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한민국 '전성기'입니다

기사 요약글

현재를 살고 있는 전국의 '전성기'씨들을 만났습니다. 같은 이름, 다른 발자취를 가진 이들이 과연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기사 내용

 

취미 부자에서 꿈 부자로
한국임업진흥원 책임 전성기


 

“전성기 씨, 당신의 전성기는 언제라고 생각합니까?”

제가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학창 시절 놀림의 대상이었던 제 이름이 커서 보니 참 좋더라고요. 면접을 봤을 때도,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도 전성기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가 제게 투영되는 모양입니다. 사실 저는 언변이 뛰어나거나 외모가 화려하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름 하나만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으니 뭔가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얻는 게 있어서 참 좋습니다. 지금 제가 마흔인데, 앞으로 더 나이가 들수록‘전성기’가 좋아질 수밖에 없겠죠?

20대의 저는 청춘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조급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그 시기를 넘어 30대가 됐을 때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만나는 기적 같은 일을 경험했지요. 그리고 40대가 된 지금 앞으로 열릴 미래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미래와 우리 부부의 노후에 대한 생각 때문인데, 어떤 그림을 그리며 살 것인가를 고민 중입니다. 사실 저는 취미 부자입니다. 사진을 찍은 지는 15년 정도 됐고, 스노보드를 탄 지는 6년, 농구와 축구, 플라모델 만들기까지 즐기고 있어요. 그리고 새롭게 추가된 취미는 나무 공방에서 가구 만들기입니다. 아직 아마추어이긴 하지만 전문적으로 배워서 제가 만든 가구로 집을 꾸미는 게 꿈입니다. 아내는 그동안 해오던 취미 중에 가장 돈이 될 만한 취미라며 함께 좋아해줘요. 언젠가 은퇴를 하게 되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큰돈은 아니더라도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은데 가구 만들기가 노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인생은 사람의 이름을 따라간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도전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없어서인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취미를 시작할 때 언제나 즐거워요. 그래서 저에게 전성기란 항상 현재 진행형이에요. 도전을 하면 할수록 발전하게 되니 어제보단 오늘이, 오늘보단 내일이 전성기인 거죠.버킷리스트도 있습니다. 아이가 커서 자립할 수 있을 때가 오면 아내와 함께 세계 일주를 하고 싶어요. 어렸을 때 세계지도를 외우는 게 특기였을 만큼 동경이 있었거든요. 알래스카부터 남미, 유라시아 대륙까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며 친구를 사귈 겁니다. 세계 어디를 가든 만날 수 있는 친한 친구가 있다는 것 너무 멋있지 않나요? 혹시 모르죠. 저와 이름이 같은 ‘미스터 헤이데이(Heyday)’를 만날지.

 

 

방랑 화객의 꿈
화가 전성기



“전 언제나 항상 전성기이니까요.”

붓을 잡은 지 어느덧 30년이 넘어갑니다. 그 시간 동안 제 전성기가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패기 넘치던 젊은 시절인 것 같아요. 그때 최연소 타이틀을 꽤 많이 갖고 있었거든요. 최연소 회장, 최연소 심사위원, 최연소 강사 등.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그때가 내 전성기였구나 싶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전성기가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꿈꾸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요.그림을 그리며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전시는 물론 강연도 나가고, 책도 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의감이 몰려오더군요.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소외되고 미술계에도 물질만능주의가 내려앉으면서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가에 대한 고민이 밀려왔습니다. 스스로 변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였지요. 미술가로서 활동을 대부분 정리하고 삶 전체를 돌아봤습니다.그러면서 아직 시작 단계이지만 본격적으로 책을 써보고 싶어서 미술 출판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다음 아끼던 차를 팔고 국산 차를 사서 캠핑카로 개조했습니다. 삶의 방식을 바꿔보기로 한 것입니다. 캠핑카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우리나라의 숨겨진 비경을 찾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하니 절로 활기가 돌더군요. 한국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린 그림을 모아 세계에 알리자는 목표도 생기고, 또 미술책을 써서 우리 미술 문화에 대해 알려야겠다는 꿈도 생겼습니다.

저는 화가를 움직이는 벤처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의적인 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체되어 있으면 안 되다고 생각해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당연히 사람도 변해야 되겠죠. 꾸준히 발전하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그 방법으로 일주일에 두세 번 일기를 씁니다. 기록의 의미도 있지만 자기반성을 하게 된다는 점이 참 좋더라고요. 일기를 쓰며 하루를 되돌아보고 무엇이 부족했는지 깨닫습니다. 앞으로의 계획도 세울 수 있고요. 이렇게 매일 새롭게 살려고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레 두 번째 전성기가 오지 않을까요?

“넌 아직도 전성기냐?” 가끔 친구들이 우스갯소리로 물어요. 전성기라는 이름은 100살이든 200살이든 전성기예요. 그러니까 전성기가 언제냐 묻는 것도 저한테는 이상한 거지요. 저는 한 번도 전성기가 아니었던 적이 없으니까요.

 

 

작은 지혜가 주는 파동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부대표 전성기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만나면 즐거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제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1990년 회계사에 합격한 이후 어느 날 다른 회계사와 공동으로 하는 일이 생겨 만나게 되었는데 이름이 ‘전성기’인 겁니다. 그런데 1990년에 그 사람도 회계사 시험을 봤답니다. “합격자 명단에 전성기가 있어 나인 줄 알고 기뻐했는데 알고 보니 당신이더라”고 말하더군요. 서로 껄껄 웃은 기억이 있네요.

또 있습니다. 제가 친한 지인들과 모임을 하는데 그 모임 이름이 ‘전성기’입니다.‘전성기를 지향하자’를 모토로 삼으면서 제가 회장을 맡게 됐습니다. ‘전성기회 회장 전성기’가 제 또 다른 직함입니다. 다른 일화도 있습니다. 한번은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문자 봤다. 그냥 가입하면 되냐”고 묻더군요. 무슨 말인가 했더니, ‘전성기’ 멤버십 가입 권유 문자를 받은 거더라고요. 그런데<전성기> 잡지에서 저를 인터뷰하러 오다니요.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지 않습니까?

제 삶에는 3개의 변곡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결혼, 두 번째는 아이 탄생, 세 번째는 골프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골프가 단순한 취미일 수 있겠지만 저에겐 매너리즘에 빠지게 않게 도와주는 일종의 비타민입니다. 똑같은 일상에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주더라고요.

최근에는 골프에 이어서 삶에 또 다른 변화를 무엇으로 줄 수 있을까를 생각 중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전혀 해보지 않은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단단하게 재무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 무장 차원에서 푸시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몇 개 못했는데 꾸준히 하다 보니 지금은 130개나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운동 하나가 건강을 바꾸고 나아가 삶을 바꾼다고 생각하면 결코 위대하지 않은 도전은 없다는 삶의 지혜를 깨닫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옛날을 돌이켜보면 저는 군대에 있을 때가 전성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3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동기들과 만나면 즐겁고 그 시절이 생각나 젊어지는 기분입니다. 좋았던 기억 때문인지 지금까지도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얻었는데 결국에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언젠가 은퇴를 하게 되면 그 관계를 바탕으로 한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중년이 되면서‘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을 만나면 종종 무슨 꿈을 갖고 사는지 물어봅니다.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만나면 즐거운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 꿈입니다.투자나 세무 등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뿐 아니라 마음으로나 정신적으로 삶에 위안을 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배우고 가진 것에 대한 환원이랄까요. 이를 위해 제가 하는 작은 실천 중 하나는 택시를 타면 항상 기사님께“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긍정의 기운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서로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습니다. 이런 것을 늘려가다 보면 사회가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요?

 

 

성실함은 나의 힘
택배기사 전성기



“저를 가장 기쁘게 하는 건 아내와 딸이에요.”

10년 차 택배기사 전성기입니다. 군 전역 후 일자리를 찾다 우연히 택배 배송 일을 하게 됐어요. 회사 탑차를 타고 다니며 정해진 구역에 물건을 배달하는 일이었는데 매일같이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물량을 소화하기가 쉽진 않았죠. 일이 너무 힘들어 쉽게 그만두는 직원들이 허다했지만 저는 다른 생각 하지 않고 꿋꿋이 버텼어요. 그 당시 어머니께서 암 투병 중이라 보험으로 해결되지 않는 병원비를 감당해야 했거든요. 결국 어머니는 병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지만,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잘 적응하기도 전에 택배 일을 그만뒀을 거예요.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저는 주변의 권유에 따라 탑차를 구입해 개인사업자로 전환했어요.‘배송한 만큼 돈을 버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점심 먹을 시간까지 아껴가며 쫓기듯 하루 300~500여 개 택배 상자를 나르고 있는데, 몸은 힘들어도 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서 만족스럽습니다. 더운데 고생한다며 음료수를 건네주시는 마음 따뜻한 고객이 있는 반면 불친절한 고객을 만나기도 하지만, 물량을 다 비우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퇴근하는 길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농구, 여행을 좋아하지만 저를 가장 기쁘게 하는 건 초등학교 동창으로 10년 연애 끝에 결혼한 제 아내, 그리고 나날이 애교가 느는 세 살짜리 딸이에요.

그 두 사람을 생각하면 추운 바람도 따뜻하게 느껴지고, 뜨거운 햇볕도 견딜 수 있을 정도가 되죠. 그래서 ‘성실하다’ ‘책임감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모든 게 순탄한 지금이 제 전성기라고 생각하는데 얼마 전 캘리그래피 공방을 차린 아내가 즐겁게 일할 수 있기를, 또 뇌경색으로 입원해 계시는 장인어른이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기를 더 바라봅니다. 마지막으로 여보, 우리 딸 제아야 사랑한다!

 

 

거침없이 육아 중
새내기 엄마 전성기



“버릴 것 없는, 속이 꽉 찬 하루하루를 살려고 노력 중이에요.”

11개월짜리 딸과 함께 고군분투 중인‘엄마 전성기’입니다. 제 특별한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주셨어요. 넷째 딸이라 다음은 아들을 낳으라는 의미였는데 정말 남동생이 태어나 부모님이 크게 기뻐하셨던 기억이 나요. 어릴 땐 하도 놀림을 받아 나도 언니들처럼 예쁜 이름으로 개명해 달라고 졸랐는데 성인이 돼서도 마음에 안 들면 바꾸라는 엄마의 설득에 결국 포기했지요. 사실 이름 덕을 꽤 많이 보긴 했어요. 대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존재감 하나는 확실했거든요.이름 따라 산다는 말이 정말인지 어릴 적부터 유독 운동을 좋아해 태권도, 합기도 선수 생활을 했고 대학도 경호학과에 진학했을 정도죠. 현재는 육아가 주업이 됐지만 2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흔치 않은‘여자 경매사’였어요. 청과물 시장의 경리로 취직했는데 호탕한 성격과 두둑한 배포, 결정적으로 한자리 할 것 같은 이름 때문에 다들 경매사가 되라고 입을 모았죠.듣고 보니 그럴듯해서 주경야독하며 입사 2년 만에 정말 경매사가 됐어요. 경매사가 단순히 마이크 들고 물건만 판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경쟁력 있는 상품을 확보하려면 직접 밭과 비닐하우스를 찾아다니며 농민들을 설득해야 해요. 보수적인 시골 어르신들이 저 같은 애송이를 반길 리 만무했지만 제가 또 명색이 전성기 아니겠어요. 막걸리 들고 찾아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아가씨가 참 대단하네” 하며 두 손 두 발을 다 드시더라고요. 무거운 박스를 척척 옮기고, 큰 소리로 경매를 진행하며 청과물 시장을 훨훨 날아다녔던 그때가 제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임신하면서 일을 그만두었지만 언젠가 다시 경매장으로 돌아갈 거예요.

화물 배달 기사인 남편은 밤낮으로 일이 많아 육아는 거의 제 몫이지만 이름만큼이나 씩씩하게 잘 해내고 있어요. 시댁, 친정의 도움 없이 온전히 제힘으로만 아기를 키우고 있는데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딸을 보며 인생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가치 있고 대단한지 새삼 실감하고 있죠. 그래서 저는 버릴 것 없는, 속이 꽉 찬 하루하루를 살려고 노력 중이에요.

 

 

지금, 현재에 집중하는 삶
수자원공사 충주권관리단 전문위원 전성기


수자원공사에 입사해 36년째 근무 중인 59년생 전성기입니다. 내년에 정년을 앞두고 요즘 전문위원으로 후배들을 서포트하고 있어요.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사실 재작년에 충수암 수술을 받고 건강에 무척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우측 배가 경직됐다 곧 꾸르륵 소리가 나면서 풀어지곤 했는데 그게 암의 신호였더라고요. 큰 병원을 찾았을 땐 벌써 암이 꽤 진행된 상태였지요. 그 어려운 상황에서 집사람 친구의 지인 중에 같은 병을 앓았던 사람을 만났습니다. 전이가 심해 개복을 하고도 수술을 포기했다던 그분은 물어물어 대장암의 대가로 꼽히는 의사를 만났고, 불가능하다던 수술을 받아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건강하다고 했죠. 저도 그 교수님께 수술을 받고 이렇게 회복했는데, 그분의 아드님 이름이 전성기였어요. 우연치고는 절묘하죠.저는 책을 아주 좋아합니다. 집 근처 도서관에 들러 한 달에 16권 이상의 책을 빌려 읽는데 예전부터 책을 읽다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꼭 수첩이나 컴퓨터에 일일이 기록해뒀어요. 그렇게 모은 글들을 한 달에 한 번씩 메일로 직원들에게 보내준 적이 있었죠. 그때마다 같이 공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어요.곱씹어보면 그렇게 회사 생활에서 비롯된 즐거움이 꽤 많더라고요. 연말에 실적 발표가 이뤄지는 자리에서는 일부러 연초에 발표하게 했던‘자기계발 목표’ 예컨대 자격증을 많이 따겠다, 봉사를 많이 하겠다, 하다못해 술을 제일 많이 먹겠다 같은 계획들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 점검도 하고 포상도 하며 한바탕 웃곤 했지요. 자칫 딱딱하게 흐를 수 있는 자리를 부드럽게 만드는 일이 늘 보람 있고 행복했어요. 제 이름을 두고“전성기야, 네 전성기가 언제니?” 하며 농담을 하는 선배가 있는데 그 농담에 대한 대답이 결국 이런 거예요. “내가 책임자로서 직원들을 웃게 만들었을 때, 그때가 내 전성기였다.”

제 카톡 상태 메시지가 ‘지금 이 순간 가슴 뛰는 삶을 살자’였어요. 병을 겪고 난 지금은‘또 다른 시작’이라고 바꿨지만 말이죠.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하면서도 큰 좌절에 빠지지 않았던 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중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싶어서였을 거예요. 큰 산을 바라보면 저걸 어떻게 오르나 한숨이 나오는데, 내 발끝 하나하나를 쫓다 보면 결국 어렵지 않게 정상에 올라 있듯이 말이죠. 무병장수보다 일병장수를 기대해야 한다는 말이 있듯 내 몸에 병이 있으니 건강을 자신하지 말고 잘 관리하며 겸손하게 살 겁니다.

 

 

인생의 새 출발선상에 서다
(주)미래금속 주임 전성기



“매일매일 전성기를 살라며 이름을 지어주신 할아버지 때문에라도 남들보다 더 열심히 신나게 살 거예요.”

결혼을 나흘 앞두고 인터뷰를 하게 된 ‘아직까지는 총각 전성기’입니다. 예비 신부를 만난 건 4년 전 제가 포장마차를 할 때였어요. 혼자 주문도 받고, 음식도 하고, 손님 응대도 해야 했는데 이상형에 가까운 그녀가 들어오길래 정말 최선을 다해 대접했죠. 내심 ‘혹시라도 또 가게에 오면 꼭 이름도 묻고 연락처도 물어야지’ 하면서…. 진심이 통했는지 기약 없이 헤어졌던 그녀가 또 한 번 찾아왔고 그렇게 저희는 사귀게 됐습니다.

어릴 때는 ‘성기’라는 이름 때문에 친구들의 짓궂은 놀림이 따라다녔지만 철이 들면서 제 이름이 얼마나 특별하고 깊은 인상을 주는지 알게 됐어요. 제 명함을 받아 든 사람들은 꼭 이름 얘기부터 했는데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친해지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런 경험이 대인관계에 자신감을 불어넣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데 도움을 줬어요.

군대 전역 후 스물네 살 때 이태원의 한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요. 처음엔 빈 접시 치우는 일로 시작해 나중엔 홀 매니저까지 했는데 손님들이랑 어찌나 죽이 척척 잘 맞았는지 인기가 최고였죠.

그 시절엔 어떤 사람을 대면해도 다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어요.식당 매니저, 보험 영업, 요리사, 포장마차 운영 등 여러 직업을 거쳐 요즘은 건축 일을 배우고 있어요. 늘‘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던 어머니와 건축업을 하고 계시는 아버지를 생각해 내린 결정이었죠. 사실 전공이 건축이긴 했지만 저는 지금껏 제가 서비스직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요즘 나이 지긋한 아버님들 사이에서 물건도 나르고, 기계 설치를 위한 구조물 작업도 하면서 차근차근 일을 배우고 있는데 이걸 본업으로 삼고 부업으로 작은 일인 식당을 차리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요. 욕심이 좀 많죠? 그렇지만 매일매일 전성기를 살라며 이름을 지어주신 할아버지 때문에라도 남들보다 더 열심히, 신나게 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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