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당했다…미투 운동(#MeToo)이 불러온 바람

기사 요약글

침묵이 깨졌다. 그동안 저 깊은 곳에서 똬리를 틀고 있던 고질적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기사 내용

최근 한 검사의 용기 있는 고백을 계기로, 성범죄를 고발하는 미투 운동(#Me Too)이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로 꼽히고 있다. 정부는 미투 운동을 계기로‘피해자 고소 없이도 적극 수사할 것’을 지시하며 성폭력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움직임을 일고 있다.

교육계, 문화예술계, 심지어는 종교계까지. 매일 불거지는 저명한 인사들의 성폭력 문제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요즘. 전성기가 사회 각 분야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미투 운동’에 대해 알아봤다.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님을 말해주고 싶었다.”

미투 운동은 최근 서지현 검사(45·창원지검 통영지청)가 안태근 전 법무부 검사의 성폭력을 폭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는 올 초 JTBC 뉴스룸에 나와 "성폭력 피해자분들께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을 얘기해 주고 싶었다. 그것을 깨닫는 데 8년이 걸렸다."라고 전했다.
검찰 간부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조직적 은폐는 물론 인사 불이익까지 받았다는 서 검사의 폭로는 한국판 '미투 운동'에 불을 지폈다.

후폭풍은 컸다. 검찰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에 정계와 사회가 들썩거리고, 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보복이 두려워 전전긍긍해야 했던 대학생들도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것을 깨닫는 데 8년이 걸렸다."라는 서 검사의 말은 지난해 말부터 전 세계를 휩쓸었던 미투 운동의 물결이 한국에 상륙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한마디였다.
 

미투 운동 어디서 시작됐길래?


미투 운동은 지난 2017년 10월, 할리우드의 거물 영화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이 지난 30여 년간 유명 여배우와 여직원 등을 상대로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하비 와인스타인은 수십 년간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요구를 쉽게 거부할 수 없는 배우들을 대상으로 추악한 욕구를 채워왔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배우 애슐리 쥬드의 공개적 폭로를 시작으로 과거 그에게 당한 성추행 피해를 주장한 여성이 속속들이 등장했다.

우마 서먼도 지난 2월 3일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를 통해 "1994년 개봉한 '펄프 픽션' 작업 이후 와인스타인이 영국 런던 사보이 호텔 방에서 공격했다"고 밝혔다.
하비 와인스타인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피해자들이 70여 명이 넘으며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촉발된 것이다.
 

미투 운동은 ‘연대’의 의미

미투 운동의 본질은 '지지와 연대'다. 가해자가 어떤 막강한 권력으로 행한 잘못된 행동을 고발해 사회적 연대를 해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이 운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미투 운동의 참가자가 낸 용기는 두 번째 참가자에게 응원과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고, 이는 곧 용기의 씨앗이 되어 자란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미투 운동은 단순한 고발운동이 아닌 생존의 문제와 연결된다”라며 “사람은 육체적인 폭력뿐 아니라 정신적인 폭력에 의해서 더 큰, 때로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성폭력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폭로와 사과가 반복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좀 더 나은 사회 구조를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미투 운동의 본질이자 핵심이다.
 

미투 위협하는 명예훼손죄?

성폭력 피해자들의 '미투'를 막고 성폭력 공개를 위축시키는 이유 중 하나가 폭로 이후의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행태를 고발한 피해자들 중엔 가해자들로부터 명예훼손 고소를 당해 되려 피의자 신분으로 법정 싸움을 했던 이들이 많았다.

미투 운동의 걸림돌이 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이 문제가 되는 것은 여기에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성폭력 가해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한다. 이를 이용해 가해자는 명예훼손 고소 과정에서 피해자와의 협상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허위사실에 따른 명예훼손 처벌은 당연하다. 하지만 공익 목적으로 공개한 사실이 명예훼손이 된다는 것은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UN 인권위원회와 다른 나라들 역시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거나 존재 자체가 없다. 피해자가 용기 내어 목소리를 내는 것이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당신도 말하지 못했던, 그럴 수밖에 없었던 트라우마가 있나요


트라우마의 기억은 기억 그 자체로 암호화된다. 성폭력을 비롯한 두렵고 강렬한 경험은 우리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긴다. 만약, 조금이라도 사건의 순간을 회상할 수 있는 단서를 접하면 당시의 상황을 재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몸과 마음은 다시 고통에 휩싸인다.
트라우마로부터 회복이 되지 않는다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의 이차적질환을 유발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가하는 성폭력은 전쟁 경험과 비슷한 수준의 ‘최악의 트라우마’라 할 수 있겠다. 이것이 성폭력을 경험하고도 쉽사리 털어놓지 못하는 이들을 더욱 안타깝게 만든다.

미투 운동이 일어나기 전, 지금껏 성폭력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 사회에서는 ‘부끄러운 것’, ‘숨겨야 할 것’이라고 치부했고,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되려 책임을 전가하기도 했다. 우리도 ‘하필이면 네가 그 시간에 돌아다녀서’, ‘조심하지 못해서’와 같은 무책임한 말을 무심코 피해자에게 던지지는 않았는가.
 

지난 2일, 배우 김태리는 JTBC 뉴스룸에 나와 미투 운동에 대해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내는 것 만이 결국에는 변화를 가져온다.”라고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미투 운동을 통해 오랫동안 눌려 있던 스프링이 위로 튀어 오르듯 뜨거워지는 데에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당신의 삶을 잘 살아온, 성실함과 진정성으로 사회에 기여해온 중년 또한 미투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의 용기에 흥분하기보다는 미투 운동과 같은 현상이 없어도 약자가 부당한 일에 대해 용기를 내어 도움을 청할 수 있고, 이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도록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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