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특별한 취미, 수집에 빠지다

기사 요약글

중년이 수집에 빠지게 되는 이유가 궁금하다

기사 내용

우표부터 주화, 골동품까지?

중장년층의 상당수는 아마 어려서 수집이란 걸 경험해봤을 것이다. 늦은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우체국 앞에서 줄을 서서 기념우표를 사 모으고, 기념주화와 동전을 수집했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또 나이가 들어서도 프라모델이나 미니어처 술병, 장난감 등 자신만의 수집품을 모으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수집을 본격적으로 왕성하게 하는 나이대를 보면 4,50대 중년층이 많다고 한다. 수집의 취미에 빠지게 되는 중년들. 그들은 어떤 마음에서 수집을 하는 것일까? 오늘 수집의 세계를 전할 전성기 네 번째 크리에이터 역시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물품을 수집하는 수집가라고 하니, 중년이 수집에 빠지게 되는 이유가 더욱 궁금해진다.
 

동묘 벼룩시장에서 만난 골동품

추억의 물건들과 만나는 시간여행

중년 수집가 K씨는 종종 청계천이나 동묘 벼룩시장을 돌아보곤 한다. 또 지방에 가면 그곳의 골동품 경매장을 둘러본다. 그곳에서 그는 우리가 어려서 사용하고 봐왔던 추억의 물건들을 만나는 시간여행을 한다.

그를 따라가보면 그곳에선 어린 시절 부록이 더 좋았던 월간 만화잡지도 만나고, 추억의 장난감들, 난로에 얹어 데워 먹던 양은 도시락과 학창시절 청계천에서 사다 들었던 해적판 LP도 볼 수 있다. 하나같이 손때가 묻어 지저분하기도 하지만 어떤 것들은 마치 헤어졌던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그렇게 수집은 잊고 있던 그때의 추억을 다시 떠오르게 하는 행복한 취미다.
하지만 추억의 물건을 수집하는 것이 결코 만만한 취미는 아니다. 우리 어린 시절 보았던 못난이 인형은 한때 30만 원까지 갔었고, 어려서 집으로 배달되던 우유병은 요즘 20만 원 정도에 달한다고 한다. 또 어깨동무, 보물섬 같은 만화잡지는 몇만 원씩에 거래된다. 또 어린 시절 받았던 종합선물세트 상자도 30만 원 이상을 줘야 살 수 있다. 오래된 물건일수록 수집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많은데 구하기가 힘드니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것이다.

혹자는 ‘아니, 그런 걸 뭐 하러 그 비싼 돈을 주고 사 모을까?’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수집이란 게 그렇다. 바쁘고 삭막한 사회 속에서 살다 보니 자신이 만드는 수집이라는 또 다른 세계 속에서 즐거움, 만족을 얻으려 하는 것. 그것이 수집의 매력이다.

 

4050세대가 가지는 수집 세계의 법칙

그런데 이렇게 추억의 물건들을 수집하는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4,50대의 법칙이 있다고 한다. 대개 4,50대가 어린 시절 추억을 갖고 있는 물건들의 거래 가격대가 높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요 근래 야구 관련 자료들의 거래가격이 올라갔는데,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생긴 80년 대가 바로 현재 4,50대의 어린 시절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30대에는 수집을 본격적으로 할 경제적, 심리적인 여유가 없지만, 4,50대가 되면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며 추억의 물품들을 수집하려는 욕구가 생기기 때문에 4,50대가 수집 세계의 주도층이 된다는 이야기다.

 

수집가의 운명 - 가족들과의 갈등

4,50대에게 인기 있는 추억 속 물건들의 인기는 2,30년 후 수집가들이 70대 정도가 되는 시기가 되면 식게 된다. 그때쯤 되면 일을 그만두고 경제적인 수입이 줄게 되기 때문에 수집가들은‘가족들의 미움’이라는 운명적인 아픔을 겪게 된다.

생각해보자. 생활비가 부족한데 수집을 한다며 물건을 사 모으고, 수집한 물건을 보관하느라 곳곳마다 물건을 쌓아놓는다. 쳐다만 봐도 진절머리가 날 지경인데, 이런 수집가의 마음을 이해해줄 배우자가, 자녀들이 얼마나 될까?

수집가는 그걸 알면서도 물건 수집을 포기하지 못한다. 꼭 사고 싶은 물건을 찾느라 전국 곳곳을 다니며 찾았던 물건이 경매에 나왔다면 포기할 수는 없다. 그리고 무리를 해서라도 구한 물건을 품에 안았을 그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 수집가의 마음이다.

하지만 그걸 이해하는 가족들은 드물고, 그러다 보니 수집가가 세상을 떠나면 수집가에겐 보물이었던 그 물건들이 한꺼번에 땡처리 물건처럼 중고품, 골동품 시장에 쏟아져 나온다. 실제로 전에 수석을 엄청나게 모으셨던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돌아가시자마자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모은 수석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헐값에 처분해버렸다. 그것이 바로 개인 수집가의 운명이다.

 

수집– 상실과 박탈에 대한 보상물로 대체물을 찾는 행위

어쩌면 지금의 4,50대가 어떤 면에서는 ‘가장 힘든 세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식민지와 해방, 전쟁 같은 역사 속 아픔을 겪은 이전 세대도 있지만, 생활과 문화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거기에 적응하느라 힘겹게 뛰어야 했던 세대가 바로 지금의 4,50대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가다 보니 문명 기기 활용에 뒤처지고, 어린 자녀에게 배워야 하는 최초의 부모 세대가 되기도 했다.

빠른 변화에 혼란스럽고 외로운 세대. 그러다 보니 더더욱 추억에 빠지고 수집에 더 빠져드는 건 아닐까? 혹시 누군가에게 버림받은 추억의 장난감 속에서 자신을 보는 건 아닐까?

<컬렉팅>을 쓴 정신분석학자 베르너 뮌스터베르거는 수집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인간의 수집 행위는 상실과 박탈에 대한 보상물로서 대체물을 찾는 행위다.”라고 말이다. 그러니 어쩌면 현실의 상실감이 4,50대 수집가들을 더 많이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제 중년 수집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먼저 가족들의 그를 이해하려는 시선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중독처럼 수집에 빠지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 수집가가 구하는 물건으로 메울 수 없는 현실 속 상실과 박탈의 원인을 찾아 그걸 해소하려는 가족 공동의 노력도 필요하다.


꿈과 희망도 하나하나 수집하는 중년이 되기를…

‘수집은 내 이야기가 아니네?’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우리도 뭔가를 하나하나 사 모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린 시절 장난감을 갖고 놀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졌다. 어른이 되면 어떤 걸 하리라 꿈을 꾸었다. 이제 내 삶의 중심이 된 4,50대 중년의 나이, 눈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볼 수 있는 세대가 된 지금, 과거 속으로만 들어가기보다 그때처럼 또다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터닝포인트의 시간을 만들면 더 좋지 않을까?

100세 시대, 부족한 현실에 대한 마음의 보상으로 대체물을 찾고 또 그 세계 속에 외롭게 고립되기엔 너무 젊은 나이 아닌가. 가족들과 함께 가정의 행복과 미래의 꿈과 희망도 수집하는 그런 멋진 중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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