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번째 영화 그리고 2014 아시안게임 총감독

기사 요약글

거장도 할아버지가 된다.

기사 내용

영화감독 임권택

1962년 첫 작품 <전쟁과 노인> 으로 데뷔한 이래 무려 102편의 영화를 만들어온 그다. “한마디로 필사적이었지.” 매번 영화를 만들 때마다 피말리는 심정이었다고 했다. 그건 지금도 여전하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한국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은 언제 부턴가 카메라 앞에만 서면 굳은 표정이 풀어진 적이 없다. 건강이 무척 안 좋다는 소문도 돌았다. 이런저런 일로 시종 우울해한다는 얘기까지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분위기를 17개월짜리 손자가 바꿔버린 듯했다. 뒤늦게 얻은 손주 얘기에 연신 얼굴이 펴진다. 자신의 스마트폰에 담긴 무려 240장에 달하는 손자의 모습을 촬영 스태프에 게 자랑하고 싶어 손이 바빠진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이웃의 맘씨 넉넉한 할아버지 모습. 최근 들어 그에게서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예전보다 훨씬 편해 보이는 건 나뿐만이 아닌 듯하다. 임권택 감독 본인도 그렇게 느끼는 모양이다.

 

손자 바라기가 된 영화계의 거장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호남 출신답게 임권택 감독은 종종 그 지역 특유의 걸쭉한 농지거리를 한다. 손주가 예쁘냐고 묻자 갑자기 환한 표정을 짓더니 이런 식으로 말한다. “아니말요. 칠칠맞은 놈이 말이오. 자식 예쁜지는 하~나도 모르던 놈이 손주는 왜 이렇게 이쁜지 모르겄소.” 사실 임권택 감독은 은근히 재미있고 유머러스한 사람이다. 단지 그걸 사람들과 나눌 시간이 부족했을 뿐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와 줄곧 영화 얘기만 하려 했으니까. 영화와 시대, 영화와 사회, 영화와 역사에 대한 얘기만을 물어보려 했으니까. 그런데 사실 그와 좀 더 짙게 얘기했어야 했던 부분은 바로 영화와 인생이라는 섹션이었다. 그는 1936년생이다. 한국 나이로 이제 78세다. “영화는 나이를 먹은 만큼 알 수 있는 거요. 내가 젊었을 때 알았다고 생각하는 영화는 사실 또 그만큼 몰랐다라는 얘기지. 어찌 보면 나는 이렇게 나이를 먹기 전까지는 뭐인가를 자꾸 드러내지 않으려고만 했었던 것 같소. 개인적인 것, 남녀 간의 사랑 같은 것, 나이를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 남자의 욕구 같은 것, 그래서 부끄러운 것.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걸 하고 싶더라구. 드러내는 영화. 감정적으로 스스럼없이 보여주는 얘기. 이번에 그런 거이를 찍은 셈이오.”

102번째 영화 <화장>
김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화장>을 일찌감치 완성한 그는 9월 1일 베니스영화제에 갈 준비를 하고 있다. 1986년 <씨받이>로 주연 여배우인 강수연이 여우주연상을 탄 이래로 이번이 세 번째다. 2001년 <취화선>으로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기 전 베니스는 일찍부터 임권택을 주목해왔다. 이번 영화 <화장>은 공식 경쟁 부문이 아니라 비경쟁으로 진출했다. 임권택 감독에 대한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 알베르토 바르베라의 애정이 담긴 대목이다. <화장>은 뇌종양으로 4년간 투병 생활을 하던 아내가 결국 세상을 떠나고 난 후 남겨진 한 중년 남자의 이야기다. 남자의 마음은 이미 오래전에 황폐한 불모지가 됐을 법하지만 진작부터 이 사내의 가슴속에는 젊은 여성이 들어가 있다. 그는 아내가 죽어갈 때부터 흔들려왔던 자신의 마음 때문에 괴로워한다. “내게 멜로드라마는 사치라고 생각했지. 말랑말랑한 사랑 얘기 같은 것, 그런 거이에는 치우치지 말자고 생각해왔는데 말요, 그렇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영화를 찍어왔는데, 이번에는 도리가 없이 사랑에 빠지는 사람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거이가 우리가 절대 버리지 못하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에는 다 사랑이란 거이로 돌아가는 거,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화장(火葬)과 화장(化粧). 영화 <화장>은 늙음과 젊음, 삶과 죽음, 아내와 연인, 이성과 욕망이라는 두 가지 추를 오가는 사람들의 영원한 불안증을 보여주는 영화다. 무엇보다 임권택 스스로 고민하고 있는 것, 영화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한편 영원히 그 안에 갇히고 싶은 두 가지욕망의 변주를 보여주는 작품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 영화 <화장>을 궁금해하는 이유는 그것이 임권택의 신작이어서일 뿐만 아니라 임권택의 진짜 마지막 작품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이제 정말로 은퇴를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14 아시안 게임 개·폐회식 총감독을 맡다
이번 인터뷰에서 그가 했던 말 중에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마음이 짠했으며, 동시에 가장 충격적이고, 그래서 애써 외면하려 했던 대답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번 작품을 끝으로 이제 그만 좀 쉴라 그러오.” 그건 받아들일 만하면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얘기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 감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사람들을 지치게 만드는 구석이 분명 있다. 지성을 마모시키고 감성에 날이서게 만든다. 인생 어느 분야가 그렇지 않겠는가. 더더욱 임권택 감독이 그걸 모를 리 없다. 하지만 당분간 그는 이런저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베니스도 다녀와야 하고 9월 중 인천에서 열릴 제17회 아시안게임의 개·폐막식 총감독을 맡았기 때문이다. 영화하고는 또 다른 면에서 이런 행사는 육체와 영혼을 시달리게 만든다. 사람들은 임권택이 보여줄 개막 축제에 주목하고 있다. 런던 올림픽의 대니 보일처럼, 베이징 올림픽의 장이 머우처럼, 임권택은 이번에 자신의 어떤 색깔을 내비칠까. “런던도 가서 봤고 이리저리 다 챙겨 봤어요. 다들 속 깊은 내용들을 담고 있는 것 같던데 내게는 한편으로는 좀뻐기는 것 같았어. 자기들 나라가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여주겠다는, 뭐 그런 자랑 같은 게 느껴져서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웠어요. 인천 아시안게임은 좀 다르게할거요. 그렇게 막 국가적 이미지를 홍보하고 내세우는 거 말고 한국적 정(情) 같은 게 느껴지는 그런 거. 뭐인가 따뜻한 대회다 싶은 감정이 느껴지는 거, 그렇게 만들 거예요. 임권택이가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끔, 그런 식으루다가 만들거요.”

임권택 감독에게 전성기란?
임권택 감독에게 전성기는 언제였을까. 그건 마치 그에게 당신의 영화 중 당신이 뽑는 베스트 5는 무엇이냐는 식의 한심하고 가장 진부하며, 예의 없는 질문과 같은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임권택은 그런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능멸하는 쪽으로 선택하는 편이다. 늘 그는 이런 식이다. “불행하게도 말요, 내가 만든 백 몇 편의 작품들이 거개 전부 가까이 다 남아 살아 있다는 거이오. 작년에 부산국제영화제 때도 70여 편을 틀어댔으니까. 난 그걸 싸그리 모아다가 몽땅 없애버리고 싶소잉. 왜냐? 옛날 꺼이를 가만 보고 앉아 있으면 속에서 열이 받아서 못 보겠으니까. 옛날에 내가 저런 쓰잘데없는 영화를 만들었나 싶은 생각을 하면 얼굴이 달아올라서 견딜 수가 없어요. 참 이 눔의 인간이 벼라별 영화를 다 만들었구나 싶으니까.” 죄송스럽지만 그래도 그때가 감독 임권택에게는 전성기였을 것이다. <길소뜸>, <아다다>, <씨받이> 그리고 <서편제>와 <태백산맥> 등으로 한국 최고 영화작가 반열에 오르고 <장군의 아들> 등으로는 흥행 보증수표 감독이 됐으며 <춘향뎐> <취화선> 등으로 세계적 감독이 됐지만 그래도 그가 그 ‘하등의 쓰잘데없는 영화를 만들었던’, 바로 그때가 임권택에게는 가장 행복한 전성기였을지도 모른다. 배고팠지만 그리고 하류 인생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설의 미인이었던 채령 여사를 만나 8년간의 비밀 연애 끝에 결혼한 것도 그 시절이었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전성기요. 뒤돌아보면 다전성기지. 그러니까 아직 다들 전성기가 아닌 거요. 아직전성기가 안 왔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게 바로 전성기란 얘기지.”

영화감독 임권택

임권택은 여전히 전성기다. 그가 서서히 인생을 되돌아볼 준비를 하고 있을지언정 사람들은 그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의 영화를 계속해서 기다릴 것이다. 그에게‘한 편 더! 한 편 더!’를 외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마지못한 듯한 표정으로 거기에 부응할 것이다. 언제까지나 임권택은 우리의 영원한‘감독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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