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경의 유쾌한 중년 라이프

기사 요약글

나의 에너지가 누군가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 정말 기쁘고 즐거워요.

기사 내용

옆에 있는 사람까지 기분 좋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배우 전수경이 그렇다. 뮤지컬에서 드라마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언제 어디서나 유쾌한 그녀를 만났다.


“하하하하~”


촬영 내내 전수경 특유의 시원스런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중년 여성을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다는 그녀는 당당하고 씩씩하게 밝은 에너지를 뿜어내며 스튜디오에 활력을 더했다. 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에서 비키정 역을 맡아 온갖 악행을 저지르던 다솜에게 통쾌한 복수를 선보이며 시청자들에게 얻은 별명 ‘갓키정’ ‘역대급 사이다 언니’다웠다.

비키정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는 흥분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연기 인생 최고의 캐릭터 비키정 덕분에 초등학생들에게도 사랑받는 TV 스타로 등극했다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한다. 어떻게 그렇게 늘 유쾌할 수 있는지 묻자, 그녀가 다소 뜻밖의 고백을 한다. 요즘 갱년기가 시작됐다고.

 

항상 밝은 모습이라 주변에서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 같네요.
저도 에너지가 넘치는 성격이라 갱년기 없이 그냥 지나갈 줄 알았어요. 꾸준히 일하고 열심히 운동하면서 즐겁게 사니까요. 그랬는데 일시적으로 오는 증상이 있더라고요. 감기에 걸린 것처럼 열이 올랐다 내렸다 하고, 목도 건조해지고요. 예전보다 기력도 없어요. 오늘 아침에도 우울을 느꼈다니까요.

중년 여성들을 열광시킨 뮤지컬 <메노포즈>를 오래 연기했는데, 그때 터득한 나름의 비법이 있지 않나요?
너무 일찍 연기했어요. 지금 연기했으면 아주 리얼했을 텐데요(웃음). 일단 주위 선배들에게 도움을 받아요. 특히 윤석화 선배님이 자신의 경험을 전해주면서 조언을 많이 해주시지요. 개인적으로도 틈만 나면 자꾸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하고요. 주변에서 추천해준 약도 먹어요. 내 의지도 중요하지만, 약이든 조언이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굳이 마다할 필요가 있나요? 그렇게 이겨내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다 보면 이 또한 지나가지 않을까 싶어요.

 

삶의 태도가 긍정적이네요.
제 인생의 모토가 감사와 배움이에요. 제일 좋아하는 말은 ‘균형’이고요. 한쪽으로 쏠리는 ‘광’자가 들어가는 말을 안 좋아해요.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살려고 노력하지요. 그러려면 작은 일에도 감사해야 하고, 힘든 일에서 지혜를 배워야 해요. 삶의 위기를 겪으면서 터득한 방법이지요. 예전에 뮤지컬 공연 중에 저만 정리해고가 된 적이 있어요. 굉장히 외롭고 힘든 시기였어요. 그때 저를 일으켜 세운 격언이 있어요. ‘사람이 한 가지 일을 경험하지 않으면 한 가지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 어느 날 우연히 본 이 <명심보감>의 글귀가 가슴에 딱 꽂히는 겁니다. 수첩에 메모하는 것을 좋아해 이 격언을 적어두고 자주 봤어요. 어쩌면 그 힘든 상황도 ‘나에게 지혜가 생기려고 벌어진 일이겠구나’ 하고 받아들였죠. 더 이상 울면서 남들을 원망하고 불평하기보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부족한 것이 뭔지 돌아보자, 그래서 채워보자 하고 마음먹었죠. 그날 이후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나를 키워나갔어요. 저에게 지혜를 준 사건이었지요. 갑상선암으로 무대를 잠깐 떠나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죠. 모든 터널은 끝이 있잖아요. 그리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 태양이 더 눈부시잖아요. 그 시기에 겪는 어려움에는 감사와 배움이 있는 것 같아요.

삶의 위기 신호를 긍정 신호로 바꾸는 것도 노력하면 되던가요?
천성도 크게 작용하겠지만, 연습하면 가능해요. 저는 아버지가 굉장히 긍정적인 분이라 타고난 점도 있어요. 그렇지만 너무 나 자신만 믿지 않았죠. 좋고 싫고를 떠나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에게도 배우려고 노력했어요. 그렇게 세상이 주는 자잘한 배움을 조금씩 알게 되니 저라는 사람의 질이 좋아지더라고요. 내게 문제가 생기면 남 탓이나 환경 탓을 많이 하게 되잖아요. 남이나 내 환경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고요.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야 해요. 나를 갈고닦으면 좋은 환경으로 자꾸 가게 되는 것 같아요. 클래식 차가 왜 클래식이겠어요. 오래돼서 전통이 느껴지고 가치가 부여돼 명품이 되잖아요. 사람도 나이가 주는 지혜를 쌓으면 인간 명품이 되는 거죠.

지금 나이에 배운 것은 뭔가요?
선택과 집중이에요. 남편에게 배웠어요. 남편과 연애 시절 제 삶이 정신없었어요. 매니저도 없이 혼자서 지방 공연을 갔다가 올라와 곧장 드라마 촬영하러 가고, 잠시 시간 나면 집에 들러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제가 어떤 제안을 받으면 무조건 YES예요. NO를 못 하는 성격이거든요. 지쳐 있어도 내 안의 에너지를 최대한 뽑아내 기분을 끌어올리고요. 제가 원더우먼도 아니니 병이 생길 수밖에 없었지요. 그럴 때 남편이 “인생은 장기전”이라고 충고해요. 저란 사람을 파악하더니 “인생은 길다. 너를 위해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때때로 가지치기를 할 필요도 있다”면서 삶의 균형을 맞추라고 하더군요. 기분파인 저를 눌러줘요. 그 덕에 선택과 집중을 알게 됐어요. 하나 더, 일에 대한 욕심을 덜었어요. 그랬더니 마음이 평화로워졌어요. 저는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20대는 뭔가 풋사과라고 할까요, 그윽한 맛이 안 나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향기가 뭔지 모르니 자꾸 밖으로 표출하고 드러내는 나이잖아요. 연륜이 쌓여 여유로움을 알게 된 지금이 좋아요. 나이에 맞춰 즐겁게 사는 방법이 있나요? 롤 모델을 저보다 어린 친구가 아니라 제 나이 위에서 찾아요. 왜 멋진 은발에서 기품이 느껴지는 분들 있잖아요. 그분들이 왜 우아하고 아름다운지 살펴보죠. 이를테면 나이에 맞는 패션도 있어요. 저도 30대까지 민소매나 파인 옷, 좀 드러나고 화려한 의상을 추구했어요. 40대가 되니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이 좋아서 그레이, 블랙, 베이지, 화이트 계열의 시크한 옷을 주로 입었어요. 50대가 되고 보니 그렇게 입었다가는 칙칙해져요. 몸에 반사판을 대야겠더라고요. 왜 50대 여인들이 스카프에 열광하는지 알게 된 겁니다.그래서 핑크, 초록, 보라가 섞인 스카프라도 두르기 시작했죠. 블라우스도 약간 핑크가 들어가고, 립스틱도 누드에 레드를 조금 섞어 바르고요. 나이에 따라 아름다움의 기준을 달리하며 사는 거죠.

 

최근 남편과 촬영한 결혼 3주년 화보가 인터넷에서 화제였어요. 누가 먼저 제안했나요?
남편(그녀의 남편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에릭 스완슨으로, 밀레니엄 서울힐튼 호텔 총지배인이다. 두 사람은 2014년 당시 많은 화제를 낳으며 결혼했다)이 결혼식 당일 교통사고가 나서 코가 부러진 상태로 결혼식을 치렀어요. 결혼식 사진을 보면 부은 얼굴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어요. 마침 제안도 왔고 결혼 3주년이고 해서, 더 나이 들기 전에 우리 모습을 남겨 두자는 마음에 남편과 함께 촬영했죠.

부부끼리 이벤트를 자주 갖나요?
챙기는 날이 많으면 서로 피곤해지잖아요. 그래서 생일, 화이트 데이, 결혼기념일만 챙겨요. 화이트 데이는 제가 남편에게 꽃을 선물하는 날이고, 지난 2년 동안의 결혼기념일은 함께 울세라 레이저를 하는 날이었어요(웃음). 뭘 할까 고민하다가 이왕이면 우리에게 젊음이라는 선물을 제공하자고 결정했죠. 올해는 제가 촬영 때문에 바빠 아무것도 못할 뻔했는데, 그냥 지나치면 습관이 되니까 1박 2일로 둘만의 ‘호텔 투어’를 했어요. 다른 호텔에 가니 경쟁사 총지배인이 왔다고 더 신경을 쓰던데요(웃음). 즐거운 추억이었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결혼기념일에 호텔 투어를 해볼까 싶어요.

부부의 시간은 어떻게 선택과 집중을 합니까?
각자의 일에 바쁘지만, 꼭 지키는 저희만의 약속이 있어요. 매주 토요일에 함께 운동하기, 요리하기죠. 아침에 1시간 30분 정도 같이 운동하고 요리는 한 번은 남편이, 두 번은 제가 하죠. 당연히 설거지는 요리를 하지 않은 사람이 하고요. 한 달에 한 번씩 함께 네일 케어도 받습니다. 남편은 제가 본 사람 중에 가장 발이 청결한 사람이에요. 호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 청결 관리가 아주 철저해요.

나를 위한 시간에는 뭘 하며 보내나요?
제가 제일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반신욕이에요. 욕실을 깔끔하게 정리한 뒤 향초를 켜고 욕조에는 꽃잎이나 아로마를 띄워요. 그리고 욕조에 들어가 내가 좋아하는 재즈 음악을 들으며 와인을 마시죠. 일주일에 하루를 그렇게 보내요. 온전히 제 자신에게 휴식을 주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에요. 일주일을 열심히 산 내가 그 정도 호사를 누릴 자격은 있거든요. 요즘엔 나를 위해 물건 다이어트를 주기적으로 해요.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고 있어요.

물건 다이어트법을 소개한다면요?
공간이 숨을 쉬게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옷장에 옷을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옷장이 충분히 숨을 쉴 쉬 있도록 비워요. 명품 숍의 옷이 다 멋있어 보이는 것은 옷장이 숨을 쉬고 있어서 그래요. 그런 식으로 불필요한 옷을 정리하죠. 규모를 줄인 다음에, 티셔츠와 치마를 새로 샀다면 전에 샀던 티셔츠와 치마를 빼는 겁니다. 그냥 버리지 않고 아름다운가게에 기부하고 뮤지컬 후배들에게 주지요. 주는 나도 기분 좋고, 받는 사람도 좋고요.

전수경이 생각하는 전성기란?
노력 없이 오는 전성기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간과 역경을 거치면서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전성기야말로 남들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한 전성기가 아닐까요? 전성기는 왔다가도 가고 갔다가도 오는 것이기에 조급해할 필요도 없고요. 봄에 활짝 피는 꽃도 있지만 겨울에 눈보라를 뚫고 피는 꽃도 있어요. 오히려 늦게 온 전성기가 더 풍성해지는 것 같아요.

60대 전수경의 모습이 궁금해지네요.
어디가 아파서 골골하지 않으면 여전히 유쾌하게 살고 있을 것 같아요. 가끔씩 주부들 대상으로 특강을 합니다. 제 강연을 듣는 분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지면서, 화사해지는 걸 지켜볼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내가 좀 열정이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뿌듯해요. 나의 에너지가 누군가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 정말 기쁘고 즐거워요. 그렇게 누군가에게 내 에너지를 전파하며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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