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자의 맛깔난 속내, 식식(喰喰)한 여자들

기사 요약글

음식 취향, 먹거리를 대하는 태도로 나를 표현하는 세상. 식(喰)에 관해 할 말 많은 세 여자가 맛깔난 속내를 드러냈다.

기사 내용

 



“그냥 먹어도 맛있는 음식을, 마음 맞는 사람들과 나눠 먹는다고 생각해봐라. 그것만큼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 또 있을까?”


소확행의 실천, 밥 한 끼

재즈 가수 윤희정


셀럽들에게 재즈를 가르쳐 무대에 세우는가 하면, 국악과 접목된 새로운 스타일의 재즈를 선보이며 대중에게‘재즈 붐’을 불러일으켰던 윤희정. 그녀의 손맛만큼이나 맛깔스러운 사람 이야기.
 

요즘 제일 먹고 싶은 건 엄마가 해준 평양만두. 속을 꽉 채운 평양만두를 참 잘 빚으셨는데 7년 전 돌아가시면서 다시는 그 맛을 볼 수 없게 됐다. 이북 사람이었던 우리 엄마는 손이 얼마나 큰지 30~40인분의 음식도 뚝딱 차려 내시곤 했다. 그러면서 맛있긴 또 얼마나 맛있었는지. 우리 육남매는 모였다 하면 엄마가 해준 ‘그거’ 먹고 싶다고 난리다.


엄마의 손맛을 이어받았나 어느 정도는. 냉장고 뒤적거려 대충 있는 재료만으로 음식을 만들어도 딸은 “이거 팔아도 되겠다”며 좋아한다. 똑같은 음식도 어떻게 차려 내는지에 따라 맛이 다르게 느껴지는데 나는 플레이팅에 신경을 쓰는 편이라 딸애가 더 그렇게 느끼나 보다.


반찬 없을 때 휘리릭 만들면 좋은 메뉴 하나만 일러준다면 김치찌개. 일단 맛있는 신김치에 참치 캔 하나를 털어 넣고 끓이는 거다. 보글보글 끓을 때 들깻가루 두 스푼과 두부를 넣는데, 여기서 두부가 또 중요하다. 미리 두부를 사다가 무거운 그릇으로 눌러놓으면 수분이 쭉 빠지면서 훨씬 더 부들부들해진다. 마지막으로 참치액젓을 약간 두르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SNS에는 유독 자연식에 대한 애정이 엿보이던데 예전에는 공연 준비 하느라 바빠서 인스턴트식품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는데 당뇨가 오면서 먹거리에 대한 생각을 많이 바꿨다. 하나를 먹어도 제대로 만든 걸 먹자는 쪽으로 말이다. 밥만 해도 도정한 지 보름이 지나 산패가 시작된 쌀은 가급적 피하고 현미에 흑미, 홍미 각종 콩을 같이 넣어 밥을 짓는다. 간수를 다 뺀 뒤 도자기에 구운 소금을 가지고 다니며 조금씩 섭취하기도 하고, 식초나 된장도 공들여 담근 것들만 먹는다. 요즘은 레몬머틀에 푹 빠졌다. 물을 많이 섭취하라고들 하는데 생수에는 손이 잘 안 가서 무얼 마시면 좋을까 고민하다 찾은 게 레몬머틀 차였다. 레몬머틀 나뭇잎을 말려 만든 차인데 상큼한 레몬 향이 나는 데다 혈액순환이나 심신 안정에 좋아서 수시로 마신다. 공연 중에도 자꾸 홀짝이니까 사람들이 궁금해하더라(웃음). 지인들 중에 “윤희정이 먹으면 믿을 만하다”며 자꾸 ‘내 섭취 리스트’를 묻는 사람도 많다.


공연 준비다 레슨이다 늘 바쁘게 살고 있는데 집에서 직접 요리할 일이 많은가 찌개 같은 건 직접 끓이고 반찬은 남양주에 사는 김호순 자연요리가 선생님한테서 직접 가져온다. 그분이 한번씩 지인들을 불러다가 밥을 해주실 때가 있는데 진짜 제철 요리의 무궁무진함이 느껴진다. 연잎밥, 굴& 배 샐러드, 전복장, 연근아보카도찜, 김장아찌, 섞박지 등 보고만 있어도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공들여 만든 음식을 맛보게 해주는 사람이 또 있다. 바로 우리 사돈. 우리 수연이가 싱어송라이터& 보컬트레이너로 워낙 바쁘니까 사돈어른이 반찬을 해다 주시는데 북어조림이며, 오이지며 또 기가 막힌다.


보통 딸도 엄마의 손맛을 물려받곤 하던데 자식을 위해 문 열어놓고 기도하라는 말이 있질 않나. 나는 딸을 위해 문 열어놓고 음악을 했는데 그래서인지 그 애가 차린 밥상에서도 리드미컬함이 보인다. 시어머니가 챙겨준 반찬을 오목조목한 접시에 보기 좋게 담고서는, 쪽파 한 단이 그대로 들어가는 두부찌개나 미더덕, 홍합, 고니가 기막힌 비율로 섞인 해물탕을 끓여 나를 감동시킨다. 탄수화물을 줄이겠다고 곤약쌀을 넣어 밥도 짓더라. 아, 미국에 사는 우리 아들도 셰프다. 우리 애들이 다 요리 감각이 있다.


정계, 연예계, 문화계를 막론하고 엄청난 인맥을 자랑하는데 어떤 사람과‘밥 한 끼’를 하는가 나랑 꼴이 맞는 사람. 이게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살다 보면 저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떠나서 괜히 정이 가는 인연들이 생긴다. 내가 그 ‘감’을 믿었다가 큰코다친 적이 없진 않지만(웃음). 여하튼 그런 사람이라면 “너 나랑 밥 먹자”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 생각해보면 세상에서‘밥 먹자’는 말만큼 정겨운 소리가 없다. 요즘 너도나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을 찾는 세상인데 그냥 먹어도 맛있는 음식을, 마음 맞는 사람들과 나눠 먹는다고 생각해봐라. 그것만큼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 또 있을까?
 

 



“유튜브에 ‘채널H’라는 채널을 만든 건 본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싶어서다. 영상 보고 따라 했더니 증상이 좋아졌다는 식의 즉각적인 피드백이 정말 반갑다.”

 

유튜브로 전하는 ‘음식의 힘’

한의사 김소형


임상적으로만 알던‘갱년기의 고통’을 이제야 체감하고 있다는 그녀는 요즘 유튜브를 통해 약초를 이용한 건강 비결을 전하고 있다.

 

요즘 빠져 있는 음식이 있다면 음식이라기엔 좀 뭐하지만 박카스(웃음)? 하루 다섯 병까지 마셔봤다. 얼마나 좋아하면 최근에 남편이 선물이라고 박카스 300병을 사다 줬을 정도다. 어릴 적 아버지 병원에 비치해놓은 박카스가 그렇게 먹고 싶었는데 엄마가 못 먹게 하니까 더 집착이 생겼나 보다.


어머니가 식습관에 신경을 많이 쓰셨나 그렇다. 엄마는 좋다는 건 뭐든 자식과 시부모에게 갖다 바치는 스타일이셨다. 체력장을 앞두고 전복으로 할 수 있는 요리란 요리는 다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게 철이면 야간자율학습 끝나는 시간에 맞춰 수북이 게를 쪄두셨던 분이다. 사남매의 도시락에 얼마나 공을 들이셨는지 뚜껑을 열어보면 언제나 빨주노초파남보였다. 엄마를 생각하면 늘 시장에서 장을 보거나 부엌에서 요리하시던 모습부터 떠오른다. 그때 하도 좋은 음식들을 많이 먹고 자라서 내가 지금까지 병치레 한 번 없이 건강한데, 당신 입으로 들어간 건 없어서 몸이 많이 아프셨다.


아픈 엄마를 위해 먹거리에 유독 신경을 쓰겠다 아무래도 그렇다. 항암치료로 손발톱이 다 빠질 만큼 고생하시는 게 눈에 보이니까 뭐든 좋다는 건 다 해드리고 싶었다. 특히 소화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 대추와 비슷하게 생긴 산사라는 약재를 많이 활용했다. 직업이 한의사다 보니 술 많이 마시는 남편에게 헛개나무 우린 물을, 생리통으로 고생하는 딸에게는 당귀차를 내려주는 식으로 신경을 쓴다.


유튜브에서 봤다. 직접 영상에 출연해 식재료에 담긴 약효와 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하더라 내 전공이 본초다. 다들 본초라면 산과 들로 캐러 다녀야 하는 귀한 약재쯤으로 아는데 약성을 지닌 모든 천연 재료를 뜻하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수박, 오이, 돼지고기도 다 본초다. 유튜브에 ‘채널H’라는 채널을 만든 건 본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싶어서다. 방송이나 매체에서 본초를 이용한 건강 정보를 많이 소개하고 있는데, 좀 더 관심이 생겨 인터넷 검색을 하면 잘못된 정보나 광고만 나온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한 편 제작하는 데 적어도 10시간은 걸리는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일종의 ‘디지털 본초사전’을 만들고 싶었다.


채널H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겼나 Herb, Home, Health, Hanbang의 첫 글자에서 따왔다. 집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한의학적 노하우를 주로 소개하고 있다. 건강, 미용, 생활, 한방요법 등 다방면에 대한 정보를 주는데 역시 먹거리에 대한 내용이 많다.‘미세먼지로부터 폐를 지켜주는 청폐차’‘염증에 좋은 노니’‘나트륨 배출을 돕는 깔라만시’처럼 계절이나 요즘 뜨는 식재료를 반영한 콘텐츠들이 반응이 좋다. 올 초부터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구독자 수도 2천 명을 넘었고 조회수가 35만 이상이 나오는 등 나름의 성과가 있어 뿌듯하다. 무엇보다 영상 보고 따라 했더니 증상이 좋아졌다는 식의 즉각적인 피드백이 정말 반갑다.


다수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데 본인 스스로는 어떻게 돌보고 있는가 환자들에게 규칙적인 식사와 수면을 강조하면서도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진료하다 끼니를 놓친 적도 많고, 늦은 밤 야식과 음주를 즐기면서 살도 많이 붙었다. 임상적으로만 알던 갱년기증후군을 내가 직접 겪고 보니 환자들의 고충이 얼마나 컸을지 더 와닿는다. 어떻게 지방이 복부, 허벅지로만 다 갈 수 있는가!


다이어트 계획도 있겠다 당연하다. 오늘 촬영을 계기로 빼겠다고 작심했다. 마약중독보다 더 무서운 게 나트륨 중독이라고 하던데 입맛이 짜고, 자극적인 쪽으로 많이 바뀌어 걱정이다. 과하게 먹었다 싶은 날이면 식이섬유가 풍부한 귀리로 디톡스를 하는데 앞으로는 통귀리에 견과류나 말린 과일을 넣어 만든 뮤즐리를 먹으며 식단을 조절할 생각이다.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식사가 언제였나 2년 전 겨울, 딸의 대학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이었다. 남편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합격 여부를 조회해보니 합격이었다. 그만해도 대만족인데 장학금까지 준다니 애가 얼마나 기특하고 자랑스러웠겠나. 당장이라도 부둥켜안고 축하하고 싶었지만, 그때 우리 딸이 햄버거집에서 아르바이트 중이라 전화 통화가 안 됐다. 늦은 밤이 돼서야 아이가 점장님이 싸줬다며 다 식은 햄버거를 들고 나타났다(웃음). 식탁에 둘러앉아 말라 비틀어진 햄버거를 먹는데 왜 그렇게 맛있던지. 그날 밤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뭉클하다.
 

 



“사부작사부작 뭔가 만드는 게 재미있었다. 요리하는 순간만큼은 잡생각이 사라져서 좋더라. 정해진 시간에 미친 듯이 요리를 끝내면 꼭 사우나를 한 것처럼 후련했다.”


요리는 잡생각의 탈출구

MC 이지연


KBS 아나운서에서 프리랜서 MC가 된 지 5년째. 요즘 똑 부러진 살림 솜씨를 바탕으로 홈쇼핑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그녀는 요리에 관한 한 남부럽지 않은 실력을 자랑한다.

 

보유 중인 요리 자격증이 엄청나던데 한식, 중식, 일식, 양식 자격증이 있다. 궁중요리&전통 떡 전문가 과정을 비롯해 아동요리지도자 과정도 수료했고, 제대로 된 파스타를 만들고 싶어서 일 쿠오코 알마(이탈리아 파스타 학교)도 다녔다.


와인 소믈리에 자격증이 빠졌다. 난다 긴다 하는 요리 전문가 수업도 다 쫓아다녔던데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저 사부작사부작 뭔가 만드는 게 재미있었다. 그게 스트레스라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요리하는 순간만큼은‘애 기저귀 떨어졌는데? 아파트 청약 공고가 언제 뜨더라? 아, 참 대본 봐야 하는데’. 이런 잡생각이 사라져서 좋더라. 정해진 시간에 미친 듯이 요리를 끝내면 꼭 사우나를 한 것처럼 후련했다.


최근에 한 요리 중 가장 성공적인 것은 김수미 선생님이 방송(tvN<수미네 반찬>)에서 알려준 묵은지찜. 양구에서 가져온 시래기에다 신김치, 고기를 왕창 썰어 넣었는데 애들이 밥을 두 공기씩 먹더라. 완전 대박이었다. 요즘 김수미 선생님 레시피를 받아 적는 게 내 일이다.


내가‘한 요리 하네’ 싶은 순간은 작은 냄비에도 국 잘 끓일 때. 옛날엔 양 조절에 실패해 매번 국을 한 솥 끓였거든(웃음).


요리를 즐기니 항상 냉장고가 가득 차 있겠다 내가 제일 이해 못 하는 행동 중 하나가 신선하다고 비싼 값에 왕창 사서 쟁여놨다가 찌글찌글해질 때까지 두고 먹는 것이다. 마트가 지척에 있으니 그때그때 소량씩 사 먹는 게 훨씬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그럼 매일 마트에 가나 그건 아니다. 요즘은 스마트폰 앱으로도 그때그때 필요한 상품을 주문할 수 있어서 일하는 중간중간 장을 본다. 그래도 고기랑 생선은 꼭 직접 보고 구매하는데, 좋은 고기 사겠다고 마장동까지 가는 스타일은 아니고 집 근처 백화점에 간다. 잘 손질된 양질의 식재료를 구입할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 물론 가격은 비싸지만 내 시간, 차 기름값을 생각하면 감수할 만한 수준이다.


두 자녀에게도 ‘엄마 손맛’을 선사하는 일이 많겠다 애들이 각자 가정을 꾸릴 때까지 내 음식을 먹고 클 텐데, 그 사이 혀에 엄마의 정이 배길 바라며 힘들어도 꼬박꼬박 음식을 해준다. 원래 속정은 먹는 걸로 드는 법이거든. 엄마의 요리가 맛있든 맛없든 꾸준히 먹다 보면 길드는 입맛이라는 게 있을 거다. 어떤 산해진미 앞에서도 기준이 되는 그 맛. 나는 그런 보이지 않는 것들이 앞으로 아이들이 겪을 혼란이나 방황 앞에서 큰 힘을 발휘할 거라고 믿는다.


아이들에게 인스턴트 음식도 먹이나 라면도 먹이고 햄버거도 먹인다(웃음). 내가 집밥 먹이기에 신경을 쓰긴 하지만 애들이 어디 가서 음식으로 까탈을 부리는 건 싫다. 원래 아들이 탄산음료, 마요네즈를 안 먹었는데 어디 가서‘나는 그런 거 못 먹어’ 할까 봐 일부러 더 권했다. 나는 학원에 늦는 한이 있더라도 정해진 시간에 저녁밥을 먹여야 하는 엄마이자, 세 끼 중 두 끼는 꼭 밥을 먹이는 엄마지만, 사회성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엄마이기도 하다.


SNS에서 회사 회식 자리도 엿봤다.‘회식의 신’이란 별명까지 있던데, 술을 잘하는가 술이 엄청 세진 않은데 1차에 맥주, 2차에 와인, 3차에 사케를 먹어도 괜찮더라(웃음). 아이들 때문에 자제하는 편이지만 도경완, 장윤정 씨 부부와 곧잘 어울려 술을 마신다. 술 한잔 기울이며 누굴 붙잡고 떠드는 게 난 그렇게 좋더라.


선호하는 안주는 곱창, 피순대만 빼면 다 잘 먹는다. 고기 특유의 누린내 같은 걸 도저히 못 참겠는데, 반대로 해산물은 어지간한 비린내도 괜찮다. 일식, 멕시코 요리를 특히 좋아하지만, 나초 같은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살이 찌니까 숟가락으로 칠리소스만 퍼 먹는다(웃음). 덧붙이자면 나는 중식이든 동남아 음식이든 멕시코 요리든 퓨전 말고, 본래의 맛을 사랑한다.‘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재해석한 요리’ 뭐 그런 것보다 현지에서 먹는 딱 그대로의 맛이 더 좋다.


나에게 요리란 평생의 위안이자 인생의 한 부분. 내 요리를 누군가 맛있게 먹을 때, 또 잘 만든 음식에 둘러 앉아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도란도란 떠들 때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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