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대회 자원봉사 그랜드슬램 달성
황보순철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로 하계올림픽,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까지 국제대회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한국. 황보순철 씨는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을 시작으로 2002 한일 월드컵,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거쳐 올해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참여했으니 자원봉사로 국제대회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셈이다. 올림픽 기간 내내 그와 함께한 청년들은 존경과 부러움의 눈빛으로 그를 따랐다.

“우리나라가 1984년을 기점으로 컬러TV로 바뀌었어요. 휘황찬란한 화면으로 LA 올림픽을 보는데 자원봉사자들의 밝은 얼굴을 보며 무작정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1986년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국제대회 자원봉사의 길에 들어섰다. 스물한 살이던 청년은 어느덧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됐다. 시간의 흐름을 몸과 경험으로 겪어서인지 황보순철 씨의 기억에 그 시절의 한국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시민의식이 많이 달라졌어요. 평창에서는 AD 카드 발급 일을 했지만 이전까지는 관중 안내를 맡았어요. 서울 올림픽 때 술을 가지고 들어가시려는 분들을 막느라 고생도 했고, 보안 검색을 불편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설명하느라 애 좀 먹었죠. 돌아보면 다 추억이네요.”
 

아들 승일 씨가 강릉에서 단기 근무를 한 덕에 평창 올림픽의 즐거움이 배가됐다.

다양한 연령과 국적의 자원봉사자가 모인 평창에서도 황보순철 씨는 단연 스타였다. 국제대회를 거치며 모은 AD 카드 11장은 그의 인생을 보여주는 역사이자 보람이다. 자원봉사 그랜드슬램이라는 가치가 욕심났지만 처음에는 머뭇거리기도 했다고.

“면접장을 둘러보니 대부분의 지원자가 학생들이더군요. 제가 자원봉사를 시작할 때의 나이 정도 였어요. 어린 청년들의 기회를 빼앗는 건 아닌지 고민이 깊었는데 제 경험을 전수하고 동기를 부여해주는 일도 또 다른 자원봉사라는 면접관의 설득에 마음을 다잡았죠. 일부러 그동안 착용한 AD 카드를 모두 들고 평창에 갔어요. 청년 자원봉사자들을 앞에 두고 경험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박수가 터져 나오더라고요. 그 순간의 감격과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네요.”

평창 동계올림픽이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또 있다. 아들과 함께 즐길 수 있었기 때문. 아들 승일 씨는 강릉에서 단기 근무를, 황보순철 씨는 평창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지역이 다르고 일이 바빠서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같은 옷을 입고 만나니 감회가 남다르더라고요. 설 때는 평창에서 세배까지 받았어요.”

매 순간 좋은 기억만 남았지만 자원봉사가 쉽지만은 않았다. 날씨가 추워 평창에 도착하자마자 입술이 다 터지기도 했고, 한 달여 동안 아내에게 문구사를 맡겨놓아 마음도 편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즐거웠다.
“설을 맞아 거래처 사장님께 현장 사진과 함께 짧은 새해 인사를 보냈어요. 놀라서 답장이 왔어요. 황보 사장 얼굴이 이렇게 밝았냐고요. 평소에 웃지 않았던 걸 반성하면서도 자원봉사를 정말 즐기고 있다고 느꼈죠. 즐거움이 없었다면 이렇게 오래 지속할 수도 없었을 거예요.”

대한민국을 세계에 널리 알렸던 서울 올림픽, 상상도 못한 순위를 냈던 한일 월드컵, 평화의 디딤돌이 된 평창 올림픽까지 역사적인 대회에 함께했다는 자부심이 그를 계속 움직이게 한다.

어린이집 교육 봉사 ‘마마보노’
임영옥

수업 시간에 그린 원두막 그림에 칭찬이 쏟아지자 화가를 꿈꾼 소녀가 있었다. 하루 종일 화실에서 그림만 그리면서도 힘든 줄 모르고 몰두했던 소녀의 재능은 여러 아이들의 마음에 들어가 새로운 꽃을 피웠다. ‘마마보노’ 자원봉사자 임영옥 씨 이야기다.

“결혼 후 20년 동안 주부로만 살다 보니 내 재능을 살려 일을 하고 싶었어요. 경력이 단절된 주부들의 일자리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죠. 재능이라도 나누자는 생각에 구청에 무작정 전화를 걸었어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서초구에서는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음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의 속담을‘마마보노’라는 프로그램으로 실행하고 있다. 엄마의 ‘마마’와 재능의 ‘보노’를 합친‘마마보노’는 어린이집 교육 봉사자들을 일컫는다. 미술교육을 전공한 임영옥 씨는 마마보노가 찾던 사람이었다.

“3~4세 아이들을 교육하려니 처음에는 막막했어요. 관련 서적을 찾아보고 서초구에서 교육도 받으면서 고민을 많이 했죠. 막상 아이들과 만나니 정말 즐겁고 재밌더라고요.”

2016년 교육 봉사를 시작한 그녀는 올해로 3년째 일주일에 한 번 어린이집을 찾는다. 아이들이 직접 만지고 때로는 입으로 맛보기도 하면서 점, 선, 면 등을 체험할 수 있도록 교육하며 창의성을 키울 수 있게 도와준다. 아이들이다 보니 준비물 하나도 허투루 고를 수 없고 시간도 꽤 걸리지만 보람은 크다.

“최근에 남편과 전시회를 보러 갔는데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가 저를 빤히 보더니 인사를 꾸벅하고 가는 거예요. 알고 봤더니 제가 가는 어린이집 1~2세 반 아이였는데 저를 기억하고 있다가 인사를 한 거였어요.”
 

어른 눈에는 별거 아닌 낙서로 보이지만 아이들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볼 때면 책임감도 커진다.

아이들의 그림이 어른 눈에는 별거 아닌 낙서로 보이지만 아이들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볼 때면 책임감도 커진다.

“아무래도 제 아이의 성장에 따라 그 또래에게만 관심을 갖게 됐는데 직접 가르치니 관심의 대상이 달라졌어요. 지나가다가도 3~4세 아이들이 보이면 더 예쁘고 궁금해요. 이 아이들이 나라의 미래가 되는 거잖아요. 바르고 예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명 한 명과 만나고 있어요.”

마마보노를 만나기 전에도 딸과 함께 지체장애 시설 목욕 봉사를 다닐 정도로 자원봉사가 생활인 임영옥 씨. 아이들 앞에서는 선생님이자 엄마의 마음이 되어 더 따뜻하게 품게 된다.

“3년 전에 그림을 온통 까맣게 칠하는 아이를 만났어요. 활발해 보여도 아픈 부분이 많구나 싶어 신경이 쓰였는데 1년이 지나니 그림도 밝아지고 저에게 고민 상담도 한다니까요. 먼저 다가와서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뽀뽀도 해주고요. 사랑을 줬더니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었어요. 아마 돈으로 노력을 보상받는 직장을 구했다면 이런 보람은 못 느꼈을 것 같아요. 다시 생각해도 참 잘했다 싶어요.”

수원중부경찰서모범운전자회
이형진

자원봉사에 나서기 전 이형진 씨는 먼저 제복을 단단히 챙긴다. 푸른 제복 왼쪽 가슴에 새겨진 자신의 이름과 팔에 수놓은‘모범’이라는 글자의 책임감을 먼저 생각하고 도로로 나선다. 이형진 씨에게 봉사는 자부심이자 그 자체로 명예다.

“20년 동안 제복을 벗어본 적이 없어요. 정장보다 제복이 더 많아서 예의를 차려야 하는 자리에 입고 갈 정도죠. 모범운전자의 자리가 쉽게 얻어지지 않거든요. 사업용 차량을 운영하며 2년간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어야 하고 엄격한 요건을 갖춰야 선발 기준을 통과할 수 있어요. 그런 자부심이 없다면 자원봉사도 못하겠죠.”

모범운전자회의 주요 활동은 경찰이 커버하지 못하는 교통 취약 지역의 교통정리부터 각종 행사의 교통 통제, 캠페인 등의 업무다. 이형진 씨가 회장으로 있는 수원중부경찰서모범운전자회의 경우, 경찰청 모범운전자 지침에 따라 회원 1인당 월 6회 이상, 1시간 30분 이상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책임감이 없다면 못 하는 일이다.

“초창기에는 회원들이 러시아워에 직접 사거리에 투입돼 수신호로 교통을 통제하기도 했어요. 수신호 교육도 있었죠. 지금은 워낙 차량이 많아서 꼬리물기, 정지선 위반 등을 저지하며 원활한 흐름을 돕고 있죠. 내 손끝에 따라 꽉 막혔던 도로가 정리될 때 보람이 커요.”
 

모범운전자회의 주요 활동은 경찰이 커버하지 못하는 교통 취약 지역의 교통정리부터 각종 행사의 교통 통제, 캠페인 등의 업무다.

봉사활동이지만 모두에게 환영받는 활동은 아니다. 매연과 추위, 더위를 온몸으로 받아가며 고생스럽게 도로 위에 서 있지만 운전자들의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 때도 많다.

“운전자들이 지도를 따라주지 않을 때도 많아요. 수모를 겪을 때면 우리 마음을 몰라주는가 싶어 섭섭하고 언짢죠. 운전 습관이 제대로 정착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매년 수능일에는 무료 운송 봉사도 한다. 주요 역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학생들을 운송하고 교통 통제도 돕는다. 수험생들의 인생을 건 수능은 그야말로 전쟁 통이다.
“늦어서 급하게 수능 시험장으로 가야 하는 학생들도 많고 당일 학교를 잘못 찾아가는 학생들도 있어요. 같이 마음을 졸이면서 시험장 앞에 내려주고 달려가는 아이들의 등을 보면 짠했죠.”

정해진 봉사활동만 하는 것은 아니다. 수원 곳곳을 제집처럼 다니는 기사들이 모여 있다 보니 수원 구석구석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국토 대청결 운동을 실시하고 관내 저소득 어르신을 대상으로 효도 관광과 연말 ‘사랑의 산타’ 행사도 진행한다. 매일 교통 통제 봉사활동이 끝나면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신호체계가 어긋나 있거나 보완이 필요한 사안들을 모아 경찰서에 전달한다. 회비로 운영하기에는 안전 장비 구입조차 빠듯하지만 즐비하게 걸린 감사장과 유니폼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저뿐 아니라 회원들 모두 모범운전자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어요. 열악한 상황이나 어려움도 있지만 멋있고 꼭 필요한 봉사를 늘려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