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확실한 행복! 욜로에서 소확행까지, 1편

기사 요약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라고 얘기하지 말자. 이제 먹고사는 것만으로는 행복하지 않다.

기사 내용


적어도 내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아야 하는 시대다. 그것을 작지만 확실한 행복, 이름하여 ‘소확행’이라고 부른다.

 

욜로에서 소확행까지, 여전히 진행 중인 행복 찾기

 

지난 2017년은 욜로(You Only Live Once)의 한 해였다. ‘한 번뿐인 인생’이란 뜻의 문장을 줄인 약자 욜로(YOLO)는 단순히 술자리에서 읊어대는 허세가 아니라 사람들의 인생관을 대변하는 단어가 됐다. 웰빙에서 시작해 힐링과 휘게를 지나면서 축적된 행복에 대한 갈망이 욜로를 만나자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시작은 웰빙이다. 우리나라 경기가 한창 성장세에 있던 2000년대 초반, IMF 구제금융의 힘든 시기를 보내고 난 후 사람들은 풍요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성장 가능성을 위안 삼아 소비의 즐거움을 가불해서 사용하던 때다. 좋은 식재료와 좋은 환경을 찾았다.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직접 체험하면서 행복을 찾았다. 그 후 10년 사이에 상황이 변했다. 기대만큼 오르지 않던 경제성장률은 둔화되고 희망이 줄어갈 때쯤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위로받을 곳을 찾았다. 이때 등장한 힐링보다 적절한 단어는 없다. 무엇을 하더라도 힐링을 위해서라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손에 잡히지 않는 모호한 힐링 대신 좀 더 구체적인 ‘행복어’가 필요해졌다. 이때 등장한 것이 휘게다. 휘게는 힐링과 달리 구체적인‘무엇’이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덴마크에서 발달한 특별한 사회풍토의 산물이었으니,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행복해졌는지 알 수 있는 결과물이 있는 셈이다.

그리고 2017년. 행복 트렌드는 욜로에 이른다. 과거에도 사람들이 행복 찾기에 몰두한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욜로는 힐링과 휘게의 시기를 지나는 동안 지루함을 느낀 사람들의 선택이다. 안락했지만 엉덩이가 근질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래를 위해 현실을 참고 견뎌야 한다던 고도성장기의 가치관은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사실 앞에서 속절없이 흔들렸다. 저성장기의 그늘에서 지친 사람들은 기약 없는 미래 대신 현재의 행복을 찾았다.

하지만 욜로에는 단점이 있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gh Risk High Return). 삶을 급작스럽게 바꿀수록 강렬한 행복을 얻지만 그럴수록 균형감각을 유지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이런 욜로에 대한 반대급부로 등장한 것이 바로 소확행이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의<트렌드코리아 2018>에서 뽑은 올해의 키워드 중 하나인 소확행은 그 말뜻만큼이나 확실한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물리적으로도 가까운 곳에서, 시간적으로도 현재에서 행복을 찾는다. 성취하고 획득하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을 행복으로 여긴다. 김난도 교수는 바로 이 소확행이 그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던 행복에 대한 개념을 바꿀 것으로 내다봤다. 행복이 보이지 않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서, 특별한 행위나 상황이 아닌 평범한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며 크기보다는 빈도가 중요한 포인트임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힐링

몸과 마음의 치유를 뜻하며 정서적 행복을 추구한다

욜로

‘한 번뿐인 인생’이란 뜻의 문장을 줄인 약자 욜로(YOLO)

휘게

아늑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소박한 여유를 즐기는 덴마크식 라이프 휘게(Hygge)

 

 

그런데, 행복이 뭔가요?
 

온 동네 사람들이 행복 찾기에 나선 것 같은 요즘. 그나저나 행복이 뭐였던가.
심리상담 클리닉인 행복연구소 해피언스(www.happiologist.kr)를 운영하는 정신과의사 김진세 박사에게 물었다.

 

 

행복에 대해서도 세대 간에 생각 차이가 있나요?

사회에 갓 나온 20대 청년들과 3040, 그리고 50대 이후가 생각하는 행복은 다르지요. 우리가 행복을 이야기하려면 생존이 먼저 담보돼야 하는데 젊은 사람들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너무 바빠요. 그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기본 조건이 만족되는 것에 가깝겠지요. 50대 이후는 기본 조건이 충족되지만 자녀들이 다 독립하고 빈둥지증후군이 찾아와 허전함과 상실감을 많이 느껴요. 거기에 갱년기가 겹치면서 우울증을 많이 겪는데 더 불행하다고 느낄 수밖에요. 하지만 요즘에는 이런 패턴에도 변화가 많아져서 획일화해서 설명하기 어려워요. 행복의 기준 역시 세대 간에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려워졌고요.


기성세대는 사회적 성공이나 명예 같은 조건 추구를 행복의 기준으로 배웠습니다.

행복이 무엇인가 물어보면, 사람들은 조건을 얘기해요. 그런데 그 전에 행복의 정의를 알아야 해요. 행복은 즐거움과 의미가 공존하는 주관적인 감정이에요. 즐거움만 있으면 쾌락적인 것으로 빠지고 의미만 있으면 고행이지요. 한쪽으로 빠지면 그건 결핍이 채워지는 과정, 즉 만족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만족한다고 하지 않고, 행복하다고 말하면서 혼선을 자초하는 것이지요. 물론 주관적인 감정이란 점에서 사람마다 다른 데다 여기에 비교의 개념이 개입되면서 복잡해져요. 비교를 통해서 좀 더 자기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지만 버려야 하는 본성이기도 하지요. 지나치게 비교하다 보면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오히려 자신의 주관적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되니까요.


금수저론처럼 행복도 사람에 따라 시작이 다를까요?

행복이 생물학적 변인에 따라 달라지는가라는 질문이라면, 답은 안타깝게도 절반의 예스예요. 기질적으로 행복을 잘 느끼는 사람이 있지요. 하지만 기질이 전부는 아니에요. 환경적인 영향도 크지요. 가령 유명 할리우드 영화배우인 앤젤리나 졸리가 입양한 아이들은 입양되지 못한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 행복해질 확률이 훨씬 높죠. 아기일 때 서로 다른 환경으로 입양된 일란성쌍둥이가 법정에서 판사와 범죄 피의자로 만났는데 나중에야 알아봤다는 일화도 유명하고요. 유전적으로 100% 똑같더라도 환경에 따라 사람이 바뀐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죠.


사회적 환경이 행복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기군요. 그렇다면 사회의 발달과 인문학적 성숙이 행복에 대한 기준이나 인식 변화에도 영향을 미치겠군요.

그동안 행복과 관련한 새로운 용어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대부분 유럽 쪽이고 정작 미국에서 나온 말은 별로 없다는 점이 흥미롭지요. 생존이 담보돼야 행복을 얘기할 수 있지만 경제적 풍요가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국의 사례가 보여주는 겁니다. 유럽은 계층 간의 갈등이 긴 시간에 걸쳐 해결되고 봉합되는 과정을 거친 성숙한 사회이고요.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 행복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온다는 점인데요, 우리나라도 역사적으로 보면 오래전부터 사회가 가지고 있던 인본주의적 가치관을 복원한다면 행복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더 발전해야 할 것이 많지만요.


우리는 행복이 무엇인지 배우거나 생각할 기회를 가진 기억이 없습니다. 젊은 세대의 눈에 비친 기성세대는 행복해지는 법을 모르는 사람으로 보여요. 항상 화가 나 있거나 즐겁지 못한 사람들로요.

기성세대는 노력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몰라요. 그저 끊임없이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도록 페달만 굴려왔는데 잠깐 멈춰서 물 한 모금 마시라고 해도 자전거를 세우지 못하는 상황인 거죠. 알려고 노력해야 해요. 또, 변화를 두려워하면 안 되지요. 젊은 친구들이 실천하는 소확행 같은 것도 우리 트렌드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해요.

물론, 소확행이 전부 긍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소확행이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면 좋겠는데 일종의 유행처럼 번져서는 안 된다고 봐요. 기본적인 행복에 대한 개념을 중심으로 변화해야 하는 것이죠. 소확행에‘어차피 안 되니까’라는 심리가 숨어 있다는 염려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사회현상에는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게 마련이니까요.


행복을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에게 행복한지 묻는 조사를 하고 10년 뒤에 다시 조사해봤더니 일관되게 행복하다고 답한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어요. 직업이나 성취 같은 것은 전혀 상관없고, 앞선 설문조사에서‘지금 행복하다’고 답한 사람들이었죠. 행복해지기 위해 의미만 붙잡고 있으면 미래에 행복해질 가능성이 줄어들어요. 그리고 지금 행복해야 행복의 빈도가 늘어나는 것이고요. 현재의 행복에 집중해야 합니다.

 



*정신과 의사 김진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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