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선의 조율하는 삶

기사 요약글

나를 불러주는 곳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요. 그래서 누가 되지 않게 열심히 살려고 해요.

기사 내용

삶을 조율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대개‘나’에 대한 욕심이 앞서기 때문이다.
배우 전미선은 연기에서도 삶에서도 자기만의 조율법을 갖고 있었다.

“의자에서 다리를 빼볼까요?” 촬영 도중 모니터로 사진을 확인하더니 즉석에서 제안했다.
이전보다 한결 좋은 사진이 모니터로 옮겨진다. 그녀도 만족스런 표정이다. 전미선은 장시간 촬영에도 흐트러짐이 없었고 촬영 중간중간 자신의 모습을 챙기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2017년, 전미선은 바쁘고 의미 있는 한 해를 보냈다. 드라마 <파수꾼> <안단테> <미워도 사랑해>에 출연해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연말에는 영화 <내게 남은 사랑을>이 개봉해 관객들에게 잊고 있던 가족의 소중함을 전했다. 그리고 강부자와 함께 출연하는 연극 <친정엄마>는 10주년을 맞았다. 자식바라기 엄마와 시한부 딸의 마지막 시간을 다룬 이 연극은 잔잔한 화제를 낳으며 지금까지 70여 만 명이 관람했다. 그녀에게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깃든 작품이다.

 

실제 친정어머니에게도 잘하나요?
엄마를 생각하면 감정이입이 많이 돼요. 극 중 주인공처럼 만약 내가 죽는다면? 나는 어떻게 죽음의 순간을 맞이할까? 생각해보곤 하죠.어렸을 때 다들 죽음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잖아요.서른 초반에 유서를 한번 써봤어요. 전미선. 부모님이 주신 이름 석 자 말고는 채울 말이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한 게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빈 여백에 뭔가 채우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죠. 내가 없더라도 누군가 나를 생각하면 행복한 추억이 떠올라 괜히 미소 짓는, 나에 대한 미움보다 행복한 추억을 나누는, 그런 삶의 마무리를 꿈꿔요.

 

추억 만들기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요?
노력하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던데요(웃음). 삶의 마무리도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가족끼리 단체로 죽음 체험을 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서로의 소중함을 돌아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요?

 

나를 위한 시간은 어떻게 보내나요?
되도록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감성이 사라지고 자꾸 이성적인 사람으로 변하는 것 같아서요. 왜 그럴까 봤더니 결혼 이후에 생긴 변화더라고요. 아무래도 가정이 있고 아이를 키우니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니까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가족이 잠시 없을 때를 이용해 단 30분이라도 나만의 시간을 보내요.
 

그 시간에 주로 뭘 하나요?
최대한 내 몸속에 있는 외로움의 세포를 끄집어내요. 박효신, 휘성, 김동률 등 제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틀고 가사를 음미하면서요.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이용해 제 몸과 감정을 컨트롤하는 방법이에요. 그리고 두 달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 그림을 배우고 있어요.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잘 그렸어요. 배우고 싶다는 마음만 갖고 있다가 어느 날 꿈속에서 본 장면이 너무 생생해 그 장면을 캔버스에 옮기고 싶어 배우기 시작했죠. 아직 유화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덧칠할 때마다 모양이 달라져요. 뭐든 과하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림을 거울 삼아 나를 들여다볼 때가 많아 좋더라고요.
 

자신에 대해 성찰을 많이 하나 봅니다.
굉장히 많이 해요. 저 자신을 연구하는 걸 즐길 정도예요. 20대 후반부터 내가 어떤 매력을 지녔는지, 남들이 보기에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연구했죠. 지금까지는 내가 그린 모습대로 살아왔어요. 중간중간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일까 하고 자책도 하지만, 상상했던 그림이 현실이 되니 재미있고 쾌감도 느껴요.

 

머지않은 50대는 어떤 그림으로 완성했나요?
50대는 어떨까 궁금한데 안타깝게도 50대는 어떻게 그려야 할지 감이 잘 안 와요. 내가 지금 삶에 안주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 열심히 뭔가를 찾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이렇게 훈련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대 때 화면에 비친 모습과 실제 모습이 너무 달라 고민이 많았어요. 어느 날 한 감독님이 연기를 위해 치장하던 저에게 “미선아, 외모는 중요하지 않아. 네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몸에서 배어나게 해야지. 치장에 너무 신경 쓰지 마라”고 했어요. 그 말이 맞더라고요. 그럼 내 몸에서 배어나게 할 수 있는 건 뭐지? 그러면서 내가 보는 내 모습과 남이 보는 내 모습이 다를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럼 남이 나를 바라보는 모습은 어떨까를 연구했죠. 제가 말을 잘 듣게 생겼잖아요. 순종할 것 같고(웃음). 그래서 일단 저를 그 모습으로 맞춰갔지요. 나이가 들면 나를 보는 시선도 유연해지니 그때 내가 보는 내 모습이 나오면 된다고 저를 다독이면서.
 

그렇게 생각하면 나이 드는 것이 싫지 않겠어요?
거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요. 제가 그 나이에 맞게 살면 되잖아요.
 

스스로 바라본 전미선은 어떤 사람인가요?
보이는 것과 달리 단순하고 굉장히 낙천적인 사람이에요. 일방적이고 내 관심사에만 집중하고요. 저에 대해 연구는 하지만 그렇다고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저는 내일 할 고민을 오늘 안 해요. 오늘만 행복하면 돼요. 어려서 숙제도 어차피 못할 것 같으면 안 했어요. 괜히 못할 거면서 스트레스 받을 필요 있나 싶었죠? 공부에도 별 관심이 없었지요. 똑똑하다는 사람들을 봤는데 제 눈에는 머리만 똑똑하지, 마음은 똑똑하지 않더라고요. 저는 그저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꿈이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교집합은 있네요. 남들이 나를 모양처로 보니까요(웃음). 근데 지금 와서 보니 제가 현모양처를 오해했더라고요.
 

자발적 행복을 추구하네요.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보는 사람은 답답해하지요. 어려서 많이 들은 말이 “저렇게 게을러서 뭘 할지?” 하는 소리였죠. 주위에선 저에 대한 고민이 산더미 같은데 정작 저 자신은 고민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 남들이 원하는 내 모습과의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지요. 내가 밝은 역을 하면 왠지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보고요.
 

한편으로는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니 감정 컨트롤을 할 수밖에 없네요?
수상스키를 즐기고 캠핑도 즐기던 외향적인 사람이 슬픈 역할을 해야 하니 너무 힘들었죠. 그래서 그런 감정을 끄집어내고자 몰입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욕심이 별로 없나요?
저의 아주 큰 단점이에요. 어머니는 요즘도 “무슨 애가 그렇게 욕심이 없니” 하고 나무라세요. 적당한 욕심은 펌프 역할을 하니까 가져보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 돼요. 욕심도 부릴 줄 아는 사람이 부리는가 봐요. 고민도 하던 사람이 해야지, 안 하던 사람이 하니까 멘붕이 오더라고요.
 

그럼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는 어떻게 고민하죠?
제가 요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세 번 심호흡하고 세 번 생각하고 말하기’예요. 결정을 내릴 때도 인간관계에서도 적용하는 원칙이지요. 실수도 세 번까지 이해해요. 몰라서 하는 것이 실수고 아는데 하면 잘못이잖아요. 세 번 이상 되면 당분간 관계를 끊어요. 그러다 다시 찾아오면 또 만나긴 하지만(웃음).
 

지금 친정어머니의 나이가 됐을 때 전미선은 어떤 모습일까요?
배우로서는 함께 호흡을 맞춰본 강부자, 김혜자, 나문희, 윤여정, 이미숙 선생님들처럼 많은 후배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는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그 길을 가기 위해서 지금 노력하는 거고요. 개인 전미선은 행복한 사람이 돼 그 행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눠 가지는, 베푸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올해 계획은 무엇인가요?
거창한 목표는 없고 지난해와 다르게 살기예요. 지금 방영 중인 드라마 <미워도 사랑해>와 연극 <친정엄마>를 열심히 할 생각이에요. 나를 불러주는 곳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요. 그래서 누가 되지 않게 열심히 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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