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메시스뮤지엄이 예술로 불리는 이유

기사 요약글

화사한 백색 공간은 세상에 많지만 그 자체로 예술이 되는 공간은 흔치 않다.

기사 내용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휘어진 공간과 그 안을 채우는 백색의 산란광만으로 작품이고 예술이 된다.

미술관은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지만 더러는 전시된 작품보다 더 작품 같은 미술관도 있다. S. E. 라스무센의 저서 <건축예술의 체득(Experiencing Architecture)>의 첫 장은 건축을 단순히 평면, 입면, 단면으로 설명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건축은 그 이상의 다른 무엇(?)’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설명 가능한 관념적 대상을 넘어 오감으로 경험해야 하는 체험적 대상으로 분류한 것이다. 라스무센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건축만큼 차갑고 추상적인 형태를 취하는 예술도 없지만 동시에 건축만큼 인간이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된 예술도 없다”라고. 요컨대 건축이 지녀야 할 ‘쓸모’의 문제 역시 예술의 바탕에서 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예술이든 생활이든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작품을 담는 작품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은 클로드 모네의 <수련(Nymphéa, Water-lily)> 작품을 관람객이 효과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천장에서 자연광이 쏟아지는 길다란 타원형 공간으로 계획되었다. 방 안에서는 벽과 그림이 하나가 되는 착각이 들어 마치 그림 속 연못 옆에 있는 집 안에서 창을 통해 내다보는 기분이 든다. 미술관의 경계를 넘어 모네의 그림을 통해 명상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미술관인 것이다. 오랑주리 미술관이 <수련>을 담기 위한 백색의 무대라면, 공간 자체를 작품으로 만든 미술관도 있다. 파주 출판단지 한 귀퉁이에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게 휘어진 콘크리트 건물 하나.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루 시자(1933~)가 설계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Mimesis art museum)이다. 일상이 답답해지면 떠오르는 공간들 중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이 있다. 벽과 천장이 하나로 엮인 공간으로 쏟아지듯 들어오던 백색 광선이 가득했던 그 방에서 맥락 없는 감동에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느낌이 예술이구나’ 했던 그런 기억이다.

곡선과 빛의 만남

외관은 구불구불 휘어지는 콘크리트 표면으로, 내부는 천장에서 쏟아지는 백색의 산란광으로 가득하다. 벽면에 걸린 그림과 홀 중간에 놓여 있는 조각들, 그것을 감싸주는 균질한 빛과 면의 위요감. 이것이 관람자를 위해 건축가가 제시한 미술관의 콘셉트다. 건축가는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조건을 작품과 관람객의 관계로 본다. 순수한 백색의 공간을 통해 작품과 사람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일체감을 느끼도록 했다. 벽면에 최적의 곡선을 찾은 결과다. 각진 면이 생기지 않는 공간이 빛을 고르게 방 전체에 퍼뜨릴 수 있다. 쓸모도 있고 보기에도 좋은 그 선을 찾기 위해 건축가는 여러 번 그리고 또 그렸을 것이다. 아름다운 내부 공간은 굳이 작품을 걸지 않아도 작품처럼 다가온다. 마치 미술을 담는 또 다른 미술로서의 미술관이랄까. 거대한 동물의 배 속처럼 둥글게 말려진 공간은 천장에서 쏟아지는 자연광으로 은은한 기품을 유지한다. 인공조명은 보이지 않는다. 바깥 날씨가 실내의 무드를 결정하는 완전한 자연광의 공간이다. 벽에 걸린 캔버스와 홀 중간중간 놓여 있는 조형물들, 그것을 비추는 균질한 빛의 덩어리와 공간적 포용력. 이것이 건축가가 제시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실체다. 작열하는 직사광선을 천장에서 여과장치로 걸러 고르게 뿌리고 가공된 빛은 미술관이라는 큰 용기 안에서 관람자의 감성에 영향을 주는 감각적인 재료가 되었다.

 

건축이 예술이 될 때

오래전 플라톤은 모든 예술의 출발점을 ‘미메시스(Mimesis)’라고 봤다. 미메시스의 의미는 ‘모방과 재현’이고 그 대상은 ‘현실’이다. 그러면 예술이란 무엇일까. 그의 말처럼 현실을 재현한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 내는 작업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 사진이 그렇고 영화가 그렇고 회화, 조각, 음악, 춤, 그리고 건축이 그렇다. 우리의 현실 속에 예술이 있다는 이야기다. 건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예술이 되기도 한다. 건축가의 합리적인 판단으로 다양한 쓸모를 만족시키는 벽 하나가 건축의 안과 밖의 산재된 문제를 부족함 없이 해결한 뒤 잠자고 있던 우리의 감정선을 툭 건드릴 때. 기대하지도 않았던 그런 감각과 만날 때 우리는 예술을 경험하게 된다. 좋은 미술관은 관람자의 복잡한 요구를 반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신적 영역으로 나아간다. 울렁거리는 수련 속으로 관람자를 데리고 가는 오랑주리 미술관이나 원초적 감성을 깨우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백색 공간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지루해서 죽을 지경인 일상이 종종 예술이 되는 지점에서 우리를 상투적인 삶의 테두리 밖으로 벗어나게 하는 건축이 있다. 그때 건축은 예술이 된다.


최준석
건축사사무소 NAAU LAB을 운영하며 꿈도 많고 말도 많은 분들의 집과 공간을 설계 중이다. <서울 건축 만담><어떤 건축> 등의 저서를 펴냈고, 다양한 매체에 꾸준히 건축과 공간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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