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산책로, 네팔 안나푸르나 서킷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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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고원과 인도 평원의 틈바구니에서 히말라야의 대부분을 품고 있는 나라는 네팔이다. 비스듬한 직사각형 모양의 네팔 지형에서 히말라야는 북서에서 남동으로 길게 뻗어 있다. 수도 카트만두를 중심으로 북서쪽으로 마나슬루와 안나푸르나가, 남동쪽으로는 에베레스트와 칸첸중가가 펼쳐진다.

1,950m의 한라산이 최고봉인 우리나라에서는 해발 300m가 안 되는 아차산을 오르는 것도 등산이지만, 네팔 기준으로 해발 6,000m 이하는 어디든 등산이 아닌 트레킹이다.

서킷 코스가 둘러싸고 있는 안나푸르나 산군에는 해발 6,000m 이상인 소위 등산의 대상이 되는 고봉 설산들이 대략 열다섯 개 정도 있다. 이들 중 안나푸르나 1봉(8,091m), 2봉(7,937m), 3봉(7,555m), 4봉(7,525m), 남봉(7,273m), 강가푸르나(7,454m), 닐기리(7,061m) 등 7개 봉우리가 7,000m급이고 마차푸차레(6,997m) 등 나머지 7개가 6,000m급이다.

안나푸르나 서킷은 이들 설산들을 왼쪽으로 바라보며 강을 건너고 계곡과 능선을 따라 정점인 해발 5,416m의 쏘롱 고개(Thorong La) 또는 쏘롱라까지 오르는 트레킹 코스다.

 

색의 축제, 네팔 포카라의 홀리 페스티벌 정경. 홀리 페스티벌 때는 누가 달려들어 염료를 칠해도 화내면 안 된다 .

 

 

ABC 코스 다음 안나푸르나 서킷

 

히말라야의 걷기 좋은 여러 루트 중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선호하는 안나푸르나 트레킹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해발 8,091m의 안나푸르나 정상은 전문 산악인들 몫이고 일반 트레커들에게는 해발 4,130m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nnapruna Base Camp)까지 오르는 약칭 ‘ABC 코스’가 무난하다.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이기도 하다.

ABC를 경험한 이들의 다음 목표는 ‘안나푸르나 서킷(Circuit)’인 경우가 많다.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 중에서 가장 험난하고 어려운 길이다. 등산이 아닌 트레킹으로는 가장 높은 해발 5,416m까지 올라갔다 내려온다. 안나푸르나 라운드(Round)라고도 불리는 이 코스는 이를테면 안나푸르나 산군을 끼고 도는 둘레길이다.

 
 

서킷 코스는 크게 3단계

 

램정 현에서 가장 큰 마을인 베시사하르에서 시작해 마낭 현에서 가장 큰 마을인 마낭까지 90km가 1단계, 마낭에서 정상인 쏘롱라까지 21km가 2단계, 정상에서 좀솜까지 급격한 하산길 29km가 3단계이다. 이어지는 4단계 71km는 나야풀까지 완만한 내리막인데, 차량과 먼지 등 악조건 때문에 차량이나 항공편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도 좀솜에서 3단계만으로 트레킹을 끝냈다.

 

1단계

베시사하르~차메~마낭(90km, 5일)

 

 

4~5km마다 산속 마을을 만나기 때문에 첩첩산중을 걷는 느낌은 별로 없다. 원래 이 루트는 고산족 사람들이 일상 물품을 등에 이거나 노새에 태워 계곡을 건너고 산을 넘어 멀리까지 오고 갈 수 있게 연결한 길이었다. 오랜 세월 당나귀나 노새의 배설물로 다져지고 고산지대 사람들의 한숨과 땀방울로 견고하게 굳어진 길을 걸으며 잠시 고산족의 삶을 생각한다.

수직으로 솟은 절벽으로 인해 낙석의 위험도 많고 급경사 계곡 밑으로 추락 위험도 상존해 사색이 쉽지 않지만 걷는 것만으로도 경이가 느껴진다. 전체 루트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고산 마을인 마낭에 도착하면 대개의 트레커들은 하루를 더 쉬면서 고산에 적응한 다음에 이튿날 출발한다. 마낭은 등산용품점이나 카페, 레스토랑 등 인프라 면에서 능히 하루 더 쉬어 갈 가치가 있는 마을이다.

 

2단계

마낭~야크카르카~정상 쏘롱라(21km, 3일)

 

 

마낭까지는 완만하게 올라갔지만 그 뒤로는 경사가 점점 급격해진다. 레다르 다리를 건너 해발 4,500m의 쏘롱페디까지 사고다발지역이니 조심하라는 표지판도 자주 만난다. 식물이 살아남을 수 있는 한계선은 이미 지났고 너덜길과 눈길만 있을 뿐이다. 몸은 이미 지쳤고 정신도 몽롱해지는 지점이다.

마지막 날 밤은 고산 증세이건 설렘이건 긴장이건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추위 때문에 껴입은 옷가지들과 부족한 산소 때문에 숨을 쉬기가 답답하기도 하다. 밤하늘의 별들이 손에 잡힐 것 같아 두 팔을 허우적거려보기도 한다.

정상인 쏘롱라에 오르면 십여 일간 소진된 에너지가 한순간에 온몸에 차오르는 듯한 희열을 맛볼 수 있다. 주변 사람들과 서로 껴안아 축하해주고, 칼바람 속에서도 인증 사진 몇 장 찍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싸매고 앉아 무념무상에 젖어 있다 보면 금세 한 시간이 지난다.

 

 

3단계

정상 쏘롱라~묵티나트~좀솜(29km, 2일)

 

 

이제 하산할 일이 은근히 걱정된다. 안나푸르나 서킷 전 구간 중에서 하산 길 초입 6km가 가장 가파르다. 해발 4,230m의 차라부까지 6km만 내려오면 급경사의 내리막은 끝이다. 이후부터는 긴장을 풀어도 된다. 차라부에는 낮은 건물 서너 채와 바깥 탁자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마치 넓은 우주정거장 같은 또는 꿈속 어딘가에 있는 듯한 신비로운 정경이다.

이어서 도착한 묵티나트는 불교와 힌두교가 공존하는 성스러운 곳으로 여기에서부터 차량이 다니는 도로다. 이곳에서 좀솜까지 이어지는 19km 구간은 내리막이지만 결코 쉽지는 않다. 거친 너덜길 옆으로 가파른 절벽이 아찔하게 다가온다. 발걸음 내딛기가 무섭게 몰아치는 거센 바람이 있고 오가는 차량들이 만들어 내는 흙모래 먼지에 숨 쉬기도 불편하다.

 

4단계

좀솜~타토파니~나야풀(71km, 3일)

 

 

원래는 좀솜에서 푼힐 등을 거쳐 종착점인 나야풀까지 71km를 더 걸어야 총 211km ‘한 바퀴 일주(Circuit 또는 Round)’가 완성된다. 그러나 쏘롱라까지 올랐던 여정에 비하면 감흥은 떨어지고, 지나는 차량들과 바람이 만들어 내는 흙먼지 등 악조건 때문에 좀솜에서 트레킹을 끝내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하산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의 경우도 좀솜에서 경비행기를 이용해 포카라로 내려갔다.

 

 

안나푸르나 서킷에 도전한다면

 

어느 계절에 가든 겨울철 등반에 맞는 복장(오리털 파카와 침낭)과 장비(아이젠 등)가 기본이다. 고산병 증세에 대한 대비도 중요하다. 다이아막스나 비아그라 등 고산병 약을 기본으로 지참해야 한다. 하루에 너무 많은 거리를 욕심내지 말고, 해발고도를 서서히 올려 가는 것이 고산병 예방법이다. 음주는 삼가고 물을 많이 마시며 마늘수프 등을 주문해 먹는 것도 도움이 된다. 혼자보다는 2~4명이 팀을 이루는 게 안전은 물론 경비 면에서도 유리하다.

 

 

찾아가는 교통편

카트만두까지는 대한항공 직항 등 항공편이 다양하다. 카트만두에서 베시사하르까지는 버스로 7시간 소요된다. 인원이 서너 명이라면 지프차를 대절해서 가면 효율적이다.

 
숙박

숙소가 있는 고산 마을을 하루에 두세 번 만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사전 예약 없이도 숙소를 잡는 데 별문제가 없다. 대부분 난방이 안 되고, 침상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경우가 많아 개인 침낭은 필수다.

 
최저 비용

트레킹 10일에 현지까지 오고 가는 일정, 카트만두와 포카라 체류 등을 포함하면 20일 여정이 좋다. 하루 숙식비는 넉넉하게 4만원. 여기에 허가 비용, 대중교통비 등 기타 비용 30만원, 항공료 90만원을 합하면 총 200만원 선이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

5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는 피하는 게 좋다. 겨울철인 12월부터 2월까지는 폭설 때문에 막히는 구간이 많다. 봄철인 3월 초부터 5월 중순까지 그리고 가을철인 9월 중순부터 11월 말까지가 트레킹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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