저렴할 것, 유지가 쉬울 것. 이 세 가지를 주로 봅니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이 제품을 내가 즐길 수 있는지 따져보는 겁니다. 즐긴다는 의미는 오래된 제품을 닦고 기름칠하고, 필요에 맞게 고쳐가는 과정이에요. 그것을 귀찮아하지 않고 즐길 수 있으면 나만의 명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지요.”

 

 



#1.검정 칠이 벗겨진 의자를 분리해 녹색 옷을 입혔다.
#2.집에 있는 간단한 도구만으로도 충분히 중고품을 고칠 수 있다.
#3.새것이나 다름없는 명품 의자가 탄생했다.

 

전성기의 시작

빈센트의 집을 찬찬히 둘러보면 새 제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반질반질한 물건이 많다.

“관리라는 건 전성기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환경을 만든 다음에는 어떤 대우를 하느냐에 따라 전성기가 시작되는 겁니다.‘어차피 누가 쓰던 거야’‘싼 게 비지떡이야’ 이렇게 대우해버리면 그 제품은 전성기를 누릴 수 없지요. 그런데, 사람도 똑같다는 거 아시나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전성기를 회상하곤 한다. 빈센트는 나이가 들었어도 평소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관리를 잘하면 얼마든지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 내가 먼저, 나아가 사회가 그 가치를 알아주면 모두의 전성기가 시작된다. 매일 쏟아지는 신상품에도 굳건히‘중고 명품’으로 자리를 빛내는 의자처럼 말이다.

“나이 들면서 얻는 가장 큰 선물은 쌓여가는 삶의 지혜입니다. 그 지혜가 자신을 명품으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또 다른 명품을 발견하는 안목도 키워주고요. 꾸준한 관리와 선물 같은 지혜가 있다면 전성기는 현재 진행형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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