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도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기사 요약글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정신과 전문의 양창순 박사의 마음 다스리기.

기사 내용

흔히 ‘거리 두기’라고 하면 물리적 거리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시간에도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다른 말로 하면‘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나의 반응을 조절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갈등이 생겼을 때 당장 해결할 것인지, 아니면 서로 시간을 두고 살펴볼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후자를 마치 상황을 미루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 ‘거리 두기’라고 하면 물리적 거리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시간에도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다른 말로 하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나의 반응을 조절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갈등이 생겼을 때 당장 해결할 것인지, 아니면 서로 시간을 두고 살펴볼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후자를 마치 상황을 미루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 TV에서 놀라운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사랑하는 주인이 죽은 후 그 스트레스로 인해 까만 털이 몽땅 하얗게 변한 반려견을 다룬 방송이었다. 반려견은 다른 가족과 함께 산책하다 암으로 투병 중이던 주인이 입원했던 병원 앞을 지나게 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반려견이 마치 사람이 아픈 가슴을 쥐어뜯듯이 땅에 뒹굴면서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이 이야기에는 더 놀라운 후일담이 있었다. 주인이 죽고 삼 년이 지나면서부터 그 반려견의 하얀 털이 서서히 까만색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활기도 되찾았다. 본래의 검은 털로 돌아가 남은 가족과 느긋하게 산책도 하고 여기저기 신나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저절로 웃음이 났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반려견에게도 그런데 사람은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우리에게는 이별의 슬픔을 잊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고 분노의 감정을 삭히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뭐든지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특히 전화나 문자메시지가 그렇다. 곧바로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당장 상대방의 마음을 의심하는 현상이 생겨나곤 한다. 서로의 시간에 아주 조금의 틈도 두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일단 시간적으로 거리 두기를 연습해보자. 예를 들어, 상대방이 내 메시지에 반응이 없으면 ‘뭔가 그럴 만한 사정이 생겼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경우 마음에도 그만큼의 여유가 생기므로 아무런 파문이 남지 않는다. 우리는 힘든 일을 경험하면 가장 먼저 정신적 쇼크를 경험한다. 일종의 정신적 마비 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그것 역시 힘든 일에서 우리를 보호하는 방어기제이다. 그러므로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만이 옳은 일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사회적 상황에서 적절한 반응을 보여야 할 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는 이유로 고민한다. 특히 상대방으로부터 뜻밖의 모욕이나 무시를 당했을 때 제대로 반격하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화가 난다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꼭 집에 가서 잠자리에 누워 그 일을 반추할 때가 되어서야 적절한 응수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그러한 현상 또한 우리의 생존 기술 중 하나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모욕을 당했을 때 곧바로 반격을 가한다면 자칫 싸움이 커질 수 있고, 싸움이 커져 죽기 살기로 서로 덤비다 보면 생존 게임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적절한 응수가 생각나지 않는 것이 억울한 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시간적으로 거리를 둠으로써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 편이 훨씬 더 다행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다.

양창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현재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주)마인드앤컴퍼니, 양창순정신건강의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30만 독자들이 열광한 심리학 베스트셀러<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나는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엄마에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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